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략①] 이재명 정부 AI 정책, GPU·모델 넘어 산업 재설계로
맥킨지, 생산성 개선만으로 지속적 우위 확보 어렵다고 진단…9조9000억원·741개 사업의 성패는 제조·공공 운영 변화에서 갈려
[KtN 신명준기자]2026년 인공지능 예산 9조9000억원, 41개 부처 741개 사업. 이재명 정부는 올해를 ‘AI 3대 강국 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고 컴퓨팅 인프라와 독자 범용 모델, 산업·공공 부문의 인공지능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전체 예산의 51%인 5조1000억원, 산업통상자원부에 1조7000억원, 중소벤처기업부에 9000억원이 편성됐다. 연산자원 확보에서 기업 지원과 제품 상용화까지 정부 재정을 넓게 배치한 구조다.
투자 규모가 세 배로 늘어난 시점에 세계 인공지능 경쟁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는 2026년 7월 공개한 ‘The real AI advantage’에서 인공지능을 기존 업무에 덧붙여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첫 단계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경쟁 기업도 같은 모델과 도구를 이용할 수 있어 생산성 개선의 효과가 빠르게 평준화되기 때문이다.
맥킨지가 지목한 다음 경쟁은 고객이 거쳐야 했던 복잡한 절차를 줄이고,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바꾸며, 실험 결과를 더 빠르게 사업에 반영하는 능력이다. 인공지능 자체보다 업무와 사업모델을 다시 짜는 조직이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분석은 이재명 정부의 인공지능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도 이어진다. 정부가 확보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 독자 모델은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의 출발 조건을 넓힌다. 국가 투자가 제조 공정과 행정 절차, 국민 서비스, 기업의 상품 구조까지 바꾸지 못한다면 성과는 장비 도입과 지원사업 실적에 머물 수 있다.
9조9000억원, 기반 확보와 산업 확산에 동시 투입
올해 예산에서 가장 큰 신규 사업은 2조1000억원 규모의 ‘AI 컴퓨팅 자원 활용 기반 강화’다. 고성능 GPU를 비롯한 연산자원 부족을 완화하고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딥테크·AI 스타트업 펀드에는 3000억원, 국민성장펀드에는 2000억원이 반영됐다. 관계 부처가 공동 추진하는 ‘AX 스프린트’에도 6000억원이 배정됐다. 실증과 양산체계 구축, 모델 개발, 인증과 지식재산권 확보, 판로 개척을 묶어 생활·산업 분야의 제품 상용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연산장비와 모델 개발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자체 데이터센터나 장기 클라우드 계약을 갖추기 어려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대학 연구실에는 공공 투자가 기술 개발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해외 사업자의 가격과 서비스 정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에서 모델을 개발·운영할 기반을 확보한다는 산업적 목적도 있다.
기반 투자는 경쟁력의 출발점이지 결과 자체는 아니다. 같은 GPU와 범용 모델을 이용한 기업들이 문서 작성, 자료 검색, 상담, 기초 분석을 자동화하면 개별 업무의 처리 속도는 빨라진다. 경쟁사도 비슷한 도구를 도입하는 순간 비용과 시간의 격차는 다시 좁혀진다.
맥킨지는 전기와 이동통신 같은 범용 기술이 확산된 초기에도 기업들이 기존 업무를 더 빠르고 저렴하게 수행하는 데 먼저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범용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 생산성 향상에서 발생한 이익은 가격 인하와 소비자 편익, 기술 공급자의 매출로 이동한다. 특정 기업에 남는 차이는 제품과 업무 방식까지 바꿨을 때 커진다.
정부 사업도 컴퓨팅 자원의 배정량과 이용시간만으로는 산업적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지원받은 기업이 어떤 서비스를 출시했는지, 기존에 없던 매출과 수출이 발생했는지, 지원 종료 뒤에도 제품을 운영하고 있는지까지 이어져야 재정 투입과 시장 성과가 연결된다.
741개 사업, 부처별 도입에서 업무 연결로
2월 25일 법정계획으로 확정된 ‘대한민국 인공지능행동계획’은 AI 혁신 생태계 조성, 범국가 AI 기반 대전환, 글로벌 AI 기본사회 기여를 세 개 정책축으로 세웠다. AI 고속도로와 차세대 기술, 핵심 인재, 독자 범용 모델, 규제 혁신을 기반으로 산업·공공·지역·문화·국방의 전환을 추진하는 구상이다. 행동계획에는 12대 전략 분야와 99개 실행과제, 326개 정책권고가 담겼다.
41개 부처가 741개 사업을 나눠 집행하는 구조에서는 기관별 시스템과 데이터가 서로 떨어져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부처마다 상담 챗봇과 문서요약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인공지능 도입 실적은 빠르게 늘어난다. 국민이 같은 정보를 여러 기관에 반복 제출하고 담당 공무원이 서로 다른 시스템을 오가야 한다면 행정 절차의 부담은 그대로 남는다.
