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선택한 아시아 아방가르드③] 백남준의 위성, 쉬빙의 감시영상, 기술 이후의 영화

1988년 글로벌 생중계와 공공 감시카메라 이미지가 같은 프로그램에 놓인 아시아 무빙이미지의 현재

2026-07-09     임우경 기자
Chanel x M+ Asian Avant-Garde Film Festival 2026. 사진=AAGFF,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1988년 백남준(Nam June Paik)은 서울올림픽에 맞춰 10개국 위성 신호를 연결했다. 2017년 쉬빙(Xu Bing)은 공공 감시카메라 영상으로 러브스토리를 구성했다. 제3회 M+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제(AAGFF)는 두 작품을 같은 프로그램 안에 놓고, 아시아 실험영화가 지나온 기술사의 낙관과 불안을 함께 꺼냈다.

올해 AAGFF의 주제는 ‘Space Enter Shift’였다. 홍콩 M+는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제3회 행사에서 공간을 물리적 장소, 영상 프레임, 기술 환경, 정치적 경계로 다뤘다. 상영, 공연, 토크, 워크숍, 라이브 프로그램이 함께 배치됐고, 백남준의 ‘Wrap Around the World’, 쉬빙의 ‘Dragonfly Eyes’,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와 쇠렌 린드(Søren Lind)의 ‘A Sunken Tale of Losses Delayed’가 같은 흐름 안에 놓였다.

백남준의 ‘Wrap Around the World’는 1988년 제작된 47분짜리 위성 프로젝트다. M+는 해당 작품을 백남준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위성 프로젝트로 소개했다. 서울올림픽 시기와 맞물린 글로벌 생중계 이벤트였고, 오스트리아, 브라질, 중국, 독일, 아일랜드, 이스라엘, 일본, 한국, 소련, 미국 등 10개국의 위성 신호가 연결됐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등 대중음악과 현대무용, 방송예술의 인물들도 작품 안에 들어왔다.

1988년의 위성은 국경을 넘어 예술가와 관객을 연결하는 기술로 읽혔다. 냉전 말기의 국제 정세, 서울올림픽의 세계적 중계망, 텔레비전 방송의 대중적 파급력이 한데 묶인 시기였다. 백남준은 위성을 군사와 국가 권력의 장비로만 두지 않고, 예술가들이 서로의 신호를 주고받는 매체로 바꿨다. 기술은 통제보다 연결의 가능성에 가까웠고, 방송 이미지는 시장의 데이터보다 공동 창작의 언어에 가까웠다.

2026년 관객 앞에 놓인 ‘Wrap Around the World’는 처음 공개됐던 시대와 다른 감각으로 읽힌다. 위성 생중계가 국제 교류의 낙관을 담았던 시기를 지나, 오늘의 네트워크는 플랫폼 자본, 알고리즘, 감시, 데이터 소유의 문제와 떨어지기 어렵다. 실케 슈미클(Silke Schmickl)은 백남준의 기술 낙관을 다시 보는 일이 강렬했다고 말하며, 인터넷이 시장 중심의 유틸리티로 변하면서 잃어버린 감각을 언급했다. 같은 연결 기술이라도 시대가 바뀌면 작품의 표정도 달라진다.

Chanel x M+ Asian Avant-Garde Film Festival 2026. 사진=AAGFF,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쉬빙의 ‘Dragonfly Eyes’는 정반대의 입구에서 출발한다. 2017년작인 이 영화는 배우와 촬영감독 없이 공공 감시카메라 영상만으로 구성됐다. 수천 개의 인공적 ‘눈’이 기록한 일상 영상이 편집을 거쳐 한 여성의 이동과 사랑을 따라가는 허구 서사로 재배열된다.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촬영하는 작가보다, 이미 생산된 영상을 수집하고 편집하는 작가의 위치가 전면에 놓였다.

‘Dragonfly Eyes’에서 이미지는 창작자의 선택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도시, 건물, 도로, 상점, 플랫폼, 보안 장치가 하루 종일 영상을 생산한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바라보지 않아도 찍히고, 영상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장된다. 쉬빙은 새 이미지를 찍기보다 이미 촬영된 이미지의 흐름을 다시 편집했다.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기록과 허구, 감상자와 감시 대상의 경계가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백남준과 쉬빙을 나란히 놓으면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의 기술사가 선명해진다. 백남준의 위성은 멀리 떨어진 예술가를 연결하는 신호였다. 쉬빙의 감시카메라는 이미 연결돼버린 사회의 흔적이다. 전자는 기술이 아직 미래의 약속처럼 읽히던 시기의 작업이고, 후자는 기술이 일상의 배경이 된 뒤의 작업이다. AAGFF는 두 작품을 통해 이미지 기술이 예술의 도구에서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 이동한 과정을 한 프로그램 안에 압축했다.

