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 FW27②] 다니엘 로즈베리, Schiaparelli를 성공 공식 밖으로 밀어낸 디렉터
‘The Agony and the Ecstasy’ 이후 반복 대신 소재·신체·하우스 코드의 재배치
[KtN 박인경기자]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는 Schiaparelli를 다시 알아보는 하우스로 만들었다. 금빛 신체 장식, 조각처럼 솟은 보디스, 몸의 비례를 흔드는 재킷과 드레스는 최근 몇 시즌 동안 Schiaparelli를 런웨이와 레드카펫 양쪽에서 강하게 각인시켰다. FW27 오트 쿠튀르 컬렉션 ‘THE CALL OF THE VOID’는 로즈베리가 구축한 성공한 이미지 문법을 다시 쓰는 대신, 성공한 문법 자체를 의심한 결과물에 가깝다.
로즈베리는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의 초현실주의 유산을 과거의 장식 목록으로 다루지 않았다. 눈, 입술, 손, 해부학적 신체, 금빛 장신구처럼 하우스가 오래 품어온 기호는 로즈베리 체제에서 더 크고 단단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문양은 보디스가 됐고, 장식은 조각이 됐으며, 재킷은 몸의 선을 정돈하는 옷보다 상체의 비례를 바꾸는 구조물에 가까워졌다. Schiaparelli가 동시대 패션에서 다시 강한 존재감을 얻은 배경에는 바로 이런 전환이 있다.
로즈베리의 Schiaparelli는 옷을 아름답게 입히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몸을 감싸는 직물보다 몸 위에 세워지는 표면, 몸 가까이에 붙는 장신구보다 얼굴과 손목의 인상을 바꾸는 조각성, 드레스의 흐름보다 신체를 낯설게 보이게 하는 구조가 앞에 놓인다. 금빛 귀걸이와 팔찌는 착장의 마지막 장식이 아니라 얼굴과 팔의 윤곽을 새로 그리는 장치가 되고, 보디스는 속옷에서 출발한 구조를 넘어 몸 바깥에 놓인 외피처럼 기능한다.
‘THE CALL OF THE VOID’는 로즈베리에게 반복의 부담이 분명해진 시점에 나왔다. 직전 시즌 ‘The Agony and the Ecstasy’는 Schiaparelli의 최근 성과를 집약한 컬렉션으로 받아들여졌다. 로즈베리는 같은 창작 절차를 다시 밟아 비슷한 높이에 도달하려 했지만, 성공한 방식의 재현은 새 시즌의 출발점이 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Gaudí)의 건축을 보며 영감을 찾으려던 계획도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FW27 컬렉션은 정돈된 영감의 결과라기보다, 통제된 절차가 멈춘 뒤 생긴 낯선 방향에서 출발했다.
소재 선택은 로즈베리의 전환을 가장 빠르게 드러낸다. 전통적인 쿠튀르가 실크, 새틴, 울의 품질과 공방의 섬세한 손작업으로 권위를 쌓아왔다면, 이번 시즌 Schiaparelli는 라텍스, 실리콘, 구운 페인트 시트 같은 재료를 전면에 세웠다. 하이퍼리얼 보디스는 실리콘으로 캐스팅돼 밀키 블루 색으로 칠해졌고, 플로럴 모티프는 금속 와이어와 진주 위에 팽팽하게 씌운 hosiery 꽃으로 만들어졌다. 쿠튀르의 가치는 고급 원단의 희소성보다 재료를 전혀 다른 상태로 바꾸는 공정에 놓였다.
런웨이에는 로즈베리식 신체 해석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연분홍 광택 보디스와 파스텔 꽃 장식 스커트는 부드러운 색을 쓰지만, 착장은 로맨틱한 드레스보다 인공적 조형물에 가깝다. 검은 고광택 드레스는 몸의 굴곡을 따라 흐르지 않고, 가슴과 허리 위에 단단한 외피처럼 놓인다. 크림색 드레이프 드레스는 고전적 우아함을 빌리면서도 깊은 컷아웃과 꼬임 구조로 몸과 옷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든다.
검은 촉수 형태가 몸 주변으로 뻗은 룩은 Schiaparelli의 초현실주의가 상징에서 물성으로 이동한 대목이다. 곡선 구조물은 어깨와 등, 스커트 둘레를 따라 확장되며 착장의 윤곽을 흐린다. 장식은 옷 위에 더해진 부속물이 아니라 몸 바깥으로 자라난 구조처럼 작동한다. 로즈베리는 초현실주의를 눈에 띄는 기호로만 쓰지 않고, 몸의 주변부를 불안정하게 넓히는 방식으로 옮겼다.
하우스의 대표 품목인 Schiaparelli 재킷도 이번 시즌에는 절대적인 중심에 서지 않았다. 재킷은 착장의 주인공으로 고정되지 않고, 라텍스 질감과 레이스 구조, 크림색 표면, 블랙 스커트, 금빛 장신구 사이에 놓였다. 로즈베리는 하우스 코드를 보존의 대상으로 앞세우기보다, 다른 재료와 충돌시키며 익숙한 품목의 위치를 바꿨다. Schiaparelli 재킷은 브랜드 정체성을 확인하는 상징이면서도, 이번 시즌에는 전체 구조를 흔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
로즈베리의 성취는 이미지의 즉시성에 있다. 한 번 보면 기억되는 보디스, 신체 일부를 확대한 듯한 금빛 장식, 조각처럼 단단한 어깨선과 흉곽 구조는 디지털 이미지 환경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레드카펫에서도 Schiaparelli는 설명보다 먼저 이미지로 도착하는 하우스가 됐다. 다만 강한 식별성은 곧 반복의 위험을 만든다. 금빛 해부학 장식, 과장된 보디스, 드라마틱한 실루엣이 계속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면 Schiaparelli의 실험성은 공식으로 굳을 수 있다.
FW27 컬렉션에서 로즈베리는 바로 그 위험을 비껴가려 했다. 꽃과 촉수, 라텍스와 실리콘, 구운 페인트 시트, 고광택 블랙과 raw wax ecru는 하우스의 초현실주의를 다시 낯선 상태로 밀어 넣었다.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유산은 보존해야 할 과거의 장식이 아니라, 아직 불가능해 보이는 형태를 시도할 수 있는 근거로 쓰였다.
다니엘 로즈베리의 Schiaparelli는 상징을 반복하는 하우스가 아니라, 상징을 위험한 상태로 다시 꺼내는 하우스에 가깝다. FW27 ‘THE CALL OF THE VOID’는 로즈베리 체제가 도달한 현재 위치를 드러낸다. Schiaparelli는 강한 이미지의 힘을 유지하면서도, 같은 이미지가 공식으로 굳기 전 소재와 구조를 다시 흔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