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이미지 컨설팅②] 허리선 하나로 달라진 상체와 하체의 비율
짧은 재킷·세로형 드레스·스트랩리스·볼륨 하의…피치올리 쿠튀르가 다시 나눈 몸의 길이
[KtN 박인경기자]갈색 재킷은 골반 위에서 끝났고, 밝은 색 스커트는 높은 위치에서 시작해 바닥 가까이 둥글게 퍼졌다. 짧게 정리된 상체와 큰 면적을 차지한 하체가 뚜렷하게 갈렸다. 실제 허리의 높이보다 재킷이 끝나고 스커트가 시작되는 선이 먼저 들어왔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의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에서 신체 비율을 바꾼 것은 몸 자체가 아니라 옷이 새로 정한 허리의 위치였다.
재킷의 갈색은 상체를 작은 사각형 안에 묶었다. 어깨선과 라펠은 단정하게 잡혔고, 소매도 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스커트는 허리 아래에서 폭을 넓히며 하체 대부분을 감쌌다. 상체가 짧아질수록 스커트의 길이는 길어졌고, 밝은 색의 넓은 면적도 하체 쪽으로 시선을 끌어내렸다.
짧은 상의와 높은 허리선은 상체 3, 하체 7에 가까운 비율을 만든다. 다리가 시작되는 위치가 실제보다 높게 인식돼 하체가 길어 보인다. 상의가 엉덩이를 덮고 허리선이 골반 가까이 내려가면 상체 4, 하체 6에 가까운 안정적인 비율로 바뀐다. 몸의 실제 치수보다 허리가 어디에 있다고 인식되는지가 전체 비율을 좌우한다.
다만 밝은 스커트의 큰 부피는 다리만 길게 보이게 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골반 아래의 면적을 넓혀 하체를 착장의 중심으로 만들고, 작은 재킷과 대비해 허리를 더 좁게 읽히게 한다. 하체의 길이와 폭을 동시에 키운 구성이다. 키를 커 보이게 하는 효과보다 상체를 압축하고 하체를 크게 확대하는 인상이 앞선다.
이미지 컨설팅에서 비율은 컬러·실루엣·소재·패턴과 나란히 살펴야 하는 요소다. 같은 길이의 재킷도 색이 어둡고 면적이 작으면 상체가 축소되고, 밝거나 부피가 크면 상체의 존재감이 커진다. 옷의 길이만 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상하의의 색과 부피, 소재의 움직임까지 함께 봐야 한다.
연한 파란색 드레스는 어깨에서 발목까지 거의 같은 폭으로 내려왔다. 허리를 가르는 벨트와 색의 변화, 큰 장식은 보이지 않았다. 상체와 하체가 별도의 구역으로 나뉘지 않으면서 몸 전체가 하나의 긴 세로형으로 정리됐다.
허리선을 높이면 하체가 길어 보이지만, 허리선을 지우면 몸 전체의 길이가 먼저 들어온다. 연한 파란색이 위아래로 끊기지 않고 이어져 시선도 어깨에서 밑단까지 곧게 내려갔다. 짧은 재킷과 큰 스커트처럼 상하체의 차이를 강조하는 방식과 정반대다.
반소매는 어깨 부근의 가로 폭을 짧게 끊고, 긴 드레스는 세로 길이를 늘렸다. 몸에 지나치게 달라붙지 않는 곧은 실루엣도 허리와 골반의 굴곡을 약하게 만들었다. 체형의 곡선을 강조하기보다 키와 자세, 걸음의 방향이 먼저 들어오는 구성이다.
허리선이 없는 드레스는 편안하고 차분한 인상을 만들지만, 상체가 실제보다 길어 보일 수 있다. 목선부터 밑단까지 같은 색과 폭이 이어지면 얼굴 아래의 중심점도 약해진다. 귀걸이나 목선의 작은 절개, 손에 든 액세서리처럼 시선을 한 번 멈출 요소가 필요한 이유다.
연한 파란색은 검정이나 짙은 색보다 세로선을 부드럽게 만든다. 같은 기장의 검정 드레스가 날카롭고 엄격하게 읽힌다면, 밝은 파란색은 긴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무게를 덜어낸다. 신장을 강조하되 강한 인상을 피하려는 옷차림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이다.
