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 FW27⑤] Schiaparelli 컬러 코드, 꽃과 심해 생물에서 꺼낸 쿠튀르 팔레트
로브스터 핑크·바이올렛·사프란·페일 민트, 블랙과 에크루 위에 놓인 금빛 조각성
[KtN 박인경기자]Schiaparelli FW27 오트 쿠튀르 ‘THE CALL OF THE VOID’의 색은 꽃과 심해 생물 사이에서 출발했다. 로브스터 핑크, 바이올렛, 탠저린, 사프란, 페일 민트 같은 색이 파스텔의 부드러운 표면을 만들었고, 하이글로스 블랙과 raw wax ecru, Schiaparelli gold가 컬렉션의 무게를 잡았다.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는 이번 시즌 색을 장식의 배경으로 쓰지 않고, 소재와 실루엣의 긴장을 드러내는 장치로 배치했다.
파스텔 팔레트는 컬렉션의 첫 인상을 부드럽게 열었다. 연분홍 광택 보디스 위에 민트, 크림, 옐로, 블루 계열의 입체 꽃 장식이 겹쳐졌고, 같은 질감은 스커트와 가방, 슈즈까지 이어졌다. 색만 놓고 보면 로맨틱한 플로럴 쿠튀르에 가깝지만, 표면은 평면적 자수나 프린트가 아니었다. 작은 꽃들이 빽빽하게 모여 착장의 부피를 만들면서 파스텔은 달콤한 장식보다 인공적으로 증식한 표면처럼 작동했다.
로브스터 핑크와 페일 민트는 이번 컬렉션에서 자연의 색을 그대로 옮긴 색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분홍과 민트는 피부, 꽃잎, 해양 생물의 껍질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고, 매끈한 광택과 입체 장식이 더해지면서 색의 감각은 현실의 자연보다 낯선 생물성에 가까워졌다. 로즈베리의 색 사용은 아름다운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에서 가져온 색을 인공적인 쿠튀르 표면으로 다시 만든 방식이었다.
고광택 블랙은 컬렉션의 반대편에서 긴장을 끌어올렸다. 검은 드레스들은 어둡게 가라앉기보다 빛을 강하게 받아냈다. 블랙은 배경색이 아니라 표면의 질감을 드러내는 색으로 쓰였고, 보디스와 스커트의 광택은 갑각류의 외피나 심해 생물의 젖은 껍질처럼 보였다. 전통적인 블랙 이브닝드레스의 우아함은 남아 있지만, 표면은 부드러운 직물보다 단단한 보호막에 가까웠다.
블랙의 역할은 날씬한 수직선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깊은 검정은 금빛 장신구, 피부색 보디스, 투명한 소재, 크림색 구조물과 부딪히며 착장의 대비를 키웠다. 빛을 흡수하는 검정이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검정이 선택되면서, Schiaparelli의 블랙은 정숙한 색보다 공격적인 표면이 됐다. 컬렉션의 어두운 축은 단순한 색채 대비가 아니라 소재의 강도와 신체의 윤곽을 함께 밀어 올렸다.
raw wax ecru 계열의 밝은 색은 블랙과 파스텔 사이에서 다른 긴장을 만들었다. 크림색 드레이프, 라텍스 질감의 재킷, 밝은 프린지와 레이스 구조는 순백의 우아함보다 밀랍처럼 건조한 질감에 가까웠다. 밝은 색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바탕이 아니라 깊은 컷아웃과 꼬임 구조, 절개선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표면으로 쓰였다. 블랙이 광택으로 몸을 단단하게 세웠다면, 에크루는 빈 공간과 절개를 통해 몸과 옷 사이의 거리를 드러냈다.
바이올렛, 탠저린, 사프란 계열은 컬렉션 안에서 강한 색의 가능성을 열었다. 꽃과 해양 생물에서 나온 색들은 순한 파스텔에 머물지 않고, 장식의 밀도와 소재의 광택을 통해 더 진한 인상을 남겼다. Schiaparelli가 오래 쌓아온 초현실주의는 형태만이 아니라 색에서도 작동했다. 현실의 꽃과 생물에서 출발한 색들이 몸 위에서 과장되고 굳어지며,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흐려졌다.
Schiaparelli gold는 이번 시즌에도 하우스의 중심 코드로 남았다. 다만 금빛은 단순한 화려함이나 마감의 언어가 아니었다. 큰 귀걸이와 팔찌는 얼굴과 손목 주변의 공간을 넓혔고, 착장의 무게중심을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금빛 장신구는 드레스를 보완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몸의 윤곽을 다시 그리는 조각물에 가까웠다. 얼굴 옆에 놓인 귀걸이와 손목의 팔찌는 착장의 색을 마무리하는 대신 신체의 비례를 바꿨다.
금빛과 블랙의 조합은 Schiaparelli 특유의 드라마를 가장 강하게 만든다. 고광택 블랙 드레스 위에 금빛 오브제가 놓이면 색의 대비보다 물성의 충돌이 먼저 보인다. 검은 표면은 갑옷처럼 몸을 감싸고, 금빛 장신구는 얼굴과 팔 주변에 조각적 무게를 얹는다. 이 조합에서 Schiaparelli의 럭셔리는 얌전한 장식이 아니라 보호막과 장신구, 의복과 오브제가 한 몸처럼 결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실버 룩은 금빛과 다른 방향에서 컬렉션의 광택을 확장했다. 은색 표면은 몸에 밀착된 드레스를 하나의 빛 덩어리처럼 만들었고, 반짝임은 장식의 세부보다 전체 실루엣을 먼저 끌어올렸다. 금빛이 신체 주변에 조각적 무게를 더했다면, 실버는 몸 전체를 빛나는 표면으로 통합했다. Schiaparelli의 메탈릭 팔레트는 귀금속의 값어치를 과시하기보다, 몸을 다른 물질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냈다.
이번 컬렉션의 색은 여성스러움과 강인함을 단순히 나누지 않는다. 파스텔은 부드럽지만 착장의 표면은 조밀하고, 블랙은 어둡지만 빛을 공격적으로 반사한다. 에크루는 밝지만 절개와 빈 공간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금빛은 화려하지만 장식보다 갑옷에 가깝다. 색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소재와 실루엣에 따라 계속 바뀌는 구성이었다.
FW27 ‘THE CALL OF THE VOID’에서 Schiaparelli의 팔레트는 아름다운 색의 배열보다 낯선 물성을 드러내는 체계에 가까웠다. 꽃과 심해 생물에서 출발한 색은 라텍스, 실리콘, 페인트 시트, 금속 장신구와 만나며 자연의 색을 인공적 쿠튀르 언어로 바꿨다. 로즈베리는 컬러를 낭만적 분위기의 도구로 쓰지 않고, 몸과 소재, 장식과 오브제 사이의 긴장을 선명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다뤘다.
Schiaparelli FW27의 색이 남긴 변화는 분명하다. 쿠튀르 팔레트는 더 이상 계절감을 설명하는 보조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색은 표면의 두께를 드러내고, 빛의 반사를 만들고, 장신구의 조각성을 키우며, 몸의 비례까지 바꾼다. ‘THE CALL OF THE VOID’의 팔레트는 꽃의 부드러움과 심해의 어둠, 금속의 무게와 에크루의 건조함을 한 컬렉션 안에 세우며 Schiaparelli의 초현실주의를 색의 층위까지 확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