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략③] AI 정책 성적표, 일자리보다 먼저 바뀌는 업무
맥킨지 “도구만 주고 교육 없으면 성과 악화”…국내 AI 도입 기업 56.5%가 기존 일자리 일부 업무 대체, 직원 교육은 42%
[KtN 신명준기자]인공지능을 도입한 국내 기업 가운데 56.5%는 기존 일자리 안에서 일부 업무가 대체됐다고 답했다. 직업 전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료 검색과 문서 작성, 기초 분석, 고객 응대처럼 직무를 구성하던 작업이 먼저 자동화됐다는 의미다. AI 도입 기업 중 직원에게 관련 교육을 제공한 곳은 42%에 그쳤다. 기술을 들여오는 속도와 사람의 역할을 다시 정하는 속도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는 2026년 7월 공개한 ‘The real AI advantage’에서 AI 전환의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조직 변화를 지목했다. 직원에게 도구만 제공하고 사용법과 업무 절차를 바꾸지 않으면 결과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무를 사람과 AI 에이전트 사이에 다시 나누고, 결과를 검토할 권한과 책임, 실험을 업무에 반영하는 체계까지 함께 바뀌어야 생산성 개선이 기업 전체의 성과로 이어진다고 봤다.
이재명 정부는 GPU와 독자 모델, 산업·공공 부문의 인공지능 전환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동시에 전 국민 교육과 재직자 훈련을 확대하고 있다. 2026년 고용정책에는 청년 4만9000명을 대상으로 한 AI 등 미래역량 훈련이 포함됐다. 장비와 모델을 먼저 확보한 1단계에 이어 기업과 공공기관의 업무, 고용구조, 국민 서비스가 얼마나 달라지는지가 정책 성과를 가르는 단계로 들어섰다.
56.5%가 일부 업무 대체, 일자리 전체 자동화는 제한
국내 AI 도입 기업의 변화는 직업 소멸보다 업무 재배치에 가깝다. 조사 대상 기업의 71%는 AI가 직원 한 명이 담당하던 업무의 약 10%를 대신했다고 답했다. 기존 업무를 전혀 대체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17.2%였다. AI가 사람의 직업 전체를 한꺼번에 넘겨받기보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부터 분리해 맡는 흐름이 먼저 나타난 셈이다.
업무가 줄어든 자리에는 다른 능력이 요구됐다. AI를 도입한 기업 가운데 32.2%는 기존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의 종류가 늘었다고 답했고, 38.3%는 요구되는 숙련 수준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토하며, 오류와 예외 상황을 처리하는 업무의 비중이 커진 영향이다.
맥킨지는 현재 이용 가능한 기술을 충분히 적용할 경우 노동자가 수행하는 활동의 약 53%를 자동화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다만 한 사람이 담당하는 업무 대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자동화 가능한 작업을 따로 묶고 남은 업무를 AI로 보강하면서 직무 구성이 대규모로 달라질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신입 인력이 맡아 온 자료 정리와 기초 조사, 초안 작성이 줄어들면 기업의 인력 양성 방식도 영향을 받는다. 반복 업무는 숙련도가 낮은 직원에게 부담이 되는 동시에 산업과 조직의 작동 방식을 익히는 통로였다. 입문 단계의 작업을 AI가 맡은 뒤 신입 직원에게 곧바로 판단과 검토를 요구하면 숙련 형성의 중간 단계가 비게 된다.
중간관리자의 역할도 달라진다. 업무를 배분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기능 가운데 일부는 자동화할 수 있지만 AI의 판단을 검증하고 부서 간 데이터 이용을 조정하는 업무는 늘어난다. 인원을 단순히 줄이거나 기존 조직도에 AI를 추가하는 방식보다 직급과 부서별 권한을 다시 정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해지는 구조다.
