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원료전쟁④] 식물 하나가 시장이 되는 법
병풀·티트리·프로폴리스·모링가·몰약·매스틱, 산지보다 표준화와 재현성이 가르는 천연물 경쟁 특별기획 | K-뷰티의 미래는 원료 전쟁
[KtN 임우경기자] 병풀 하나에서 출발한 크림이 11년 동안 9100만개 팔렸다. 동국제약은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센텔리안24의 ‘마데카 크림’이 2015년 4월 출시된 뒤 2026년 2월까지 누적 판매량 9100만개를 넘어섰다고 지난 4월 발표했다. 브랜드 이름과 제품명, 원료 기술의 중심에는 병풀(Centella asiatica)이 자리 잡고 있다. 동국제약은 센텔라아시아티카 정량추출물인 테카(TECA)를 핵심 소재로 내세워 크림에서 앰플과 세럼, 색소 관리 제품군까지 범위를 넓혔다.
병풀은 화장품 시장에서 센텔라, 시카, 마데카소사이드, 테카 등 여러 이름으로 유통된다. 식물 종은 같아도 추출 부위와 용매, 지표성분, 정제 수준에 따라 거래되는 원료는 달라진다. 소비자는 ‘시카’를 하나의 성분처럼 받아들이지만 원료 시장에서는 병풀 전초 추출물과 잎 추출물, 발효 추출물, 가수분해 추출물, 고순도 트리테르펜 조성물이 별도 상품으로 움직인다.
스킨1004는 마다가스카르산 병풀을 중심에 둔 제품군을 클렌징오일과 폼클렌저, 토너, 앰플, 크림, 마스크로 확장했다. 병풀에 히알루론산을 결합한 ‘히알루-시카’, 발효 기술을 더한 ‘프로바이오-시카’, 고순도 정량 성분을 내세운 ‘센텔라 테카’까지 제품군을 세분화했다. 식물 이름 하나가 단일 제품의 부원료를 넘어 브랜드의 제품 구조와 세계관, 원산지 마케팅을 묶는 자산으로 바뀐 형태다.
병풀의 성공은 희귀한 식물을 먼저 발견한 결과가 아니다. 병풀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자라며 오랜 기간 이용돼온 식물이다. 화장품 산업이 가격을 붙인 부분은 식물의 존재보다 성분을 일정하게 분리하고, 제조 공정을 반복하며, 소비자가 기억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꾼 기술과 사업 구조다.
같은 병풀도 성분 함량은 같지 않다
마다가스카르 여러 지역에서 채취한 병풀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주요 트리테르펜 성분의 함량 차이가 확인됐다. 망고로 지역 표본에서는 아시아티코사이드가 6.42%로 가장 높았고, 채취 지역에 따라 수치가 달랐다. 연구진은 성분 함량이 높은 개체를 선별한 뒤 조직배양과 증식 가능성까지 검토했다. 같은 국가에서 자란 같은 종의 식물도 자생지와 개체에 따라 원료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결과다.
화장품 공장은 ‘마다가스카르 병풀’이라는 산지 설명만으로 처방을 고정할 수 없다. 아시아티코사이드와 마데카소사이드, 아시아틱애시드, 마데카식애시드 등 지표성분의 함량 범위를 정하고 배치마다 규격을 확인해야 한다. 수확 시기와 건조 온도, 분쇄 크기, 추출 용매, 농축 방식이 바뀌면 색과 냄새, 점도, 성분 조성도 달라질 수 있다.
물로 추출한 병풀과 에탄올로 추출한 병풀은 얻어지는 성분군이 다르다. 원료 1㎏을 투입했다는 사실보다 최종 추출물에 어떤 성분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가 중요하다. 정제 과정에서 불순물을 줄이는 대신 수율이 낮아질 수 있고, 지표성분의 농도를 높이면 원가와 배합 난도가 함께 올라간다.
정량추출물은 식물의 전체 이미지를 파는 상품과 다른 경로를 밟는다. 목표 성분의 최소·최대 함량과 시험법을 정하고, 기준을 벗어난 원료를 제외해야 한다. 식물 재배부터 추출과 분석, 보관까지 하나의 관리 체계로 묶여야 공장마다 같은 처방을 반복할 수 있다.
