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원료전쟁②] K-뷰티는 왜 원료를 수입하는가
완제품 수출 114억달러 뒤편, 처방·향료·전달체·규제 문서를 쥔 글로벌 소재기업 특별기획 | K-뷰티의 미래는 원료 전쟁
[KtN 임우경기자]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은 114억달러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흑자는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고 한국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에 올랐다. 완제품 생산과 수출만 놓고 보면 K-뷰티는 더 이상 추격 산업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 유럽, 중동으로 판매 지역을 넓혔고 중소 브랜드도 글로벌 전자상거래를 통해 짧은 기간 안에 해외 매출을 만들고 있다.
완제품의 국적과 처방을 구성하는 원료의 국적은 일치하지 않는다.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세럼과 크림에도 독일계 기업의 계면활성제와 유화제, 영국계 기업의 기능성 소재, 스위스계 기업의 향료와 바이오 활성물질, 일본계 기업의 아미노산계 세정 성분과 기능성 오일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은 제품을 기획하고 제형을 조정해 대량생산하는 능력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했지만, 처방의 기반을 이루는 고부가가치 소재와 장기 공급망에서는 해외 전문기업의 선택지가 여전히 넓다.
국내 화장품 원료의 수입 의존도를 70% 이상으로 본 정책연구도 있다. 다만 해당 수치를 2026년의 정확한 비율로 그대로 인용하기는 어렵다. 화장품 원료는 단일 관세 품목이 아니라 계면활성제, 정유와 향료, 유기화합물, 식물 추출물, 유지류, 고분자, 안료 등 여러 품목군에 흩어져 있다. 국내 보고 체계도 완제품 생산·수입 실적과 제품에 사용한 원료 목록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2026년 7월 11일 현재 원료별 수입액과 국산 대체율을 한눈에 비교할 최신 단일 통계는 공개 범위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수입 비중을 하나의 숫자로 단정하기 어려워도 산업 현장의 격차는 구체적이다. 범용 보습제와 식물 추출물, 일부 계면활성제와 분체를 국내에서 생산한다고 해서 원료 자립도가 곧바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소량만 넣어도 제품 효능과 사용감, 보존성, 규제 대응을 좌우하는 특수 소재가 해외 공급망에 묶여 있다면 협상력은 공급사 쪽으로 기운다. 원료의 무게나 구매액보다 대체 가능성과 처방 의존도가 더 중요한 이유다.
원료 한 통이 아니라 처방 체계를 파는 기업들
글로벌 원료기업의 영업은 성분명과 단가표에서 끝나지 않는다. 권장 사용량과 투입 순서, 가열 온도, 산도 범위, 혼합 가능한 성분, 장기 안정성, 미생물 관리, 국가별 규제 정보, 효능 시험과 광고 문구의 근거까지 하나의 묶음으로 제공한다. 브랜드와 제조사는 원료를 사는 동시에 개발 기간과 실패 위험을 줄이는 기술 서비스를 구매한다.
바스프(BASF)의 뉴트리션·케어 부문은 2025년 65억900만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케어 케미컬 사업은 퍼스널케어 원료와 함께 제형 설계, 사용감 조정,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급한다. 2025년에는 수용성 자외선 차단 소재와 천연 유래 스타일링 고분자, 유화·감촉 솔루션을 묶어 제안했고 세대별 피부·모발 수요에 맞춘 원료 조합과 디지털 솔루션도 확대했다. 단일 활성물질보다 완제품 처방을 완성하는 기반 소재와 기술지원이 사업의 축이다.
크로다(Croda)는 세계 뷰티 원료 시장을 약 80억달러 규모로 보고 자사 뷰티 사업의 점유율을 약 10%로 제시했다. 2025년 뷰티 액티브 매출은 고정환율 기준 6%, 뷰티 케어는 4% 증가했다. 탄소발자국 정보를 제공하는 뷰티 케어 제품 코드만 1500개를 넘는다. 원료 성능뿐 아니라 환경 정보와 효능 입증 묶음까지 고객사의 구매 판단에 포함시킨 셈이다.