중소기업 도입률 31%, 고용 비중은 80% 이상
한국 중소기업의 AI 이용률은 31%로 조사됐다. 일본의 27%보다는 높지만 독일 51%, 아일랜드 45%, 오스트리아 42%에는 미치지 못했다. 한국 전체 고용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는다. 대기업과 일부 플랫폼에서 생산성이 빠르게 높아져도 중소기업의 도입이 늦으면 국가 전체의 노동생산성 변화는 제한될 수 있다.
연산자원과 데이터, 전문인력을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범용 AI 서비스를 먼저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록 정리와 번역, 영업자료 작성처럼 별도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부터 시작할 수 있다. 생산설비와 재고·고객관리 시스템을 연결하려면 데이터 정비와 보안, 업무 분석, 직원 교육이 추가로 필요하다.
인력 부족을 겪은 국내 중소기업은 조사 대상의 37%였다. 해당 기업 가운데 27%는 생성형 AI가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직원의 기술과 경험이 부족하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24%였고, 해당 기업의 47%는 생성형 AI가 부족한 역량을 보완했다고 평가했다. AI가 고령화와 인력난을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해도 제한된 인력으로 업무 범위를 넓히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도입 기업의 42%만 AI 관련 직원 교육을 제공했다는 수치는 기업 규모에 따른 격차와도 연결된다. 대기업은 내부 교육과 데이터 조직, 법무·보안 인력을 함께 운영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서비스 이용료와 교육비, 업무 공백을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 같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업무 절차를 다시 짜고 결과를 검증할 인력이 있는 기업과 개인의 사용 능력에 의존하는 기업 사이에서 성과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
맥킨지는 AI 시대의 기업 경쟁력을 조직의 ‘학습 속도’에서 찾았다. 기술을 한 차례 도입한 뒤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범위에서 실험하고, 고객과 직원의 반응을 수집하며, 결과를 제품과 업무에 다시 반영하는 속도가 차이를 만든다는 분석이다. AI 모델의 성능이 비슷해질수록 조직이 축적한 데이터와 판단 능력의 비중은 더 커진다.
4만9000명 훈련과 성인학습 참여율 13%
정부는 2026년 청년 4만9000명을 대상으로 AI 등 미래역량 훈련을 확대하고, 첨단산업·디지털 분야의 실무인재를 양성하는 K-디지털 트레이닝(K-Digital Training)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과 초·중등 교육에서도 AI 기본교육과 융합과정이 확대됐다. 2026년에는 비공학 전공을 포함한 AI 기본교육과정 개발 대학 20곳이 새로 선정됐다.
성인학습 참여율은 한국 노동시장의 약한 고리로 남아 있다. 한국의 성인학습 참여율은 13%로 OECD 평균 40%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미 AI를 도입한 기업에서도 절반이 넘는 곳이 별도의 직원 교육을 하지 않은 상황과 맞물린다. 학교와 취업 준비 단계에서 AI 교육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직무 전환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
AI 교육도 개발자 양성만으로 구성하기 어렵다. 전문 AI 기술이 필요한 일자리는 전체 고용에서 제한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대다수 노동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모델을 직접 만드는 기술보다 업무에 맞는 도구를 선택하고, 입력 자료와 결과의 오류를 판별하며, 개인정보와 영업기밀을 다루는 기본 소양에 가깝다.
기업 교육은 사용법을 설명하는 단기 강좌와 실제 업무를 바꾸는 훈련으로 나뉜다. 문서 작성 기능을 배우는 데서 끝나면 개인의 작업시간은 줄어도 부서 간 승인과 데이터 전달 과정은 그대로 남는다. 생산과 영업, 물류, 고객관리 등 여러 업무를 연결하려면 직원이 직접 업무 절차를 분석하고 AI가 맡을 부분과 사람이 판단할 부분을 나누는 훈련이 필요하다.
교육 인원은 집행 과정에서 바로 집계할 수 있지만 교육 이후의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 수료자가 실제 직무에서 AI를 사용하는 비율, 사용 전후의 오류와 처리시간, 이직과 직무 전환, 임금 변화는 교육사업이 끝난 뒤에 나타난다. 4만9000명이라는 훈련 규모와 기업 현장의 정착 결과는 서로 다른 시점과 지표로 남게 된다.
