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정책④] K-팝 공연환경 120억, 지역 인프라가 라이브 산업으로 이동
체육·다목적시설 개선 지원…팬덤 소비·숙박·교통·관광상품까지 묶는 지역 수익 구조
[KtN 임우경기자]문화체육관광부 2026년 예산에는 대중음악 공연환경개선 지원 120억 원이 신규로 편성됐다. 콘텐츠 부문 예산 1조6177억 원 안에 들어간 사업이다. K-콘텐츠 정책의 무게가 제작비와 해외 유통을 넘어 공연장, 지역 소비, 관광 동선으로 넓어지고 있다. 음원과 방송으로 성장한 K-팝 산업이 공연, 굿즈, 팬덤 체험, 숙박, 교통, 지역 상권을 함께 움직이는 라이브 경제로 이동하면서, 지방의 체육·다목적 시설도 콘텐츠 산업 인프라로 다시 분류되기 시작했다.
K-팝 공연 수요는 수도권 대형 공연장에 집중돼 왔다. 서울과 인천, 고양 등 일부 지역의 아레나·스타디움급 시설은 월드투어, 팬미팅, 페스티벌 수요를 흡수했지만, 지방 도시는 대형 공연을 안정적으로 유치하기 어려웠다. 체육관과 종합운동장은 객석 규모를 갖춘 경우에도 음향, 조명, 무대 하중, 전력, 대기실, 반입 동선, 안전관리 기준에서 전문 공연장과 차이가 난다. 120억 원 규모의 공연환경개선 지원은 이런 간극을 줄이려는 첫 재정 신호다.
대형 공연은 무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수만 명이 한 도시에 동시에 들어오면 역과 터미널, 주차장, 숙박시설, 음식점, 굿즈 판매처, 야간 이동수단까지 함께 움직인다. 지방 공연이 단발성 행사로 끝나면 지역 소비는 공연장 주변 일부에 머문다. 공연 일정이 관광상품, 지역 축제, 쇼핑, 식음, 숙박과 연결될 때 티켓 매출 밖의 돈이 지역 안에 남는다. K-팝 공연 인프라 정책이 문화시설 개선 사업이 아니라 지역경제 정책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체부 2026년 업무계획은 K-컬처를 미래 핵심 성장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푸드·뷰티·패션·관광까지 산업 외연을 넓히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K-미식 여행 33선, K-먹거리골목 문화관광 활성화, 코리아뷰티페스티벌, K-콘텐츠와 소비재를 연계한 마케팅 확대도 같은 계획 안에 들어갔다. 공연장 개선과 관광상품 개발은 별개 사업처럼 보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같은 팬덤 소비 흐름에 놓인다.
K-팝 팬덤은 공연장 안에서만 소비하지 않는다. 콘서트 전후로 카페, 팝업스토어, 포토존, 생일 광고, 굿즈 거래, 성지 순례, 뷰티·패션 쇼핑이 함께 움직인다. 해외 팬에게 공연 관람은 한국 방문의 가장 강한 동기 가운데 하나다. 지방 도시가 이런 수요를 붙잡으려면 공연장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연 당일 교통 연장, 외국어 안내, 숙박 요금 관리, 지역 관광 코스, 야간 안전, 쓰레기 처리, 응급 대응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동남아 음악시장에서도 같은 변화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베트남비즈니스센터의 2026년 베트남 콘텐츠 산업동향은 베트남 음악시장에서 낮은 음원 ARPU와 무료 청취 관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익의 무게중심이 스트리밍에서 대형 공연, 페스티벌, 굿즈, 팬 커뮤니티 활동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5년 베트남에서는 810건 이상의 음악 이벤트가 열렸고, 지드래곤의 월드투어 하노이 공연은 이틀간 약 10만 명을 동원한 것으로 정리됐다.
베트남 사례는 국내 K-콘텐츠 정책에도 시사점을 준다. 음악산업의 수익은 더 이상 음원 판매와 광고 수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공연 한 번이 도시의 숙박률, 항공·철도 수요, 식음 매출, 굿즈 유통, 온라인 바이럴까지 움직인다. 한국 지방 도시가 K-팝 공연을 유치하려면 유명 아티스트 섭외보다 먼저 공연 가능한 시설, 관객을 흡수할 도시 운영 능력, 민간 기획사와의 계약 조건을 갖춰야 한다. 공연기술, 무대 운영, 저작권 정산, 티켓 판매, 팬덤 안전관리까지 포함한 시스템이 지역 경쟁력으로 바뀌고 있다.
지방 공연 인프라 확충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수단으로도 다뤄진다. 수도권 공연장은 대관 경쟁이 치열하고, 대형 아티스트 일정은 주말과 성수기에 몰린다. 지역에 일정 규모 이상의 공연 거점이 생기면 투어 동선은 넓어질 수 있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제주 같은 도시는 이미 관광·교통·숙박 기반을 일부 갖추고 있다. 중소도시는 공연장을 갖추더라도 숙박과 교통, 야간 이동, 지역 마케팅이 따라붙지 않으면 대형 팬덤을 장기간 끌어들이기 어렵다.
체육시설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에는 부담도 따른다. 체육관은 경기 관람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이다. 무대 설치 때 바닥 보호, 하중, 반향음, 시야 제한, 전력 공급, 장비 반입구, 대기 공간 문제가 반복된다. 야외 종합운동장은 날씨, 소음, 안전 펜스, 화장실, 퇴장 동선이 관건이다. 시설 개선비가 장비 보강에만 쓰이면 공연 유치 효과는 제한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시설 운영기관이 공연기획사, 안전전문가, 관광업계와 함께 운영 기준을 만들 때 지속성이 생긴다.
K-팝 공연의 지역 확산은 청년층 지역 유입 정책과도 맞닿는다. 지방 도시는 청년 인구 유출을 겪고 있지만, 대형 공연과 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에는 전국의 젊은 소비자가 한꺼번에 이동한다. 공연을 지역 브랜드와 연결하면 도시 이미지는 행정 홍보보다 빠르게 바뀐다. 다만 공연이 끝난 뒤 남는 것은 포스터와 일회성 매출에 그칠 수도 있다. 지역 창작자, 음향·조명 업체, 무대기술 인력, 숙박·식음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지역 산업으로 남는다.
이재명 정부 K-콘텐츠 정책의 4번째 축은 라이브 산업이다. 1편의 예산 확대, 2편의 정책금융, 3편의 AI·저작권이 제작과 기술의 문제였다면, 공연환경개선 지원은 콘텐츠가 오프라인 공간에서 돈을 만드는 방식에 관한 정책이다. K-팝이 세계 시장에서 만든 팬덤 수요를 국내 지역으로 끌어오려면 공연장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준비돼야 한다. 2026년 120억 원 신규 사업의 평가는 어느 지역에 장비가 들어갔는지가 아니라, 공연 이후 숙박·교통·관광·지역 상권까지 이어지는 소비 구조가 만들어졌는지에서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