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사진축제 2026①] 밍 스미스, 흐림으로 남긴 재즈의 시간
생트안 교회에 펼친 ‘Wandering Light’…선 라의 잔상과 겹쳐진 색채, 선명한 한순간 대신 움직임의 지속을 기록
[KtN 김성은기자]은빛 의상을 입은 재즈 음악가 선 라(Sun Ra)의 팔이 사진 오른쪽으로 길게 뻗는다. 얼굴에는 둥근 반사광 두 개가 남았고, 상체를 감싼 옷은 검은 공간 위로 잘게 흩어진다. 뒤편 연주자와 악기는 어둠 속에 잠겨 있다. 밍 스미스(Ming Smith)의 ‘Sun Ra Space II’(1978)는 공연자의 자세를 정확하게 멈춰 세우지 않는다. 몸이 움직인 거리와 조명이 튕겨 나온 흔적, 셔터가 열려 있던 시간을 한 장의 사진에 겹쳐 놓는다.
프랑스 아를에서 7월 6일 개막한 레콩트르 다를(Les Rencontres d’Arles·아를 국제사진축제)은 밍 스미스의 수십 년 작업을 ‘Wandering Light’로 묶었다. 전시는 생트안 교회(Église Sainte-Anne)에서 10월 4일까지 열린다. 2026년 축제는 세계를 단순한 구도로 나누기보다 현실에 남은 복합성과 차이를 다시 살피는 ‘Worlds in View’를 내걸었다. 밍 스미스의 사진은 선명한 피사체와 즉각적인 정보만으로 현실을 설명하지 않는 흐름의 앞쪽에 놓였다.
‘Sun Ra Space II’에서 가장 밝은 부분은 선 라의 얼굴이 아니다. 무대 조명을 받은 안경과 의상, 빠르게 이동한 팔의 궤적이 인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머리와 몸통은 사진 중앙에 남아 있지만 오른팔과 옷의 일부는 여러 위치에 동시에 존재한다. 한순간의 자세를 선택하는 대신 동작이 시작돼 끝날 때까지의 시간을 사진 안에 쌓은 결과다.
공연사진은 통상 연주자의 표정과 악기, 몸의 자세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고른다. 빠른 셔터는 움직임을 잘라 내고, 무대 위에서 벌어진 일을 한 컷으로 요약한다. 밍 스미스는 반대 방향으로 간다. 낮은 조도와 움직임을 지우지 않고 인물과 배경의 경계를 풀어 놓는다. 선 라의 몸은 무대에서 분리된 단단한 형체가 아니라 음악과 조명, 주변 연주자 사이를 통과하는 움직임으로 남는다.
밍 스미스의 작업에서 재즈와 블루스는 단순한 촬영 대상이 아니다. 선 라와 아서 블라이스(Arthur Blythe), 파라오 샌더스(Pharoah Sanders)를 비롯한 음악가들을 촬영한 사진에는 공연의 박자와 속도, 즉흥성이 구도 안에 들어온다. 뉴욕현대미술관(MoMA)도 밍 스미스의 사진과 재즈·블루스의 관계를 별도 프로그램으로 다루며 ‘Sun Ra Space II’를 주요 작업 가운데 하나로 소개했다. 작품은 1978년 미국 뉴욕에서 촬영됐다.
사진의 흐림은 기술적 실패와 구별된다. 초점이 흔들렸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Sun Ra Space II’에서는 선 라의 얼굴, 의상, 팔, 배경 연주자 사이의 밝기와 움직임이 서로 다른 속도로 남아 있다. 인물의 중심은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부분만 길게 확장됐고, 검은 배경은 은빛 잔상을 받아내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흐림은 피사체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아니라 어느 부분을 붙잡고 어느 부분을 흘려보낼지 결정한 결과다.
사진 속 정보는 줄어든다.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 무대의 규모가 어땠는지, 뒤편에 몇 명이 있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대신 공연자의 몸이 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없는 정지사진에서 리듬은 팔의 궤적과 의상의 반사광으로 바뀐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를 빛의 이동이 채운다.
‘Wandering Light’라는 전시 제목도 한곳에 고정되지 않는 빛을 가리킨다. 밍 스미스는 도시와 공연장, 거리와 실내를 오가며 인물의 몸에 닿았다가 사라지는 빛을 촬영해 왔다. 작품에는 또렷한 얼굴보다 어둠 속에서 잠시 드러난 윤곽, 이동 중 겹쳐진 신체, 유리와 안개를 통과한 빛이 자주 남는다. 사진이 대상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보다 촬영자가 잠깐 마주친 상태를 보존하는 데 가깝다.
