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와이즈 ‘Extrasensory’②] 기도초와 UFO 기념품, 믿음이 상품이 되는 순간
바젤 KBH.G 입구에 가상 상점 설치…성상·타로·외계 문화와 영화 출연진을 한 진열대에 배치
[KtN 임민정기자]‘Music to my intern’s ears’라는 문구 아래 기도초가 한 줄로 늘어섰다. 초마다 서로 다른 인물의 얼굴이 인쇄됐고, 선반에는 작은 종교 장식물과 기념품이 촘촘히 놓였다. 푸른 벽에는 사진과 포스터가 붙었으며 낡은 브라운관 텔레비전도 한쪽을 차지했다. 기도처와 관광 기념품점, 오래된 비디오 가게를 한데 옮겨놓은 듯한 실내다.
클로이 와이즈(Chloe Wise)의 개인전 ‘Extrasensory’가 열리고 있는 스위스 바젤의 바젤 H. 가이거 문화재단(Kulturstiftung Basel H. Geiger·KBH.G)에는 별도의 기념품 매장이 없다. 관객이 처음 들어서는 상점 자체가 전시를 이루는 설치 작업이다. 6월 12일 개막한 전시는 사무엘 로이엔베르거(Samuel Leuenberger)가 기획했으며 9월 6일까지 이어진다. 와이즈가 스위스 미술기관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으로, 영화 ‘PsyFi*’와 세 개의 공간, 영문·독문 출판물을 함께 구성했다.
상점 안에는 UFO 관련 물품과 타로 카드, 외계인 기념품, 종교 장식물, 기도초가 함께 진열됐다. 영화에 출연한 JT와 마일스 그린버그(Miles Greenberg), 모지스 섬니(Moses Sumney)의 얼굴도 기도초에 들어갔다. 종교적 인물을 새겨 넣던 물건에 배우와 음악가의 얼굴을 인쇄하면서 성상과 스타 이미지가 같은 상품 형식을 공유한다. 관객은 영화 속 배역이나 줄거리를 알기 전에 판매용 물건처럼 포장된 얼굴부터 만난다.
입구에서 ‘PsyFi*’를 바로 상영하지 않은 선택은 관람 순서를 넘어 전시의 내용을 결정한다. 천사와 외계 생명체, 종교적 계시와 비인간 지성을 다루는 영화보다 소형 상품이 먼저 나온다.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를 접하는 통로가 웅장한 종교 건축이나 과학 자료가 아니라 성경, 묵주, 타로 카드, ‘I want to believe’ 문구가 들어간 티셔츠 같은 소비재일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됐다. 와이즈는 깊고 말로 옮기기 어려운 대상과 처음 만나는 매개가 작은 장식품이라는 점에 관심을 뒀다고 설명했다.
선반 위의 물건들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같은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종교와 점술, 외계 생명체에 관한 서사는 역사와 형성 과정이 다르다. 다만 추상적인 관념이 생활 속으로 들어올 때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얼굴과 상징, 짧은 문구를 얻고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로 줄어든다. 교리와 우주론은 초와 카드, 포스터와 기념품으로 옮겨지고, 물건을 구입하거나 소장하는 행동이 관념을 받아들이는 한 방식이 된다.
‘Extrasensory’라는 전시 제목도 초감각적 현상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와이즈는 인간의 언어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을 여러 믿음의 파편을 모아 살피려 했다. 과학소설과 종교, 소비문화와 미술사에서 가져온 익숙한 형상이 전시장에 함께 놓인 배경이다. 초자연적 존재의 실제 모습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이 미지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해온 이미지와 이야기의 목록을 펼쳤다.
벽면 선반에는 액자와 인물 사진, 초와 작은 조형물이 레이스 장식 위에 나란히 놓였다. 종교적 제단을 떠올리게 하는 배치지만 인물 사진과 포스터의 문구는 대중문화 상품에 가깝다. 진지한 숭배와 장난스러운 기념품이 같은 높이에서 관객을 바라본다. 무엇을 신성한 대상으로 받아들일지는 물건의 본래 용도보다 진열 방식과 주변 이미지에 따라 달라진다.
