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트렌드④] Carhartt WIP·OOW®, 제품 발매를 넘어 공공 전시로 간 브랜드 협업

디트로이트 재킷과 디어본 캔버스를 작가 커미션으로 전환한 뉴욕 프로젝트, 패션 브랜드가 전시 플랫폼이 되는 방식

2026-07-10     임민정 기자
Carhartt WIP·OOW®, 작업복이 거리 전시가 된 방식. 사진=Eoghan Dempsey @eoghand,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뉴욕 트라이베카와 차이나타운의 유리창 안에서 카하트 WIP(Carhartt WIP)의 디트로이트 재킷과 60×60인치 디어본 캔버스가 작품으로 걸렸다. 재킷은 OOW® 트라이베카 공간에, 짝을 이루는 캔버스는 OOW® 차이나타운 공간에 놓였다. 서키배트(Suckybat), 타이터스 맥베스(Titus McBeath), 도지 카누(Dozie Kanu)는 같은 워크웨어 원형을 받아 각기 다른 표면을 만들었다. 협업의 결과물은 룩북 속 착장이나 매장 선반 위 상품보다 먼저 도시의 쇼윈도 안에서 공개됐다.

패션 브랜드 협업은 오랫동안 한정판 발매와 판매 일정, 착용 이미지, 재판매 시장 반응을 중심으로 소비돼 왔다. 브랜드가 예술가와 손잡을 때도 결과물은 제품의 표면에 작가 이미지를 얹는 방식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카하트 WIP와 OOW®의 뉴욕 프로젝트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카하트 WIP가 내놓은 것은 완성품의 장식 공간이 아니라 디트로이트 재킷과 디어본 캔버스라는 물성이다. 작가들은 브랜드의 대표적인 작업복 어휘를 입을 수 있는 상품보다 전시 가능한 표면으로 다뤘다.

OOW®는 알라이프(Alife)의 로브 1970(Rob 1970)과 작가·민족지학자 이오건 뎀프시(Eoghan Dempsey)가 지난해 시작한 공공 비트린 네트워크로 소개돼 있다. 비트린은 상품 진열창을 뜻하지만, OOW®의 유리창은 구매를 유도하는 쇼케이스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전시 공간에 가깝다. 작품은 실내 조명 아래 놓이지만, 관람은 보도 위에서 이뤄진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작품을 볼 수 있고, 전시의 첫 접점은 티켓이나 초대장이 아니라 유리창 앞 통행이다.

카하트 WIP가 OOW®와 만난 지점은 브랜드 협업의 최근 흐름을 압축한다. 브랜드는 더 이상 제품을 내놓고 이미지를 덧붙이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전시 장소, 작가 선정, 도시 동선, 촬영 이미지, 폐막 리셉션까지 하나의 문화적 형식으로 묶는다. 트라이베카 184 Franklin Street와 차이나타운 291 Grand Street에 나뉘어 놓인 재킷과 캔버스는 단일 매장 이벤트보다 복수의 장소를 잇는 전시 구조에 가깝다. 작품은 전시 기간 뒤 7월 9일 브루클린 카하트 WIP 매장 폐막 리셉션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Carhartt WIP·OOW®, 작업복이 거리 전시가 된 방식. 사진=Eoghan Dempsey @eoghand,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디트로이트 재킷의 등판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브랜드 로고보다 더 중요한 면이 된다. 갈색 원단, 검은 칼라, 짧은 기장, 단단한 봉제선은 카하트 WIP의 워크웨어 이미지를 유지한다. 하지만 쇼윈도 안의 재킷은 몸을 감싸지 않는다. 등을 정면으로 펼친 채 벽면 오브제처럼 걸린다. 착용자의 움직임을 따라가던 옷은 보행자의 시선을 받는 표면으로 바뀐다. 브랜드 협업의 중심이 “누가 입었는가”에서 “무엇이 원단 위에 놓였는가”로 이동하는 대목이다.

