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이미지 컨설팅④] 깃털과 시어, 거대한 옷의 무게를 가른 소재 선택
은빛 투명 소재·붉은 깃털·무광 검정·짙은 자주색…같은 부피도 가볍거나 묵직하게 만든 질감의 차이
[KtN 박인경기자]
[KtN 박인경기자]은빛 시어(sheer) 소재가 어깨에서 발끝까지 길게 내려왔다. 원단은 몸을 넓게 감쌌지만 피부와 안쪽 의상의 선을 완전히 숨기지 않았다. 햇빛이 닿은 주름은 밝게 반사됐고, 얇은 가장자리는 걸음을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옷이 차지하는 면적은 컸지만 묵직한 인상은 남지 않았다.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의 발렌시아가 오트 쿠튀르에서 옷의 무게를 결정한 것은 원단의 양만이 아니었다. 투명도와 광택, 표면의 결, 움직이는 속도가 같은 크기의 옷을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은빛 원단은 신체를 감추는 동시에 안쪽의 윤곽을 남겼다. 불투명한 소재로 같은 길이와 폭을 만들었다면 모델의 몸은 하나의 큰 덩어리 안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피부가 희미하게 비치면서 옷과 사람의 경계가 완전히 끊기지 않았고, 넓은 케이프도 몸에서 멀리 떨어진 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광택도 부피를 잘게 나눴다. 햇빛을 받은 부분은 흰색에 가깝게 밝아졌고, 원단이 접힌 곳에는 회색 그림자가 생겼다. 하나의 은빛 면이 밝고 어두운 여러 구역으로 나뉘면서 옷의 크기도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끈한 광택은 주름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고, 긴 실루엣에는 가벼운 속도를 더했다.
시어 소재가 늘 부드럽고 가벼운 인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원단을 여러 겹 포개거나 어두운 색을 사용하면 투명해도 밀도가 높아진다. 장식이 많고 표면의 반사가 강하면 얇은 소재가 오히려 사람보다 먼저 들어올 수도 있다. 소재의 두께와 함께 색, 겹의 수, 광택의 세기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옷의 질감은 피부와 머릿결의 질감, 얼굴과 골격의 크기와도 맞물린다. 가늘고 매끄러운 머릿결과 섬세한 이목구비에는 얇고 고운 원단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굵고 풍성한 헤어와 크고 분명한 골격에는 두께와 밀도가 있는 소재가 전체 균형을 잡기 쉽다. 서로 반대되는 질감을 사용하면 편안한 조화보다 의도적인 대비가 앞선다.
런웨이 사진만으로 모델 개인의 피부와 머릿결, 골격의 무게를 판정할 수는 없다. 이번 분석은 의상에 사용된 질감이 신체의 크기와 인상을 어떻게 달리 보이게 했는지에 한정한다.
붉은 깃털은 양팔을 크게 감쌌고, 가운데에는 흰색 상의가 남았다. 하의는 광택을 줄인 회갈색 원단으로 넓고 길게 내려왔다. 어깨와 팔의 부피는 컸지만 깃털 끝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 단단하게 굳지 않았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외곽이 흩어지면서 큰 소매가 고정된 구조물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깃털 사이에 놓인 흰색 상의는 상체를 한 덩어리로 합치는 것을 막았다. 붉은 부피가 양옆으로 벌어지고, 가운데의 밝은 세로면이 실제 몸통의 폭을 드러냈다. 어깨가 넓어졌지만 몸 전체가 커 보이지 않은 이유다. 큰 장식을 사용할 때 신체의 일부를 단순하게 남겨야 하는 까닭도 같은 데 있다.
붉은 깃털과 회갈색 하의는 색과 질감에서도 분명히 갈렸다. 상체는 밝고 거칠며 움직임이 많았다. 하체는 채도가 낮고 표면도 비교적 차분했다. 시선은 먼저 어깨와 팔로 올라갔고, 길게 떨어지는 바지가 아래에서 균형을 잡았다. 깃털을 상하체에 모두 사용했다면 의상의 부피와 움직임이 서로 경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깨와 팔에 큰 장식을 두면 얼굴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있다. 반면 이목구비가 섬세하거나 체격이 작은 사람에게는 장식의 면적이 인물을 압도할 수 있다. 일상복에서는 깃털의 길이와 밀도를 줄이거나 한쪽 소매, 칼라, 가방처럼 제한된 구역에 사용하면 소재의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얼굴과 몸의 비율을 살릴 수 있다.
