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2028 뷰티 트렌드①] AI가 고른 화장품, 손끝에서 다시 결정
에이전트 커머스 확산 속 촉감·향·온도 설계 부상…센소리얼 뷰티와 인간 개입이 바꾸는 구매 경험
[KtN 임우경기자] 미국 18~44세 소비자의 86%는 제품을 직접 만지고 느끼는 과정이 구매 결정에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오프라인 매장 경험을 통해 브랜드와 더 깊이 연결된다는 응답도 전체 연령대의 71%에 달했다. 미국 마케팅 솔루션 기업 퀘드(Quad)가 발표한 '터치의 귀환(The Return of Touch)' 리서치 결과다. 인공지능(AI)이 가격과 성분을 비교하고 구매까지 처리하는 시대가 가까워졌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제품의 물성과 사용감을 직접 확인하려는 태도를 함께 드러내고 있다.
뷰티 시장은 상반된 두 가지 소비 흐름 위에서 재편되는 모습이다. 검색과 비교, 재구매는 AI가 맡고, 피부에 닿는 촉감과 향, 온도, 바르는 동작은 사람이 직접 확인한다. 구매 과정은 짧아지지만 제품을 사용하는 시간은 더 세밀하게 설계되는 구조다.
검색과 비교는 AI, 최종 확신은 피부
AI가 개입하는 범위는 제품 추천에 머물지 않는다. 소비자가 피부 고민과 가격대, 선호 성분을 입력하면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재고와 배송 조건을 확인한 뒤 결제 단계까지 연결하는 에이전트 커머스(Agentic Commerce)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AI 기반 상거래 인프라도 가격과 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연동하고 개인화된 제품 탐색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글로벌 뷰티 매출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8%로 집계됐으며, 소셜커머스는 주요 유통 경로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I 쇼핑 도구가 소셜미디어에서 발견된 제품을 검색하고 리뷰와 가격을 비교한 뒤 구매 후보를 압축하는 구조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제로 클릭(Zero Click)은 검색창과 상품 페이지, 비교표, 결제창을 소비자가 일일이 거치지 않는 구매 방식을 가리킨다. 사용 중인 제품이 줄어들면 AI가 구매 시기를 계산하고, 피부 상태와 계절 변화에 맞춰 대체품을 제안하며, 소비자가 승인한 범위 안에서 주문을 처리하는 형태다.
기초화장품처럼 반복 구매가 많고 용량과 사용 주기를 계산하기 쉬운 품목부터 자동화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제품을 이미 여러 차례 구입한 소비자에게는 편리한 방식이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고 제형을 비교하는 과정까지 AI가 대신하면 소비자가 접하는 제품군은 알고리즘이 고른 범위 안으로 좁아질 수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검색 광고보다 AI가 읽을 수 있는 제품 정보가 중요해진다. 전성분, 피부 유형, 사용 순서, 주의 사항, 용량, 가격, 재고, 임상시험 조건을 구조화하지 못한 제품은 AI 추천 결과에서 밀릴 가능성이 커진다. 화려한 광고 영상보다 정확하고 갱신 가능한 데이터가 제품 노출을 좌우하는 환경이다.
촉감·향·온도, 보조 요소에서 제품 설계로
화장품은 복용하거나 착용하기 전에 물성을 직접 확인하는 소비재다. 크림이 피부 위에서 풀리는 속도, 오일이 남기는 잔여감, 젤이 터질 때의 수분감, 향이 퍼지고 사라지는 시간은 성분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화장품의 텍스처와 향 사이의 조화는 제품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정 촉감과 향이 서로 어울린다고 인식될 때 제품의 쾌적성과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킨케어 원료와 제형 역시 편안함, 활력, 만족감 등 서로 다른 정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8년 전망에서 센소리얼(Sensorial) 뷰티는 향이 좋은 화장품이나 부드러운 크림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성, 온도, 압력, 소리, 사용 동작을 제품 기능의 일부로 설계하는 접근이다.