라리사 산수르와 쇠렌 린드의 ‘A Sunken Tale of Losses Delayed’는 기술보다 역사와 소유의 문제를 앞세웠다. M+는 산수르의 신작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됐다고 밝혔다. 작품은 약탈된 식민지 유물을 되찾아 소유자에게 돌려주려는 팔레스타인 해적 선장의 여정을 따라간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로 향하는 상인, 유령 같은 인물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영화 안에서 만난다. 공간은 바다와 배, 박람회장, 박물관의 문제가 아니라 유물의 귀속과 제국의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조건으로 바뀐다.

올해 AAGFF가 말한 ‘공간’은 미술관 건축이나 영상의 구도에 한정되지 않았다. 백남준에게 공간은 위성 신호가 넘나드는 국제 방송망이었고, 쉬빙에게 공간은 감시카메라가 촘촘히 깔린 도시였다. 산수르와 린드에게 공간은 식민주의가 남긴 유물과 기록, 망명과 귀환의 문제였다. 같은 주제 아래 놓인 작품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기술과 권력, 이동의 조건을 드러냈다.

Chanel x M+ Asian Avant-Garde Film Festival 2026. 사진=AAGFF,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M+의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컬렉션도 세대 연결의 축을 맡았다. M+는 아시아 초기 무빙이미지 예술의 역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고 보고, 큐레이터 연구와 복원, 국제 순환을 통해 공백을 다루겠다고 밝혔다. 컬렉션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단일채널 작가 영화와 비디오아트를 중심에 둔다. 탈식민화, 국가 형성, 냉전, 생태 변화, 페미니즘, 이주, 도시화가 작품군을 관통하는 의제로 제시됐다.

한옥희(Han Okhi), 천제런(Chen Chieh-jen), 닉 데오캄포(Nick Deocampo), 메이 펑(May Fung), 메리 스티븐(Mary Stephen), 고토트 프라코사(Gotot Prakosa), 짐 슘(Jim Shum), 루비 양(Ruby Yang) 등의 작업이 컬렉션 소개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작품 목록은 아시아 실험영화가 하나의 국가나 양식으로 묶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한다. 도시를 정치적 개입의 장소로 다루는 영화, 여성 작가의 사적 기록, 추상영화의 리듬과 물성까지 서로 다른 갈래가 함께 놓였다.

실케 슈미클은 선구 세대가 자신의 작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역사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올해 AAGFF의 편성을 설명한다. 백남준과 쉬빙, 산수르, AAGFC의 초기 실험영화들이 같은 행사 안에 놓인 배치는 단순 회고가 아니다. 이미 canon으로 굳은 이름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 현재 활동 중인 작가와 젊은 관객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하려는 편성이다.

물론 세대 연결이라는 표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미술관이 실험영화의 역사를 정리하면 연구와 보존의 기반이 생긴다. 동시에 작품은 기관의 분류와 설명 안에 들어간다. 거칠고 비정형적이던 작업은 상영 시간표, 컬렉션 설명, 후원 로고, 국제 순회 프로그램 안에서 읽힌다. 아방가르드가 제도 밖의 언어였던 시기를 지나, 제도 안에서 보존되는 언어가 되는 순간도 함께 발생한다.

샤넬 후원도 같은 긴장 위에 있다. 자본이 없으면 오래된 필름과 비디오아트는 복원과 재상영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 반대로 브랜드 이름이 붙은 컬렉션과 영화제는 실험영화의 급진성을 고급 문화 이미지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 올해 AAGFF의 설득력은 홍보성 찬사보다 이 긴장 속에서 나온다. 백남준의 위성, 쉬빙의 감시영상, 산수르의 해적 서사는 모두 기술과 권력, 소유의 문제를 다뤘고, 행사를 둘러싼 제도와 후원 역시 같은 질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제3회 AAGFF는 아시아 아방가르드 영화의 현재를 과거의 업적 목록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1988년의 위성 생중계와 2017년의 감시카메라 영상, 2026년의 식민주의 서사와 1960~1990년대 아시아 실험영화 컬렉션이 한 프로그램 안에서 만났다. 아시아 무빙이미지의 다음 평가는 작품 보존 수량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복원 자료의 접근성, 국제 순회 방식, 젊은 작가와 관객의 재해석, 후원 구조 안에서 유지되는 비판적 거리까지 함께 확인돼야 한다. 백남준의 위성과 쉬빙의 감시영상 사이에서 AAGFF가 남긴 가장 중요한 흔적은 기술을 향한 찬사보다 기술 이후의 이미지가 놓인 조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