디어본 캔버스는 재킷보다 더 넓은 방식으로 전환을 드러낸다. 60×60인치의 갈색 원단은 흰색 회화 캔버스처럼 중립적인 바탕이 아니다. 작업복의 색, 두께, 주름, 처짐을 가진 표면이다. 서키배트의 검은 박쥐 태그, 타이터스 맥베스의 농가 이미지, 도지 카누의 사진 이미지는 모두 같은 갈색 원단 위에 놓였지만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읽힌다. 브랜드가 제공한 재료는 작가의 이미지를 얹는 틀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를 함께 만드는 조건이 된다.

서키배트의 검은 태그는 워크웨어를 거리의 표면으로 밀어붙인다. 타이터스 맥베스의 헛간과 울타리, 나무 이미지는 작업복이 가진 노동과 생활의 기억을 농촌 풍경 쪽으로 되돌린다. 도지 카누의 해안과 실내 이미지는 단단한 원단 위에 사진의 사적 감각을 놓는다. 세 작가의 작업은 카하트 WIP라는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를 넓히기보다, 워크웨어 안에 이미 들어 있던 거리성, 내구성, 노동의 감각, 사적 사용의 흔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꺼낸다.

브랜드 입장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효과는 제품 홍보와 다르다. 협업 재킷을 판매하는 방식만으로는 작가별 표면의 차이, 쇼윈도 공간의 성격, 도시 보행 동선까지 함께 전달하기 어렵다. OOW®의 유리창은 카하트 WIP의 워크웨어를 판매대에서 떼어내 전시물로 세운다. 브랜드 로고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원단의 물성, 스프레이의 번짐, 사진 프린트의 가장자리, 재킷의 봉제선이 시선을 받는다. 상품을 보여주는 장치였던 쇼윈도가 작품을 도시 쪽으로 내보내는 장치로 바뀐다.

Carhartt WIP·OOW®, 작업복이 거리 전시가 된 방식. 사진=Eoghan Dempsey @eoghand,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트라이베카와 차이나타운이라는 배치도 단순한 장소 정보에 그치지 않는다. 트라이베카의 좁고 높은 유리창은 재킷 한 벌을 수직으로 강조한다. 차이나타운의 넓은 쇼윈도는 캔버스를 보도와 나란히 펼친다. 검은 파사드, 흰 조명, 주변 간판, 유리 반사, 야간의 보행자 실루엣은 작품 주변을 이루는 시각 조건이 된다. 브랜드 협업이 갤러리 안으로만 들어가지 않고, 도시의 상업적 표면을 전시의 구조로 바꾸는 흐름이 여기서 구체화된다.

작가 커미션을 앞세운 패션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이미지 소비 방식의 변화도 있다. 한정판 제품은 출시일과 가격, 구매 가능 여부에 정보가 집중된다. 전시형 협업은 공개 기간, 장소, 작가, 설치 이미지, 이동 동선, 리셉션까지 여러 층위의 콘텐츠를 만든다. 카하트 WIP와 OOW®의 협업은 재킷 한 벌을 판매 여부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같은 재킷과 원단이 작가의 손을 거쳐 어디에 걸리고, 거리에서 어떻게 보이며, 이후 어떤 장소로 이동하는지가 프로젝트의 일부가 된다.

뉴욕의 쇼윈도에 걸린 작업복은 패션 브랜드가 문화 프로젝트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브랜드가 미술을 빌려 권위를 덧붙이는 수준에 머물면 협업은 표면적 장식으로 소비되기 쉽다. 이번 전시는 재료, 장소, 관람 방식까지 함께 바꾸며 워크웨어를 전시 매체로 밀어냈다. 카하트 WIP의 디트로이트 재킷과 디어본 캔버스는 제품의 형태를 유지한 채 작가 커미션의 바탕이 됐고, OOW®의 유리창은 거리와 전시 사이의 경계를 만들었다.

전시 작품들은 7월 9일 브루클린 카하트 WIP 매장 폐막 리셉션으로 이동한다. 작품의 판매 여부, 소장처, 추가 순회 계획은 확인이 필요하다. 트라이베카와 차이나타운의 유리창에서 시작한 카하트 WIP·OOW® 프로젝트는 브랜드 협업이 제품 발매 중심에서 작가 커미션, 공공 비트린, 도시 동선, 전시형 콘텐츠로 확장되는 현재의 흐름을 선명하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