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와이즈 ‘Extrasensory’③] ‘PsyFi*’의 일곱 얼굴, 천사·악마·외계인의 변신

JT·루카스 브라보·모지스 섬니 등 배우·음악가·미술가 참여…종교화와 SF 영화, 패션쇼·TV가 만든 초월적 존재의 형상

2026-07-15     임민정 기자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커다란 검은 눈을 한 외계인이 주황빛 속에서 고개를 돌린다. 흰 날개를 펼친 인물은 구름 위에서 다른 사람을 안아 들고, 붉은 조명 아래 앉은 여성과 도심 전광판 사이를 걷는 남성이 뒤이어 나타난다. 여행가방 위에 놓인 노트북에도 또 다른 인물이 떠오른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를 닮은 영상이 세 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이어진다.

클로이 와이즈(Chloe Wise)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PsyFi*’는 34분짜리 3채널 영화다. 거미 필름스(GUMMY Films)가 제작에 참여했으며, 스위스 바젤의 바젤 H. 가이거 문화재단(Kulturstiftung Basel H. Geiger·KBH.G)에서 9월 6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Extrasensory’의 중심에 놓였다. 세 스크린에는 신비적·형이상학적 현상을 나타내는 일곱 원형 인물이 등장한다.

일곱 인물은 일반 영화의 배역처럼 뚜렷한 성격과 서사를 유지하지 않는다. 천사와 악마, 외계 생명체, 샤먼, 영적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다른 시대의 영화와 패션, 대중문화가 만든 형상으로 바뀐다. 한 인물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이해하기보다 낯선 존재가 시대마다 어떤 얼굴과 의상, 자세를 얻었는지를 살피도록 짠 영화다.

출연진도 영화와 미술, 음악, 공연을 가로질러 구성됐다. 래퍼 JT를 비롯해 배우 루카스 브라보(Lucas Bravo), 델라니 로우(Delaney Rowe), 벤 알러스(Ben Ahlers), 마이클 부세미(Michael Buscemi), 비앙카 리(Bianca Leigh), 예술가 마일스 그린버그(Miles Greenberg), 마틴 심스(Martine Syms), 마틴 구티에레스(Martine Gutierrez), 음악가 모지스 섬니(Moses Sumney) 등이 참여했다.

영화 초반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의 종교화에서 가져온 듯한 천사들이 등장한다. 구름과 주황빛 하늘, 길게 펼친 날개, 공중에 떠 있는 인체가 천장화의 구도를 따른다. 종교화 속 천사는 곧 패션쇼 무대를 연상시키는 날개 달린 인물로 바뀐다. 신성한 존재를 표시하던 날개가 속옷 패션쇼와 광고, 대중문화가 반복해온 장식으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성서에 기록된 천사는 반드시 흰 날개를 단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얼굴과 눈, 불과 바퀴가 결합한 낯선 형상도 등장한다. 회화와 영화, 광고는 복잡한 묘사를 알아보기 쉬운 사람의 몸과 날개로 정리해왔다. ‘PsyFi*’에 등장하는 천사도 종교 문헌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미술사와 영화, 패션이 가공한 이미지를 다시 불러낸다. 와이즈가 다루는 대상은 천사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천사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든 반복된 형상이다.

JT는 사탄의 전 부인이라는 현대적인 설정의 인물로 출연한다. 루카스 브라보는 붉은 드레드록을 한 샤먼으로, 마이클 부세미는 현대 도시의 인물처럼 차려입은 악마로 등장한다. 와이즈도 커다란 눈을 지닌 외계인 배역을 맡았다. 신화와 종교에서 가져온 존재에 이혼과 유명인, 패션, 도시 생활의 속성을 붙이면서 초월적 인물은 현재의 대중문화 안으로 들어온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탄의 전 부인이라는 설정은 악마를 선과 악의 대립 안에 가두지 않는다. 결혼과 이별의 전력이 있는 한 사람처럼 바꾸고, 초월적 존재를 유명인의 사생활과 닮은 이야기로 끌어내린다. 관객은 종교적 상징을 해독하기 전에 붉은 조명과 의상, 표정과 머리 모양을 통해 인물을 읽게 된다. 배역의 성격보다 스타일이 먼저 전달되는 방식은 와이즈가 인물화에서 꾸준히 다뤄온 연출된 자아와도 이어진다.