고객 지원은 가격 구조에도 반영된다. 크로다는 소비재 사업 매출의 82%가 지역·로컬 고객에서 나왔으며 소규모 고객에게 추가 기술지원을 제공하는 만큼 통상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인도 등 아시아의 지역 강자를 집중 고객으로 두고, 인도 생산시설과 중국 광저우의 향료·활성물질 시설에 투자하고 있다. 아시아 기업이 유럽산 원료를 단순 수입하는 구도에서 벗어나 글로벌 공급사가 아시아 안에서 시험과 처방, 생산을 현지화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향과 감촉, 소비자가 읽지 못하는 기술 자산
전성분표에서 앞줄을 차지하는 정제수와 보습제만으로 제품의 차이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크림을 바를 때 끈적임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자외선 차단제가 하얗게 남지 않는지, 클렌징 오일이 물과 만났을 때 얼마나 깨끗하게 유화되는지, 향이 개봉 뒤에도 같은 인상을 유지하는지는 여러 특수 소재의 조합에서 갈린다.
지보단(Givaudan)은 향료기업으로 알려졌지만 사업 범위는 향과 액티브 뷰티를 함께 묶는다. 2025년 그룹 매출은 74억7200만스위스프랑이었고 향수·뷰티 부문은 현지통화 기준 7.9% 성장했다. 향료 원료 부진에도 액티브 뷰티가 두 자릿수 성장해 감소분을 상쇄했다. 식물 추출과 화이트·블루·그린 바이오 기술로 활성 화장품 원료를 개발하고, 향과 효능 소재를 같은 고객망에 공급하는 구조다.
심라이즈(Symrise)의 센트앤드케어 부문은 2025년 19억100만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향료와 화장품 원료, 향 분자를 한 부문에서 운영한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향의 정체성과 기능성 성분, 원료 안정성을 서로 다른 공급사에서 맞추는 대신 하나의 글로벌 파트너와 공동 개발할 수 있다. 공급사는 고객의 신제품 기획 단계부터 들어가 처방 변경과 원료 교체에 드는 비용을 높인다.
향료는 원산지와 천연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같은 향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조향 원료, 알레르기 유발 성분 관리, 국가별 표시 기준, 산화와 변색 억제, 세정제와 크림에서 다른 발향 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 브랜드가 독자적인 향을 주문하더라도 실제 향 조성물과 핵심 분자의 권리, 공급망은 글로벌 향료기업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완제품 상표는 한국에 남지만 소비자가 기억하는 향의 핵심 기술은 공급사 자산으로 축적되는 구조다.
유화제와 전달체가 쥔 처방의 생명
화장품은 서로 섞이지 않는 물질을 하나의 상태로 유지하는 산업이다. 물과 기름을 섞는 유화제, 점도를 잡는 고분자, 세정 뒤 감촉을 남기는 컨디셔닝 성분,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는 보존 체계, 불안정한 활성물질을 감싸는 전달체가 처방의 수명을 정한다. 원료 이름이 화려해도 유화가 깨지거나 색과 냄새가 변하면 상품으로 팔 수 없다.
에보닉(Evonik)은 활성물질과 활성 전달 시스템, 대체 보존 기술, 제품 안정화 솔루션을 스킨케어·선케어·색조·헤어케어에 공급한다. 2025년 연차보고서에서는 활성 화장품 원료를 묶은 시스템 솔루션의 수익성 있는 성장이 2026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2024년 완공한 슬로바키아 람노리피드 생산시설의 가동 확대도 제시했다. 원료기업이 발효 기반 계면활성제의 생산설비와 적용 기술을 함께 보유하면 브랜드는 성분 교체 때 처방과 안전성 검토를 다시 해야 한다.
루카스 마이어 코스메틱스(Lucas Meyer Cosmetics)의 인수 가격은 고부가가치 원료기업에 붙는 평가를 확인시켰다. 스위스 특수화학기업 클라리언트(Clariant)는 2024년 연 매출 약 1억달러 규모였던 루카스 마이어를 8억1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인수가는 직전 12개월 상각전영업이익의 16.3배였다. 클라리언트는 천연 유래 활성물질과 고기능 화장품 원료, 고객 맞춤 연구 역량을 확보하는 거래로 설명했고 2026년에도 ‘루카스 마이어 코스메틱스 바이 클라리언트’라는 이름으로 완성 처방 솔루션을 전개하고 있다.
