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 FW27③] Schiaparelli 소재 실험, 실크와 울을 떠난 쿠튀르의 새 물성

라텍스·실리콘·페인트 시트까지 끌어들인 ‘The Call of the Void’, 고급 원단보다 변형의 공정에 놓인 가치

2026-07-10     박인경 기자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Schiaparelli FW27 오트 쿠튀르 ‘THE CALL OF THE VOID’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소재의 위계였다. 실크와 새틴, 울처럼 쿠튀르가 오랫동안 권위를 쌓아온 원단은 중심에서 물러났고, 라텍스와 실리콘, 페인트를 굳혀 만든 시트가 몸 위의 형태를 만들었다.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는 이번 시즌 고급 원단의 귀함보다 재료를 전혀 다른 상태로 바꾸는 상상력과 공방의 손을 앞세웠다.

오트 쿠튀르는 전통적으로 희소한 원단, 장시간의 수작업, 신체에 맞춘 구조를 통해 가치를 증명해왔다. Schiaparelli의 이번 시즌은 같은 기준을 부정하기보다, 기준의 무게중심을 옮긴다. 값비싼 직물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뤘는가보다,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의복의 형태로 바꿨는지가 전면에 놓였다. 라텍스의 탄성, 실리콘의 피부 같은 질감, 굳은 페인트의 단단한 표면은 쿠튀르가 더 이상 부드러운 직물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페인트를 굳혀 만든 시트는 원단의 개념을 가장 직접적으로 흔든 재료다. 페인트는 보통 옷감 위에 더해지는 색이나 표면 처리로 쓰이지만, 이번 컬렉션에서는 형태를 세우는 재료로 이동했다. 몸을 따라 흐르는 직물 대신, 굳은 표면을 조각하고 실루엣으로 세우는 방식이 선택됐다. 쿠튀르의 표면은 그림처럼 칠해진 바탕이 아니라, 착장의 구조를 결정하는 물질이 됐다.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실리콘 보디스는 몸과 소재의 경계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하이퍼리얼 보디스는 몰딩으로 찍어낸 형태가 아니라 조각 과정을 거친 뒤 실리콘으로 캐스팅됐고, 밀키 블루 색으로 칠해졌다. 보디스는 속옷에서 출발한 의복 구조를 넘어, 피부와 조각 사이에 놓인 외피처럼 작동했다. 부드러운 신체 이미지를 흉내 내면서도 동시에 차갑고 인공적인 표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플로럴 모티프도 전통적인 꽃 자수와 거리가 있었다. 금속 와이어와 진주 위에 hosiery 소재를 팽팽하게 씌운 꽃 수백 개가 스커트 표면을 구성했고, 색은 콘플라워 블루에서 캐러멜 톤으로 이어지도록 조정됐다. 꽃은 납작한 장식 문양이 아니라, 금속의 선과 직물의 탄성, 진주의 점들이 결합된 입체 구조로 올라왔다. 로맨틱한 꽃 장식의 외피 안에 공학적 조립 방식이 들어간 셈이다.

라텍스는 이번 컬렉션에서 움직임을 가진 재료로 쓰였다. 실제 꽃, 물고기 비늘, 리본 플라워로 뒤덮인 재킷과 레깅스 위로 어깨에서 뻗는 라텍스 촉수가 더해졌다. 촉수는 단순한 장식보다 몸 바깥으로 확장되는 구조에 가까웠고, 걷는 동작에 따라 착장의 윤곽을 계속 흔들었다. Schiaparelli의 초현실주의는 눈과 입술 같은 고정된 기호보다, 몸 주변에서 변형되는 물성으로 옮겨갔다.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은 고광택 드레스들은 소재가 색보다 먼저 읽히는 착장이다. 블랙은 배경색이 아니라 빛을 튕겨내는 표면으로 기능했다. 보디스와 스커트의 검은 광택은 직물의 부드러운 주름보다 갑각류의 외피나 보호막 같은 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몸을 감싸는 옷이라는 인식보다, 몸 위에 단단한 껍질을 세운 인상이 먼저 남는다.

크림색 계열의 룩에서도 소재 실험은 계속됐다. raw wax ecru에 가까운 밝은 표면은 순백의 부드러움보다 밀랍처럼 마른 질감과 조형성을 드러냈다. 깊은 컷아웃, 꼬임 구조, 라텍스 질감의 재킷, 프린지와 레이스가 함께 쓰이며 밝은 색은 안정적인 우아함보다 몸과 옷 사이의 빈 공간을 강조하는 바탕이 됐다. 같은 밝은 계열 안에서도 표면의 건조함, 탄성, 절개선이 서로 다른 긴장을 만들었다.

Schiaparelli gold도 소재 실험의 연장선에 놓였다. 금빛은 단순한 마감이나 장식의 색이 아니라 몸을 장식과 갑옷, 예술 오브제 사이에 놓는 물질로 쓰였다. 귀걸이와 팔찌, 목걸이는 착장을 마무리하는 액세서리보다 얼굴과 손목, 목 주변의 윤곽을 바꾸는 조각물에 가까웠다. 금빛 조형은 라텍스와 실리콘, 페인트 시트가 만든 낯선 표면과 충돌하며 하우스의 오래된 코드를 다시 강하게 세웠다.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액세서리에서도 같은 방향이 이어졌다. Secret bag은 크리놀린 스파이크와 꽃 자수로 표면을 확장했고, 새 슈즈 ‘The Bubble’은 금속적인 외계적 형태에 실리콘 슬리브를 결합했다. 조개 껍데기, 문어 촉수, 말미잘을 떠올리게 하는 주얼리 역시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인공 소재와 금속 구조를 통해 낯선 생물성으로 바꿨다.

이번 소재 실험은 쿠튀르의 수작업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공방 기술의 역할을 더 노출한다. 전통 직물은 이미 아름다운 상태로 출발하지만, 라텍스와 실리콘, 페인트 시트와 hosiery 꽃은 공정 없이는 쿠튀르의 언어가 되기 어렵다. 자르고, 늘리고, 굳히고, 칠하고, 엮고, 세우는 과정이 곧 착장의 가치가 됐다. 로즈베리 체제의 Schiaparelli가 말하는 럭셔리는 재료 자체의 신분보다 재료가 변형되는 시간과 손의 밀도에 가까워졌다.

FW27 ‘THE CALL OF THE VOID’는 Schiaparelli의 소재 언어를 전통 원단의 영역 밖으로 밀어냈다. 실크와 울이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변화는 쿠튀르가 더 이상 부드러운 옷감의 완성도만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텍스, 실리콘, 페인트 시트, 금속 와이어, 진주, 실제 꽃과 물고기 비늘은 한 컬렉션 안에서 옷과 조각, 장식과 생물, 표면과 신체의 경계를 다시 나눴다. Schiaparelli의 이번 시즌은 고급 소재를 입는 쿠튀르에서, 낯선 소재를 쿠튀르로 바꾸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