검정 후드 드레스는 머리에서 발목까지 어두운 색을 이어 붙였다. 목과 허리의 구분이 거의 사라졌고, 몸통은 길고 좁게 내려왔다. 밑단에 모인 검정 깃털만 발 주변에서 부피를 만들었다.
단색 옷은 상하의를 나누는 색의 경계를 없앤다. 검정은 몸의 굴곡과 절개를 흡수해 세로형 외곽을 먼저 남겼다. 후드까지 같은 색으로 이어지자 머리와 몸도 한 덩어리로 묶였다. 허리를 높여 다리를 길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전신을 하나의 긴 선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밑단의 깃털은 길게 이어진 검정선을 끊지 않으면서 무게를 아래로 내렸다. 깃털이 발목 주위에서 흔들릴 때마다 시선도 바닥 가까이 머물렀다. 상체에는 장식과 색의 변화가 없어 얼굴과 긴 몸통이 먼저 들어오고, 마지막에 밑단의 움직임이 남았다.
허리를 표시하지 않은 검정 드레스는 실제 신장을 길게 보이게 할 수 있지만 목과 상체도 함께 길어진다. 목이 짧거나 상체가 긴 체형에서는 후드와 높은 목선까지 더해질 경우 얼굴과 허리 사이가 답답하게 이어질 수 있다. 허리 부근에 작은 절개를 넣거나 팔목과 손을 드러내면 긴 검정 면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다.
검정 단색은 몸의 폭을 정리하는 데 유리하지만 모든 체형을 자동으로 날씬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옷의 폭이 넓거나 원단이 두꺼우면 검정도 큰 덩어리로 읽힌다. 긴 세로선과 함께 어깨·소매·밑단 가운데 어느 부분에 부피가 놓였는지를 따로 살펴야 한다.
밝은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어깨와 쇄골을 모두 드러내고, 허리 아래에서 스커트를 길게 펼쳤다. 상체는 몸에 가깝게 정리됐고 하체는 부드러운 소재와 장식으로 면적을 넓혔다. 목과 어깨가 드러난 부분까지 상체로 읽히지만, 드레스의 실제 원단은 허리 위에서 짧게 끝났다.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상체를 짧게 만드는 동시에 목과 어깨를 길게 드러낸다. 옷의 비율만 보면 하체가 길지만, 피부가 드러난 목과 쇄골까지 포함하면 상체에도 충분한 여백이 생긴다. 짧은 상의와 긴 스커트가 만드는 3대7 비율이 지나치게 급해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스커트의 밝은 색과 입체적인 표면은 하체의 면적을 더 크게 만들었다. 허리 아래의 부피가 커질수록 몸통은 상대적으로 가늘어지고, 노출된 어깨는 수평으로 넓게 읽힌다. 어깨와 스커트를 함께 넓히고 허리만 좁게 남긴 구성이 자연스러운 모래시계형 외곽을 만든다.
허리를 좁게 보이게 하는 방법이 반드시 벨트나 코르셋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깨와 하의의 면적을 키우면 가운데 놓인 허리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몸을 강하게 조이지 않고도 상체와 하체의 크기 차이로 허리선을 만들 수 있다.
스트랩리스 상의가 너무 짧거나 스커트가 지나치게 높게 시작하면 가슴 아래에서 곧바로 하체가 이어져 몸통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목걸이를 생략하고 쇄골의 여백을 살리거나, 허리 아래에서 스커트가 서서히 퍼지게 하면 상체와 하체 사이의 전환이 부드러워진다.
짙은 바이올렛 의상은 가슴 위에 수평선을 긋고 그 아래로 원단을 넓게 내려보냈다. 허리의 위치는 드러나지 않았고, 골반과 다리도 커다란 외곽 안에 들어갔다. 상체와 하체를 정확히 나누기보다 가슴 아래에서 시작한 하나의 큰 형태가 몸 전체를 감쌌다.
