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략②] 글로벌 AI 경쟁, 모델 넘어 에이전트·피지컬 AI로
맥킨지, 거래 절차와 산업 경계를 바꾸는 AI에 주목…미국·중국·유럽·일본, 인프라·산업 확산·규제에서 서로 다른 경로
[KtN 신명준기자]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모델이 수차례 선두를 주고받을 만큼 기술 격차가 좁아졌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Stanford HAI)의 ‘2026 AI 인덱스’는 2025년 이후 양국 상위 모델의 성능 차이가 사실상 사라지는 흐름을 확인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등장 3년 만에 세계 인구의 53%가 사용하는 기술로 확산됐고, 조사 대상 조직의 인공지능 활용률은 88%까지 올라갔다. 고성능 모델을 보유한 기업과 국가의 우위는 여전히 크지만, 모델에 접근해 업무에 적용하는 일만으로는 차이를 만들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는 모델 이후의 경쟁을 고객과 기업이 거쳐야 했던 절차를 없애는 능력에서 찾았다. 인공지능 플랫폼이 상품을 검색하고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견적을 받고 계약하며, 갱신 시점을 추적하고 더 나은 조건으로 거래처를 바꾸는 역할까지 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용자의 기억과 상황을 축적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거래에 참여하면 금융과 유통, 통신, 모빌리티처럼 떨어져 있던 산업도 하나의 서비스 안에서 연결된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첫 경쟁이 질문에 얼마나 정확하게 답하는지를 가리는 단계였다면, 다음 경쟁은 답변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어느 플랫폼이 이용자의 정보와 결제 권한을 확보하는지, 기업의 재고·물류·고객관리 시스템에 연결되는지, 공장과 자동차·로봇을 움직이는지에 따라 시장의 주도권도 달라진다.
검색창을 넘어 거래에 참여하는 AI 에이전트
인공지능 에이전트(agentic AI)는 주어진 질문에 한 차례 답하는 챗봇과 다르다. 목표를 해석하고 필요한 업무를 여러 단계로 나눈 뒤 외부 도구와 데이터를 이용해 결과를 만들어낸다. 일정 확인과 예약, 상품 비교, 구매, 기업 내부 보고서 작성과 시스템 입력을 이어서 처리할 수 있다. 이용자의 선호와 이전 대화를 기억하는 기능이 결합되면 같은 질문에도 개인별 조건에 맞춘 선택과 실행이 가능해진다.
맥킨지가 든 보험의 흐름은 에이전트가 거래 구조를 바꾸는 방식을 보여준다. 가입자는 보장 내용을 직접 비교하고 여러 보험사에서 견적을 받은 뒤 계약을 선택해 왔다.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개인의 재정 상태와 기존 계약을 분석하고 갱신 시점에 다른 상품을 탐색해 전환까지 맡으면 보험사와 고객이 만나는 접점도 달라진다. 기업은 검색 결과 상단에 상품을 노출하는 데서 벗어나 에이전트가 읽고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와 계약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여행과 주택 구매, 의료·돌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예상된다. 항공권과 숙박, 이동수단을 따로 예약하거나 주택 탐색과 대출, 보험, 점검, 전기·통신 개통을 각각 처리하던 절차가 하나의 요청으로 묶일 수 있다. 이용자가 여러 사업자의 조건을 직접 비교하면서 부담했던 시간과 정보 탐색 비용이 줄어드는 대신, 선택을 대신하는 에이전트와 플랫폼에 거래 권한이 모인다.
중국은 에이전트를 국가 산업전략의 실행 수단으로 구체화했다. 중국 당국은 2026년 5월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자율적인 인식·기억·의사결정·상호작용·실행 능력을 갖춘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과학연구와 산업, 소비, 민생, 사회관리 등 19개 활용 영역을 제시했다. 기술 기반과 표준을 정비하면서 안전·통제 가능성을 확보하고, 현장 수요를 중심으로 보급한다는 방향도 함께 담았다.
2025년 발표된 중국의 ‘AI 플러스’ 계획은 2027년까지 차세대 지능형 단말기와 인공지능 에이전트의 보급률을 70% 이상으로 높이고, 2030년에는 90%를 넘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과학기술과 산업, 소비, 민생, 행정에 인공지능을 결합해 모델 개발과 내수시장 확산을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다.
에이전트의 실행 범위가 커질수록 오류가 발생했을 때 사람이 개입할 시간은 줄어든다. ‘2026 국제 AI 안전 보고서’는 현재 인공지능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만들거나 잘못된 코드를 작성하고, 오도할 수 있는 조언을 내놓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에이전트는 실패가 피해로 번지기 전에 사람이 중단하기 더 어렵고, 현재의 안전기술도 의료·금융·행정처럼 위험이 큰 업무에 요구되는 신뢰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상품을 추천하는 오류와 실제 계약을 체결하는 오류가 남기는 결과는 다르다. 에이전트가 결제와 계약, 기업 시스템 변경 권한을 갖게 되면 실행 한도와 승인 절차, 기록 보존, 책임 주체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편리한 이용 경험을 확보하려는 플랫폼 경쟁과 사람의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제도 설계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유다.
