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정책⑤] K-콘텐츠 해외전략, 수출에서 공동제작·권리관리로 확장
동남아 시장 제도화와 글로벌 자본 진입 속 해외문화거점·관광·소비재까지 넓어진 산업 설계
[KtN 임우경기자]지난해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집계됐다. 방한 외래관광객은 1894만 명을 기록했다. 콘텐츠와 관광이 동시에 역대 최대치를 찍은 흐름 속에서 이재명 정부의 K-콘텐츠 해외전략은 단순 수출 지원을 넘어 공동제작, 현지 인력 양성, 지식재산 관리, 관광·소비재 연계로 넓어지고 있다. 드라마와 음악을 해외에 판매하는 방식만으로는 K-콘텐츠 산업의 다음 성장을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 2026년 업무계획은 K-컬처를 미래 핵심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고, K-관광 3000만 명 조기 달성을 함께 추진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영화·게임·대중음악 등 장르별 육성전략과 푸드·뷰티·패션·관광을 묶은 성장전략, 재외문화원과 세종학당 등 해외문화거점 활성화가 같은 계획 안에 들어갔다. 콘텐츠를 개별 작품의 수출 실적이 아니라 한국어 학습, 방한 관광, 소비재 구매, 현지 제작 협력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로 보겠다는 접근이다.
해외전략의 중심은 시장 진입 방식의 변화에 있다. 과거 한류 정책은 해외 공연, 방송 판매, 문화행사, 홍보관 운영에 무게가 실렸다. 지금은 현지 플랫폼, 제작사, 레이블, 공연기획사, 저작권 관리기관, 관광업계와의 협력이 함께 필요해졌다. K-드라마는 현지 리메이크와 공동제작, K-팝은 트레이닝과 공연기술, 웹툰·웹소설은 번역과 2차 저작권, 게임은 현지 규제와 결제망, 관광은 팬덤 동선과 소비재 마케팅이 붙는다. 수출은 완성품 판매에서 산업 시스템 이전과 권리 관리의 문제로 확장됐다.
정부가 콘텐츠 정책펀드 안에 수출 펀드 2000억 원과 지식재산권 펀드 2000억 원을 배치한 대목도 이 변화와 맞물린다. 해외시장에서 반복 수익을 내려면 작품 한 편의 판매보다 원천 IP, 리메이크 권리, 캐릭터·굿즈·게임화 권리, 음악·공연 권리, 현지 유통 계약이 중요하다. 정책금융이 수출과 IP를 따로 잡은 것은 해외전략이 홍보비 지원을 넘어 권리 기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남아 시장은 이 변화를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지역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베트남비즈니스센터의 ‘2026년 베트남 콘텐츠 산업동향’은 베트남 음악시장이 디지털 소비 확대, 공식 차트 도입, 저작권 징수 확대, 글로벌 메이저 진입을 거치며 제도화·산업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5년 베트남 디지털 음악 시장 규모는 약 5195만 달러로 추정됐고,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와 빌보드의 공식 차트 도입, 베트남 음악 저작권 보호센터의 징수 확대, Sony Music과 YeaH1의 합작, UPRIZE 프로젝트가 주요 흐름으로 제시됐다.
베트남 사례는 한국 기업의 해외전략을 바꾸는 신호다. 베트남은 아직 성숙한 대형 음악시장은 아니지만, 공식 차트와 저작권 징수, 글로벌 유통망, 현지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동시에 들어오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이 시장을 단순히 K-팝 공연을 판매하는 곳으로만 보면 글로벌 메이저와 현지 기업이 만드는 새 구조를 놓치게 된다. 트레이닝, 안무, 프로듀싱, 공연기술, 팬덤 운영, 저작권 관리, AI 권리처리, 음원 데이터 분석처럼 산업 뒤쪽의 기능이 더 중요한 협력 영역으로 올라오고 있다.
