[새로운 대한민국⑧] 발표보다 집행, 메가프로젝트 시간표를 가르는 행정 속도
청와대 전담체계·원스톱 행정·인허가 병행 추진…AI 기반망 경쟁, 투자 규모에서 완공 속도로 이동
[KtN 박준식기자]용인 클러스터 조성에는 9년이 걸렸다. SK하이닉스는 2045년 완공 예정이던 용인 클러스터 계획을 12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수요가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9년은 기업의 투자계획보다 국가의 행정 속도를 더 크게 드러내는 숫자가 됐다. 2026년 6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이후 3대 메가프로젝트의 무게는 발표 규모에서 집행 시간표로 넘어갔다.
경부고속도로는 착공과 완공의 속도로 산업화의 시간을 앞당겼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은 통신망 보급 속도로 디지털 경제의 출발선을 바꿨다. AI 기반망은 더 복잡하다. 반도체 팹,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실증, 전력망, 용수, 산단, 주거, 교통, 대학과 연구기관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어느 하나가 늦어지면 반도체 고속도로와 지능 생산공장, 피지컬 AI 고속도로의 전체 속도가 떨어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보고회 모두발언에서 글로벌 인공지능 경쟁을 “총력전인 동시에 국지전”으로 규정했다.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전력과 용수까지 경쟁 전선이 넓어졌고, “오직 속도전만이 살 길”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3대 메가프로젝트 전담 담당관을 두고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속도전은 구호가 아니라 행정 구조의 문제다. 기업은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지만, 부지 지정과 보상, 환경 검토, 전력망과 용수 공급, 도로와 주거 인프라, 지방정부 협의는 정부 영역에 걸려 있다. 공장 장비를 사는 속도보다 산단을 만드는 속도가 느리면 기업 투자는 장부 위의 계획에 머문다. AI 기반망 경쟁에서 행정은 후방 지원이 아니라 생산능력의 일부가 됐다.
국민보고회 자유토론에서도 기업 측 요청은 분명했다. 용인 국가산단을 포함한 절차를 한 곳에서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는 원스톱 행정 지원, 국가산단의 전력과 용수 공급에 대한 국가 책임, 정주 여건 개선 요청이 함께 제시됐다. 대통령은 신속한 원스톱 행정 절차를 직접 책임지겠다고 답했다.
청와대 전담체계는 같은 흐름에서 나왔다. 대통령은 별도 전담팀을 구성해 임기 종료 때까지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국가산단 인프라, 특히 전력과 용수에 대해서는 반도체 특별법상 지방 우선 지원이 가능한 만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이어졌다. 지방정부가 일부 부담을 맡는 방식까지 거론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행정 역할 분담도 집행 구조 안으로 들어왔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집행은 기존 산업단지 조성 방식과 충돌한다. 국토교통부 발표는 기존 방식대로 계획을 세우고 평가, 조사, 보상, 설계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면 10년이 훌쩍 넘어간다고 봤다. 정부는 계획과 보상, 설계를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트랙으로 조성 기간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기업 투자의 성패가 타이밍에 달렸다는 판단도 함께 나왔다.
순차 행정은 안정성을 갖지만 AI 경쟁의 속도와 맞지 않는다. 반도체 수요는 몇 년 사이에 급변하고,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도 빠르게 늘어난다. 피지컬 AI 시장은 아직 판도가 굳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각국이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산단 지정이 끝난 뒤 보상을 하고, 보상이 끝난 뒤 설계를 하고, 설계가 끝난 뒤 전력과 용수를 붙이는 방식으로는 투자 시점을 놓칠 수 있다. 행정 판단의 순서를 병렬로 바꾸는 일이 메가프로젝트의 실제 출발선이다.
다만 병렬 추진은 절차 생략과 다르다. 토지 보상, 환경영향, 주민 수용성, 전력망 건설, 수자원 활용은 지역 주민의 생활과 안전에 직접 닿는다. 속도를 앞세워 검토를 건너뛰면 뒤늦은 갈등으로 전체 일정이 더 흔들릴 수 있다. 필요한 검토를 같은 시기에 올리고, 부처와 지자체의 판단을 한 테이블에서 맞추며, 지연 요인을 앞에서 제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AI 시대 행정 속도는 규정 회피가 아니라 규정 처리 방식의 재설계에서 나온다.
