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트렌드③] 서키배트·타이터스 맥베스·도지 카누, 작업복 위에 남긴 세 개의 표면
그래피티의 속도, 중서부 농촌 이미지, 사진의 사적 감각까지…Carhartt WIP·OOW® 전시가 보여준 워크웨어 커미션의 차이
[KtN 임민정기자]갈색 디트로이트 재킷과 60×60인치 디어본 캔버스는 세 작가에게 같은 조건으로 주어졌다. 재킷은 등판을 정면으로 펼친 채 트라이베카 쇼윈도에 걸렸고, 짝을 이루는 캔버스는 차이나타운 유리창 안에 놓였다. 같은 원단, 같은 브랜드의 작업복 언어, 같은 뉴욕 거리의 전시 조건 안에서 서키배트(Suckybat), 타이터스 맥베스(Titus McBeath), 도지 카누(Dozie Kanu)는 전혀 다른 표면을 만들었다.
카하트 WIP(Carhartt WIP)와 OOW®의 이번 프로젝트는 작가 이름을 제품 위에 덧붙이는 방식과 다르다. 세 작가에게 맡겨진 것은 완성된 한정판 의류가 아니라 디트로이트 재킷과 디어본 캔버스라는 재료다. 브랜드의 원형은 남아 있지만, 전시의 중심은 착용 이미지나 판매 정보가 아니라 원단 위에 어떤 흔적이 올라갔는지에 놓인다. 세 작가의 차이는 바로 그 표면에서 갈린다.
서키배트의 작업은 가장 직접적이다. 검은 박쥐 형태의 태그가 갈색 캔버스를 크게 가로지르고, 디트로이트 재킷 등판에도 같은 긴장감이 남는다. 선은 정돈된 그래픽보다 빠르고, 스프레이의 번짐과 흘러내림은 원단 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거리의 벽이나 셔터에서 보던 그래피티의 속도가 쇼윈도 조명 안으로 옮겨온 형태다.
서키배트는 맨해튼에서 흔적을 남겨온 그래피티 작가로 소개돼 왔다. 전시 소개에는 “walking the line of cancellation”이라는 자기 설명도 함께 제시됐다. 흰 벽 안쪽의 제도화된 전시장보다 거리 표면에 가까운 감각이 강한 작가에게 OOW®의 유리창은 흥미로운 조건을 만든다. 작품은 보호된 실내에 있지만, 관람은 보도 위에서 이뤄진다. 그래피티가 가진 비공식성과 쇼윈도 전시의 고정된 조명이 한 공간 안에서 맞붙는다.
서키배트의 박쥐 형상은 카하트 WIP의 갈색 원단을 장식하지 않는다. 원단을 덮고, 가르고, 무겁게 누른다. 디어본 캔버스의 주름과 처짐은 스프레이 흔적을 더 거칠게 받아들이고, 디트로이트 재킷의 등판은 태그가 머무는 벽처럼 쓰인다. 워크웨어의 내구성은 여기서 기능적 장점이 아니라 강한 흔적을 버티는 표면의 조건으로 바뀐다.
타이터스 맥베스의 작업은 서키배트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헛간, 나무, 울타리, 농가 이미지는 갈색 원단 위에 낮은 명암으로 배치된다. 오하이오 출신 작가로 소개된 맥베스는 미국 중서부의 산업과 농촌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온 인물로 제시된다. 이번 작업에는 조부가 입었던 셔츠에서 얻은 단서도 들어간 것으로 소개됐다.
맥베스의 디어본 캔버스는 노동복의 표면을 사적인 기억과 지역 풍경 쪽으로 돌린다. 붉은 헛간과 나무, 울타리의 선은 새 상품의 깨끗한 표면보다 오래 입은 옷에 남는 흔적에 가깝다. 카하트 WIP의 워크웨어가 도시 패션의 기호로 소비되는 동안에도, 원단의 출발점에는 노동과 생활의 감각이 남아 있다. 맥베스는 그 감각을 중서부의 농촌 이미지로 되돌려 놓는다.