병풀이 세계적인 화장품 성분이 된 배경에는 ‘시카’라는 쉬운 소비자 언어와 함께 정량추출 기술, 의약품과 화장품에서 축적된 사용 경험, 여러 제형에 넣을 수 있는 가공성이 놓여 있다. 원료 회사는 병풀을 팔지만 실제 거래 대상은 규격과 시험법, 제조 이력, 공급 안정성까지 포함한 묶음이다.
‘천연’ 표시는 효능과 안전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천연 화장품 원료를 분류하는 국제 기준도 식물의 효능을 보증하지 않는다. ISO 16128은 천연 원료와 천연 유래 원료, 유기농 원료의 정의와 함량 계산 방식을 제시한다. 제품의 광고 문구와 인체 안전성, 환경 안전성, 공정무역, 포장재, 국가별 화장품 규제는 적용 범위에서 제외한다. 천연 유래 지수가 높다는 사실만으로 피부 효능이나 저자극성을 인정받는 구조가 아니다.
ISO는 2026년 2월 ISO 16128 개정 작업을 시작했다. 천연·유기농 화장품의 비중이 커지고 원료 가공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정의와 계산 체계도 다시 검토되는 단계에 들어갔다. 국제 기준이 계속 조정된다는 사실은 ‘천연’이 고정된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제조 공정과 원료 구성에 따라 판정되는 기술 분류임을 드러낸다.
식물을 물에 담가 얻은 추출물과 화학적 변환을 거친 유도체는 소비자에게 비슷한 자연 이미지로 소개될 수 있다. 산업 내부에서는 원료의 가공 정도와 잔류 용매, 보조제, 보존제, 희석제가 모두 달라진다. 전성분표에 같은 식물명이 적혀 있어도 원료 원액의 농도와 최종 제품 투입량까지 같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은 기존 화장품 원료 목록과 신규 원료 관리 방식을 계속 손질하고 있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은 2025년부터 사용 이력이 확인된 원료 목록을 동적으로 조정하고, 신규 원료는 등록 또는 신고 뒤 3년간 안전성 모니터링을 거쳐 목록 편입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를 운영한다. 중국 시장에 천연물을 새로 들여가려면 오랜 사용 역사만 내세우기보다 원료 특성과 안전성, 제조 공정, 사용 목적을 문서화해야 한다.
티트리의 가격은 향보다 산화 관리에서 갈린다
티트리오일은 천연 항균 이미지를 가진 대표 소재지만, 잎을 증류해 얻었다는 설명만으로 품질이 정해지지 않는다. 국제표준화기구는 2025년 6월 티트리오일의 품질 특성을 규정한 ISO 4730 개정판을 발행했다. 국제 규격은 티트리오일을 단순한 식물 향유가 아니라 성분 조성이 관리돼야 하는 산업 원료로 취급한다.
유럽연합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는 2025년 채택하고 2026년 6월 최종 문서를 공개한 안전성 의견에서 티트리오일을 중간 수준의 피부 감작성 물질로 평가했다. SCCS가 검토한 조건에서는 샴푸 2%, 샤워젤 1%, 세안제 1%, 페이스크림 0.1%까지 안전한 것으로 판단했으며, 빛과 열, 공기, 수분에 노출돼 성분이 변하지 않도록 완제품 안에서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티트리오일이 천연 원료라는 이유만으로 순하거나 많은 양을 넣을수록 좋은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산화가 진행되면 성분 조성이 바뀌고 피부 감작성 위험도 달라질 수 있다. 원료 용기의 재질과 충전량, 질소 치환 여부, 항산화제, 보관 온도, 유통기한, 완제품 포장이 품질의 일부가 된다.
같은 티트리 제품이라도 원료를 언제 개봉했는지, 공장 안에서 얼마나 오래 노출했는지, 세안제와 크림 가운데 어느 제형에 넣었는지에 따라 안전성 관리가 달라진다. 식물 이름이 소비자의 구매를 만들지만 공급계약의 가격은 성분 규격과 산화 지표, 보관 조건이 결정한다.