브랜드 인수라면 소비자 인지도와 유통망, 광고 자산에 가격이 붙는다. 루카스 마이어 거래에서는 여러 브랜드의 처방에 반복해서 들어갈 수 있는 원료 포트폴리오와 연구 인력, 특허, 시험 묶음, 고객 관계에 8억달러가 넘는 가격이 매겨졌다. 완제품 하나가 유행에서 밀려나도 원료는 여러 고객사의 제품 안에서 판매를 이어갈 수 있다는 수익 구조가 반영됐다.
일본 기업이 지켜온 기초소재의 시간
일본 원료기업의 경쟁력은 유행 성분보다 기초소재와 공정 축적에서 두드러진다. 아지노모토(Ajinomoto)는 1972년 식물 발효로 만든 글루탐산계 아미노산 계면활성제를 출시한 뒤 세정제와 메이크업용 기능성 소재로 사업을 확장했다. 2019년 기준 아미노산계 퍼스널케어 원료 고객은 55개국 5000개사를 넘었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 생산 기반을 두고 태국 응용센터에서는 처방 개발과 평가, 시제품 제작까지 지원했다. 식품기업이 축적한 아미노산·발효 기술이 화장품 기초소재의 장기 공급망으로 이어진 경우다.
NOF는 지방산과 계면활성제, 기능성 고분자, 세라마이드계 소재를 화장품에 공급한다. 2025년 통합보고서에서도 스킨케어와 헤어케어, 보디케어용 화장품 소재 판매가 폭넓은 제품군을 기반으로 견조하게 이어졌다고 밝혔다. 카오 케미컬은 순한 계면활성제와 컨디셔닝제, 점도 조절제, 거품 증진제, 유화제, 에몰리언트를 한꺼번에 운용한다. 일본 기업의 강점은 특정 식물 추출물의 화제성보다 처방마다 반복해서 쓰이는 기반 원료를 수십 년 동안 개량하고 공급한 데 있다.
한국 브랜드가 일본과 유럽 원료를 선택하는 이유를 기술 열세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미 검증된 원료를 쓰면 출시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여러 국가에서 판매한 이력과 규제 문서가 수출 심사를 돕는다. 대량생산 설비를 갖춘 공급사는 배치 간 편차와 납기를 관리할 수 있다. 짧은 유행 주기에 맞춰 신제품을 내야 하는 브랜드와 ODM에는 장기간 국산 소재를 검증하는 것보다 글로벌 원료를 채택하는 편이 경제적일 때가 많다.
국내 원료산업의 빈칸은 연구보다 사업화
한국에도 화장품 원료 기술은 축적돼 있다. 천연물과 발효, 펩타이드, 세라마이드, 미생물, 고분자, 분체 분야의 기업과 대학 연구실이 있고 대형 ODM과 브랜드 연구소도 독자 소재를 개발한다. 정부도 필수·고부가가치 기초소재와 피부 기반기술, 규제 대응 평가기술을 연구개발 대상으로 두고 원료 안전성 정보를 수출기업에 제공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산업적 빈칸은 연구 결과를 국제 원료로 바꾸는 구간에서 커진다. 논문에 실린 식물 추출물을 화장품 공장에 공급하려면 원산지와 지표 성분을 고정하고 농약·중금속·미생물을 관리해야 한다. 색과 냄새, 용해도, 산도, 보관 조건을 규격화하고 수백 킬로그램 단위에서도 같은 품질을 내야 한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안전성 문서를 만들고 고객사의 처방 문제에 답할 응용 연구 인력도 필요하다.
국내 원료기업은 개발 기간이 긴 데 비해 초기 주문량이 적은 구조와 마주한다. 중소 브랜드는 수백 개에서 수천 개 단위로 제품을 시작하고 유행이 바뀌면 처방을 교체한다. 하나의 독자 원료를 수년간 연구해도 대량 구매 고객을 확보하지 못하면 설비와 시험 비용을 회수하기 어렵다. ODM이 자체 원료를 개발하더라도 고객 브랜드가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해외 성분명을 요구하면 범용 처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긴다.
