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제조업 데이터가 가르는 한국의 로봇 주권
이재명정부,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AI 로봇 연 1000대 보급 추진…숙련 동작의 권리와 보상 기준은 제도 공백
[KtN 임우경기자]김밥 한 줄을 마는 손에는 수십 차례의 미세한 판단이 들어간다. 김 위에 밥을 펴는 두께, 재료가 밀리지 않도록 누르는 힘, 말아 올리는 속도와 손가락의 각도는 숙련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커피를 내릴 때 물줄기의 높이와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동작, 조선소에서 좁은 구조물 안으로 장비를 옮기는 순서, 자동차 부품의 불량을 손끝으로 가려내는 방식도 같은 성격을 지닌다.
글과 사진으로 충분히 옮기기 어려웠던 숙련자의 동작이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의 산업 데이터로 떠오르고 있다. 로봇이 사람의 명령을 이해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손과 팔, 몸을 움직여 실제 작업을 수행하려면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행동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는 2026년 6월 29일 ‘제조AI 2030 전략’을 공개한 데 이어 7월 1일 ‘피지컬 AI 핵심 경쟁력 확보 전략’을 발표했다.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와 업종별 데이터팩토리를 구축하고, 숙련 노동자가 보유한 제조 노하우를 데이터로 변환하는 사업이 정책에 포함됐다. 피지컬 AI를 반도체·AI 데이터센터와 함께 국가 산업전략의 한 축으로 배치하면서 제조업 데이터가 정부 AI 정책의 전면으로 올라왔다.
문장을 만드는 AI에서 몸을 움직이는 AI로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카메라와 센서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로봇이나 차량, 기계장치를 움직여 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을 말한다.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자율주행차, 드론, 농업 기계, 물류 장비, 돌봄 로봇이 모두 적용 영역에 들어간다.
생성형 AI는 인터넷에 축적된 글과 그림, 영상에서 방대한 학습 자료를 얻었다. 로봇이 사용할 행동 데이터는 확보 방식부터 다르다. 컵을 들어 올리는 동작 하나에도 물체의 위치와 무게, 손잡이 방향, 손가락 관절의 각도, 로봇팔의 이동 경로, 접촉 압력, 작업 성공 여부가 함께 기록돼야 한다.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는 영상과 언어 명령을 로봇의 움직임으로 연결하는 시각·언어·행동(Vision-Language-Action·VLA)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엔비디아(NVIDIA)도 휴머노이드 로봇용 파운데이션 모델과 데이터 처리 체계를 결합한 아이작 그루트(Isaac GR00T)를 내놓았다. 글로벌 기업의 개발 방향은 인공지능 모델과 로봇 바디, 시뮬레이션, 행동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는 “피지컬 AI의 핵심은 피지컬”이라며 로봇 바디와 제조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바닥의 경사와 물체의 무게를 견디고, 손가락과 관절을 정확히 움직일 하드웨어가 없으면 산업 현장에서 작동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엄 대표는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가 로봇을 생산할 기반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인간 동작을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 생산 현장이라고 평가했다.
피지컬 AI의 산업 경쟁력은 하드웨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액추에이터와 센서, 로봇손, 제어 소프트웨어, 행동 데이터, 파운데이션 모델, 통신망, 시뮬레이션, 현장 안전 기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부가 피지컬 AI 정책에서 부품과 모델, 데이터, 보안, 실증을 동시에 다루기 시작한 배경도 같은 구조에 놓여 있다.
바디캠에 담기는 숙련자의 암묵지
엄 대표가 제안한 ‘데이터 수매제’는 자영업자와 숙련자가 생산한 동작 데이터를 정부가 구입해 국내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활용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김밥집 운영자의 김밥 말기와 카페 운영자의 드립커피 동작을 촬영하고, 품질에 따라 등급과 가격을 정해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동작을 촬영하는 방법으로는 에고센트릭(egocentric) 데이터 수집이 제시됐다. 작업자의 가슴이나 머리에 바디캠을 부착하면 작업자의 시점에서 손과 도구의 움직임이 기록된다. 영상에서 손가락과 팔의 위치를 추출한 뒤 로봇 관절의 움직임으로 변환하는 리타게팅(retargeting)을 거치면 로봇 학습용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영상 촬영만으로 로봇이 숙련자의 기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손가락 관절의 위치와 이동 속도, 도구를 잡는 힘, 물체의 상태 변화, 작업 순서, 완성 결과를 서로 맞춰야 한다. 촬영 영상을 로봇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리하고 오류를 제거하는 전처리 작업도 필요하다.