캔버스 아래 놓인 작은 불꽃 오브제는 맥베스 작업의 장식적 성격을 더한다. 불꽃은 농가 이미지와 직접 설명 관계를 맺기보다, 낮은 톤의 풍경 앞에 작은 움직임을 만든다. 헛간과 나무, 울타리가 정지된 이미지라면, 불꽃 오브제는 설치의 시간성을 보탠다. 디트로이트 재킷과 디어본 캔버스는 회화적 표면에 머물지 않고, 입었던 옷과 살았던 장소, 전시장 안의 장치가 함께 겹치는 구조가 된다.
도지 카누의 작업은 사진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포르투갈 기반의 다학제 작가로 소개되는 카누는 건축, 디자인, 현대미술을 오가며 작업해온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작업의 계보를 끌어와 해안 풍경과 실내 이미지를 캔버스와 재킷에 배치했다. 푸른 해안 이미지는 갈색 디어본 캔버스 위에서 선명하게 떠오르고, 실내 이미지는 디트로이트 재킷의 등판에 얹힌다.
카누의 작업에서 갈색 원단은 사진을 중립적으로 받쳐주는 배경이 아니다. 해안의 푸른색은 작업복 원단의 거친 색과 충돌하고, 실내 이미지는 거리의 쇼윈도 안에서 사적인 공간의 단편처럼 놓인다. 디트로이트 재킷은 원래 몸 가까이 입는 옷이다. 카누가 실내 이미지를 재킷 등판에 놓으면서 옷은 바깥의 거리와 안쪽의 방 사이를 오가는 표면이 된다.
세 작가의 차이는 워크웨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서키배트에게 재킷과 캔버스는 거리의 흔적을 받아내는 표면이다. 맥베스에게 원단은 노동과 가족 기억, 미국 중서부 풍경이 겹치는 바탕이다. 카누에게 작업복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외부 풍경과 사적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같은 재료가 그래피티, 회화적 풍경, 사진 설치로 나뉘며 서로 다른 밀도를 갖는다.
Carhartt WIP와 OOW®의 전시가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브랜드 협업은 대개 작가의 이미지를 의류 위에 입히고, 결과물을 상품으로 유통하는 방식으로 읽힌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상품의 완성도보다 작가별 표면 처리의 차이가 먼저 보인다. 로고는 남아 있지만, 로고보다 검은 안료의 번짐, 농가 이미지의 낮은 명암, 사진 프린트의 가장자리, 원단의 주름과 봉제선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트라이베카와 차이나타운의 쇼윈도는 세 작업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나눈다. 재킷은 좁고 높은 유리창 안에서 한 벌씩 세로로 강조되고, 캔버스는 넓은 유리창 안에서 거리와 나란히 펼쳐진다. 보행자는 브랜드 매장의 진열 상품을 보는 방식보다, 도시 안에 놓인 작은 전시를 마주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본다. 작가별 차이는 전시장 내부의 해설보다 유리창 앞에서 먼저 드러난다.
세 작가의 작업은 카하트 WIP의 워크웨어가 가진 이중성을 보여준다. 디트로이트 재킷과 디어본 캔버스는 노동과 내구성의 물건이면서, 도시 패션과 스트리트 컬처의 기호이기도 하다. 서키배트는 그 기호를 거리의 태그로 밀어붙이고, 맥베스는 노동복의 기억을 농촌 이미지로 되돌리며, 카누는 사진을 통해 사적 공간과 외부 풍경을 겹친다. 작업복은 더 이상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로만 읽히지 않는다.
전시 시리즈의 작품들은 전시 기간 뒤 7월 9일 브루클린 카하트 WIP 매장 폐막 리셉션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작품 제목, 판매 여부, 소장처, 추가 순회 계획은 확인이 필요하다. 뉴욕의 두 쇼윈도에서 시작한 이번 커미션은 세 작가가 같은 워크웨어를 얼마나 다른 표면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줬고, 패션 협업이 작가의 이름값보다 재료와 전시 조건의 차이에서 힘을 얻는 흐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