깃털의 색이 얼굴 가까이에 놓인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선명한 빨강은 피부의 혈색과 입술, 눈매의 대비를 크게 만든다. 색과 소재가 모두 강한 옷에서는 헤어와 메이크업을 복잡하게 더하기보다 얼굴 주변을 정돈하는 편이 안정적이다.
검정 드레스는 어깨와 팔, 허리 아래에 둥근 부피를 겹쳤다. 표면은 깃털처럼 흩어지지 않았고, 빛의 반사도 크지 않았다. 검정색과 불투명한 원단이 주름과 절개를 한데 묶으면서 옷 전체가 단단하고 묵직한 형태로 남았다.
검정은 몸의 굴곡을 감추고 외곽을 먼저 드러냈다. 어깨의 큰 곡선과 허리 아래의 둥근 부분이 이어지면서 실제 팔과 골반의 위치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얼굴과 손처럼 피부가 보이는 부분만 의상에서 분리됐고, 사람의 체형보다 검은 실루엣의 크기가 앞섰다.
광택이 적은 검정 소재는 깊이와 무게를 더한다. 빛이 표면에서 크게 튀지 않기 때문에 옷의 각 부분이 밝고 어두운 면으로 잘게 나뉘지 않는다. 넓은 소매와 스커트가 하나의 검은 덩어리로 이어지고, 부피도 실제보다 크게 느껴진다.
같은 검정이라도 새틴처럼 빛을 반사하는 소재를 사용하면 주름과 곡선이 드러나 크기가 나뉜다. 반대로 무광에 가까운 소재는 구조를 감추고 외곽을 강조한다. 권위와 긴장감, 조형적인 인상을 원할 때 효과적이지만 체격과 얼굴의 선이 작고 부드러운 사람에게는 옷이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다.
큰 검정 의상을 일상에 옮길 때는 피부가 드러나는 구역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목선과 손목, 발목 가운데 한두 곳을 열면 긴 검정 면이 나뉜다. 귀걸이와 신발에 밝은 소재를 넣어 시선을 분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옷의 부피를 줄이지 않고도 무게를 덜 수 있다.
검정 재킷과 바지는 머리 아래에서 발목까지 긴 세로선을 만들었다. 시선은 발 주변에 놓인 흰색 깃털에서 한 번 멈췄다. 상체와 하체를 모두 검정으로 정리한 뒤 밝고 가벼운 소재를 밑단에만 배치해 무게의 중심을 아래로 옮겼다.
흰 깃털은 검정 의상과 색·질감 모두에서 대조를 이뤘다. 검정 원단은 길고 매끈하게 떨어졌고, 흰 깃털은 짧은 끝이 여러 방향으로 흔들렸다. 검정 바지가 발을 덮었지만 밑단이 무겁게 뭉치지 않았고, 걸음이 시작되는 위치도 또렷하게 드러났다.
밝은 장식을 발목에 두면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신장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키가 작거나 하체가 짧은 사람에게는 하단의 강한 대비가 다리 길이를 끊을 수 있다. 바지와 신발의 색을 연결하면 세로선이 유지되고, 장식의 폭을 줄이면 발목에 시선이 과도하게 머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검정 의상에 흰 장식을 더한 배색은 얼굴 주변을 비워 둔다는 장점도 있다. 상체에 강한 목걸이와 칼라, 패턴을 함께 넣지 않아 얼굴과 재킷의 선이 단정하게 남았다. 소재의 강조점을 한 곳에만 두면서 긴 검정 옷이 단조롭게 가라앉는 것도 피했다.
장식의 위치는 체형 보완과 이미지 형성에 직접 관여한다. 어깨의 깃털은 상체를 넓히고, 허리의 깃털은 몸의 가운데를 강조한다. 발목의 깃털은 보행과 하체 길이에 시선을 모은다. 같은 소재라도 어느 위치에 얼마나 넓게 사용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바이올렛 시어 상의 아래에는 짙은 자주색 깃털 하의가 이어졌다. 상체는 피부가 비칠 만큼 가벼웠고, 허리 아래에는 밀도 높은 깃털이 넓은 부피를 만들었다. 색 계열은 비슷했지만 투명도와 질감이 크게 달라 상체와 하체가 분명히 나뉘었다.
얇은 상의는 목과 팔, 몸통의 위치를 그대로 남겼다. 하체는 깃털이 골반과 다리의 선을 감쌌다. 피부가 드러난 상체가 실제 신체의 크기를 알려 주면서 깃털 하의의 부피는 더 크게 느껴졌다. 상하체를 모두 두껍게 감쌌을 때보다 크기의 대비가 선명했다.