로봇과 공장으로 내려온 모델 경쟁
인공지능 경쟁은 문서와 이미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인지 영역에서 현실의 기계와 설비를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확대되고 있다. 로봇과 자율주행차, 공장 자동화 시스템은 센서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모델의 판단을 거쳐 이동하거나 물체를 다룬다. 언어 모델의 추론 능력과 시각·공간 정보, 구동장치의 제어가 한 시스템 안에서 결합된다.
맥킨지는 인지 업무에 먼저 영향을 준 인공지능이 로봇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산·운송 등 현장 노동으로 범위를 넓힐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서비스 기업이 인력과 업무시간을 기준으로 제공하던 서비스의 가격체계를 다시 짜야 하는 것처럼, 운송과 제조기업도 로보택시와 지능형 로봇을 전제로 운영 방식을 바꾸게 된다는 분석이다.
산업용 로봇의 설치 규모에서는 중국의 제조 기반이 압도적이다. 2024년 세계 산업용 로봇 가동 대수는 466만4000대로 늘었다. 같은 해 중국의 신규 설치량은 29만5000대로 세계 물량의 54.4%를 차지했다. 일본은 4만4500대, 미국은 3만4200대, 한국은 3만600대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절대 설치량에서 세계 4위권에 놓여 있어 로봇과 제조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결합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피지컬 AI의 경쟁력은 로봇을 많이 설치한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공정마다 다른 센서와 제어장치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불량과 고장·작업자 행동을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해야 한다. 가상공간에서 작업을 반복해 학습하는 시뮬레이션과 월드모델, 공장 안에서 빠르게 판단하는 엣지 반도체, 로봇 관절과 구동장치도 함께 필요하다.
제조 데이터에는 기업의 생산방식과 원가, 품질관리 기술이 담긴다. 모델 개발사에 데이터를 개방할수록 학습 성능은 높아질 수 있지만 기업 기밀 유출과 기술 종속 위험도 커진다. 데이터의 소유권과 사용 범위, 학습된 모델에서 발생한 성과의 귀속을 정하는 일이 연산자원 확보 못지않게 중요해진다.
미국과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과 플랫폼을 바탕으로 에이전트 서비스를 확장한다면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산업용 로봇을 연결하는 영역에서 다른 경로를 만들 수 있다. 스탠퍼드 AI 인덱스는 한국의 인구 대비 인공지능 특허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세계 상위 모델 생산은 미국과 중국에 집중돼 있고, 미국의 민간 인공지능 투자 규모도 다른 국가와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이 모든 기술 계층에서 두 국가와 같은 규모로 경쟁하기보다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모델·로봇·반도체와 연결하는 능력이 산업적 위치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인프라와 수출, 중국은 산업 전체의 확산
미국은 민간기업의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건설, 에너지 공급, 해외시장 확장을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묶었다. 2025년 7월 발표한 ‘미국 AI 행동계획’은 혁신 가속,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 국제 외교·안보를 세 축으로 제시했다. 규제를 줄여 민간 주도의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이를 가동할 전력설비를 확충하며, 반도체부터 모델과 응용서비스까지 미국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확산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전략에서 모델은 소프트웨어 상품인 동시에 반도체와 클라우드, 에너지, 동맹 정책을 연결하는 수출 체계다. 해외 기업과 정부가 미국산 반도체와 클라우드, 모델을 함께 채택하면 기술 공급망과 서비스 생태계도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인공지능 인프라 건설을 산업정책과 안보정책으로 다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의 접근은 내수 산업과 행정 전반에 인공지능을 빠르게 보급하는 데 무게를 둔다. ‘AI 플러스’는 과학연구와 제조업뿐 아니라 소비와 복지, 행정, 국제협력까지 적용 영역으로 제시했다. 모델과 데이터, 컴퓨팅 자원, 오픈소스 생태계, 인재를 함께 확충하고 에이전트와 지능형 기기의 보급률을 국가 목표로 관리한다.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사용할 기술 체계와 공급망을 선점하는 데 집중한다면 중국은 방대한 제조·소비·행정 현장에 인공지능을 투입해 데이터를 다시 축적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모델의 초기 성능 차이가 줄어들수록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와 실험 횟수가 다음 모델의 개선 속도에 영향을 준다.