공공 AI, 시스템 설치보다 취업 연결 결과
공공서비스에서는 AI를 사용한 사람의 수보다 처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일부 축적돼 있다. 고용서비스 플랫폼 워크24는 구직자의 경력과 역량, 희망 조건을 분석해 일자리를 추천하고, 기업의 채용공고를 토대로 적합한 구직자를 연결하는 기능을 운영한다. 워크24를 통해 취업한 구직자는 2022년 5만7844명에서 2023년 7만5546명으로 약 31% 늘었다. AI 기반 연결 기능이 핵심 서비스에 도입된 시기의 성과로 집계된 수치다.
워크24의 수치는 공공 인공지능 전환을 시스템 구축 건수 밖에서 볼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 취업 추천 횟수와 접속자 수보다 실제 취업으로 이어진 인원, 취업까지 걸린 기간, 채용 뒤의 고용 유지 여부가 국민에게 돌아간 결과에 가깝다.
복지와 세금, 인허가, 의료·돌봄 분야에서도 같은 구분이 가능하다. 상담 챗봇이 답변한 건수는 기술 이용량을 나타내지만, 국민이 제출하는 서류와 방문 횟수, 처리기간, 오류가 줄었는지는 서비스의 변화를 나타낸다. 자동 심사와 추천이 확대되면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는 절차와 담당자의 개입 시점도 함께 기록된다.
맥킨지는 AI 성과를 측정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기업 지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시장점유율과 수익성, 고객 만족도, 직원의 업무 몰입도처럼 기존에 사용해 온 지표가 장기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남는다는 분석이다. 공공서비스에서도 이용 건수보다 취업과 복지 수급, 행정시간, 국민 만족도처럼 서비스가 원래 달성하려던 결과가 중요해진다.
AI가 직원의 업무량과 성과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면 노동조건과 개인정보 문제도 함께 발생한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 의견을 전달한 노동자는 협의 과정이 없었던 노동자보다 AI가 자신의 일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2025년 ‘AI와 노동 연구회’를 설치해 노동시장 변화와 제도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182개 직업 중 114개 ‘현 상태 유지’
한국고용정보원이 2026년 5월 발표한 ‘2025~2035 정성적 일자리 전망’은 경영·사무·금융·보험, 보건·의료, 문화·예술·방송·스포츠, 서비스 분야의 직업 변화를 분석했다. 관리자 직종을 연계해 정리한 182개 직업 가운데 114개인 62.6%가 ‘현 상태 유지’로 분류됐다. 증가 9개, 다소 증가 47개를 합치면 56개였고, 다소 감소는 12개였다. 감소로 분류된 직업은 없었다. AI뿐 아니라 인구와 산업구조, 소비 변화 등을 함께 반영한 전망이다.
10년 전망에서 대다수 직업이 유지된다는 결과와 AI 도입 기업의 절반 이상에서 일부 업무가 이미 대체됐다는 조사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직업의 명칭과 고용은 남아 있어도 하루 동안 수행하는 작업과 필요한 숙련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회계·금융·의료·콘텐츠 직종 안에서도 초안 작성과 정보 정리는 줄고, 결과 검증과 고객 판단, 예외 처리의 비중은 커진다.
이재명 정부의 AI 투자는 GPU와 독자 모델을 확보하는 단계에서 산업과 공공기관의 실제 사용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2026년에는 청년 4만9000명 미래역량 훈련과 K-디지털 트레이닝, 대학 AI 기본교육과정이 함께 진행된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일부 업무가 자동화됐지만 도입 기업의 절반 이상이 직원 교육을 제공하지 않은 상태다. 9조원대 AI 예산 이후 노동시장에 먼저 나타나는 변화도 대량 실업보다는 같은 일자리 안에서 업무와 요구 역량이 달라지는 흐름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