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enciaga But Bigger④] 발렌시아가 쿠튀르, 허리선 대신 어깨와 밑단을 키운 비례
검정 민소매와 연보라 깃털 스커트, 라임 재킷과 바이올렛 하의…상하의 크기를 달리한 피치올리의 2026-27 가을·겨울 컬렉션
[KtN 박인경기자]검정 민소매 상의 아래에서 연보라색 깃털 스커트가 둥글게 부풀었다. 목과 어깨, 팔은 그대로 드러났지만 허리 아래는 커다란 타원형 안으로 들어갔다. 상의는 몸에 가깝게 붙고 하의는 양옆으로 크게 벌어졌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는 상하의를 같은 크기로 맞추지 않았다. 한쪽을 크게 만들면 다른 쪽은 최대한 단순하게 남겼다. 발렌시아가 2026-27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의 과장된 실루엣은 옷 전체를 무작정 키운 결과가 아니었다.
7월 8일 파리 국제대학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 정원에서 공개된 컬렉션에는 풍선처럼 부푼 드레스와 넓은 케이프, 긴 바지, 깃털을 수놓은 의상이 이어졌다. 피치올리는 원단을 여러 겹 쌓기보다 재단으로 형태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실제 착장에서도 부피는 어깨와 소매, 허리 아래, 밑단 가운데 한두 곳에 집중됐다. 나머지 부분은 장식을 줄이고 곧게 정리했다.
연보라색 스커트는 허리선을 가늘게 조이지 않았다. 깃털이 허리 바로 아래에서 퍼지면서 골반과 다리의 윤곽을 덮었다. 검정 상의가 실제 상체의 폭을 그대로 남겨 둔 덕분에 하의의 크기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목걸이 외에는 상체 장식을 덜어내 시선도 곧바로 스커트로 내려갔다.
큰 스커트를 화려한 상의와 짝짓던 전통적인 이브닝드레스 구성과 차이가 난다. 피치올리는 위아래를 모두 꾸미지 않았다. 검정 민소매, 흰 티셔츠, 단순한 탱크톱을 남겨 두고 하의에 원단과 깃털을 집중했다. 상체와 하체의 크기 차이가 클수록 허리의 위치는 오히려 또렷해졌다. 허리를 조이지 않고도 옷의 비례만으로 몸의 가운데를 구분했다.
검정 드레스에서는 부피가 위로 올라갔다. 몸통은 목 아래에서 무릎까지 좁고 곧게 내려왔고, 양쪽 소매는 어깨 밖으로 크게 벌어졌다. 팔은 검은 원단 안에 가려졌으며 둥근 소매 끝만 바깥으로 돌출됐다. 허리와 엉덩이에 별도의 곡선을 만들지 않아 상체의 폭과 몸통의 폭이 뚜렷하게 갈렸다.
어깨를 넓힌 재킷이나 패드를 넣은 정장과도 형태가 달랐다. 어깨선 한 곳을 날카롭게 세우지 않고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원형에 가까운 부피를 만들었다. 검정 원단은 주름과 이음선을 감추고 커다란 외곽만 남겼다. 좁은 몸통 옆으로 둥근 소매가 놓이면서 허리는 실제보다 더 가늘게 읽혔다.
같은 검정이라도 착장마다 크기를 둔 위치는 달라졌다. 한 드레스는 어깨를 수평으로 길게 벌렸고, 다른 드레스는 소매를 둥글게 부풀렸다. 후드가 달린 긴 의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로선을 강조했다. 뎀나(Demna) 시기에 자리 잡은 검정과 오버사이즈는 남았지만, 피치올리는 부피를 한곳에 모아 나머지 선을 정돈했다.
바이올렛 드레스는 허리 아래에서 원단을 크게 벌렸다. 상체는 몸에 비교적 가깝게 붙었고, 스커트는 바닥 가까이에서 좌우로 넓어졌다. 모델이 멈췄을 때는 둥근 종처럼 서 있었지만 발을 옮기자 앞쪽이 열리고 옆선이 들렸다. 바람이 들어간 순간에는 스커트의 한쪽이 더 크게 부풀었다.