냉감은 더운 환경에서 사용 직후의 불편을 낮추는 방향으로, 온열감은 목욕이나 수면 전 관리 과정과 결합할 수 있다. 단단한 밤이 체온에 녹는 속도, 롤러가 피부에 가하는 압력, 오일을 마사지하는 시간도 사용 경험을 구성한다. 소비자는 제품을 바른 뒤의 피부 상태뿐 아니라 사용하는 동안 몸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함께 평가하게 된다.
기후 조건도 제형 개발에 직접 연결된다. 온도와 습도는 피부 장벽 상태와 사용감에 영향을 미친다. 저온·저습 환경에서는 피부 장벽 기능이 낮아지고 외부 자극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연구가 축적돼 있다. 폭염과 높은 습도가 반복되는 지역에서는 끈적임, 열감, 땀과 피지, 세정 횟수 증가를 고려한 별도의 제형이 필요하다.
하나의 제품을 전 세계에 같은 방식으로 판매하던 전략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건조 지역에는 증발을 줄이는 밀폐력과 보습 지속성이 중요하고, 고온다습한 지역에는 얇은 도포감과 빠른 흡수, 세정 후 편안함이 우선될 수 있다. 센소리얼 뷰티는 향과 촉감을 강조하는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기후와 생활환경을 반영한 제형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
더 많이 바르기보다 천천히 회복하는 ‘복원자’
2028년 소비자 전망에서 ‘복원자(Restorer)’는 자극과 성취보다 정서적 균형, 심신의 연결,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추는 시간을 중시하는 집단으로 설정된다. 여러 기능을 한꺼번에 담은 복잡한 루틴보다 사용 목적을 이해하기 쉬운 제품과 반복 가능한 관리 방식을 찾는다.
스킨케어에서는 여러 활성 성분을 겹쳐 바르는 방식보다 세정, 보습, 장벽 관리로 단계를 줄인 루틴이 대응할 수 있다. 색조화장품에서는 한 번에 강한 색을 내기보다 여러 차례 덧발라 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제형이 적합하다. 헤어와 두피 관리에서는 브러시, 괄사, 마사지 도구와 오일을 결합한 관리가, 바디케어에서는 목욕과 클레이, 영양 오일, 온열 제품이 연결될 수 있다.
복원자 소비를 단순한 자연주의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원료나 손으로 사용하는 도구를 선호하면서도 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은 데이터로 확인하려는 태도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일 성분, 전통 치유 방식, 수공예 도구라는 설명만으로는 반복 구매를 확보하기 어렵다. 원료의 함량과 안전성, 제품 안정도, 인체적용시험 조건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필코노미(Feel-economy)도 복원자 소비와 연결된다. 기분과 감정 상태가 구매 기준에 들어오면서 화장품은 외모를 관리하는 물건에서 하루의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로 범위를 넓힌다. 아침에는 각성과 산뜻함, 업무 중에는 빠른 전환, 저녁에는 긴장 완화와 수면 준비를 돕는 사용 경험이 각각 세분화될 수 있다.
시간대와 감정 상태를 겨냥한 상품이 늘어날수록 화장품과 웰니스 제품의 경계도 흐려진다. 브랜드가 ‘긴장 완화’, ‘숙면’, ‘기분 개선’과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는 향과 촉감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인지, 생리적 변화를 측정한 효능인지 구분해야 한다.
뉴로코스메틱, 과학과 감성 문구 사이
센소리얼 뷰티의 확장은 뉴로코스메틱(Neurocosmetics)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뉴로코스메틱은 피부의 감각 수용체와 신경·면역 반응에 접근해 피부 상태와 정서적 경험을 함께 관리하려는 화장품 분야다.
피부와 뇌가 신경계와 호르몬, 면역 반응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피부-뇌 축은 의학 연구에서 다뤄지고 있다. 스트레스가 염증과 피부 장벽, 가려움, 회복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도 축적됐다. 최근에는 피부 미생물군과 정서적 피부 반응, AI를 활용한 개인화 가능성까지 연구 범위가 넓어졌다.