같은 색 계열을 사용한 점은 신장의 흐름을 끊지 않았다. 상의와 하의가 서로 다른 색이었다면 허리에서 강한 경계가 생겼겠지만, 바이올렛과 자주색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세로선은 유지됐다. 질감은 갈렸지만 색이 연결돼 의상 전체가 여러 조각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밝고 투명한 상의와 어둡고 거친 하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상체가 가볍고 하체가 큰 체형에서는 원래의 비율을 더 강조할 수 있다. 하체의 부피를 줄이고 싶다면 깃털의 길이와 밀도를 낮추거나, 상의의 어깨와 소매에 조금 더 구조를 더해 위아래의 면적을 맞출 수 있다.
반대로 상체가 크고 하체가 가는 체형에는 밝고 얇은 상의보다 상체의 색을 한 단계 낮추고, 하의에 질감과 밝기를 더하는 방식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소재 선택은 체형을 감추는 작업보다 시선을 어디에 머물게 할지 정하는 작업에 가깝다.
짙은 자주색 드레스는 얇은 원단을 여러 겹 겹쳤다. 팔과 다리의 일부가 비쳤지만 색이 깊고 겹이 많아 은빛 시어 의상처럼 가볍게 흩어지지는 않았다. 목을 높게 감싼 상의와 길게 늘어진 스커트가 몸을 세로로 감싸면서 차분하고 묵직한 인상을 남겼다.
투명한 소재와 가벼운 소재를 같은 뜻으로 볼 수 없는 착장이다. 자주색의 깊이가 피부와 원단의 대비를 낮췄고, 여러 겹의 주름이 빛을 흡수했다. 바람에 움직이는 부분은 많았지만 전체 실루엣은 한 방향으로 길게 내려갔다.
목선이 높아 얼굴 아래의 여백이 줄어든 점도 무게를 더했다. 은빛 의상은 목과 가슴 부근에 밝은 공간이 있었고, 빛의 반사가 얼굴과 옷 사이를 열었다. 짙은 자주색 드레스는 턱 아래부터 색이 시작돼 얼굴을 단단하게 받쳤다. 얇은 원단의 부드러움보다 어두운 색과 높은 목선의 힘이 앞섰다.
자주색 드레스는 얇은 소재를 성숙하고 절제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시어 소재를 밝고 로맨틱한 옷에만 적용하지 않고 깊은 색과 긴 실루엣에 넣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피부가 비치는 정도를 줄이고 안쪽 의상의 색을 맞추면 투명성은 남기면서도 노출의 인상은 낮출 수 있다.
얇은 소재가 얼굴과 체격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색을 어둡게 고르고 원단을 여러 겹 사용하면 질감에 깊이가 생긴다. 반대로 무거운 소재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색을 밝게 하거나 광택과 투명성을 더해 면적을 나누는 편이 자연스럽다.
여섯 의상은 옷의 크기와 실제 무게가 이미지의 무게와 같지 않다는 점을 드러냈다. 은빛 시어 소재는 몸을 넓게 덮고도 가볍게 움직였고, 붉은 깃털은 큰 소매의 가장자리를 흩뜨렸다. 무광 검정은 같은 부피를 하나의 단단한 외곽으로 묶었다. 흰 깃털은 긴 검정 의상의 무게를 발끝에서 끊었고, 바이올렛과 자주색은 투명한 상의와 밀도 높은 하의를 한 색 계열로 연결했다.
자신에게 맞는 소재를 고를 때는 얇거나 두껍다는 기준만으로 부족하다. 빛을 얼마나 반사하는지, 피부가 어느 정도 비치는지, 표면이 매끄러운지 거친지, 걸을 때 외곽이 유지되는지 흩어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피부와 머릿결의 질감이 고우면 섬세한 소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강한 골격과 풍성한 헤어에는 밀도 있는 직물이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반대 질감을 선택하면 조화보다 소재 자체의 존재감이 커진다.
발렌시아가의 거대한 실루엣은 재단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같은 크기의 옷도 은빛 시어에서는 공기처럼 흩어졌고, 무광 검정에서는 단단한 덩어리로 남았다. 깃털은 사용 위치에 따라 어깨를 넓히거나 발끝을 가볍게 만들었다. 옷의 크기를 줄이지 않고 인상을 바꾸는 방법은 소재의 두께보다 투명도와 광택, 표면의 밀도를 조절하는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