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와이즈 ‘Extrasensory’④] 베이글 가방에서 ‘PsyFi*’까지, 소비와 믿음의 이미지를 좇은 12년

2014년 ‘Bagel No. 5’로 이름 알려…인물화·가짜 광고·초월적 존재 거쳐 영화와 설치로 넓어진 작업

2026-07-16     임민정 기자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2014년 뉴욕에서 열린 샤넬 행사에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 모양의 가방이 등장했다. 배우 보비 메누에즈(Bobbi Menuez)가 어깨에 멘 ‘Bagel No. 5’는 샤넬이 내놓은 새 상품으로 오해받았다. 베이글은 빵이 아니라 우레탄으로 만든 조각이었고, 표면은 유화 물감으로 실제 음식처럼 칠해졌다. 체인과 로고 장식을 붙인 클로이 와이즈(Chloe Wise)의 ‘Bread Bags’ 연작 가운데 한 점이었다. 패션 행사에 놓인 조각은 상품과 작품을 가르던 경계를 흔들며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와이즈는 1990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2013년 몬트리올 콘코디아대학교에서 미술학사를 받은 뒤 뉴욕을 기반으로 회화와 조각, 영상, 설치를 제작해왔다. 베이글 가방이 알려졌을 때는 대학을 졸업한 지 1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Bread Bags’에는 바게트와 베이글, 할라, 팬케이크가 명품 가방의 형태로 등장했다. 먹으면 사라지는 빵을 플라스틱으로 굳히고,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체인과 장식을 붙였다. 음식의 가격보다 상표와 유행, 전시 장소가 물건의 가치를 바꾸는 현실이 유머 속에 담겼다. 실제 상품으로 착각한 반응까지 작품이 다루던 소비 욕망의 일부가 됐다.

온라인에서 얻은 유명세는 와이즈의 출발을 널리 알렸지만 ‘베이글 가방을 만든 작가’라는 인상도 남겼다. 이후 작업은 바이럴 조각의 반복보다 사람이 자신을 꾸미고 타인에게 내보이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친구와 문화계 인물을 그린 유화에는 음식과 화장품, 자기계발서, 패션 소품이 놓였다. 인물들은 우연히 포착된 모습보다 광고와 화보를 의식한 듯한 자세와 표정을 취했다.

와이즈의 인물화에서 소비재는 배경 장식에 머물지 않았다. 어떤 옷을 입고 무엇을 먹으며 어떤 물건을 곁에 두는지가 인물을 설명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릴 사진을 고르듯 표정과 자세, 조명과 소품을 조정한 인물은 자연스러운 자아와 연출된 이미지의 차이를 흐렸다. 명품 로고를 붙인 빵 조각에서 다뤘던 상품의 위력은 인물화 안에서 몸과 정체성을 꾸미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2019년 덴마크 HEART 헤르닝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And Everything Was True’는 와이즈의 첫 미술관 개인전이었다. 미술관 최대 전시실을 네 공간으로 나누고 회화와 영상, 거울 설치를 함께 배치했다. 소셜미디어의 시선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과 집단 안에서 인정받으려는 욕망, 관계 안에서 생기는 포함과 배제를 다룬 전시였다.

회화만 걸지 않고 관객이 여러 공간을 이동하도록 만든 2019년 전시는 2026년 ‘Extrasensory’의 구성과도 맞닿아 있다. 인물화와 영상, 설치가 한 전시장 안에서 서로 의미를 보완했고, 거울은 작품을 보는 관객의 모습까지 전시에 끌어들였다. 바젤에서 기념품점과 대기실, 상영관을 차례로 지나도록 만든 동선도 갑자기 나온 형식은 아니다.

2021년 뉴욕 개인전 ‘Thank You For The Nice Fire’에는 친구들을 그린 회화와 함께 음식 모양의 조명이 등장했다. 로메인 상추와 시저드레싱을 본뜬 샹들리에와 벽 조명은 정물화 속 풍요를 생활 공간의 장식으로 바꿨다. 음식과 인체, 욕망과 혐오를 한 작품 안에 겹치는 방식도 이어졌다. 작가의 관심은 특정 상품을 풍자하는 데서 소비가 사람의 표정과 관계, 생활환경을 구성하는 과정으로 넓어졌다.

2023년 아트바젤 파쿠르에서 발표한 ‘Told A Vision’은 영상 작업이 전면에 나온 계기였다. 20분짜리 영상은 누군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계속 바꾸는 듯한 흐름으로 진행됐다. 익숙한 광고 화면과 권위적인 문구가 반복됐지만 정작 판매하는 상품은 없었다. “지금 전화하라”는 식의 말투와 과장된 표정만 남고, 영상이 이어질수록 문장은 뜻을 잃었다.

가짜 광고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보다 불안과 욕망을 자극하는 방송 문법을 가져왔다. 상품이 사라진 뒤에도 조명과 음악, 친근한 얼굴과 명령형 문구만으로 구매 충동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Told A Vision’은 이후 몬트리올 현대미술관(Musée d’art contemporain de Montréal·MAC) 소장품에 포함됐다.

‘Told A Vision’에서 시험한 채널 전환과 가짜 방송은 ‘PsyFi*’의 세 화면으로 이어졌다. 상품 광고가 끊임없이 다른 이미지로 넘어갔다면, ‘PsyFi*’에서는 천사와 악마, 외계 생명체와 영적 존재가 화면을 바꿔가며 나타난다. 소비를 설득하던 대중매체의 형식이 믿음과 초자연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에도 쓰인다는 연결이다.