프로폴리스는 산지가 바뀌면 다른 원료가 된다
프로폴리스는 식물 자체가 아니다. 꿀벌이 주변 식물의 수지와 분비물을 모아 벌집 안에서 가공한 복합물이다. 같은 꿀벌 종에서 얻은 프로폴리스도 지역 식생과 계절, 채집 환경에 따라 화학적 조성이 달라진다.
브라질의 적색·녹색·갈색 프로폴리스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산지와 유형, 추출 방식에 따라 페놀과 플라보노이드, 지표성분, 생물학적 활성 수치가 크게 달라졌다. 에탄올 추출과 초임계 이산화탄소 추출도 서로 다른 성분을 선택적으로 얻었다. ‘프로폴리스 추출물’이라는 이름 안에 원산지와 식물 기원, 추출 용매, 지표성분이 다른 원료가 함께 들어가는 셈이다.
2025년 라트비아산 프로폴리스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47개 대사물질이 확인됐고 지역별 식생 차이가 화학적 조성에 반영됐다. 우간다 9개 농생태 지역의 프로폴리스를 비교한 연구에서도 휘발성·비휘발성 성분이 산지별로 뚜렷하게 구분됐다. 프로폴리스의 국적만으로 품질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국제표준화기구는 2023년 생프로폴리스의 품질요건과 분석법, 포장, 표시, 보관, 운송 조건을 정한 ISO 24381을 발행했다. 액상과 고형 프로폴리스 추출물의 진위와 품질, 분석법을 다루는 별도 국제표준도 2025년 개발 절차에 들어갔다. 원료 시장이 생프로폴리스와 추출물을 구분하고 산지별 편차를 분석 가능한 규격으로 바꾸는 단계다.
프로폴리스 함유량을 높였다는 광고만으로 품질을 비교하기도 어렵다. 생프로폴리스 몇 그램을 사용했는지, 추출 뒤 남은 고형분이 얼마인지, 특정 지표성분이 어느 정도인지, 희석 용매와 보조제가 무엇인지가 함께 공개돼야 한다. 벌집에서 채취한 검은 덩어리가 화장품 원료가 되기까지 정제와 탈랍, 여과, 탈취, 색 조정, 용해 과정이 이어진다.
모링가 잎과 모링가씨 오일은 전혀 다른 상품
모링가(Moringa oleifera)는 잎과 씨, 씨에서 짠 오일이 각각 다른 원료로 거래된다. 유럽연합 화장품 원료 데이터베이스는 모링가씨 오일을 모링가 씨앗에서 압착해 얻은 오일로 정의한다. 잎 추출물이나 뿌리 추출물과는 국제화장품성분명(INCI)부터 다르다.
잎은 물과 에탄올 등으로 추출해 수용성 제형에 적용할 수 있고, 씨 오일은 에몰리언트와 헤어케어, 오일 제형에 활용할 수 있다. 같은 모링가 이름을 사용해도 지방산 조성, 색, 향, 산패 안정성, 배합 방식이 달라진다. 씨 오일을 잎 추출물의 연구 결과와 연결하거나 잎의 전통적 이용 경험을 오일의 완제품 효능으로 옮기는 설명은 구분이 필요하다.
모링가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재배할 수 있어 희소성보다 공급망 설계가 중요하다. 재배지가 넓다는 장점은 원료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지역과 품종, 압착·정제 방식에 따른 품질 편차도 키운다. 저온 압착과 용매 추출, 탈취·탈색 여부에 따라 원료의 색과 향, 산화 안정성, 생산 수율이 달라진다.
국제 원료로 성장하려면 ‘기적의 나무’ 같은 별칭보다 씨앗의 수분과 산가, 과산화물가, 지방산 조성, 잔류농약, 중금속, 미생물, 장기 보관 조건이 먼저 고정돼야 한다. 현지 농가와 계약재배를 맺더라도 수확 뒤 건조와 선별, 저장 과정이 통제되지 않으면 공장 투입 단계에서 품질 차이가 커진다.
