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iaparelli FW27⑥] Schiaparelli 이후 쿠튀르, 럭셔리는 더 낯선 물성으로 이동 중

‘The Call of the Void’가 드러낸 포스트 클래식 쿠튀르의 방향, 원단보다 표면·로고보다 실루엣·장식보다 신체 구조

2026-07-13     박인경 기자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Schiaparelli FW27 오트 쿠튀르 ‘THE CALL OF THE VOID’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라텍스와 실리콘, 구운 페인트 시트가 실크와 울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고, 고광택 블랙과 raw wax ecru, Schiaparelli gold는 몸을 부드럽게 감싸기보다 단단한 표면으로 세웠다.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는 이번 컬렉션에서 전통적 쿠튀르의 문법을 파괴하기보다, 쿠튀르가 무엇으로 고급스러움을 증명하는지부터 다시 건드렸다.

오트 쿠튀르는 오랫동안 귀한 원단과 손작업의 시간, 신체에 맞춘 정교한 구조로 권위를 쌓아왔다. Schiaparelli의 이번 시즌은 그 권위를 전면에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권위가 놓이는 자리를 바꾼다. 원단의 출신과 가격보다 재료가 몸 위에서 어떤 상태로 변하는지가 더 크게 부각됐다. 라텍스는 탄성과 광택으로 몸 주변을 확장했고, 실리콘은 피부와 조각 사이의 외피처럼 쓰였으며, 굳은 페인트는 색이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재료가 됐다. 고급 원단을 선택하는 능력보다 낯선 재료를 쿠튀르의 언어로 바꾸는 공정이 더 앞에 놓였다.

컬렉션의 변화는 소재에서 끝나지 않았다. 드레스는 몸을 따라 흐르는 선보다 몸 위에 세워지는 구조를 택했다. 검은 고광택 보디스는 상체를 단단한 껍질처럼 감쌌고, 크림색 드레이프는 깊은 컷아웃과 꼬임 구조로 몸과 옷 사이의 빈 공간을 드러냈다. 파스텔 꽃 장식은 납작한 자수나 프린트가 아니라 스커트의 부피를 키우는 입체 표면으로 올라왔다. Schiaparelli의 실루엣은 허리선과 스커트 볼륨의 균형보다 몸 주변의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더 가까워졌다.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럭셔리 브랜드의 식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로고와 모노그램이 브랜드를 설명하던 시대를 지나, 한 컷에서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실루엣과 물성이 더 강한 힘을 갖기 시작했다. Schiaparelli는 하우스명을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금빛 해부학 장식, 조각적 보디스, 과장된 신체 비례만으로 브랜드가 읽힌다. FW27 컬렉션에서도 이름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표면과 형태다. 금빛 오브제, 블랙 광택, 촉수처럼 뻗은 구조물, 꽃처럼 증식한 장식은 모두 Schiaparelli라는 이름을 대신하는 시각 언어가 됐다.

레드카펫과 디지털 이미지 환경에서는 이런 방식이 더 빠르게 작동한다. 스타의 착장은 더 이상 ‘예쁜 드레스’라는 말만으로 오래 남지 않는다. 등장 순간 윤곽이 식별되고, 사진 한 장으로 브랜드가 읽히며, 착장의 구조가 움직임보다 먼저 기억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Schiaparelli가 최근 몇 시즌 동안 강한 존재감을 얻은 배경에도 이런 이미지 문법이 있다. 금빛 장신구와 과장된 보디스는 설명보다 먼저 시선을 붙잡았고, FW27에서는 그 즉시성이 라텍스와 실리콘, 페인트 시트 같은 물성 실험으로 이어졌다.

꽃과 심해 생물에서 출발한 색도 단순한 팔레트로 머물지 않았다. 로브스터 핑크, 바이올렛, 탠저린, 사프란, 페일 민트는 계절감을 설명하는 색보다 낯선 생물성을 만드는 색에 가까웠다. 하이글로스 블랙은 정숙한 이브닝 컬러가 아니라 젖은 외피처럼 빛을 반사했고, raw wax ecru는 순백의 우아함보다 밀랍 같은 건조함과 절개선을 드러냈다. Schiaparelli gold는 화려한 마감이 아니라 몸을 갑옷과 조각 사이에 놓는 재료로 쓰였다. 색은 분위기를 만드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소재의 질감과 신체의 비례를 바꾸는 요소로 이동했다.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장식의 역할도 바뀌었다. 꽃은 로맨틱한 표면 장식이 아니라 착장의 부피를 만드는 구조가 됐고, 금빛 귀걸이와 팔찌는 드레스의 끝을 마무리하는 액세서리가 아니라 얼굴과 손목 주변의 윤곽을 다시 그리는 오브제로 쓰였다. 촉수 형태의 구조물은 장식처럼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몸의 외곽선을 넓히는 골격에 가까웠다. 장식과 구조의 구분이 흐려지면서 쿠튀르의 손작업은 표면을 꾸미는 기술을 넘어 착장의 형태를 만드는 힘으로 확장됐다.

이 흐름은 대중복으로 곧장 내려오지 않는다. 라텍스와 실리콘, 구운 페인트 시트는 착용성과 관리, 제작비에서 일상복과 거리가 있다. Schiaparelli가 제안한 물성 실험은 매장에 걸리는 옷보다 이미지와 브랜드 정체성을 먼저 만든다. 상업적 확장은 드레스 자체보다 주얼리, 슈즈, 백, 뷰티 이미지, 무대 의상, 패션 화보용 피스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쿠튀르는 판매량보다 브랜드가 앞으로 어떤 형태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실에 가깝다.

K패션과 무대 스타일링에서도 Schiaparelli식 조형성은 참고 가능한 흐름이다. 실리콘 보디스와 라텍스 촉수가 그대로 쓰이기는 어렵지만, 광택 표면, 조각적 액세서리, 과장된 어깨선, 피부와 착장 사이의 컷아웃, 생물적인 곡선은 무대와 포토월, 뮤직비디오 스타일링에서 변주될 여지가 있다. 특히 K팝 스타일링은 짧은 순간에 강한 윤곽을 남겨야 하고, 움직임 속에서도 브랜드와 콘셉트가 읽혀야 한다. Schiaparelli의 FW27은 장식 밀도보다 구조 자체가 이미지를 만드는 방향을 제시한다.

Schiaparelli FW27 Haute Couture Rejects Formulas for "The Call of the Void" 사진=Schiaparelli,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다만 강한 이미지 언어는 반복의 부담을 함께 만든다. 금빛 해부학 장식, 조각적 보디스, 드라마틱한 실루엣은 Schiaparelli를 다시 세계 패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지만, 같은 기호가 반복되면 초현실주의도 공식처럼 굳을 수 있다. ‘THE CALL OF THE VOID’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로즈베리는 이미 성공한 이미지를 더 크게 만드는 대신, 성공한 이미지의 기반을 흔드는 쪽을 택했다. 하우스 코드는 보존됐지만,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지는 않았다.

Schiaparelli FW27이 패션 트렌드에서 갖는 의미는 기괴한 쿠튀르라는 인상에 머물지 않는다. 이번 컬렉션은 럭셔리의 기준이 귀한 원단과 로고, 정교한 장식에서 물성, 실루엣, 신체 구조, 이미지의 즉시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쿠튀르는 더 부드럽고 안전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Schiaparelli의 런웨이에서 럭셔리는 더 단단하고, 더 낯설고, 더 물질적인 방식으로 몸 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