단단한 속치마로 밑단을 일정하게 고정한 볼가운과 다른 움직임이다. 스커트의 크기는 유지됐지만 외곽은 걸음마다 달라졌다. 상체를 짧고 단정하게 잡은 뒤 하체에 긴 원단을 붙여 무게가 아래로 쏠리지 않도록 했다. 큰 드레스가 모델의 걸음을 가리는 대신 보행에 맞춰 열리고 닫혔다.
파리의 한낮 햇빛과 야외의 바람은 드레스의 움직임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실내 무대처럼 조명과 바닥 조건을 일정하게 맞추지 않은 공간에서 원단은 계속 다른 모양을 만들었다. 피치올리가 옷의 형태와 색, 표면을 한 번의 큰 재단으로 잇겠다고 밝힌 제작 방향도 고정된 정면보다 움직이는 옆선과 밑단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흰 탱크톱 아래에는 회색 하의가 골반 양옆으로 벌어졌다. 상의는 목선과 암홀, 몸통에 별다른 변형을 주지 않은 기본형에 가깝다. 허리 아래에서는 여러 겹 접힌 원단이 큰 주름을 만들었고, 양쪽 밑단은 바닥까지 길게 내려왔다.
쿠튀르의 기술이 상의보다 하의에 몰린 착장이다. 탱크톱을 자수와 보석으로 채우지 않고 일상복의 모양으로 남겨 뒀다. 회색 하의 역시 몸에 붙는 바지나 치마로 정리하지 않았다. 원단을 접고 벌려 골반의 폭을 바꿨다. 평범한 상의와 복잡한 하의를 연결하면서 쿠튀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꾸미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흰 반소매 상의와 긴 스커트, 탱크톱과 넓은 바지, 셔츠와 부풀린 하의도 같은 구성을 따랐다. 상의는 티셔츠와 셔츠의 익숙한 형태를 유지했고 하의는 길이와 폭을 늘렸다. 첫 번째 착장에서 흰 쿠튀르 티셔츠와 거대한 치노 팬츠를 내보낸 것도 컬렉션의 방향을 미리 드러낸 선택이었다.
기본형 상의는 큰 하의의 기준점이 됐다. 몸에 가까이 붙은 티셔츠가 있어야 바지가 얼마나 넓어졌는지 알 수 있고, 단순한 탱크톱이 있어야 스커트가 차지하는 면적도 분명해진다. 피치올리는 일상복을 쿠튀르처럼 장식하기보다 쿠튀르의 재단을 일상복 옆에 놓았다.
라임색 재킷 아래에서는 바이올렛 깃털이 무릎부터 바닥까지 이어졌다. 재킷은 넓은 칼라와 긴 앞자락으로 상체를 덮었고, 하의는 가느다란 깃털 끝이 걸음에 따라 흔들렸다. 밝은 라임색과 짙은 바이올렛이 만나는 위치에서 단단한 상의가 끝나고 부드러운 하의가 시작됐다.
색을 작은 장식으로 나눠 넣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라임은 재킷 전체를 덮었고 바이올렛은 무릎 아래를 채웠다. 흰 재킷에는 코발트 블루 하의를 붙였으며 버건디 상의에는 분홍색 스커트를 연결했다. 상하의의 경계를 색으로 또렷하게 나누면서 각각의 길이와 폭이 쉽게 읽혔다.
피치올리의 색채는 발렌티노 시절부터 널리 알려졌지만 발렌시아가에서는 놓인 자리가 달라졌다. 몸을 따라 흐르는 드레스뿐 아니라 넓은 재킷과 둥근 스커트, 깃털 바지에 강한 색을 사용했다. 색을 감정적인 분위기로만 다루지 않고 재킷의 면적과 스커트의 길이를 구분하는 데 활용했다. 첫 쿠튀르에는 피치올리가 오랫동안 다뤄 온 색채와 발렌시아가의 큰 실루엣이 함께 놓였다.