2025년 뉴욕 개인전 ‘Myth Information’에는 위쪽을 바라보는 인물 14점이 걸렸다. 성인의 황홀경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과 눈동자, 종교화와 공상과학 영화 사이에 놓인 조명이 반복됐다. 인물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캔버스 안에 나오지 않았다. 빛인지, 천사인지, UFO인지 알 수 없는 존재는 그림 밖에 남고, 놀람과 경외, 불안이 섞인 얼굴만 전면에 놓였다.

‘Myth Information’은 소비와 사회적 관계를 다루던 인물화에 종교적 계시와 외계 생명체를 끌어들였다. 오래된 성화에 나타난 황홀경과 SF 영화의 미지의 빛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작가의 관심도 구체화됐다. 와이즈는 종교미술과 역사화, 공상과학 영화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 경험에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26년 ‘Extrasensory’에서는 2025년 회화 밖에 머물던 존재들이 배우와 의상, 분장과 목소리를 얻었다. 와이즈는 회화를 내놓지 않고 3채널 영화 ‘PsyFi*’와 기념품점, 대기실 형태의 설치를 구성했다. 커다란 검은 눈을 지닌 외계인과 날개 달린 천사, 악마와 영적 존재가 종교화와 영화, 패션 이미지에서 가져온 모습으로 등장한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Kulturstiftung Basel H. Geiger | Kbh.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와이즈는 영상과 설치를 약 10년 동안 제작해왔지만 회화만큼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trasensory’를 회화 작가가 갑자기 영화로 옮겨간 전시라고만 쓰기 어려운 이유다. 2019년 미술관 전시에서 회화·영상·설치를 한 공간에 놓았고, 2023년에는 방송 형식을 가져온 다채널 설치를 선보였다. 바젤 전시는 여러 갈래로 이어오던 작업을 회화 없이 펼칠 수 있는 규모로 확대한 결과에 가깝다.

제작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와이즈는 ‘PsyFi*’에 약 70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작업실에서 혼자 캔버스를 그리는 화가와 달리 감독은 배우와 촬영, 의상, 세트, 조명, 음악, 편집을 조율해야 한다. 와이즈는 제작진에게 각 분야를 맡긴 뒤 물러서기보다 모든 공정에 관여했다고 설명했다.

인물을 다루는 태도는 회화와 영화 사이에서 이어졌다. 와이즈의 초상화 속 모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정리된 모습을 취한다. ‘PsyFi*’ 출연진도 천사와 외계인, 악마라는 역할을 연기하면서 실제 인물로 쌓아온 대중적 이미지를 함께 가져온다. 작가는 영상 제작을 ‘사람과 함께 그리는 일’에 빗대기도 했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Logan White,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2014년 베이글 가방과 2026년 외계인 가면은 겉모습만 보면 멀리 떨어져 있다. 두 작업 모두 익숙한 외형이 사람의 판단을 얼마나 빠르게 정하는지를 이용한다. 체인과 로고를 본 사람은 베이글 조각을 명품 가방으로 받아들였고, 큰 검은 눈과 작은 입을 본 관객은 배우를 외계인으로 알아본다. 물건과 인물의 정체는 재료나 실체보다 이미 반복해서 본 시각적 기호에 의해 먼저 정해진다.

‘Extrasensory’의 기념품점에도 초기 작업의 소비문화가 남아 있다. 명품 로고를 붙인 빵 대신 기도초와 묵주, 타로 카드와 UFO 상품이 진열됐다. 상품을 사고 싶은 욕망에서 특정한 존재와 이야기를 믿고 싶은 욕망으로 소재가 바뀌었을 뿐, 이미지가 가치를 만들고 판단을 앞서는 구조는 이어진다.

Chloé Wise Takes a Trip Into the Unknown in ‘Extrasensory’. 사진=Kulturstiftung Basel H. Geiger | Kbh.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유명 인사와 화려한 분장, 강한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와이즈 작업의 장점이면서 부담이기도 하다. 관객은 종교와 SF, 소비문화의 관계보다 출연진의 변신과 사진으로 옮기기 좋은 설치에 먼저 반응할 수 있다. 대중 이미지의 작동 방식을 다루면서 같은 이미지의 흡인력에 기대는 긴장이 초기 ‘Bread Bags’부터 ‘Extrasensory’까지 반복됐다.

종교적 상징과 외계 문화, 오컬트 상품을 한 공간에 놓는 구성도 맥락을 좁힐 가능성이 있다. 오랜 역사와 교리를 지닌 신앙이 날개와 초, 십자가 같은 소품으로 압축되고, 서로 다른 문화에서 형성된 초월적 존재가 영화의 배역과 스타일로 빠르게 구분된다. 와이즈는 익숙한 이미지를 비판 밖에서 바라보기보다 이미지에 직접 기대어 관객을 끌어들인 뒤 작동 방식을 흔드는 쪽을 택했다.

베이글 가방이 온라인에서 확산된 지 12년이 지난 뒤에도 와이즈는 상품과 이미지가 사람의 판단을 앞서는 순간을 다룬다. 초기에는 명품의 가치와 소비 욕망을 파고들었고, 인물화에서는 몸과 표정이 사회적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폈다. 가짜 광고를 거쳐 천사와 UFO까지 들어온 뒤에는 무엇을 믿고 어떤 증거를 받아들일 것인지로 범위가 넓어졌다.

바젤 KBH.G의 ‘Extrasensory’는 9월 6일까지 이어진다. 회화가 다시 전시의 중심으로 돌아올지, 영화와 설치가 같은 비중으로 병행될지는 발표되지 않았다. 현재 확인되는 흐름은 베이글 조각과 인물화, 방송 형식의 영상과 ‘PsyFi*’가 서로 끊어진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와이즈는 12년 동안 상품의 포장과 인물의 자세, 천사의 날개와 외계인의 얼굴을 바꿔가며 인간이 이미지를 보고 가치와 정체성, 믿음을 정하는 과정을 좇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