몰약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수지가 거래된다
몰약은 콤미포라(Commiphora)속 나무에서 얻는 방향성 수지를 가리키는 통칭으로 사용된다. 왕립식물원 큐는 콤미포라 미르라(Commiphora myrrha)를 에티오피아 동부와 남동부, 케냐 북동부,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와 남부에 자생하는 별도 종으로 분류한다. 콤미포라속에는 미르라 외에도 향과 수지를 내는 여러 종이 포함돼 있다.
원료 거래에서 ‘미르’ 또는 ‘몰약’이라는 일반명만 확인하면 종과 산지를 혼동할 수 있다. 수지의 색과 향, 세스퀴테르펜 조성, 불순물, 채취 방식이 달라지면 향료와 화장품 원료로서의 성질도 달라진다. 식물 학명과 사용 부위, 원산지, 추출 방식을 계약서와 규격서에 함께 적어야 동일한 원료를 반복 조달할 수 있다.
추출 공정도 화학적 조성을 바꾼다. 몰약 수지를 초임계 이산화탄소로 추출한 연구에서는 높은 온도를 사용하는 분석·추출 과정에서 일부 성분이 변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저온 공정을 적용했다.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수지라도 현대 화장품 원료로 다룰 때는 추출 온도와 용매, 정제 방식이 제품 성능과 안전성 평가에 들어온다.
몰약과 모링가처럼 글로벌 사우스에서 생산되는 식물 자원은 산지 가격과 완제품 가격 사이의 격차도 크다. 식물 자원을 구매한 기업이 정제와 특허, 브랜드를 더해 높은 부가가치를 확보하는 동안 산지에는 원물 대금만 남을 수 있다.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을 이용해 발생한 이익을 제공국과 공정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국제 틀을 마련했고, 이익 공유 방식에는 로열티와 공동사업, 기술 이전, 현지 역량 구축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원료 추적성은 윤리 마케팅에 머물지 않는다. 공급국의 자원 접근 허가와 전통지식 사용 동의가 빠지면 연구와 특허, 제품 판매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산지 주민과 장기 구매계약을 맺고 재배·채취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은 공급 안정성과 이익 공유를 함께 관리하는 수단이 된다.
희소성만으로는 공장에 들어갈 수 없다
천연물의 산업화는 산지에서 공장까지 이어지는 여러 단계의 손실을 견뎌야 한다. 수확한 식물 가운데 규격에 맞지 않는 부분을 제거하고 건조와 분쇄, 추출, 농축, 여과, 정제를 거치면 최종 원료량은 줄어든다. 고순도 지표성분을 만들수록 수율은 더 낮아질 수 있다.
생산량을 늘리는 과정에서는 실험실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변수가 나타난다. 추출 탱크가 커지면 가열과 냉각 속도가 달라지고 교반이 고르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원료 투입 순서가 바뀌면 침전과 응집이 생기고, 식물 고유의 색과 냄새가 완제품의 향과 외관을 바꾼다. 천연물은 합성 단일물질보다 구성 성분이 복잡해 다른 원료와의 반응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농약과 중금속, 미생물, 곰팡이독소, 잔류 용매 검사는 기본 단계다. 기능성 성분 함량만 맞아도 산업 원료가 되는 구조가 아니다. 원료가 장기 보관 중 변색·변취되지 않는지, 냉동과 고온 운송을 거친 뒤에도 규격을 유지하는지, 방부 시스템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신영미 (주)에스와이멤코스매틱 대표는 “원료가 아무리 좋아도 어떻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연물의 이름과 효능 설명보다 추출·용해·배합 과정에서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먼저라는 판단이다.
천연물 원료 기업의 경쟁력은 식물의 효능을 많이 나열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원물을 확보하는 계약, 배치별 시험성적서, 지표성분 기준, 불순물 관리, 안정성 정보, 처방 지원, 생산 확대 능력이 함께 쌓여야 한다. 브랜드는 완제품 한 개를 팔지만 원료기업은 같은 규격을 여러 제조사와 국가에 반복 공급하며 매출을 만든다.
