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선택한 아시아 아방가르드②] 샤넬, 레드카펫 밖 영화 인프라로 이동
M+와 3년 협력, 큐레이터십·복원·컬렉션 지원… 문화 후원과 브랜드 전략의 교차점
[KtN 임우경기자]홍콩 M+ 상영관 대형 스크린에는 M+, AAGFF, CHANEL 로고가 함께 걸렸다. 배우가 샤넬 드레스를 입고 포토월 앞에 선 자리도, 신제품 캠페인 영상이 공개된 무대도 아니었다. 샤넬(CHANEL)은 제3회 M+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제(AAGFF)에서 작품보다 제도에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 레드카펫과 스타 마케팅 대신 큐레이터십, 상영, 복원, 컬렉션, 관객 형성에 걸친 영화 인프라를 후원했다.
샤넬과 M+의 협력은 2023년 7월 공식화됐다. M+는 샤넬을 주요 파트너로 발표했고, 샤넬은 M+ 무빙이미지 프로그램 강화를 위해 ‘CHANEL Lead Curator, Moving Image’ 직책을 후원하기로 했다. 해당 직책을 맡은 실케 슈미클(Silke Schmickl)은 M+의 무빙이미지 컬렉션, 커미션, 영화·큐레이터 프로그램, 무빙이미지센터 활동을 총괄하는 인물로 소개됐다. 샤넬의 후원은 행사 한 차례에 붙는 협찬을 넘어 기관 내부의 프로그램 운영과 맞물렸다.
올해 AAGFF는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홍콩 M+ 무빙이미지센터에서 열렸다. M+는 제3회 행사를 샤넬 후원 아래 진행했고, 상영, 공연, 토크, 워크숍, VR 경험, 리스닝 세션을 함께 구성했다. 행사 그래픽과 상영관 스크린에서 샤넬 이름은 선명했지만, 프로그램 자체는 브랜드 캠페인과 거리를 뒀다. 라미아 가르가시(Lamya Gargash), 비비안 왕(Vivian Wang),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 쉬빙(Xu Bing),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백남준(Nam June Paik)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M+의 무빙이미지 큐레이션을 전면에 세웠다.
샤넬은 단기 노출 이상의 효과를 얻는다. 영화제 로고 옆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은 홍보 효과가 빠르지만 오래 남기 어렵다. 큐레이터 직책, 복원, 컬렉션, 상영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협력은 기관의 권위와 더 깊게 연결된다. 실험영화와 무빙이미지는 대중 흥행보다 미술관, 영화제, 아카이브, 비평, 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가치가 축적되는 영역이다. 샤넬은 소비자 이벤트보다 느리지만 문화적 잔존성이 큰 영역으로 들어갔다.
M+가 발표한 협력 범위에는 ‘M+ Restored’와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순환 라이브러리도 포함됐다. ‘M+ Restored’는 홍콩 영화 유산 보존을 위한 복원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순환 라이브러리는 아시아 실험영화 작가 세대를 연구·수집하는 장기 사업으로 제시됐다. 특정 신작을 띄우는 후원보다 이미 제작된 작품을 다시 찾고, 보존하고, 재상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상업 배급망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려운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는 기관의 수집과 복원, 연구 없이는 다음 세대 관객에게 닿기 어렵다. 필름과 비디오테이프, 초기 디지털 포맷으로 남은 작품은 보존 비용과 기술 문제를 피하기 어렵고, 작가가 활동한 지역과 언어권을 넘어 유통되기도 쉽지 않다. 샤넬의 자본이 들어가면 M+는 더 넓은 작품군을 다루고, 작가를 초청하고, 관객을 모으고, 국제 네트워크 안에서 프로그램을 확장할 여지를 얻는다.
M+라는 대형 기관과 샤넬이라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결합은 부담도 남긴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은 제도와 시장, 관습에 대한 거리 두기를 포함한다. 실험영화의 비판성과 불편함은 미술관의 세련된 운영 방식과 브랜드 후원 언어 안에서 순화될 수 있다. 행사장 로고, 리셉션, 글로벌 홍보, 고급 브랜드 이미지가 겹치면 작품보다 후원 구도가 먼저 눈에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자본은 예술의 조건을 넓히지만, 예술의 급진성을 브랜드 이미지 안으로 흡수하기도 한다.
큐레이터 직책 앞에 브랜드명이 붙은 점도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M+는 샤넬 후원이 무빙이미지 프로그램을 강화한다고 설명했고, 공개 인터뷰에서 슈미클은 M+가 큐레이션 콘텐츠에 대한 완전한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확인된 범위 안에서는 샤넬이 작가 선정이나 작품 해석에 관여했다는 근거가 없다. 다만 공공적 성격을 가진 미술관 전문 직책 앞에 브랜드명이 놓이면, 관객은 후원과 큐레이션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게 된다. 개입의 증거와 별개로, 보이는 형식만으로도 논의가 생긴다.
샤넬이 영화와 맺어온 관계를 떠올리면 변화는 더 뚜렷하다. 패션 하우스와 영화의 전통적 접점은 배우 의상, 레드카펫, 캠페인 필름, 브랜드 앰배서더에 집중돼 있었다. M+ 협력은 카메라 앞 스타 이미지보다 카메라 뒤 제도에 접근한다. 어떤 배우가 샤넬을 입었는가보다 어떤 작품이 복원되고, 어떤 아시아 실험영화가 컬렉션에 들어가며, 어떤 관객이 미술관 안에서 처음 작품을 만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제3회 AAGFF는 해당 전략이 작동한 현장이었다. ‘Space Enter Shift’라는 주제 아래 감시영상, 위성 생중계, 라이브 시네마, 참여형 설치, 워크숍, 토론이 한 프로그램에 묶였다. 샤넬이 프로그램의 미학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M+가 아시아 무빙이미지의 역사와 현재를 편집했고, 샤넬은 프로그램이 더 큰 규모로 유통될 수 있는 비용과 네트워크를 뒷받침했다. 후원자는 뒤에 있지만, 이름은 크게 보인다. 그 거리감이 이번 협력의 성격을 설명한다.
명품 브랜드의 문화 전략은 예술을 빌려 제품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단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샤넬은 미술관, 영화제, 복원, 교육, 커미션을 통해 문화 생산의 기반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브랜드가 작품의 주인이 되지는 않는다. 대신 작품이 보존되고 해석되고 다시 유통되는 조건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다. 직접 제작보다 조용하고, 일반 광고보다 오래 남는 방식이다. 동시에 문화 제도가 브랜드의 상징 자본을 만들어주는 통로로 쓰일 여지도 남는다.
샤넬의 M+ AAGFF 후원은 영화제 협찬보다 넓고, 예술 후원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에도 단순하지 않다. M+는 샤넬의 후원으로 무빙이미지 큐레이션과 복원, 컬렉션 구축, 관객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샤넬은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와 제도적 권위, 젊은 창작자와 관객의 접점을 브랜드 활동 안으로 끌어들였다. 양쪽의 이해가 맞물린 협력이다. 앞으로 공개될 복원작, 컬렉션 접근성, 큐레이션 자율성, 실험영화 특유의 불편함이 프로그램 안에서 얼마나 유지되는지에 따라 협력의 성격은 더 뚜렷해진다. 샤넬은 레드카펫 밖으로 이동했지만, 문화 후원의 공공성과 브랜드 이미지의 회수 사이에는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