기도초는 전시가 다루는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은 물건이다. 초에 새겨진 얼굴은 영화 속 인물이면서 상품의 표면이고, 종교적 형식을 빌린 성상이기도 하다. 촛불을 켜고 기원을 올리는 용도와 유명인의 사진을 소장하는 행위가 겹친다. 배우와 음악가의 얼굴은 종교적 인물과 동일해지지 않지만, 같은 형태의 용기에 들어가는 순간 바라보는 방식은 달라진다.
연예인과 유명인을 향한 대중의 관심에는 종교적 숭배와 다른 사회적 조건이 작용한다. ‘Extrasensory’는 둘을 동일하다고 결론내리지 않는다. 반복 노출된 얼굴이 권위와 친숙함을 얻고, 상품으로 복제된 이미지가 원래 인물을 대신한다는 공통된 유통 방식에 시선을 둔다. 성인의 얼굴과 영화 출연자의 사진을 같은 진열대에 놓은 까닭도 믿음의 내용보다 이미지를 만들고 반복하는 과정에 있다.
푸른 벽 곳곳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사진과 인쇄물이 붙었다. 한쪽에는 작은 제단을 닮은 가구가 놓였고, 다른 쪽에는 생활용품과 장식물이 모였다. 미술관의 정돈된 전시대보다 개인이 오랫동안 물건을 수집해온 방에 가깝다. 가격과 제작 연도, 재료를 적은 표찰 대신 물건 사이의 관계와 축적된 흔적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와이즈는 화면과 상품 포장이 사람의 판단에 개입하는 방식을 초기부터 다뤄왔다. 작업은 회화와 조각, 영상, 설치를 오가며 소비와 이미지 생산이 개인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왔다. 음식 모형에 명품 가방의 장식과 로고를 붙인 ‘Bread Bags’ 연작도 실제 제품처럼 보이는 외형을 이용해 상품의 가치가 재료보다 브랜드와 유행에 따라 결정되는 과정을 비틀었다.
빵과 명품 가방을 결합했던 초기 조각에서는 소비 욕망이 웃음의 대상이 됐다. 빵은 먹으면 사라지는 물건이고 명품 가방은 오래 보관할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두 대상을 한 조각에 결합하면서 실용성과 희소성, 음식과 패션, 저가 재료와 고가 상품의 구분이 흔들렸다. 와이즈는 유행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 브랜드가 평범한 물건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보여왔다.
바젤의 기념품점에는 빵 가방 대신 기도초와 UFO 상품이 들어왔다. 명품 로고가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했다면 종교 상징과 외계인 이미지는 알 수 없는 존재를 일정한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와이즈가 바꾼 것은 상품을 다루는 태도보다 상품에 담긴 욕망의 종류다. 가지고 싶은 물건을 만들던 시각 언어가 믿고 싶은 이야기와 만나면서 소비문화에 관한 작업도 신앙과 지각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브라운관 텔레비전 주변에는 작은 물건과 인쇄물이 빽빽하게 놓였다. 텔레비전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인 동시에 가정에서 초자연적 현상과 외계 생명체 이야기를 접해온 통로였다. 뉴스와 다큐멘터리, 공상과학 영화, 광고는 같은 기기를 거쳐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진열대에 놓인 텔레비전은 과학적 증거와 오락 영상, 종교 방송과 상품 광고를 구분하지 않고 내보냈던 대중매체의 자리를 떠올리게 한다.
KBH.G가 전시 기간 마련한 강연도 이미지가 믿음을 얻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7월 30일 열리는 종교학 연구자 마티아스 브란트(Mattias Brand)의 강연은 UFO와 고대 우주인, 설명되지 않은 유물이 외계 개입설의 근거처럼 사용되는 방식을 다룬다. 사진과 도상이 단순한 삽화를 넘어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고, 고고학 유물과 우주시대의 상상을 연결하는 과정을 살필 예정이다.