Sony Music과 YeaH1의 합작은 K-팝식 시스템이 현지 산업과 결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베트남 7인조 보이그룹 UPRIZE 프로젝트에는 오디션, 방송 예능, 트레이닝, 매니지먼트, 글로벌 유통이 한 흐름으로 들어갔다. KOCCA 자료는 해당 프로젝트에 한국 전문가가 참여한 것으로 정리했다. 한국의 역할은 완성된 그룹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인재를 훈련하고 제작 시스템을 설계하는 단계로 옮겨갈 수 있다. 다만 현지 정체성을 지우는 방식의 K-팝화는 반발을 부를 수 있다. 해외전략은 한국 모델의 이식보다 현지 산업의 제도와 취향 안에서 작동하는 협력 구조를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저작권과 데이터 관리도 해외전략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베트남은 2026년 7월부터 카페, 식당, 호텔, 관광 숙박시설, 노래방과 유흥시설 등 영업장의 음악 사용료 납부를 표준화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KOCCA 자료는 영업장 사용료 제도화 이후 저작권 모니터링, 메타데이터 관리, 정산, AI 권리 처리 솔루션 수요가 커질 수 있다고 봤다. 한국 기업에는 현지 레이블 지분 투자나 공연 판매보다 경쟁 부담이 낮은 진입로가 될 수 있다. 저작권 관리와 정산 기술은 콘텐츠 해외전략에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장이 제도화될수록 수익을 지키는 기반이 된다.
AI 확산은 해외시장에서도 같은 부담을 만든다. 음악, 영상, 웹툰, 게임의 현지화 과정에서 AI 번역, 더빙, 보컬 합성, 이미지 생성, 마케팅 소재 제작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해외 파트너와 계약할 때 학습 데이터, 원저작자 동의, 실연자 권리, AI 생성물의 이용 범위, 2차 활용 수익 배분을 명시하지 않으면 분쟁은 국경을 넘어 커질 수 있다. K-콘텐츠의 해외 확장은 작품 경쟁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리 관계가 깨끗해야 플랫폼 유통, 리메이크, 공연, 굿즈, 관광상품으로 이어지는 확장이 가능하다.
해외문화거점은 산업 확장의 앞단에 놓인다. 재외문화원과 세종학당은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기관에서 한국어, 공연, 전시, 관광, 소비재, 현지 파트너 발굴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2026년 업무계획은 K-미식여행 33선, K-먹거리골목 문화관광 활성화, 코리아뷰티페스티벌 같은 관광·소비재 연계 사업을 함께 제시했다. 콘텐츠 팬덤을 방한 관광과 소비재 구매로 연결하려는 흐름이다.
K-콘텐츠 해외전략이 산업정책과 문화외교 사이에 놓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상외교와 정부 간 협력은 공동제작, 저작권 보호, 현지 촬영, 인력 교류, 관광상품 개발의 제도적 환경을 만든다. 민간 기업은 그 위에서 작품과 IP, 공연과 플랫폼, 팬덤 사업을 움직인다. 정부가 해외문화거점과 관광·소비재 연계를 넓히는 것은 콘텐츠를 외교적 이미지 자산으로만 쓰려는 것이 아니라 수출과 투자를 끌어내는 산업 기반으로 다루겠다는 뜻에 가깝다.
K-콘텐츠 해외전략의 성과는 수출액 증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현지 공동제작 계약이 얼마나 늘었는지, 한국 IP가 해외에서 어떤 권리 구조로 확장됐는지, 현지 창작자와 제작사의 참여가 어느 정도 보장됐는지, 저작권 정산과 AI 활용 기준이 계약에 반영됐는지가 함께 봐야 할 지표다. 완성품 판매 중심의 한류는 이미 성과를 냈다. 다음 단계의 K-콘텐츠는 해외 시장의 제작·유통·권리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재명 정부 문화정책의 해외전략은 그 전환을 제도와 자금, 거점, 관광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첫 평가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