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원료전쟁⑤] 원료는 기술을 만나야 산업이 된다
많이 넣는 경쟁에서 안정적으로 담고 필요한 위치에 보내는 경쟁으로…수용화·리포좀·나노에멀전·캡슐화·발효가 바꾼 화장품 개발 특별기획 | K-뷰티의 미래는 원료 전쟁
[KtN 임우경기자] 125나노미터 크기의 지질 입자 안에 폴리데옥시리보뉴클레오타이드(PDRN)를 담은 연구 결과가 2026년 학술지에 수록됐다. 연구진이 만든 PDRN 나노리포좀의 포집률은 81.3%였다. 비캡슐화 PDRN과 비교한 실험실 평가에서 24시간 누적 피부 투과량은 1.22배, 피부 잔류량은 1.40배로 측정됐다. 저장 안정성을 분석한 장비 예측값은 최대 3년이었다.
수치만 떼어 놓으면 전달기술이 원료의 성능을 끌어올린 것처럼 읽힌다. 연구 조건은 인체 사용시험이 아니라 프란츠 확산셀을 이용한 시험관 내 평가였다. 입자 크기와 포집률, 방출 속도, 피부 잔류량을 확인한 결과이지 완제품을 사용한 사람에게 동일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성분을 사용해도 전달체와 제형에 따라 측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연구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화장품 산업의 경쟁 단위가 성분명에서 제조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레티놀과 비타민C, 펩타이드, 식물 유래 항산화 물질처럼 빛과 열, 산소에 약한 원료는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동안 분해될 수 있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지용성 성분은 토너와 미스트에 넣기 어렵고, 수용성 고분자는 피부 표면을 통과하는 데 제약을 받는다. 함량을 높이면 침전과 변색, 점도 상승, 자극, 끈적임이 커질 수도 있다.
소비자가 전성분표에서 확인하는 이름은 원료의 출발점이다. 실제 제품의 상태는 원료를 어떤 용매에 녹였는지, 어떤 크기의 입자에 담았는지, 계면활성제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제조 과정에서 가열과 압력을 어떻게 가했는지, 저장 중 입자가 합쳐지거나 내용물이 새지 않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물에 섞였다고 모두 수용액은 아니다
수용화(solubilization)는 물에 녹지 않는 물질을 물 기반 제품에 넣을 때 널리 사용된다.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은 미셀 수용화를 용매와 회합 콜로이드가 있는 계에서 다른 성분이 미셀 안이나 표면에 들어가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난용성 물질이 물 분자 사이에 완전히 풀린 진용액과 계면활성제가 만든 미세 구조 안에 들어간 상태는 물리적으로 다르다.
향료와 에센셜오일, 지용성 비타민을 투명한 토너나 미스트에 넣을 때는 계면활성제나 가용화제가 사용된다. 적절한 조합을 찾으면 겉으로는 맑고 균일한 액체가 만들어진다. 제품을 물에 희석하거나 온도가 달라지고 염류와 다른 원료가 추가되면 탁해지거나 침전이 생길 수 있다. 향이 변하고 거품이 많아지거나 피부에 남는 감촉이 달라지는 변화도 나타난다.
수용화 성공을 판단하려면 제조 직후 외관보다 장기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저온과 고온, 동결·해동, 빛 노출, 원심분리, 반복적인 용기 개폐 조건에서 분리와 침전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원료 함량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가용화제 양이 늘어날 수 있어 피부 자극과 사용감, 원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수용화 원료라는 말도 흡수율 향상을 자동으로 뜻하지 않는다. 물에 균일하게 분산되면 도포 편의와 함량 균일성은 높아질 수 있다. 피부 투과는 원료의 분자량과 친유성, 전하, 제품의 산도, 도포량, 피부 상태, 계면활성제 조성까지 영향을 받는다. 수용화 전후의 피부 투과량을 비교하지 않았다면 ‘흡수율 증가’는 확인되지 않은 설명에 머문다.
리포좀, 지질막 안에 담긴 원료
리포좀(liposome)은 인지질 이중막이 구형 구조를 만든 전달체다. 물과 친한 성분은 내부 수상에, 기름과 친한 성분은 지질막 부분에 담을 수 있다. 산화와 분해에 취약한 성분을 외부 환경에서 일정 부분 보호하고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목적으로 이용된다.