데이터의 품질을 평가하는 감별 인력과 전처리 전문가, 로봇 동작 변환 기술자가 새로운 직무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데이터 수매 대금을 소상공인에게 지급하고, 인공지능 산업에서 발생한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활용하면 기술 성장의 이익을 지역과 개인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구상도 함께 나왔다.
데이터 수매제와 AI 초과세수를 연결한 보상 체계는 정부의 확정 정책이 아니다. 2026년 7월 현재 공개된 정책에는 개인별 수매 가격과 등급 기준, 초과세수 활용 방식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 정책과 민간 제안이 만나는 부분은 제조 현장의 동작과 숙련자의 암묵지를 국가 차원에서 수집·관리한다는 방향이다.
정부는 은퇴를 앞둔 제조 명장의 노하우를 데이터로 전환하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고, 수집 자료를 제조AX 데이터 라이브러리에 집적할 계획이다. 표준화와 암호화, 비식별화 체계도 구축 대상에 들어갔다. 제조업 전반에서 사용할 파운데이션 모델과 공장 운영을 제어하는 대형 AI 에이전트, 제조 특화 휴머노이드 개발도 병행된다.
로봇 밀도 세계 1위, 시장 규모에서는 중국과 큰 격차
한국은 피지컬 AI를 실제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집계한 2024년 한국 제조업의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명당 1220대로 세계 1위였다. 전자와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용 로봇이 일찍 도입된 결과다.
로봇을 많이 사용하는 국가라는 사실이 로봇 산업의 기술 자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2024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3만600대로 세계 4위였으며 전년보다 3% 감소했다. 연간 설치 대수는 2019년 이후 3만1000대 안팎에 머물렀다.
중국은 같은 해 세계 신규 설치량의 54%인 29만5000대를 도입했다. 중국 기업의 자국 산업용 로봇 시장 점유율도 57%로 올라 외국 기업을 처음 넘어섰다. 중국 공장에서 가동되는 산업용 로봇은 200만대를 넘었다. 한국의 높은 자동화 수준과 중국의 생산·시장 규모 사이에는 다른 종류의 경쟁력이 놓여 있다.
휴머노이드 경쟁에서는 로봇의 관절과 손, 센서, 배터리, 감속기, 제어기까지 공급할 수 있는 생태계가 양산 속도를 좌우한다. 해외 로봇 바디를 들여와 국내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하드웨어 규격과 운영체계가 외국 기업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로봇이 수집한 공장 데이터가 외국 플랫폼으로 이동하거나 특정 업체의 모델과 부품을 바꾸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재명정부는 액추에이터와 로봇손, 센서를 국산화율이 낮은 3대 취약 부품으로 지정했다. 새만금에는 로봇 파운드리와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대경권 자동차·가전 부품기업의 로봇 부품기업 전환을 지원한다. 교육·국방·재난 대응 분야에서는 정부가 로봇을 먼저 구매해 초기 시장을 만들 계획이다.
제조AI 2030, 데이터에서 공장 운영까지
‘제조AI 2030 전략’은 국가 제조데이터 관리, 제조 특화 AI 모델 개발, 지역 제조AI 확산을 주요 축으로 삼았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제조업 AI 전환에 민관 합동으로 20조원을 투입하고 제조AI 전문인력 3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산업단지에는 M.AX 클러스터와 실증 테스트베드, 엣지컴퓨팅센터가 들어선다.
피지컬 AI 부문에서는 제조업 AI 전환(M.AX), 핵심 요소기술 확보(Master), 지역 중심 양산체계 구축(Mass Production)을 묶은 3M 전략이 추진된다. 1500여개 기관이 참여하는 M.AX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업종별 AI 로봇을 개발하고 매년 1000대 이상을 산업 현장에 보급한다.