매스틱의 희소성과 수지의 한계
매스틱은 그리스 키오스섬과 연결된 수지 원료다. 유럽연합은 ‘마스티하 키우(Masticha Chiou)’를 원산지명보호(PDO) 식품으로 등록해 산지와 생산 방식을 관리하고 있다. PDO는 원산지의 고유성을 보호하는 제도이며 화장품 효능이나 특정 제형의 우수성을 인정하는 표시는 아니다.
수지 상태의 매스틱은 희소성과 산지 이야기를 갖지만 물 기반 화장품에 곧바로 넣기 어렵다. 녹이는 과정과 사용한 용매·오일, 실제 매스틱 함량, 냄새와 색, 점도, 다른 성분과의 반응을 조정해야 한다. 프로폴리스와 자일리톨처럼 성질이 다른 원료를 함께 배합하면 가열 과정과 사용감, 장기 안정성도 달라진다.
매스틱을 미스트와 크림, 클렌저, 덴탈 제품으로 넓히려는 국내 개발 구상도 원료 이름보다 제조 공정에서 성패가 갈린다. ‘세계 최초’나 흡수율 우위는 비교 조건과 시험 결과, 특허 권리 범위가 확인된 뒤 사용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 확인할 부분은 물에 분산된 샘플의 존재가 아니라 상업 규모 생산에서 함량과 안정성, 품질을 반복할 수 있는지다.
원료 이름을 기업 자산으로 바꾸는 네 단계
식물이 화장품 원료가 되는 첫 단계는 정체성 확보다. 식물 학명과 사용 부위, 산지, 수확 시기, 추출 용매가 명확해야 한다. 병풀과 모링가, 몰약처럼 한 식물에서 여러 부위를 쓰거나 일반명 아래 여러 종이 섞이는 원료일수록 정체성 관리가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표준화다. 지표성분과 불순물의 허용 범위를 정하고 공인된 분석법으로 배치마다 검사해야 한다. 티트리오일과 프로폴리스처럼 국제표준이 만들어지는 원료는 규격 충족 여부가 거래 조건으로 들어온다. 국제표준이 없는 원료는 공급기업이 자체 규격과 시험법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축했는지가 가격을 가른다.
세 번째 단계는 제형화다. 좋은 성분도 물과 기름에 녹지 않거나 열과 빛에 약하면 제품 범위가 좁아진다. 유화와 안정화, 탈취, 탈색, 캡슐화, 발효, 수용화 기술이 들어가면서 원료는 식물 추출물에서 처방 가능한 소재로 바뀐다.
네 번째 단계는 권리와 공급망이다. 특허와 상표, 독점 공급계약, 산지 계약재배, 품질 사용 기준을 묶어야 경쟁사가 같은 식물 이름을 사용해도 동일한 원료를 복제하기 어려워진다. 원료의 희소성을 지키기 위해 공급을 막는 방식만으로는 매출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 품질 등급과 최소 함량, 상표 사용 조건을 나누고 고객별 라이선스와 기술지원을 붙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병풀 9100만개 판매 기록은 식물 하나가 완제품 시장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 확인시켰다. 티트리오일은 2025년 국제표준 개정과 유럽 안전성 평가를 거치며 원료의 산화와 사용 농도가 다시 거래 조건으로 들어왔다. 프로폴리스는 생원료에 이어 추출물 표준화가 진행 중이고, 모링가와 몰약은 사용 부위와 종, 추출 방식의 구분이 산업 진입을 좌우한다.
한국 기업이 확보해야 할 자산도 식물 목록의 길이가 아니다. 국내 자생식물과 해외 천연물을 몇 종 보유했는지보다 동일 규격을 몇 년간 공급했는지, 해외 제조사가 원료를 반복 구매했는지, 배치 편차와 안전성 문서를 관리했는지, 특허와 상표가 실제 계약 매출을 만들었는지가 기업가치에 더 가깝다.
천연물 시장에서 산지는 시작점이고 산업은 공정에서 만들어진다. 식물 이름이 소비자를 부르고, 표준화가 공장을 움직이며, 제형 기술과 공급계약이 이익을 남긴다. 병풀 이후의 K-뷰티 원료 경쟁도 희귀한 식물을 찾는 속도보다 같은 품질을 반복하고 세계의 처방 안에 오래 남기는 능력에서 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