리포좀이라는 이름만으로 성능을 평가할 수는 없다. 입자 크기 분포와 다분산지수(PDI), 제타전위, 포집률, 원료 적재량, 시간에 따른 누출량이 함께 필요하다. 평균 입자 크기가 작더라도 분포가 넓으면 일부 입자가 빠르게 합쳐질 수 있다. 제조 직후 포집률이 높아도 유통 과정에서 지질막이 산화되거나 성분이 빠져나오면 최종 제품의 상태는 달라진다.
PDRN 연구에서 평균 입자 크기는 125나노미터, 다분산지수는 0.12, 제타전위는 마이너스 52.6밀리볼트로 측정됐다. 연구진은 입자 상태와 포집률을 수치로 확인하고 비캡슐화 원료와 피부 투과·잔류를 비교했다. ‘리포좀 함유’라는 제품 문구와 분석 장비로 구조를 확인한 전달체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인지질을 처방에 넣었다고 모두 안정적인 리포좀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조 압력과 교반 속도, 초음파 처리, 막 여과, 수상과 지질상의 비율에 따라 입자 크기가 바뀐다. 방부제와 전해질, 향료, 고분자 증점제가 리포좀 구조를 흔들 수 있어 원료 상태와 완제품 상태를 따로 분석해야 한다.
실험실에서 수십 밀리리터를 만들 때 확보한 입자 크기가 수백 킬로그램 생산에서도 유지되는지도 중요하다. 생산설비의 압력과 열 발생, 처리 횟수가 달라지면 입자 분포와 포집률이 변한다. 대량생산을 거친 완제품에서 입자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실험실 기술이 상업 기술로 넘어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나노에멀전, 작은 입자가 남기는 큰 제조 부담
나노에멀전(nanoemulsion)은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가운데 한쪽을 작은 액적 형태로 분산한 계다. 작은 액적은 외관을 투명하거나 반투명하게 만들고 지용성 원료를 물 기반 제품에 넣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넓어진 계면 면적은 원료 방출과 피부 접촉에도 영향을 준다.
페룰산을 나노에멀전 젤에 넣은 연구에서는 오일과 계면활성제, 보조계면활성제를 조합해 제형을 만들었다. 쥐 피부를 이용한 실험에서 일반 제형보다 피부 투과와 지속 방출이 높게 측정됐고, 자외선 노출 동물모델의 산화 관련 지표도 비교됐다. 연구 결과는 특정 페룰산 조성과 동물·적출 피부 조건에서 얻어진 값이다. 다른 성분과 사람 피부, 시판 화장품에 같은 결과를 적용할 수는 없다.
작은 액적을 만들려면 고압 균질기와 초음파, 마이크로플루이다이저 같은 고에너지 공정을 사용하거나 조성 변화로 입자를 형성하는 저에너지 공정을 선택한다. 장비 비용과 처리 시간, 열 발생, 계면활성제 사용량이 생산원가에 반영된다. 액적 크기를 낮추는 데 성공해도 저장 중 합일과 응집, 오스트발트 숙성으로 입자가 커질 수 있다.
나노에멀전이 일반 에멀전보다 무조건 우수한 것도 아니다. 피부 표면에 남아야 하는 성분을 지나치게 이동시키는 제형은 제품 목적과 맞지 않을 수 있다. 계면활성제가 많으면 자극과 건조감이 커질 수 있고, 지나치게 묽은 제형은 소비자가 기대하는 쿠션감과 보습막을 만들기 어렵다. 선크림에서는 자외선 차단 성분의 균일한 분산과 피부 위 막 형성이 중요하고, 클렌저에서는 세정 뒤 잘 씻겨 나가는 성질이 우선한다.
캡슐의 가치는 보호와 방출 시점
미세캡슐화(microencapsulation)는 원료 주위에 막이나 매트릭스를 형성해 외부 환경과 분리하는 기술이다. 향료와 오일, 색소, 비타민, 산화에 약한 식물성분을 빛과 산소, 수분에서 보호하고 마찰이나 압력, 온도, 산도 변화에 맞춰 방출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향료 미세캡슐 연구에서는 캡슐 벽의 구성과 입자 상태, 표면 결합이 향의 지속 방출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같은 향료라도 캡슐막이 얼마나 치밀한지, 제품 표면에 얼마나 잘 붙는지, 마찰을 받을 때 어느 정도 깨지는지에 따라 방출 속도가 달라졌다.
