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의 미래, 모델보다 운영을 바꾸는 사람들
GPU·데이터·업무·책임을 연결하는 주체가 다음 산업과 일자리의 규칙 결정
[KtN 신명준기자]인공지능 경쟁을 설명하는 숫자는 대부분 기술에서 출발한다. 확보한 그래픽처리장치(GPU), 모델의 매개변수, 벤치마크 점수, 데이터센터 규모가 국가와 기업의 순위를 가른다. 기술 기반이 부족한 국가는 개발 기회부터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프라 투자는 필요하다. 다만 장비와 모델의 숫자는 인공지능이 현실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경쟁을 설명할 뿐이다.
공장과 병원, 은행, 학교, 행정기관에 인공지능이 들어오는 순간 경쟁의 성격이 달라진다. 어떤 데이터를 모델에 연결할지, 어느 업무를 자동화할지, 사람이 다시 판단할 지점을 어디에 둘지, 오류의 책임을 누가 질지 정해야 한다. 생산성 증가분을 기업과 노동자, 소비자 가운데 어디에 배분할지도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알고리즘 안보다 현실의 운영 규칙에서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진다.
맥킨지는 2026년 공개한 ‘The real AI advantage’에서 인공지능 도입의 첫 흐름을 생산성 개선으로 정리했다. 같은 일을 더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하는 단계다. 경쟁사도 비슷한 모델과 도구를 이용하면 비용 절감만으로 장기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고객이 겪는 불편을 없애고, 제품과 서비스의 제공 방식을 다시 짜며, 실험 결과를 빠르게 조직에 반영하는 기업이 다음 가치를 확보한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AI 정책은 GPU와 국가 컴퓨팅 인프라,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산업·공공 부문의 인공지능 전환으로 빠르게 확장됐다. 연산자원과 모델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출발선에 서기 어렵다. 정부가 초기 비용과 기술 접근성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 이유도 충분하다.
국가가 장비를 구입하고 모델 개발을 지원하는 일과 산업의 운영 방식을 바꾸는 일은 서로 다른 단계다. 제조기업이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보고서 작성 시간을 줄여도 원자재 조달과 생산계획, 품질관리, 물류, 설비 유지보수가 따로 움직이면 공장 전체의 납기와 원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수요 변화가 생산량과 발주 계획에 곧바로 반영되고, 불량 징후가 설비 점검과 공정 조정으로 이어져야 공장의 운영 구조가 바뀐다.
공공서비스도 상담 챗봇을 설치한 기관의 숫자로는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복지와 고용, 세금, 인허가를 신청하는 국민이 같은 정보를 여러 기관에 반복 제출한다면 행정의 부담은 그대로 남는다. 신청과 자격 확인, 심사, 통보,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절차를 다시 짜야 방문 횟수와 대기시간, 행정 오류가 줄어든다. 인공지능은 답변을 빠르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오래된 절차를 없앨 때 더 큰 가치를 낸다.
기술기업만으로는 제조 공정과 진료 흐름, 금융 심사, 복지 행정을 다시 설계할 수 없다. 공장의 엔지니어는 설비가 멈추는 조건과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징후를 안다. 의료진은 같은 수치라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지점을 안다. 공무원과 사회복지사는 법령과 전산시스템 사이에서 국민이 겪는 반복 절차를 안다. 현장의 지식이 모델 설계와 업무 개편에서 빠지면 인공지능은 기존 절차를 더 빠르게 반복하는 데 머문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은 기술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업무를 바꿀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현장의 의견을 듣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데이터 접근권과 업무 순서, 승인 절차, 책임 체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부서가 모델을 도입하고 현업 부서가 결과만 사용하는 조직에서는 오류가 발생했을 때 책임이 현장에 집중되기 쉽다. 반대로 현업이 자동화 범위와 검토 기준을 정하고 기술부서가 구현을 지원하면 사람과 인공지능의 역할도 구체적으로 나뉜다.
노동자의 참여는 윤리적 구호에 머물지 않는다. 반복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동화하기 적합한 부분과 사람의 판단을 남겨야 할 부분도 가장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직원에게 도구만 제공하고 교육과 권한을 바꾸지 않으면 결과가 나빠질 수 있다는 맥킨지의 진단도 같은 현실을 짚는다. 자동화로 입문 업무를 없애면서 신입 인력이 경험을 쌓을 경로까지 닫으면 몇 년 뒤 인공지능의 결과를 감독할 숙련자도 부족해질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와 거래 권한을 모두 가져가는 구조도 경계해야 한다.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상품을 비교하고 예약과 결제, 계약까지 대신하면 소비자는 편리함을 얻는다. 동시에 기업은 고객과 직접 만나는 접점을 잃고 플랫폼이 정한 조건에 따라 상품을 공급하게 된다. 어떤 상품을 추천할지, 수수료를 어떻게 부과할지, 이용자의 과거 정보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정하는 권한이 소수 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피지컬 AI가 자동차와 로봇, 생산설비를 움직이는 단계에서는 운영권의 무게가 더 커진다. 잘못된 답변은 다시 질문해 수정할 수 있지만 잘못된 제어는 사고로 이어진다. 사람의 승인 없이 실행할 수 있는 범위, 긴급 상황에서 작동을 멈추는 권한, 사고 기록을 보존하고 공개하는 기준이 기술 성능과 함께 설계돼야 한다.
정부는 컴퓨팅 기반과 데이터 이용 원칙, 안전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기업은 제품과 공정, 고객 서비스를 바꿀 수 있다. 현장의 노동자와 전문가는 자동화가 놓치기 쉬운 예외와 책임의 경계를 정할 수 있다. 시민은 자신의 정보와 선택권을 인공지능에 어디까지 맡길지 결정한다. 역할은 나뉘지만 영향력은 같지 않다. 예산과 데이터, 업무 변경 권한을 가진 주체가 최종 설계권을 쥔다.
AI의 미래는 가장 큰 모델을 만든 기업의 선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할지, 어느 판단을 자동화할지, 사람이 멈출 수 있는 지점을 어디에 둘지, 생산성의 이익과 오류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산업과 일자리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기술을 보유한 주체보다 현실의 운영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다음 AI 시대의 방향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