복지와 고용, 세금, 인허가처럼 여러 기관의 판단이 필요한 서비스는 신청부터 자격 확인, 심사, 통보, 사후관리까지 연결돼야 처리 과정이 달라진다. 민원 창구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추가하는 것과 기관별 데이터·권한을 조정해 전체 절차를 다시 짜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맥킨지는 소비자가 상품을 탐색하고 비교한 뒤 계약과 갱신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인공지능이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주택을 구입할 때 부동산과 금융, 점검, 보험, 공공서비스를 따로 이용하던 구조도 하나의 서비스 경험으로 묶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검색과 안내를 빠르게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산업과 기관 사이에 놓인 절차를 없애는 변화다.
한국의 공공 인공지능 전환도 같은 기준에서 볼 수 있다. 시스템 구축 건수보다 민원 처리기간과 방문 횟수, 반복 제출 서류, 행정 오류가 얼마나 줄었는지가 실제 변화에 가깝다. 부처별 예산과 업무 권한을 유지한 채 프로그램만 추가하면 처리 속도가 빨라진 부문과 여전히 사람이 이어 붙여야 하는 부문이 함께 남는다.
제조업에서는 보고서 작성과 설비 점검 일부를 자동화하는 단계에서 수요 예측, 원자재 조달, 생산계획, 품질관리, 물류, 유지보수까지 데이터를 연결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주문량이 달라지거나 설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을 때 생산계획과 조달 일정이 함께 조정돼야 공장 전체의 납기와 원가가 바뀐다.
생산설비와 협력업체마다 데이터 형식과 접근 권한이 다르면 고성능 모델을 확보해도 분석 범위가 좁아진다. 제조 현장에서 장기간 축적한 공정·품질 데이터는 기업 기밀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모델 개발사와 수요기업 사이의 이용 조건도 필요하다. 정부가 컴퓨팅과 모델 공급을 늘리는 과정에서 산업 데이터의 표준과 권리 관계가 함께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독자 모델, 성능 경쟁 뒤에 놓인 산업 데이터
독자 범용 모델은 이재명 정부 정책에서 컴퓨팅 인프라와 산업 전환을 잇는 축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모델의 평가는 기술 성능뿐 아니라 현장 활용 가능성과 비용 효율성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행동계획도 독자 모델을 별도의 전략 분야로 두고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모델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국가 경쟁력의 한 요소로 제시했다.
범용 모델의 성능이 높아져도 모든 기업이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제조 공정과 고객 거래, 금융·의료·법률 업무에서 축적된 데이터의 품질과 양이 다르고, 모델을 실제 업무에 연결할 기술과 인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인공지능이 예측을 만들어내는 비용을 낮출수록 정확한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의 가치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누구나 저렴하게 예측을 얻는 환경에서는 어떤 데이터를 입력하고 결과를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경쟁력을 가른다. 고객과의 관계, 독점적인 데이터, 현장의 판단 능력이 범용 모델의 성능 차이보다 중요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모델도 벤치마크 점수와 파라미터 규모만으로 산업적 위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기업이 실제 서비스를 운영할 때 부담하는 추론 비용, 한국어와 전문 분야의 정확도, 기업 내부 데이터와 연결되는 방식, 외부 개발자의 이용 조건이 채택 여부에 영향을 준다.
해외 선도 모델보다 모든 평가 항목에서 앞서지 못하더라도 한국어와 국내 제도, 제조 데이터, 보안이 중요한 분야에서 비용과 정확도를 확보하면 별도의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평가 점수가 높아도 운영비가 크거나 기업의 기존 시스템과 연결하기 어렵다면 산업 현장의 활용은 제한된다.
기술보다 오래 걸리는 조직 변화
맥킨지가 인공지능 전환에서 가장 어렵다고 지목한 영역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이다. 직원에게 도구를 제공하고 업무 방식과 교육체계를 그대로 두면 성과가 나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람과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맡을 일을 다시 나누고, 기술을 시험한 결과를 빠르게 다음 업무에 반영하는 운영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지원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직원 교육을 마쳐도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활용 범위는 개인 업무 보조에 머문다. 인공지능이 만든 결과를 누가 검토하고 승인하는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느 부서가 책임지는지, 실험 결과를 정규 업무에 반영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함께 정해져야 한다.
기존 조직은 보고와 승인, 부서 간 협의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이 자료를 분석하는 속도가 빨라져도 결재 단계와 데이터 접근 제한이 그대로라면 전체 업무시간은 크게 줄지 않는다. 개별 직원의 생산성과 기업·기관 전체의 성과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다.
맥킨지는 미래의 경쟁우위를 조직의 ‘학습 속도’에서 찾았다. 기술을 한 번 도입하는 능력보다 실험을 반복하고, 실패에서 얻은 정보를 다음 제품과 업무에 적용하며, 시장 변화에 맞춰 운영 방식을 고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의 9조9000억원은 컴퓨팅과 모델, 금융, 제품 상용화, 공공서비스를 한꺼번에 확장하는 첫 대규모 투자다. 2월 행동계획 확정과 3월 741개 예산사업 통합 공개를 거쳐 각 부처의 집행도 시작됐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부처별 사업과 행동계획의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9조9000억원의 첫해가 끝난 뒤 남는 성과는 사업과 장비의 숫자에만 있지 않다. 제조업의 생산 과정, 공공서비스의 처리 절차, 기업의 제품과 조직 운영이 실제로 달라진 부분이 이재명 정부 AI 정책의 산업적 깊이를 가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