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enciaga But Bigger⑤] 2026 오트 쿠튀르, 신기술 품고 아틀리에의 손 전면에

발렌시아가 3차원 인체 스캔부터 아이리스 반 헤르펜 입자가속기까지…몸의 윤곽을 새로 짠 파리 쿠튀르 4일

2026-07-16     박인경 기자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흰 드레스 안으로 팔과 허리, 다리의 윤곽이 사라졌다. 목 아래에서 시작한 원단은 바닥까지 넓게 퍼졌고 밑단 사이로 발만 드러났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가 발렌시아가에서 처음 선보인 오트 쿠튀르는 옷으로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대신 사람을 거대한 외곽 안에 넣었다. 같은 주간 스키아파렐리는 실리콘으로 피부를 다시 만들었고,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옷에 전기를 가두기 위해 입자가속기를 사용했다. 2026-27 가을·겨울 파리 오트 쿠튀르는 인체를 노출하고, 감싸고, 부풀리고, 지우는 방식으로 몸과 옷의 관계를 다시 다뤘다.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는 7월 6일부터 9일까지 나흘간 열렸다. 공식 일정에는 스키아파렐리, 아이리스 반 헤르펜, 디올, 샤넬, 발렌시아가를 포함한 30개 하우스가 이름을 올렸다.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컬렉션도 이어졌다. 발렌시아가의 피치올리, 디올의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샤넬의 마티외 블라지(Matthieu Blazy)가 각 하우스의 제작 기술을 새로운 옷으로 풀어냈다.

발렌시아가는 3차원으로 신체를 측정한 뒤 새로운 마네킹을 만들고, 가죽과 캐시미어를 손으로 성형했다. 몸에 옷을 맞추는 통상적인 맞춤 제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착용자의 몸 주위에 어느 정도의 공간을 남길지 먼저 정했다. 커다란 소매와 둥근 등, 넓은 밑단은 사람의 실제 체형을 따라가지 않았다. 내부에서 잡은 형태가 신체를 둘러싸면서 모델은 드레스의 중심에 남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윤곽에서는 빠졌다.

Balenciaga But Bigger: Pierpaolo Piccioli's Fall 2026 Couture Debut. 사진=Vogue Runwa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은 깃털을 두른 착장에서는 얼굴 아래의 신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머리 주변에서 뻗은 깃털이 어깨와 가슴까지 이어졌고 검은 하의는 바닥으로 길게 내려왔다. 필립 트레이시(Philip Treacy)와 함께 만든 깃털 조형물은 모자와 옷을 따로 나누기 어려운 크기였다.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몸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를 검은 형태 안에 넣었다.

스키아파렐리는 몸을 감추는 대신 피부를 옷의 재료로 바꿨다. 다니엘 로즈베리(Daniel Roseberry)의 ‘더 콜 오브 더 보이드(The Call of the Void)’에는 실제 몸통처럼 성형한 코르셋과 실리콘 아가미, 공기가 들어가 부풀어 오르는 라텍스 촉수가 등장했다. 실리콘 코르셋 제작에는 영화 촬영용 신생아 모형을 만드는 공방의 기술이 활용됐다. 장인의 손이 실크와 새틴을 다루던 범위를 넘어 피부와 장기, 생물의 표면을 재현하는 데까지 들어간 셈이다.

발렌시아가와 스키아파렐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인체의 익숙한 선을 흔들었다. 발렌시아가는 원단과 깃털로 실제 몸의 위치를 가렸고, 스키아파렐리는 몸통과 피부를 인공 소재로 복제했다. 한쪽에서는 사람이 옷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쪽에서는 옷이 사람의 피부처럼 바뀌었다. 가슴과 허리, 골반을 자연스럽게 이어오던 전통적인 드레스의 기준은 두 하우스에서 모두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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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의 바이올렛 드레스는 인체를 감추면서도 움직임까지 막지는 않았다. 상체 아래에서 넓어진 원단은 바닥 가까이 둥근 형태를 만들었고, 모델이 걸을 때마다 앞부분이 열리고 좌우의 높이가 달라졌다. 큰 드레스를 고정된 조각처럼 세우지 않고 보행과 바람에 따라 계속 달라지게 했다. 정면의 윤곽보다 걷는 동안 바뀌는 밑단이 옷의 형태를 완성했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은 인체와 옷의 경계를 물질과 에너지의 영역으로 옮겼다. ‘소닉 스타퀘이크스(Sonic Starquakes)’는 별 내부를 통과하는 진동과 초신성의 구조, 은하의 나선과 플라스마에서 출발했다. 대표작인 ‘프랙털 유니버스(Fractal Universe)’는 쇼를 앞두고 입자가속기 안에서 전하를 주입한 뒤 극저온으로 보존됐다. 수십억 개의 전자가 옷 안에 머물며 강한 전기장을 만들도록 설계한 작업이다.

옷에 가둔 전기는 런웨이 직전 예상과 다른 흔적을 남겼다. 전하가 먼저 빠져나가면서 원단 위에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자국이 생겼다. 실패한 실험을 폐기하지 않고 완성된 옷의 일부로 남겼다는 점도 눈에 띈다. 쿠튀르는 완벽하게 통제된 수공예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과학 장비와 우연한 결과까지 받아들였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다른 착장에는 손으로 불어 만든 유리구슬 약 3만 개가 얇은 튈 위에 놓였다. 몸은 투명한 원단 뒤로 비쳤지만 유리구슬의 반사와 흔들림이 실제 윤곽을 흐렸다. 발렌시아가가 큰 원단으로 몸을 가렸다면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작은 입자를 촘촘하게 쌓아 몸을 흩어 놓았다.