용인 클러스터는 기존 방식의 시간을 보여주는 기준점이다. SK 측은 용인 클러스터 조성에 9년이 걸렸다고 설명하며,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 선정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도체 공장에는 대규모 부지와 전력, 용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언급됐다.
용인 클러스터의 12년 단축 구상은 행정과 인프라 일정이 함께 움직일 때 가능하다. 팹 건설 자체를 앞당기더라도 전력망이 늦으면 장비 반입과 가동 일정이 밀린다. 용수 공급이 늦으면 공정 안정성이 흔들린다. 인력과 주거, 교통이 뒤따르지 않으면 가동 이후 운영 비용이 커진다. 공장 완공의 시간표는 산업단지 바깥의 행정 일정과 연결돼 있다.
서남권 신규 클러스터는 더 복잡한 집행 구조를 요구한다. 기존 반도체 생태계가 있는 용인과 달리, 서남권은 부지와 전력·용수 조건을 바탕으로 새 생산기지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은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고, SK하이닉스는 서남권 약 400조원 신규 클러스터 구상을 내놨다. 두 기업 모두 전력, 용수, 인력, 인프라를 투자 조건으로 언급했다.
서남권은 투자 발표만으로 산단이 되지 않는다. 후보지 선정, 군공항 이전 또는 부지 전환, 산업단지 지정, 환경 검토, 전력망 접속, 용수 공급, 도로와 철도, 주거와 교육, 협력업체 부지까지 함께 맞아야 한다. 후속 논의에서 광주 군공항 부지가 호남권 반도체 산단 후보로 구체화된 것도 집행 단계가 이미 입지와 인프라의 세부 문제로 들어갔다는 의미를 갖는다. 제공 자료 기준으로 정부는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후보지 선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산업단지 개발 후속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전력과 용수는 집행 일정의 가장 큰 변수다. 서남권 반도체 공장에는 6.3GW 전력과 65만톤 용수, 수도권 용인 반도체 팹에는 약 15GW 전력과 150만톤 용수가 필요하다는 발표가 나왔다. 충청·영남·호남·강원권 등에 들어설 AI 데이터센터에는 약 8GW 이상의 전력도 필요하다. 전력망과 용수 계획이 투자 일정과 따로 움직이면 팹과 데이터센터 완공은 늦어진다.
용수 공급 논의에서는 수계 조정, 지자체 댐, 발전용 댐, 농업용 댐, 하수 재이용, 댐 증고까지 거론됐다. 서남권 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설명도 나왔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 투자가 물 관리 체계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수자원은 더 이상 산업단지 조성 뒤에 붙는 설비가 아니라 투자 판단의 앞단에 놓인 조건이다.
전력망은 행정 속도와 주민 수용성이 동시에 걸린다. 송전선로와 변전소는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과 직결되고, 재생에너지와 원전, SMR, ESS, 양수발전, LNG, 수소 전환을 어떤 조합으로 가져갈지도 지역별 이해관계와 맞물린다. 전력망을 빨리 깔아야 하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이면 뒤늦은 갈등으로 더 큰 지연이 생긴다. AI 기반망의 집행력은 전력 설비를 얼마나 빨리 짓느냐뿐 아니라 지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추진하느냐에서도 갈린다.
기업형 첨단도시도 같은 시간표 안에 있다. 국토교통부는 출퇴근과 생활권 30분, 물류권 1시간을 목표로 제시하고, 산업단지와 대학·연구기관을 하나의 혁신 생태계로 묶겠다고 밝혔다. 캠퍼스 혁신파크, 도심 연구·창업 공간, 국가 교통망과 대중교통, 첨단 물류체계 지원도 함께 나왔다.