유명 출연진의 얼굴도 영화 밖에서 쌓인 이미지를 함께 불러온다. 배우와 음악가, 미술가는 각자 활동해온 분야와 대중적 인지도를 지닌 채 천사와 악마, 외계 존재를 연기한다. 실제 인물과 배역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으면서 종교적 성상과 유명인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 기념품점에 출연진의 얼굴을 인쇄한 기도초가 놓인 이유도 같은 흐름에서 읽힌다.

‘PsyFi*’는 종교적 계시와 외계 생명체 접촉담을 서로 반대편에 놓지 않는다. 천사의 출현과 빛을 내는 존재, 텔레파시와 황홀경, UFO 목격담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과 설명을 얻었지만 인간의 감각과 언어를 넘어선 경험을 전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신과 천사를 사용하던 설명이 과학소설과 비인간 지성, 외계 문명의 언어로 옮겨가는 과정을 영화가 교차해 배치한다.

외계 생명체와 종교적 계시가 같은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와이즈도 초자연적 현상의 실재 여부보다 사람들이 현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말하며, 이미지로 바꾸고, 익숙한 이야기 안에 넣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 개인의 감각에 머물지 않고 종교화와 영화, 뉴스와 상품을 거쳐 공동의 기억이 되는 과정이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화는 밤하늘과 귀뚜라미 소리, 미국 정부가 공개한 미확인 비행현상 영상, 유튜브에 올라온 체험담을 함께 사용한다. 여행가방 위 노트북처럼 작은 기기는 미지의 존재와 인간을 연결하는 통로로 놓인다. 과거의 계시가 교회와 성서, 종교화를 거쳐 전달됐다면 오늘날의 목격담은 노트북과 휴대전화, 동영상 플랫폼에서 복제된다.

증언이 전달되는 속도와 범위는 커졌지만 영상이 곧 사실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희미한 빛과 낮은 해상도, 잘린 영상은 미확인 현상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기도 하고 오락과 음모론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PsyFi*’는 종교화와 인터넷 영상을 나란히 놓으면서 오래된 성상과 디지털 기록이 모두 믿음과 해석을 거쳐 의미를 얻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도심 전광판 아래를 걷는 인물도 종교 건축이나 우주선 밖에 놓인다. 외계 생명체와 악마, 천사를 둘러싼 상상은 특별한 의식이나 먼 우주에만 머물지 않고 광고와 영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반복된다. 신비적 존재를 화려한 세트 안에 가두지 않고 사람들이 매일 지나치는 거리와 전자기기, 대중매체 안에 배치한 선택이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세 개의 스크린은 같은 영상을 크게 펼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인물과 색채, 시간대가 동시에 진행된다. 한쪽에서는 종교화에 가까운 인물이 나타나고 다른 쪽에서는 SF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닮은 영상이 흐른다. 관객이 스크린 사이를 번갈아 보는 동안 인물의 정체도 계속 달라진다.

모든 스크린을 한꺼번에 볼 수 없는 상영 방식은 관객의 시야를 제한한다. 어느 인물을 따라갈지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 영상은 지나간다. 한 번의 관람으로 일곱 인물과 여러 배역의 관계를 모두 파악하기도 어렵다. 미지의 현상을 하나의 설명으로 정리하지 않은 영화의 내용이 관람 방식에도 반영됐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Kulturstiftung Basel H. Geiger | Kbh.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후기 20세기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가져온 색채와 조명, 편집은 종교화의 구도와 나란히 놓였다. 화려하면서도 인공적인 조명, 과장된 분장, 익숙한 방송 형식은 관객의 시선을 빠르게 붙잡는다. 와이즈는 대중매체가 환상과 욕망을 설득하는 방법을 빌려 초자연적 존재도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됐다는 점을 다룬다.