화장품에서는 캡슐이 너무 단단하면 피부에 바른 뒤에도 원료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막이 약하면 제조 탱크와 충전 공정에서 먼저 깨져 보호 기능을 잃는다. 눈에 보이는 알갱이를 터뜨리는 제형과 현미경 수준의 캡슐은 소비자가 느끼는 사용감도 다르다.
캡슐막의 재료도 제품 안전성과 환경성에 연결된다. 고분자와 단백질, 다당류, 왁스, 지질 가운데 어떤 물질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생분해성과 잔류 가능성이 달라진다. 2024년 향료 캡슐의 고분자 껍질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캡슐 슬러리에서 시험물질을 분리하는 방법에 따라 생분해율이 0%에서 91%까지 크게 달라졌다. 캡슐을 사용했다는 사실보다 완제품 안에서 존재하는 형태와 평가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결과다.
발효는 운반체가 아니라 원료를 바꾸는 공정
발효(fermentation)는 수용화나 리포좀처럼 완성된 성분을 담아 이동시키는 전달체와 성격이 다르다. 미생물과 효소가 원료의 고분자를 분해하거나 새로운 대사산물을 만들고, 냄새와 색, 산도, 용해성을 바꾸는 제조 공정에 가깝다.
붉은 쌀을 황국균(Aspergillus oryzae)으로 발효한 2024년 연구에서는 발효 전후 성분 조성과 세포 수준의 항산화·피부 관련 지표를 비교했다. 연구 범위는 시험관 내 화학 분석과 세포 실험이었다. 발효했다는 이유만으로 시판 제품의 피부 변화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며 사용 균주와 배양 시간, 기질, 여과·살균 공정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2025년에는 효모·쌀 발효여과물을 피부에 바른 뒤 공초점 라만 분광법으로 0.5시간부터 4시간까지 이동을 추적한 소규모 연구가 나왔다. 비침습 장비로 발효여과물의 피부 내 분포를 측정하려는 접근이지만 예비 연구라는 범위가 붙는다. 피부 안에서 신호가 검출됐다는 사실과 보습·탄력·장벽 개선이 확인됐다는 판단은 구분해야 한다.
발효 원료의 산업 가치는 균주의 이름보다 공정 재현성에서 결정된다. 같은 쌀과 같은 미생물을 사용해도 온도와 산소, 배양 시간, 영양원에 따라 대사산물이 달라진다. 발효를 끝낸 뒤 미생물을 제거했는지, 여과물인지 용해물인지, 보존제를 넣었는지, 유효 성분과 불순물을 어떤 기준으로 관리하는지가 원료 규격이 된다.
‘나노’는 마케팅 문구보다 안전성 문서
입자가 작아질수록 표면적과 분산 상태, 생물학적 거동이 달라질 수 있다. 유럽연합은 나노물질이 들어간 화장품에 별도 관리 절차를 적용한다. 일반 제품 신고 외에 출시 6개월 전 집행위원회에 신고해야 하며 입자 크기와 물리·화학적 특성, 연간 사용 예상량, 독성 정보, 제품 유형별 안전성, 노출 조건을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는 2023년 화장품 나노물질 안전성 평가 지침을 개정했다. 용해도와 용출 속도, 비수계 매질에서의 거동, 나노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증, 분산 상태, 혈액세포 흡수, 생식독성, 내분비계 영향 등이 검토 항목에 추가되거나 강화됐다. 입자 크기를 낮췄다는 광고보다 입자가 제품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인체가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먼저 놓인다.
모든 리포좀과 에멀전이 화장품 규정상 나노물질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원료의 용해성과 잔류성, 입자 크기 분포, 제조 의도와 적용 규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나노’라는 단어를 제품명에 붙였는지보다 실제 입자의 물리적 상태가 기준이다.
한국에서 기능성 화장품으로 심사를 받거나 보고할 때도 원료의 기원과 개발 경위, 안전성, 기능 입증, 규격과 시험법이 요구된다. 전달기술을 적용한 완제품은 원료 단계의 연구만으로 기능을 설명하기보다 최종 처방의 안정성과 인체적용 결과를 갖춰야 한다.