정주 여건은 산단 완공 뒤에 따라오는 부속 항목이 아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 데이터센터 운영 인력, 로봇 제어와 유지보수 인력, 대학 연구자, 협력업체 직원이 지역에 머물러야 공장이 오래 돈다. 공장은 먼저 지어지고 도시는 나중에 따라오는 방식으로는 인재 유입이 늦다. AI 기반망에서는 산단과 도시, 대학과 교통이 같은 시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청와대 전담체계와 매달 점검회의는 발표 이후의 정치적 관리가 아니라 일정 관리 장치로 봐야 한다. 반도체 팹 하나만 해도 산업통상, 국토, 환경, 에너지, 국방, 교육, 지방정부, 기업, 공공기관이 모두 연결된다. AI 데이터센터는 과학기술, 전력, 클라우드, 통신, 보안, 지역 인프라가 함께 움직인다. 피지컬 AI는 제조업, 로봇, 데이터, 안전, 규제, 실증공간이 얽힌다. 부처별 회의만으로는 일정 충돌을 줄이기 어렵다.
매달 대통령 주재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열겠다는 후속 논의는 이런 복잡성을 반영한다. 반도체 클러스터뿐 아니라 지역별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청와대 전담기구가 진도 점검과 부처 간 이견 조정을 맡는 구조가 논의됐다. 대통령의 직접 관리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점검회의가 보고 행사가 아니라 병목 제거 회의로 운영돼야 한다.
행정 속도는 법 개정과도 연결된다. 기존 규정이 순차 진행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면 병행 추진은 제도 정비 없이는 오래가기 어렵다. 토지 보상과 강제수용 절차, 환경영향평가, 전력망 인허가, 산단 지정, 지방정부 협의가 같은 시간표 위에서 움직이려면 법적 근거와 책임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 속도전이 일회성 지시로 끝나지 않으려면 규정과 조직, 예산 집행 방식까지 바뀌어야 한다.
기업도 일정 관리의 한 축이다. 정부가 부지와 인프라를 앞당겨도 기업이 장비 발주, 자금 조달, 인력 확보, 협력업체 동반 이전을 맞추지 못하면 가동 시점은 늦어진다. SK는 리스크를 감안한 실행 가능한 파이낸스 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며, 향후 10년 평균 100조원 이상의 국내 투자를 계속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투자일수록 시장 수요와 자금 조달, 기술 변화에 따라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
삼성의 투자 배치도 집행 체계와 맞물린다. HBM 후공정과 첨단 패키징은 천안·온양 등 충청권, 로봇 관련 투자는 경북 구미, 전고체 배터리와 ESS 배터리는 울산, 차세대 조선은 거제, 패키지 기판은 부산, 바이오는 송도로 배치됐다. 각 지역의 산단과 인력, 전력, 교통, 협력사 생태계가 함께 움직여야 권역별 투자 배치가 실제 산업망으로 이어진다.
경부고속도로와 정보고속도로의 성패는 개통 이후 드러났다. 도로는 공단과 항만, 물류산업을 움직였고, 통신망은 인터넷 기업과 디지털 서비스를 키웠다. AI 기반망도 발표가 아니라 가동 이후 평가된다. 팹이 돌고, 데이터센터가 지능을 생산하고, 피지컬 AI가 공장과 도시에서 작동하며, 지역 대학과 기업이 인력을 순환시킬 때 3대 메가프로젝트는 국가 기반망이 된다.
8편에 걸쳐 확인되는 흐름은 하나다. 대한민국 성장 모델은 물류망, 통신망을 지나 AI 기반망으로 넘어가고 있다. 반도체는 연산의 고속도로, AI 데이터센터는 지능 생산공장, 피지컬 AI는 현실 세계의 실행망이다. 전력과 물, 지역 재배치, 기업형 첨단도시는 기반망을 떠받치는 하부 구조다. 마지막 남은 변수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평가는 투자 발표액보다 시간표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용인 클러스터 조기 가동, 서남권 반도체 산단 부지 확정, 전력·용수 공급, 권역별 AI 데이터센터 입지, 피지컬 AI 실증망, 기업형 첨단도시 조성이 같은 속도로 맞물려야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물류 시간을 줄이고 정보고속도로가 접속 시간을 줄였듯, AI 기반망은 연산과 지능, 현장 실행의 시간을 줄여야 한다. 발표보다 집행, 집행보다 가동, 가동보다 산업 생태계 형성이 3대 메가프로젝트의 실제 성적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