신영미 (주)에스와이멤코스매틱 대표는 같은 제조 기반에서 유사 원료를 사용한 제품이 늘어나면 소비자가 가격이 낮은 쪽으로 이동하기 쉬워 독자 원료를 외부에 무분별하게 공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량만 넣은 제품까지 같은 원료 이름을 내세우면 개발비를 부담한 기업이 가격 경쟁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함께 전했다.
원료를 감추는 방식만으로 기술을 지킬 수는 없다. 공급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생산 규모가 커지지 않고 외부 검증과 고객 기반도 넓히기 어렵다. 독자 소재의 함량 기준과 상표 사용 조건, 품질 규격, 라이선스 계약을 세분화해 기술 통제와 원료 매출을 함께 확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글로벌 원료기업은 원료 자체를 독점하기보다 특허와 상표, 규격서, 고객별 처방 지원을 결합해 교체 비용을 높여왔다.
안전성 평가가 바꾸는 구매 기준
2025년 12월 개정된 화장품법은 책임판매업자가 제품별 안전성 평가 문서를 작성하고 평가자의 검토를 거쳐 보관하도록 했다. 2026년 7월 8일에는 평가 제외 대상과 평가자 자격, 자료 보관 기준 등을 담은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원료 안전성 정보와 국가별 규제 동향을 제공하는 지원 누리집도 7월 1일 문을 열었다. 제도 시행은 2028년부터 업체와 품목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안전성 평가가 자리 잡으면 값싼 원료보다 설명 가능한 원료의 가치가 올라간다. 책임판매업자는 성분명만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불순물과 독성 정보, 사용 농도, 노출량, 포장재 적합성, 완제품 안정성을 검토해야 한다. 공급사가 충분한 문서를 제공하지 못하면 브랜드와 제조사가 별도의 시험비와 인력을 부담한다. 글로벌 소재기업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규제 파일과 시험 묶음은 원료 단가에 포함된 무형자산이다.
수입 원료 사용을 곧바로 산업 취약성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도 모든 소재를 한 나라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품질과 가격, 공급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해외 원료를 조달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산업 위험은 수입 자체보다 대체 공급사가 없고 핵심 처방 정보까지 해외 기업에 의존하면서 국내 기업이 원료 선택과 가격 결정에 참여하지 못할 때 커진다.
국산화의 우선순위도 모든 성분을 국내에서 만드는 데 둘 수 없다. 사용량이 많고 공급 중단 때 생산 전체가 멈추는 기반 소재, 소량으로도 제품 차이를 만드는 고부가가치 활성물질, 해외 규제가 강화되는 자외선 차단·보존·전달체,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발효·바이오·천연물 분야부터 장기 공급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해외 소재기업과 공동개발하거나 국내 생산을 유치하는 방식도 독자 개발과 나란히 검토할 수 있다.
2025년 114억달러의 화장품 수출액은 완제품 산업의 힘을 확인했다. 원료산업의 위치는 다른 숫자에서 드러난다. 국내 개발 원료가 몇 개 브랜드에 반복 채택됐는지, 해외 제조사가 한국 원료를 구매했는지, 특허 소재의 매출이 몇 년간 이어졌는지, 규제 문서와 대량생산 설비를 갖춘 기업이 얼마나 늘었는지가 더 직접적인 지표다.
K-뷰티 공장 안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원료와 기술이 함께 들어온다. 한국이 맡아온 역할은 빠른 기획과 정교한 제형 조정, 생산, 브랜드화였다. 수출 규모에 걸맞은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해외 원료를 잘 조합하는 능력에 더해 다른 나라의 브랜드와 공장이 선택할 한국산 소재를 늘려야 한다. 완제품에 붙은 ‘메이드 인 코리아’와 처방 안에 남는 기술의 국적이 가까워질수록 수출에서 발생한 이익과 협상력도 국내에 오래 머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