가슴선 바로 아래에서 원단이 퍼지면 시각상 상체는 짧아진다. 다만 허리와 다리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어 전통적인 3대7 비율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다. 다리가 길어 보이기보다 옷의 시작점이 높아지고, 신체의 세부 비율은 넓은 실루엣 안에서 사라진다.
수평으로 놓인 윗선은 어깨와 가슴 부근을 좌우로 넓히고, 아래로 내려오는 짙은 바이올렛은 세로 길이를 유지했다. 가로와 세로가 함께 들어가면서 몸은 작게 축소되지도, 한없이 길게 늘어나지도 않았다. 인체보다 의상의 큰 외곽이 먼저 읽혔다.
허리선이 사라진 옷은 몸의 굴곡을 감추고 움직임을 편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 가슴부터 밑단까지 폭이 계속 넓다면 몸 전체가 실제보다 커 보일 수 있다. 팔과 목, 발목처럼 신체의 가는 부분을 드러내거나, 원단의 한쪽을 열어 세로선을 만들면 큰 부피가 한 덩어리로 굳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바이올렛의 짙은 색은 넓은 면적을 한데 묶었다. 밝은 색이었다면 주름과 부피가 더 크게 드러났겠지만, 어두운 색이 굴곡을 눌러 크기에 비해 차분한 인상을 남겼다. 부피가 큰 옷에서 색의 깊이가 중요한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검정 드레스는 어깨와 스커트를 함께 넓히고 허리 부근만 좁게 남겼다. 위쪽에는 큰 칼라와 소매가 자리 잡았고, 아래쪽에서는 스커트가 바닥까지 퍼졌다. 허리에 뚜렷한 장식을 두지 않았지만 상체와 하체의 부피 차이가 몸의 가운데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갈색 재킷과 밝은 스커트가 상하의를 색과 길이로 나눴다면, 검정 드레스는 같은 색 안에서 폭의 차이로 비율을 정했다. 어깨에서 넓어졌다가 허리에서 좁아지고 다시 밑단에서 퍼지는 흐름이 이어졌다. 색의 경계가 없어도 실루엣만으로 상체·허리·하체가 구분됐다.
어깨와 하의를 모두 크게 만드는 옷은 체격을 확대할 수 있다. 허리의 좁은 구간이 충분히 확보되면 큰 부피가 몸을 덮는 대신 허리선을 강조한다. 반대로 허리 부근까지 원단이 넓게 이어지면 상체와 하체가 하나의 큰 덩어리로 합쳐진다.
검정은 폭이 가장 넓은 어깨와 밑단을 한 색으로 연결해 안정감을 만들었다. 밝은 배색이나 큰 무늬가 들어갔다면 위아래의 부피가 서로 경쟁했겠지만, 단색을 사용해 허리로 모였다가 다시 벌어지는 외곽에 시선을 남겼다.
피치올리의 발렌시아가 쿠튀르는 허리를 한 가지 높이에 고정하지 않았다. 짧은 재킷 아래에서는 허리선이 위로 올라갔고, 세로형 드레스와 후드 의상에서는 허리가 사라졌다. 스트랩리스 드레스는 좁은 몸통과 긴 스커트로 하체를 늘렸으며, 바이올렛 의상은 가슴 아래에서 큰 형태를 시작했다. 검정 드레스는 어깨와 밑단의 부피로 가운데 허리를 만들었다.
몸의 비율을 정리할 때 상의를 무조건 짧게 입거나 허리를 높이는 방법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리를 길게 보이게 하려면 짧은 상의와 높은 허리선이 효과적이고, 차분하고 안정적인 인상에는 상체와 하체를 4대6에 가깝게 나누는 편이 자연스럽다. 키와 체형의 굴곡을 강조하지 않으려면 단색의 세로형 옷으로 허리선을 지울 수 있다.
여섯 착장에서 달라진 것은 모델의 신체가 아니라 옷이 정한 기준선이었다. 재킷의 끝, 스커트의 시작점, 색이 바뀌는 위치, 원단이 퍼지는 높이가 새로운 허리가 됐다. 짧은 상체와 긴 하체, 곧게 이어진 전신,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는 모두 옷의 길이와 폭이 만든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