매스틱, 좋은 수지보다 다루기 쉬운 원료
매스틱은 물에 잘 녹지 않는 천연 수지다. 분말 형태로 넣을지, 다른 오일에 녹일지, 계면활성제와 보조제를 이용해 물 기반 제형에 분산할지에 따라 실제 매스틱 함량과 사용감이 달라진다. ‘매스틱 오일’이라는 이름도 수지에서 직접 압착한 식물성 오일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른 오일에 매스틱 수지를 녹였다면 완성 원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운반 오일과 매스틱의 비율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신영미 (주)에스와이멤코스매틱 대표는 매스틱을 수용성 형태로 만드는 과정만으로도 제품화 난도가 높으며, 프로폴리스와 자일리톨을 함께 넣으면 점도와 가열 반응, 사용감이 달라져 별도의 제형 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검토되는 개발 범위에는 수용화 매스틱을 미스트와 크림, 클렌저, 덴탈 제품, 음료 등에 적용하는 구상이 포함돼 있다. 사업 구상에 적힌 ‘세계 최초 수용화’, ‘흡수율 극대화’, ‘완전히 녹인다’는 표현은 특허 청구항과 입자 분석, 비교 대상, 시험 조건, 완제품 안정성, 인체 적용 결과가 확인돼야 기사와 광고에서 사용할 수 있다.
매스틱 수지가 물에 섞인다는 사실만으로 기술 검증이 끝나지 않는다. 수지 성분이 분자 상태로 용해됐는지, 미셀이나 미세 입자에 분산됐는지, 평균 입자 크기와 분포가 얼마인지, 보조 물질이 무엇인지, 실제 매스틱 고형분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야 한다. 고온과 저온, 빛, 희석, 다른 원료와의 혼합 조건에서도 침전과 응집이 없어야 한다.
미스트에서는 노즐 막힘과 분사 입자, 눈가 사용 안전성이 중요하다. 크림에서는 유화 안정성과 향, 끈적임이 우선하고 덴탈 제품에서는 점도와 맛, 구강 점막에 사용하는 원료의 규격이 달라진다. 음료는 화장품과 다른 식품 규격과 섭취 안전성, 제조시설 기준을 적용받는다. 하나의 수용화 원액을 여러 제품군에 그대로 넣는 방식보다 용도별 원료 규격을 따로 구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공정 데이터가 특허보다 먼저 매출을 만든다
전달기술 기업의 자산은 기술 이름보다 수치에 남는다. 입자 크기와 분포, 포집률, 제타전위, 원료 함량, 방출 곡선, 피부 잔류량, 가속·장기 안정성, 생산 배치 간 편차가 기본 지표다. 분석 결과를 원료 상태와 완제품 상태에서 각각 확보해야 고객 제조사가 처방을 바꾸지 않고 반복 구매할 수 있다.
특허는 제조 공정과 조성물, 용도를 보호할 수 있지만 등록 자체가 성능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청구 범위가 좁거나 쉽게 우회할 수 있으면 경쟁 방어력이 낮다. 실험실 공정을 공장 설비로 옮기지 못하면 특허가 있어도 원료를 공급할 수 없다. 반대로 배치별 품질과 고객별 처방 지원, 장기 공급 능력이 축적되면 제조 노하우와 데이터가 특허 밖의 진입 장벽으로 남는다.
브랜드가 ‘리포좀’, ‘나노’, ‘발효’, ‘수용화’를 제품 앞면에 적는 순간 소비자 언어가 된다. 원료기업과 제조사는 같은 단어를 입자 분석과 안정성, 안전성, 생산 재현성의 언어로 관리해야 한다. 기술명을 붙인 제품 수보다 동일한 품질로 생산한 배치 수, 완제품에서 유지된 입자 구조, 국가별 안전성 문서, 고객사의 반복 주문이 산업적 가치를 더 정확하게 가른다.
K-뷰티가 강점을 쌓아온 영역은 빠른 제형 개발과 사용감 조정, 다품종 생산이다. 전달기술 경쟁은 빠른 제조 능력을 포기하는 변화가 아니라 제조 속도 뒤에 공정 데이터와 지식재산권을 쌓는 작업이다. 좋은 원료를 발견한 기업보다 불안정한 원료를 안정적으로 담고, 제품이 소비자에게 도착할 때까지 같은 상태를 유지하며, 생산 규모가 커져도 품질을 반복하는 기업에 이익과 협상력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