디올은 과학 장비 대신 손으로 평면 원단을 입체로 바꾸는 과정에 집중했다. 조나단 앤더슨은 미국 조각가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의 작업에서 출발해 손주름과 매듭, 드레이핑, 성형을 사용했다. 벵글리스가 평면 재료를 접고 묶어 조각으로 바꾼 방식이 원단을 옷으로 만드는 공정과 연결됐다. 인도 아마다바드와 이어진 작가의 이력은 18세기 친츠(chintz) 직물과 작은 가방의 세부 장식으로 들어갔다.

디올의 접근은 발렌시아가와 재료보다 제작 순서에서 만났다. 발렌시아가는 재단한 원단이 몸 주변에서 큰 공간을 만들도록 했고, 디올은 접고 묶은 원단이 표면에서 굴곡을 이루도록 했다. 두 하우스 모두 자수의 양보다 평면 직물이 입체적인 옷으로 바뀌는 과정에 무게를 뒀다. 발렌시아가의 밑단이 크게 부풀었다면 디올의 원단은 손주름과 매듭을 따라 안팎으로 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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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탱크톱과 회색 하의를 결합한 발렌시아가 착장은 쿠튀르 기술을 평범한 상의 옆에 놓았다. 상의에는 자수나 보석을 더하지 않았고, 허리 아래의 원단만 여러 번 접어 양옆으로 벌렸다. 디올이 손주름과 매듭으로 원단의 표면을 바꿨다면 발렌시아가는 커다란 접힘으로 골반과 밑단의 폭을 바꿨다. 손작업은 화려한 장식을 만드는 기술에서 옷의 길이와 폭을 결정하는 기술로 넓어졌다.

샤넬은 동화 속 식물과 황금알, 완두콩 모양의 신발 굽으로 런웨이를 꾸몄다. 마티외 블라지는 환상적인 배경 속에서도 옷이 몸의 움직임을 막지 않도록 했다. 몸에 가깝게 내려오는 옷과 상자형 재킷, 가벼운 깃털과 투명한 원단이 이어졌고, 작은 단추와 신발 장식에 동화의 이야기를 넣었다. 거대한 드레스로 인물을 바꾸기보다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샤넬의 옷에 세부적인 공상을 더했다.

샤넬과 발렌시아가는 옷의 크기에서 뚜렷이 갈렸다. 샤넬은 신체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가벼운 옷을 택했고, 발렌시아가는 신체보다 훨씬 큰 옷 안에 움직일 공간을 만들었다. 접근은 달랐지만 몸을 딱딱하게 고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같았다. 2026년 쿠튀르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은 얇고 편안한 옷뿐 아니라 커다란 케이프와 벌룬 드레스 안에서도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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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분홍색 깃털 착장은 어깨와 하체에 각각 큰 부피를 만들고 허리 부분만 좁게 비웠다. 깃털은 완성된 드레스 위에 붙인 장식이 아니라 상의와 스커트의 몸체가 됐다. 스키아파렐리가 실리콘과 라텍스로 새로운 피부를 만들고 아이리스 반 헤르펜이 유리구슬과 전기로 몸을 둘러쌌다면, 발렌시아가는 전통적인 쿠튀르 소재인 깃털의 사용 면적을 크게 넓혔다.

새로운 소재와 기계가 들어왔지만 2026년 파리 쿠튀르의 끝에는 사람의 손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스키아파렐리의 실리콘과 라텍스는 공방에서 성형하고 채색했으며, 디올의 주름과 매듭은 손으로 잡았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입자가속기 실험도 수만 개 유리구슬을 붙이는 작업과 함께 진행됐다. 발렌시아가는 3차원 신체 스캔과 바이오 엔지니어링 실크 대체 소재 에이엠실크(AMSilk)를 사용하면서 가죽과 캐시미어를 손으로 다뤘다.

기계와 손작업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디지털 측정은 발렌시아가의 재단을 더 정확하게 만들었고, 입자가속기는 아이리스 반 헤르펜의 원단에 사람이 손으로 만들기 어려운 흔적을 남겼다. 실리콘 성형 기술은 스키아파렐리의 코르셋을 실제 몸처럼 보이게 했다. 마지막 형태를 결정한 과정에는 패턴과 재단, 성형과 자수, 채색과 부착을 맡은 작업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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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 쇼가 끝나자 흰 작업복을 입은 아틀리에 구성원들이 피치올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신체 스캔과 새로운 섬유, 내부 구조와 깃털 작업을 거친 컬렉션의 마지막을 제작자들이 채웠다. 옷을 만든 사람들이 무대 뒤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 앞에 선 피날레는 파리 쿠튀르 주간에 이어진 흐름을 가장 직접적으로 정리했다.

오트 쿠튀르는 수백 명 수준의 고객을 위한 맞춤복이면서 향수와 가방, 기성복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산업의 실험실로도 기능한다. 럭셔리 시장이 2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나려는 시기에 주요 하우스는 새 디자이너와 쿠튀르 제작에 다시 힘을 실었다. 30개 하우스가 참여한 파리의 나흘은 화려한 드레스 경쟁에 머물지 않았다. 인체를 어떤 형태로 남길지, 새로운 장비와 소재를 아틀리에 안에서 어떻게 다룰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놓았다.

발렌시아가의 흰 드레스에서는 몸의 굴곡이 사라졌고, 스키아파렐리의 실리콘 코르셋에서는 인공 피부가 몸을 대신했다.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전기와 유리구슬로 인체의 경계를 흩뜨렸으며, 디올과 샤넬은 주름과 재단, 가벼운 움직임으로 사람이 입는 옷의 범위를 넓혔다. 기계가 쿠튀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2026년 여름, 파리의 아틀리에는 기술의 반대편이 아니라 기술을 옷으로 완성하는 마지막 공정에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