10대 업종별 데이터팩토리도 구축한다. 산업별 데이터가 축적되면 특정 기업의 단일 공정을 넘어 여러 공장과 로봇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조 특화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향후 3년 안에 독자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하고, 제조·돌봄·농업·안전·국방 분야에서 대규모 실증을 진행한다는 일정도 제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별도 전략은 로봇 행동데이터를 포함한 범용·특화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고 유효성 검증과 상호운용 표준을 적용하는 방안을 담았다.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월드모델, 온디바이스 컴퓨팅 플랫폼은 3대 공통 기반 기술로 선정됐다. 월드모델은 물체와 환경의 변화를 가상 공간에서 예측해 실제 로봇의 학습과 의사결정을 돕는 기술이다.
공장 노동자의 가슴에 단 카메라가 남기는 권리 문제
행동 데이터 수집이 본격화되면 작업자의 동작뿐 아니라 동료의 얼굴과 목소리, 공장의 설비 배치, 부품의 형태, 생산 공정, 안전사고 정보까지 함께 기록될 수 있다. 제조기업의 영업비밀과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한 영상 안에 들어가는 구조다.
법인에 소속된 노동자가 근무 중 생산한 동작 데이터의 권리를 개인과 기업 가운데 누가 갖는지도 정리돼 있지 않다. 촬영에 동의한 노동자가 퇴사한 뒤에도 기업이 데이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지, 로봇 모델 개발에 반복 활용될 때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원본을 다른 기업에 제공할 수 있는지도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자율주행차와 배달로봇 등 이동형 영상기기로 개인영상정보를 촬영할 때 촬영 사실과 구체적인 내용을 표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AI 학습에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이 다시 식별되는 위험을 막을 조치도 요구된다. 2026년에는 피지컬 AI 환경의 데이터 처리와 위험 관리, 정보주체 권리를 다루는 민관 협의체도 출범했다.
정부의 제조AI 전략에는 데이터 표준화와 암호화, 비식별화 계획이 담겼지만 노동자 동의 절차와 보상 방식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데이터의 산업적 가치만 평가하고 생산자의 권리를 뒤로 미루면 현장 참여를 얻기 어렵다. 공정 감시나 노동 강도 측정에 데이터가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질 수 있다.
한 번의 수매로 모든 권리를 이전하는 방식보다 이용 목적과 기간을 정한 라이선스 방식, 반복 사용에 따라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 공공기관이 원본을 보관하고 기업에는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는 데이터 신탁 방식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보상 금액도 영상 길이보다 작업 성공률과 재현성, 희소성, 안전성, 다른 공정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반영해야 한다.
성공 동작만 많이 모으는 방식도 로봇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재료가 흘러내린 순간과 손이 미끄러진 이유, 작업자가 동작을 중단한 상황까지 기록돼야 로봇이 실패를 피하는 방법을 학습할 수 있다. 제조업 데이터의 양보다 공정 정보와 센서값, 작업 결과가 정확히 연결된 품질이 산업 활용도를 결정한다.
보급 대수보다 국산 기술과 현장 성과로 평가해야
피지컬 AI 정책의 성과는 로봇 시연 영상이나 보급 대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산업 현장에서는 작업 성공률과 연속 가동 시간, 고장 빈도, 유지보수 비용, 생산성, 에너지 사용량, 안전사고 감소율이 도입 여부를 좌우한다. 중소 제조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과 전문인력 확보 여부도 보급 속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연간 1000대 보급 목표에는 국산 부품 사용률과 실제 가동률, 도입 기업의 생산성 변화가 함께 공개돼야 한다.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도 축적된 파일 수보다 로봇 학습에 실제 사용된 데이터의 비율과 기업·대학의 접근 비용, 데이터 생산자에게 지급된 보상 규모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밀도와 자동차·조선·전자·철강·배터리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제조 현장의 숙련 동작을 로봇이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로 전환할 기반도 넓다. 중국은 생산 규모와 부품 공급망, 내수시장을 앞세워 하드웨어 양산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미국 기업들은 AI 모델과 컴퓨팅 플랫폼을 선점하고 있다.
정부는 2030년 피지컬 AI 글로벌 1강, 향후 3년 내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AI 로봇 연 1000대 보급이라는 일정을 제시했다.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와 업종별 데이터팩토리 구축이 시작되면 숙련 동작의 소유권과 이용 범위, 보상 기준, 개인정보 보호 절차가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쟁점으로 등장한다. 제조업 데이터가 국내 로봇 기업의 자산으로 축적될지, 값싼 원료처럼 수집된 뒤 일부 플랫폼 기업에 집중될지는 앞으로 마련될 세부 제도와 집행 과정에서 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