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Gaby and the Beanstalk’②] 기퓌르 레이스와 실크 무슬린, 콩의 이미지를 입은 샤넬 수트
타이외르 공방의 재단과 가벼운 소재, 샤넬 재킷을 다시 움직이게 한 방식
[KtN 신미희기자]2026년 7월 파리 그랑팔레에서 공개된 샤넬 2026/27 가을·겨울 오트쿠튀르(haute couture·고급 맞춤복)는 체크 수트에서 출발했다.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는 거대한 콩나무와 꽃이 놓인 무대 위에 샤넬 수트를 먼저 세웠고,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의 서가에서 나온 동화책과 ‘잭과 콩나무’의 이미지를 옷의 구조 안으로 옮겼다. 오프닝 수트는 기퓌르 레이스(guipure lace)와 실크 무슬린(silk mousseline)으로 구성됐으며, 마법의 콩을 떠올리게 하는 표면과 투명한 층이 동시에 놓였다.
오프닝 수트는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중요한 첫 문장에 가까웠다. 재킷과 스커트는 샤넬의 익숙한 형식을 지켰지만, 무게와 질감은 이전보다 한층 가벼워졌다. 격자형 체크는 하우스의 전통을 붙잡고, 재킷 안쪽에서 내려오는 얇은 소재는 수트의 폐쇄감을 덜었다. 스커트 아래로 겹친 투명한 층은 정지된 실루엣보다 걷는 몸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기퓌르 레이스는 이번 수트의 성격을 바꾼 소재다. 일반 레이스처럼 얇은 망 위에 무늬가 얹힌 방식이 아니라, 무늬 자체가 서로 이어지며 도톰한 구조를 만드는 레이스다. 콩의 이미지는 프린트나 자수로 설명되지 않고, 레이스의 빈틈과 입체감 안에서 만들어졌다. 블라지는 동화적 모티프를 겉면에 그리는 대신, 소재의 조직과 구멍, 겹침으로 옮겼다.
샤넬 수트의 힘은 초반부에서 더 분명해진다. 체크, 트위드, 짧은 재킷, 무릎선을 지나는 스커트는 모두 익숙한 하우스의 어휘다. 다만 재킷은 지나치게 단단하게 잠기지 않았고, 스커트는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어깨와 허리선은 정돈돼 있지만, 전체 인상은 경직보다 이동성에 가까웠다. 블라지가 다시 꺼낸 수트는 과거의 상징을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의 몸 위에서 다시 작동시키는 방식이었다.
타이외르(tailleur)는 이번 회차에서 놓치면 안 되는 단어다. 타이외르는 재킷과 수트처럼 골격을 세우는 쿠튀르의 재단 영역을 가리킨다. 샤넬의 타이외르는 남성복에서 빌려온 활동성과 여성복의 균형을 결합해 온 역사와 맞닿아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단정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안쪽의 얇은 층, 가장자리의 장식, 스커트의 흐름을 통해 수트를 더 오래 움직이게 만들었다.
짧은 재킷형 착장은 샤넬 수트의 비율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킷 길이가 줄어들면서 허리와 스커트의 관계가 선명해졌고, 상의와 하의 사이에는 여백이 생겼다. 기존 샤넬 재킷이 단정한 완결성을 강조했다면, 이번 재킷은 움직임 속에서 형태가 바뀌는 쪽에 가까웠다. 블라지는 수트의 권위를 낮추지 않으면서도, 입는 사람의 몸이 먼저 보이도록 재단의 강도를 조절했다.
실크 무슬린은 수트의 무게를 덜어내는 또 다른 축이다. 얇고 투명한 소재는 재킷 안쪽과 스커트 아래에서 수트의 엄격함을 누그러뜨렸다. 샤넬 수트가 가진 직선적 구조와 무슬린의 흐르는 성질이 겹치면서, 옷은 재단과 드레스 사이에 놓였다. 타이외르의 골격과 플루(flou)의 유연성이 한 벌 안에서 만난 셈이다. 플루는 흐르는 드레스와 부드러운 실루엣을 다루는 쿠튀르 영역으로, 이번 컬렉션에서는 수트 안쪽으로도 스며들었다.
블랙과 그레이 계열의 테일러링은 중반 이후 컬렉션의 균형을 잡았다. 초반 수트가 동화책의 출발점을 품고 있었다면, 어두운 테일러링은 샤넬 수트의 본래적인 힘을 더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냈다. 색이 줄어들수록 재킷의 선, 스커트의 길이, 몸을 감싸는 비율이 더 뚜렷해졌다. 화려한 무대와 장식적 표면 사이에서도 샤넬의 기본형이 흐트러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갈롱(galon)도 샤넬 재킷을 읽는 중요한 단서다. 갈롱은 재킷 가장자리와 앞여밈, 포켓 주변에 쓰이는 장식적 트리밍과 맞닿아 있다. 샤넬 재킷에서 갈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재킷의 윤곽을 잡고, 트위드의 표면과 구조를 정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번 컬렉션의 수트들은 갈롱과 체인, 가장자리 장식을 통해 샤넬 재킷의 선을 다시 강조했다.
체인 장식이 더해진 후반부 재킷은 샤넬 수트가 장식과 구조를 함께 품는 방식을 보여준다. 체인은 표면 위에 얹힌 장식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재킷의 가장자리와 몸의 선을 따라가며 옷의 윤곽을 강조하고, 트위드의 질감과 금속성의 무게를 대비시킨다. 블라지는 샤넬의 상징을 반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재킷이 실제로 어떻게 닫히고 열리며 움직이는지에 집중했다.
이번 컬렉션의 수트는 동화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면서도 코스튬으로 흐르지 않았다. 콩나무와 마법의 콩은 무대와 소재 안에 있었고, 수트는 여전히 재킷과 스커트의 균형 위에 서 있었다. 기퓌르 레이스가 환상의 표면을 만들고, 실크 무슬린이 몸의 움직임을 열었으며, 타이외르의 재단은 전체 구조를 붙잡았다. 샤넬 수트가 힘을 잃지 않은 이유는 환상을 받아들이되, 옷의 골격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티유 블라지의 두 번째 샤넬 오트쿠튀르에서 수트는 과거를 기념하는 상징물이 아니었다. 체크와 트위드, 기퓌르 레이스와 실크 무슬린, 갈롱과 체인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샤넬 재킷은 더 가벼워졌고, 스커트는 더 유연해졌으며, 장식은 옷의 표면이 아니라 구조 안으로 들어갔다. 동화적 서사는 수트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블라지는 샤넬 수트가 다시 일상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옷이라는 점을 오트쿠튀르의 방식으로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