‘Flamingo Fandango (Painted)’(1988)는 흑백사진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임을 확장한다. 노란색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사진을 가득 채우고, 허리 주변의 초록색 장식과 분홍색 흔적이 몸 사이로 번진다. 얼굴과 팔다리는 서로 겹쳐 개별 인물로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사진 위쪽의 밝은 빛과 아래쪽의 짙은 색 사이에서 군중 전체가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든다. 작품명과 제작연도는 2026년 아를 사진축제 소개 이미지에 명시돼 있다.
‘Sun Ra Space II’에서는 한 사람의 팔과 의상이 이동한 시간을 보여 준다. ‘Flamingo Fandango (Painted)’에서는 여러 사람의 몸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색의 층을 만든다. 선 라의 사진이 검은 바탕과 은빛 반사의 대비로 속도를 드러낸다면, 1988년 작품은 노랑과 초록의 반복으로 집단의 리듬을 전달한다.
두 작품 모두 표정이나 신체의 정확한 형태를 중심에 놓지 않는다. ‘Flamingo Fandango (Painted)’에서 앞줄과 뒷줄의 인물을 분리하거나 사람 수를 세려는 시도는 곧 막힌다. 인물들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도 한 번에 정리되지 않는다. 눈은 사진 속 노란색과 초록색의 흐름을 따라 여러 차례 이동해야 한다. 보는 시간은 이미지가 제공하는 정보의 속도보다 느려진다.
색채도 사물의 고유한 색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노란색은 의상의 색이면서 군중의 부피를 만들고, 초록색은 장식이면서 인물 사이의 움직임을 잇는다. 붉은색과 분홍색은 중심을 차지하지 않지만 군중의 흐름 속에 짧은 박자를 더한다. 개별 인물의 외양보다 반복되는 색의 밀도가 사진의 질서를 결정한다.
밍 스미스의 사진을 오래된 필름의 분위기나 복고적 취향으로만 읽으면 작업의 구조가 좁아진다. 흐림과 입자, 짙은 어둠은 과거를 흉내 내는 표면이 아니다. 선 라의 공연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움직임과 군중의 춤처럼 여러 몸이 섞이는 시간을 한 장에 남기기 위한 방식이다. 사진이 대상을 얼마나 선명하게 복제했는지가 아니라 촬영 당시 흘러간 시간을 어느 정도 보존했는지가 중요해진다.
디지털 이미지 환경에서는 얼굴과 사물의 윤곽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사진이 반복적으로 생산된다. 밍 스미스의 작업은 반대의 관람을 요구한다. 인물을 바로 식별하기 어렵고, 사진 속 상황도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관람자는 어둠 속에 남은 작은 빛과 흔들린 몸의 방향을 따라가며 사진에 머물러야 한다. 선명도가 낮아진 만큼 해석의 범위와 관람 시간은 늘어난다.
‘Wandering Light’는 밍 스미스의 작업을 단순한 회고전의 시간순 배열로만 제시하지 않는다. 재즈와 춤, 도시와 여행, 흑백과 색채를 오가며 빛이 사람의 몸과 장소를 바꾸는 방식을 보여 준다. 축제는 밍 스미스를 뉴욕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한 첫 흑인 사진가이자 흑인 사진가 집단 카모잉게 워크숍(Kamoinge Workshop)의 역사적 구성원으로 소개했다. 사진 제도 안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작업이 아를의 대형 개인전으로 다시 놓인 배경도 함께 읽힌다.
생트안 교회에 걸린 사진들은 결정적인 한순간보다 순간과 순간 사이에 남은 흔적을 보여 준다. 선 라의 팔은 한 위치에 고정되지 않고, 노란 옷을 입은 군중은 개별 인물의 경계를 넘어선다. 밍 스미스가 기록한 대상은 공연자와 무용수이면서, 몸을 통과한 시간과 빛이다.
‘Wandering Light’는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아를 사진축제의 첫 번째 흐름은 새로운 장비나 높은 해상도가 아니라 오래된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진 한 장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담을 수 있는지, 또렷하지 않은 형체가 어느 정도까지 현실을 기록할 수 있는지다. 밍 스미스는 흐림을 선명도의 반대편에 놓지 않는다. 사라지기 직전의 빛과 이동 중인 몸까지 기록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