맥킨지가 미래 경쟁력을 조직의 ‘학습 속도’로 설명한 대목도 국가 간 경쟁에 적용된다. 모델을 한 번 개발한 뒤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과 고객의 반응을 빠르게 수집하고, 실험 결과를 제품과 운영체계에 반영하는 쪽이 다음 변화를 먼저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은 규제 집행, 일본은 현장 활용과 신뢰
유럽연합(EU)은 인공지능 시장을 위험 수준에 따라 관리하는 제도를 가장 먼저 법률로 구체화했다. AI법은 2024년 8월 발효됐고, 금지되는 인공지능 활용과 AI 문해력 의무는 2025년 2월부터 적용됐다. 범용 인공지능 모델에 대한 의무도 2025년 8월 시행에 들어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범용 모델 감독과 제재 권한은 2026년 8월 2일부터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채용과 교육, 생체정보, 핵심 인프라 등 고위험 영역의 적용 시점은 제도 단순화 합의에 따라 2027년 12월로 조정됐고, 기계와 승강기·완구 등 제품에 내장된 고위험 시스템은 2028년 8월부터 관련 규정을 적용받는다. 규제 유예와 단순화가 병행되고 있지만 범용 모델의 투명성, 저작권 정책, 위험관리와 인공지능 생성물 표시 의무는 유럽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이 별도로 준비해야 할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규제는 인공지능을 막는 장벽에만 머물지 않는다. 유럽 AI 사무국을 중심으로 범용 모델을 감독하고, 규제 샌드박스와 제3자 평가 기반을 마련해 의료와 자동차·과학 등 기존 산업에 기술을 적용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 개발 속도와 시민의 권리, 시장 신뢰를 함께 관리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2025년 12월 첫 ‘인공지능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세계에서 인공지능을 가장 친화적으로 이용하는 국가’를 목표로 내걸었다. 혁신을 촉진하면서 위험을 줄이는 원칙 아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역량, 기술을 만드는 역량, 신뢰성을 확보하는 제도, 사람과 인공지능이 함께 일하는 사회 전환을 정책에 담았다. 컴퓨팅 자원과 반도체·데이터센터를 확충하고 기관 간 데이터 공유를 촉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일본 계획은 인공지능에 맞춰 산업과 고용구조, 제도를 지속해서 바꾸는 내용을 별도 정책으로 제시했다. 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전략본부가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기술 변화가 빠른 점을 고려해 기본계획을 원칙적으로 매년 수정한다. 제조업과 로봇, 고령화에 따른 의료·돌봄 수요를 연결하면서도 신뢰 가능한 인공지능을 국제 규범으로 확산하려는 접근이다.
한국 제조 기반, 에이전트와 피지컬 AI가 만나는 지점
세계 주요국의 전략은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미국은 민간 자본과 데이터센터, 반도체·모델 수출을 앞세우고 중국은 제조와 소비, 행정에 인공지능을 광범위하게 적용한다. 유럽은 시장 진입과 서비스 운영의 법적 기준을 만들고 일본은 제조 현장과 사회서비스에 기술을 확산하면서 신뢰 체계를 함께 구축한다.
한국은 미국과 같은 민간투자·플랫폼 규모나 중국의 내수시장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도체와 통신망, 제조업, 산업용 로봇이 한 경제 안에 모여 있다는 점은 피지컬 AI 경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다. 제조기업이 축적한 공정 데이터와 국내 모델, 인공지능 반도체, 로봇을 연결해 실제 생산환경에서 반복 학습하는 구조를 갖추는지가 기술 투자의 산업적 결과를 가르게 된다.
에이전트 시장에서는 국내 플랫폼의 이용자 접점과 금융·유통·통신 기업의 서비스 데이터가 경쟁 자산으로 떠오른다. 에이전트가 상품을 대신 선택하고 계약하는 시장에서는 이용자 수만큼 상품정보의 표준화와 결제·인증 체계, 다른 기업 시스템과 연결되는 기술 규격이 중요하다. 해외 에이전트가 국내 소비자의 거래 창구를 선점하면 국내 기업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대신 플랫폼이 정한 조건에 맞춰 상품을 공급하는 위치에 놓일 수 있다.
피지컬 AI에서는 로봇의 성능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책임과 작업자 안전, 학습 데이터의 이용권이 함께 다뤄진다. 공장과 도로, 병원, 돌봄시설은 언어 모델의 오류를 다시 질문해 바로잡을 수 있는 공간과 다르다. 모델의 판단이 설비와 차량, 로봇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만큼 기술 평가와 현장 인증의 비중도 커진다.
유럽연합의 범용 인공지능 감독권은 8월 2일부터 본격 적용된다. 중국은 19개 영역에서 에이전트 활용을 확대하는 지침을 시행하고 있고, 일본은 인공지능 기본계획을 매년 점검·개정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2026년 하반기 세계 인공지능 경쟁은 모델 성능표뿐 아니라 에이전트가 체결한 거래, 공장과 로봇에서 축적한 데이터, 각국 시장에 적용되는 책임 기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