텔레비전 형식은 2023년 영상 설치 ‘Told A Vision’에서도 사용됐다. 20분짜리 영상은 누군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계속 바꾸는 듯한 흐름 속에서 실제 상품을 팔지 않는 가짜 광고를 내보냈다. 권위적인 말투와 익숙한 광고 형식은 남았지만 상품과 문장은 점차 의미를 잃었다. 소비를 권하는 방송의 형식만 반복되도록 만든 작업이었다.

‘PsyFi*’는 채널을 돌리듯 이미지를 바꾸던 방식을 세 스크린으로 늘렸다. ‘Told A Vision’의 가짜 광고가 소비 욕망을 만들던 방송의 문법을 다뤘다면 ‘PsyFi*’에서는 종교적 믿음과 외계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가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상품을 설득하던 조명과 음악, 유명인의 얼굴, 반복되는 문구가 알 수 없는 존재의 형상을 설득하는 데 사용된다.

2025년 뉴욕 개인전 ‘Myth Information’에서는 인물들이 일제히 위쪽을 바라봤다. 14점의 유화에 등장한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진 성인처럼 눈을 치켜뜨거나 캔버스 밖의 대상을 응시했다. 천사와 UFO, 빛과 계시는 직접 그리지 않고 인물의 표정과 시선만 남겼다.

회화 밖에 있던 대상은 ‘PsyFi*’에서 배우와 의상, 분장과 음향을 얻었다. 위쪽을 바라보던 인물은 날개를 펼친 천사와 외계인, 악마와 샤먼으로 나뉘었다. 한 폭의 그림 안에 머물던 표정과 자세도 34분의 연기와 편집으로 늘어났다. 2025년 회화가 초월적 존재를 바라보는 인간에게 집중했다면 2026년 영화는 인간이 상상해온 초월적 존재를 전면에 세웠다.

‘PsyFi*’의 강한 분장과 유명 출연진은 영화의 접근성을 높이지만 분석을 가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관객은 종교적 계시와 대중 이미지의 관계보다 JT와 루카스 브라보, 모지스 섬니의 변신에 먼저 관심을 둘 수 있다. 영화가 비판적으로 다루는 유명인의 이미지와 대중매체의 흡인력을 제작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결과다.

천사와 악마, 샤먼을 짧고 익숙한 특징으로 구분하는 방식도 부담을 남긴다. 오랜 역사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존재가 날개와 붉은 조명, 머리 모양과 의상으로 빠르게 압축된다. 익숙한 이미지를 비틀려는 작업이 기존 영화와 광고가 반복한 고정된 형상을 다시 강화할 가능성도 함께 생긴다.

와이즈는 익숙한 형상을 버리는 대신 한 인물 안에서 계속 충돌시킨다. 종교화의 천사는 패션쇼 모델로 바뀌고, 악마는 도시의 유명인처럼 등장하며, 외계인은 영화와 기념품에서 본 커다란 눈을 그대로 지닌다. 낯선 존재를 상상할 때조차 인간은 이미 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이 일곱 인물의 분장과 변신을 따라 남는다.

‘Extrasensory’는 9월 6일까지 바젤 KBH.G에서 이어진다. ‘PsyFi*’는 천사와 외계인의 실체를 제시하는 영화가 아니라 종교화와 SF, 텔레비전과 패션이 초월적 존재의 얼굴을 만들어온 과정을 34분의 영상으로 엮었다. 세 스크린에 나타나는 일곱 인물은 미지의 세계에서 온 존재이면서 인간이 오랫동안 만들고 복제해온 이미지의 집합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