검정 옷은 강한 색 사이에 반복해서 등장했다. 라임과 바이올렛, 진분홍, 녹색을 본 뒤 검정 드레스가 나오면 어깨와 소매, 밑단의 윤곽이 다시 앞으로 나왔다. 검정에서 원색으로 넘어간 뒤 끝나는 단순한 순서가 아니었다. 색으로 길이와 폭을 나누고, 검정으로 전체 형태를 묶는 구성이 번갈아 이어졌다.
진분홍색 깃털 착장은 상체와 하체를 각각 둥글게 부풀렸다. 어깨와 가슴을 감싼 깃털 아래로 좁은 허리가 드러났고, 허리 아래에는 또 하나의 큰 스커트가 놓였다. 위와 아래의 크기가 비슷했지만 가운데를 완전히 비워 두면서 두 덩어리가 분리됐다.
깃털은 칼라나 소매 끝에 붙인 장식에 머물지 않았다. 연보라색 깃털은 스커트 전체를 만들었고, 회갈색 깃털은 외투를 덮었다. 검은 깃털은 머리와 어깨를 한꺼번에 감쌌다. 깃털을 촘촘하게 붙인 부분은 원단처럼 몸을 가렸고, 길게 늘어뜨린 부분은 걸음마다 외곽을 흩뜨렸다.
재단으로 만든 큰 드레스와 깃털로 만든 큰 옷은 서로 다른 인상을 남겼다. 바이올렛 드레스의 밑단은 넓은 곡선을 유지했고, 깃털 스커트의 가장자리는 계속 갈라졌다. 크기는 비슷해도 하나는 형태가 먼저 읽혔고, 다른 하나는 표면의 움직임이 먼저 들어왔다. 컬렉션은 같은 부피를 원단과 깃털로 번갈아 만들며 차이를 드러냈다.
회갈색 깃털 외투 아래에서는 선명한 터키석색 바지가 드러났다. 외투는 몸통과 팔을 거의 덮었지만 깃털 끝이 흔들리면서 윤곽이 굳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지의 색이 부분적으로 나타났고, 회갈색 외투와 터키석 하의가 번갈아 시야에 들어왔다.
깃털을 사용한 옷은 크기에 비해 무겁게 가라앉지 않았다. 수천 개의 가느다란 끝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매끈한 가자(gazar) 계열의 드레스는 밑단의 큰 곡선을 유지했다. 한쪽에서는 원단이 실루엣을 붙잡고, 다른 쪽에서는 깃털이 가장자리를 흩뜨렸다. 벌룬 드레스와 깃털 의상이 같은 컬렉션 안에서 다른 속도로 움직인 이유다. 거대한 밑단과 깃털 의상은 이번 쇼를 대표한 요소로도 꼽혔다.
발렌시아가 쿠튀르에서 달라진 비례는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허리를 조이는 대신 어깨나 밑단을 넓혔고, 상하의 가운데 한쪽에만 부피를 집중했다. 티셔츠와 탱크톱은 원래 형태를 남긴 채 큰 치마와 바지를 받쳤다. 라임과 바이올렛, 코발트 블루는 상의와 하의를 큰 면으로 나눴다. 깃털은 옷 위에 더한 장식이 아니라 스커트와 외투의 몸체가 됐다.
피치올리의 첫 발렌시아가 쿠튀르는 크기만 앞세운 컬렉션과 달랐다. 검정 드레스의 소매가 커지면 몸통은 좁아졌고, 스커트가 넓어지면 상의는 민소매나 티셔츠로 정리됐다. 깃털을 많이 쓴 옷에는 절개와 장식을 덜었으며, 강한 색을 사용한 착장에는 무늬를 거의 넣지 않았다. 한 곳을 크게 만든 뒤 다른 곳을 비워 둔 선택이 전체 착장을 지탱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거대한 옷 자체보다 부피를 나눈 위치였다. 어깨, 소매, 등, 허리 아래, 밑단이 차례로 커졌고 목선과 몸통은 단순해졌다. 발렌시아가의 큰 실루엣은 모든 부분을 확대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넓힐 곳과 줄일 곳을 분명히 갈라 놓은 재단에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