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사진축제 2026③] 사진·음악·영상·아카이브, ‘함께’를 전시하는 법

마누엘 리베라 오르티스 재단 ‘Come Together’…이주와 장례, 가족과 창작 공동체를 병렬로 놓은 복합 전시

2026-07-15     김성은 기자
올렌카 카라스코, 베르디아나 알바노(Verdiana Albano), 안디 갈디 빈코(Andi Gáldi Vinkó), 앙틴 카를라 이제르(Antine Karla Yzer)

[KtN 김성은기자]검은 수면 한가운데 한 사람이 누워 있다. 물 위로 들어온 햇빛은 몸 주변에서 작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인물의 얼굴과 팔다리는 어둠에 잠긴다. 물결은 몸을 밀어내지 않고 느슨하게 감싼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사진 전체를 채운다.

다음 사진에는 기울어진 튤립과 액자 속 여성, 오래된 가구가 놓여 있다. 어두운 숲과 물가에 모인 플라밍고 무리도 이어진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얇고 투명한 흰 천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온다. 인물, 가족사진, 동물, 설치 작업은 하나의 사건이나 지역으로 묶이지 않는다. 서로 떨어진 이미지 사이에서 고립과 관계, 기억과 부재가 교차한다.

프랑스 아를의 마누엘 리베라 오르티스 재단(Fondation Manuel Rivera-Ortiz)이 7월 6일 개막한 ‘Come Together’는 2026 레콩트르 다를(Les Rencontres d’Arles)의 연계 프로그램이다.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상, 음악, 실험적 이미지가 한 건물에 들어왔으며 장례 의식과 가족관계, 교육, 공동생활, 이주, 우연한 만남을 서로 다른 작업으로 펼친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이어진다.

‘함께’라는 제목은 화합이나 연대를 단정하지 않는다. 전시가 다루는 연결에는 신뢰와 친밀감뿐 아니라 단절, 긴장, 취약성도 포함된다. 이념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 개인의 고립, 무력 충돌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사람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연결과 분리는 반대편에 놓인 개념이 아니라 한 관계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로 다뤄진다.

올렌카 카라스코, 베르디아나 알바노(Verdiana Albano), 안디 갈디 빈코(Andi Gáldi Vinkó), 앙틴 카를라 이제르(Antine Karla Yzer)

붉은 튤립 몇 송이가 유리병 밖으로 몸을 기울인다. 꽃병 뒤에는 여성의 초상사진이 놓였고, 오른쪽의 밝은 천과 오래된 목재 가구가 실내를 채운다. 액자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존하지만 사진 속 인물의 신원이나 촬영 시점, 꽃을 놓은 사람과의 관계는 공개된 이미지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전시가 개인의 기억을 다루는 방식은 설명보다 배열에 가깝다. 꽃과 초상, 가구처럼 서로 다른 시간에 속한 물건이 한곳에 모이면서 집 안에 축적된 생활과 부재를 떠올리게 한다. 가족의 역사를 인물의 얼굴 하나로 요약하지 않고 주변에 남겨진 사물과 보관 방식까지 기록의 범위에 넣는다.

‘Come Together’는 주제가 비슷한 사진을 한 줄로 나열하는 전시와 거리를 둔다. 참여 작가들은 다큐멘터리 사진과 영상, 음악, 개인 아카이브, 설치를 사용하며 각자의 지역과 제작 방식을 유지한다. 관람객은 통일된 시각 양식을 따라가기보다 서로 다른 작업 사이를 이동하며 연결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피게 된다.

참여진도 단일 큐레이터의 선택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레굴라 추미(Regula Tschumi), 에리크 부베(Eric Bouvet)와 얀 모르방(Yan Morvan), 위안광밍(Yuan Goang-Ming), 올렌카 카라스코(Oleñka Carrasco)와 라 치카(La Chica), 셸비 덩컨(Shelby Duncan)을 비롯해 포토하우스(FOTOHAUS), 교육기관과 사진 단체 소속 작가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여러 큐레이터와 기관이 전시를 나눠 구성했으며 예술감독은 페루 출신 철학자이자 사진가인 알레한드로 레온 카녹(Alejandro León Cannock)이 맡았다.

레굴라 추미의 ‘Buried in Style’은 가나 남부 그레이터아크라 지역의 가(Ga) 공동체에서 이어지는 장례 문화를 기록한다. 직업과 사회적 지위, 생전의 열망을 반영해 만든 형상 관은 죽음을 개인의 소멸에만 가두지 않는다. 장례식은 산 사람과 조상의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공동 행사로 치러지고, 관의 형태와 색채는 고인을 사회적 기억 속에 남기는 수단이 된다.

장례를 다룬 사진에서 화려한 관은 슬픔을 감추는 장식이 아니다. 상실을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물건이다. 사진은 의례를 낯선 풍습으로 전시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죽은 사람의 삶을 어떤 이미지와 사물로 보존하는지 기록한다. 개인의 죽음과 공동체의 기억, 전통과 현재의 소비문화가 하나의 구조 안에 놓인다.