피부-뇌 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화장품이 세로토닌을 높이거나 불안과 수면 문제를 개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향을 맡았을 때 편안함을 느꼈다는 소비자 평가와 신경계에 직접 작용했다는 의학적 주장은 서로 다른 근거를 요구한다.
차갑고 부드러운 제형이 사용 직후 만족감을 주는 제품은 센소리얼 화장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경전달물질이나 스트레스 반응에 영향을 준다고 표시하려면 작용 기전과 인체시험, 통계적 유의성, 효과의 지속시간까지 확인해야 한다. 2028년 시장에서는 ‘뉴로’, ‘마인드’, ‘세로토닌’, ‘미주신경’ 같은 단어를 제품명에 넣는 것보다 어떤 지표를 어떻게 측정했는지가 브랜드 신뢰를 좌우할 전망이다.
AI가 줄인 선택, 사람이 보완하는 상담
AI가 검색과 비교를 대신할수록 매장 직원과 피부 전문가의 역할도 달라진다. 제품 정보를 전달하는 업무는 줄고, AI 분석 결과가 실제 피부 상태와 생활환경에 맞는지 해석하는 상담이 중요해진다.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는 AI가 제안한 결과를 사람이 검토하고 조정하는 구조다. 피부 촬영 데이터와 구매 이력은 AI가 분석하되, 알레르기 경험과 피부 시술 이력, 사용 중인 의약품, 촉감과 향에 대한 개인적 거부감은 상담 과정에서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AI가 추천한 세럼을 매장에서 직접 발라보고, 상담자가 흡수 속도와 사용량을 설명한 뒤 소비자가 최종 선택하는 과정도 여기에 해당한다. 자동화는 상담을 없애기보다 반복적인 정보 검색을 줄이고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대목을 좁혀준다.
젊은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조사 결과는 오프라인 유통의 역할이 판매량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매장은 제품의 색과 향, 물성을 확인하고 AI 추천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공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에서 발견하고 AI로 후보를 줄인 뒤 오프라인에서 사용감을 확인하고 모바일로 주문하는 경로가 보편화될 수 있다.
K-뷰티, 제형의 다양성을 데이터로 번역할 시점
국내 화장품 기업이 2028년 시장에서 확보해야 할 경쟁력도 두 갈래로 나뉜다. AI가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제품 데이터와 소비자가 즉각 구분할 수 있는 사용감이다.
‘촉촉하다’, ‘산뜻하다’, ‘쫀쫀하다’ 같은 표현만으로는 국가와 언어가 바뀔 때 제형의 차이를 전달하기 어렵다. 흡수 시간, 도포량, 점도, 잔여감, 수분 지속 시간, 권장 기후, 다른 제품과의 사용 순서를 측정 가능한 정보로 전환해야 한다. AI 추천 시스템도 구조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비교한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는 촉감과 향을 효능 성분의 부속 요소로 취급하던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펌프를 누르는 압력, 용기에서 나오는 양, 피부에 펴 바르는 횟수, 흡수까지 걸리는 시간까지 소비자 경험에 영향을 준다. 제형과 용기, 사용법을 하나의 제품으로 설계해야 센소리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클린 뷰티나 전통 원료도 자연성을 강조하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원산지와 정제 방식, 배합 농도, 공급망, 알레르기 가능성, 안정성 시험 결과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단순한 성분 목록보다 원료가 제형과 사용감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2028년까지 뷰티 기업이 확인할 변수는 분명하다. AI 쇼핑 도구가 어떤 제품 정보를 우선하는지, 감정과 수면을 언급한 화장품 광고가 어느 범위까지 허용되는지, 오프라인 체험이 실제 재구매로 이어지는지, 소비자가 피부 데이터를 어디까지 제공할지에 따라 브랜드 전략이 달라진다.
AI는 구매에 필요한 클릭 수를 줄인다. 촉감과 향, 온도, 사람의 해석은 줄어든 선택 과정에 확신을 더한다. 2028년 뷰티 시장에서는 기술을 더 많이 적용한 브랜드보다 자동화할 부분과 사람이 직접 경험할 부분을 정확히 나눈 브랜드가 소비자와의 접점을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