사진은 대상을 기록하지만 무엇을 촬영하고 어떻게 잘라 보여주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를 얻는다. 흐릿한 빛이나 낯선 형태는 UFO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오래된 조각의 일부는 우주인을 묘사한 형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trasensory’에 모인 포스터와 사진, 텔레비전도 미지의 현상을 입증하는 자료처럼 놓이면서 관객이 이미지의 출처와 사용 방식을 다시 살피게 한다.
와이즈는 성서와 미술관의 천사 그림, 과학소설, 컬트 다큐멘터리, 핼러윈용 악마 의상을 한 작업 안에 섞었다. 초월적 존재를 직접 묘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형상과 장르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종교미술과 대중문화의 차이를 지우려는 시도라기보다, 인간이 알 수 없는 대상을 말할 때 얼마나 익숙한 틀에 기대는지를 드러내는 선택에 가깝다.
‘EXTRA SENSORY’라는 글자가 적힌 작은 포장물도 진열대에 놓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마저 구매할 수 있는 제품처럼 만들었다. 초감각적 경험은 본래 개인의 증언이나 믿음에 기대지만, 포장지와 상품명은 경험을 누구나 살 수 있는 규격품처럼 바꾼다. 전시 제목이 물건의 이름으로 옮겨지는 순간 숭고함과 상업성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상품은 복잡한 관념을 빠르게 전달한다. 외계인 머리 모양과 눈, 천사의 날개, 십자가와 촛불은 긴 설명 없이도 특정 이야기를 불러온다.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은 의미를 좁히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성서 속 천사가 다양한 형상으로 묘사됐더라도 상품 시장에서는 흰 날개를 단 아름다운 인물로 정리되고, 외계 생명체도 큰 눈과 작은 입을 지닌 회색 얼굴로 반복된다.
종교적 상징과 오컬트 상품, UFO 기념품을 한 방에 모은 전시에는 부담도 따른다. 오랜 역사와 교리, 공동체를 지닌 신앙이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장식물로 축소될 수 있다. 점술과 종교, 음모론과 과학적 탐구 사이의 차이도 상점의 유머와 화려한 진열 안에서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복잡한 믿음의 체계를 소비재의 표면으로 옮긴 방식은 전시가 비판하는 이미지 소비를 되풀이할 위험을 함께 안는다.
와이즈는 소비문화 밖에서 상품을 비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명품 로고와 광고, 패션 사진의 시각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작가와 관객 모두 소비 체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작업에 남겨왔다. 기념품점도 촌스럽거나 값싼 물건을 조롱하는 공간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강한 색과 익숙한 인물, 유머가 관객을 먼저 끌어들이고, 매혹된 뒤에야 물건이 믿음과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게 한다.
KBH.G는 8월 2일 관람객이 점토로 작은 기념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시장에서 본 외계인과 종교적 상징을 다시 손바닥 크기의 물건으로 만드는 행사다. 관객은 진열된 상품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직접 기념품을 제작하는 위치로 옮겨간다. 완성된 물건을 소장하고 전시장 밖으로 가져가는 과정까지 전시가 다룬 이미지의 유통에 포함된다.
‘Extrasensory’의 기념품점은 영화 관람 전에 잠시 지나가는 장식 공간이 아니다. 믿음이 얼굴과 상징을 얻고, 이미지가 인쇄되며, 물건으로 복제되는 과정을 전시의 첫머리에 놓았다. 9월 6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하는 자료보다 외계인을 믿게 만드는 사진과 영화, 포스터와 상품을 먼저 제시한다. 관객이 상영관에 도착하기 전 이미 무엇을 보고 믿을지 결정하는 이미지의 유통망을 지나도록 만든 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