밍 스미스(Ming Smith), ‘Flamingo Fandango (Painted)’, 1988. 작가 제공

어두운 숲 아래 플라밍고 무리가 모여 있다. 몇몇 새는 머리를 숙이고, 일부는 목을 세운 채 주변을 살핀다. 앞쪽의 새들은 작은 밝은 점으로 흩어지고 뒤쪽의 무리는 나무 그림자와 섞인다. 분홍빛으로 널리 알려진 플라밍고의 색은 거의 사라지고, 집단의 크기와 서식지의 어둠이 먼저 드러난다.

한 마리의 동물을 중심에 세운 야생사진과 달리 개별 개체를 구분하기 어렵다. 새들은 무리를 이루지만 모두 같은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상태가 연결과 분리를 함께 다루는 전시 구성과 맞물린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한 주제는 동물의 집단과 서식 환경까지 넓어진다.

올렌카 카라스코와 음악가 라 치카가 공동 제작한 ‘Le chaos qui me donne la vie. Atlas d’un pays imaginé’는 사진과 음악을 결합해 고향을 떠난 사람의 기억을 다룬다. 베네수엘라 엘카야오의 카리브해 이주 역사에서 출발해 과들루프, 트리니다드 토바고, 프랑스령 기아나를 이동하며 촬영하고, 현실에서 방문할 수 없는 베네수엘라를 네 번째의 상상된 영토로 배치했다.

네 지역을 하나의 지도 위에 고정하지 않고 소리와 몸, 의식, 기억의 조각으로 연결한 구성이 특징이다. 카니발과 칼립소, 크리올 문화는 과거의 전통으로 보존되는 대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바뀌는 기억으로 등장한다. 고향은 국경 안에 남아 있는 장소이면서 떠난 사람이 음악과 이미지로 다시 구성하는 공간이 된다.

사진 중심의 축제에서 음악을 별도의 배경음으로 사용하지 않고 작품의 한 축으로 놓은 점도 눈에 띈다. 사진은 고향에서 멀어진 거리를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음악은 국경을 넘어 이어진 언어와 리듬을 전달한다. 한 매체만으로 완성된 기록보다 이미지와 소리가 서로의 빈 부분을 보완하는 전시 방식이다.

Show window, Oct 2025, London © Park Chan-wook

얇은 흰 천이 높은 곳에서 수직으로 내려와 바닥 위에 길게 쌓였다. 빛을 통과시키는 소재 뒤로 검은 구조물이 비치고, 바닥에 접힌 부분은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벽에 고정된 사진처럼 정면에서만 볼 수 없으며 관람자의 위치와 이동에 따라 천 뒤의 공간이 달라진다.

인화 사진을 액자 안에 보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지가 놓이는 물질과 공간까지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인 구성이다. 사진은 벽면에 걸린 결과물에 머물지 않고 천과 음향, 영상, 문서, 개인 소장품과 함께 배치된다. 관람객은 사진 한 점을 독립적으로 감상하기보다 작품 사이를 걸으며 순서와 거리를 직접 조절한다.

셸비 덩컨의 ‘House of Love’도 완성된 사진만 전시하지 않는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치우드캐니언의 한 주택에 모여 살았던 예술가와 음악가, 영화인 공동체를 사진과 글, 개인 아카이브, 일시적인 재료로 재구성했다. 셸비 덩컨은 공동체 내부에 거주했던 참여자로서 관찰자와 피사체의 경계를 나누지 않았다.

소셜미디어가 생활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분류하기 전, 집 안에서 이어진 창작과 친밀감은 사적인 기록으로 남았다. 전시장에 들어온 사진과 물건은 당시 공동체를 그대로 복원하지 않는다. 흩어진 자료를 다시 배열해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공동 기억으로 남는지 보여 준다.

마누엘 리베라 오르티스 재단은 2026년 프로그램을 계기로 전시장 운영 범위를 제작과 연구, 교육으로 넓혔다. 신진 작가와 글로벌 사우스 출신 작가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고 학교, 대학, 연구자, 문화기관과의 협업도 강화했다. 전시 해설과 교육 프로그램은 관람객에게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을 함께 살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Come Together’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지 않는 작업들이 모였다. 가나의 장례 의식과 베네수엘라 이주민의 기억, 로스앤젤레스의 창작 공동체, 가족의 아카이브와 생태 환경은 서로 다른 속도로 전개된다. 전시는 차이를 지운 뒤 연대를 선언하지 않는다. 떨어져 있는 이미지와 소리, 사물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사람이 관계를 만들고 잃고 다시 기록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마누엘 리베라 오르티스 재단의 전시장은 10월 4일까지 사진과 음악, 영상, 설치, 아카이브를 함께 수용한다. 수면 위에 놓인 몸에서 시작된 시선은 가족사진과 꽃, 동물의 무리, 바닥에 쌓인 천으로 이어진다. 관람 동선 끝에 남는 것은 하나로 정리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관계의 여러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