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OINM ‘SCORE’, 소리를 적는 회화

KoN의 ‘Caprice’와 임하나의 ‘열두 달’… 악보의 질서에 점수의 시대를 겹친 설치 회화

2026-07-14     박준식 기자
KoN의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와 임하나(LIMHANA)의 ‘신진경산수화 新眞景山水畵 Score: Sonnet 1’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KLOINM의 ‘SCORE: Caprice & Sonnet’은 음악을 그린 회화라기보다 소리를 적는 회화에 가깝다.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두 작가는 ‘score’를 먼저 악보로 읽는다. 점수라는 또 다른 의미는 현대 사회가 예술과 개인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뒤따라 붙는다. 연작의 무게는 악보에 있고, 점수는 평가 사회의 압력처럼 낮게 깔린다.

‘SCORE: Caprice & Sonnet’은 평면회화, 설치미술, 조형, 미디어, 음악을 오가는 아티스트 듀오 KLOINM의 설치적 평면회화 연작이다. 캔버스와 물감, 원형 조형, 여백, 선의 흐름은 악보의 마디처럼 놓인다. 관람자는 작품을 하나의 완결된 이미지로 보는 대신, 리듬과 간격을 따라 읽게 된다. 회화는 소리의 시간, 연주의 호흡, 문학의 구조가 지나가는 기보의 장으로 바뀐다.

KLOINM에게 악보는 오선지와 음표의 체계만을 뜻하지 않는다. 악보는 소리가 발생하기 전의 설계이자, 사라진 소리를 다시 불러내는 기록이다. 연주의 속도, 감정의 결, 여백의 길이, 반복의 방향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기보 체계다. 임하나는 작곡 과정에서도 기존 악보 문법만으로 담기 어려운 감각을 자신만의 표기와 배열로 옮겨온 작가다. 이러한 독자적 기보 방식은 ‘SCORE’ 연작에서 회화와 설치의 구조로 이어진다.

KoN의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와 임하나(LIMHANA)의 ‘신진경산수화 新眞景山水畵 Score: Sonnet 1’은 연작을 이루는 두 축이다. KoN의 작업은 카프리스(Caprice)의 즉흥성과 연주의 순간을 회화로 남기고, 임하나의 작업은 ‘열두 달’의 순환과 소네트(Sonnet)의 정형성, 동양 음계의 구조를 원형 조형과 여백으로 풀어낸다. 같은 제목 아래 놓였지만 두 작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적는다.

카프리스는 이탈리아어 카프리치오(Capriccio)에서 유래한 음악 장르다. 변덕스러움, 빠른 전개, 강한 기교, 정해진 형식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특징으로 한다. KoN의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는 무대 위에서 사라지는 바이올린 연주의 순간을 캔버스에 붙잡는다. 카덴차(Cadenza)의 즉흥적 호흡은 선과 물감의 움직임으로 남고, 소리의 궤적은 회화적 악보로 바뀐다.

‘Fractal Universe’에서 선은 연주의 흔적처럼 움직인다. 한 번 울리고 사라지는 소리는 캔버스 위에서 다시 읽히는 자국이 되고, 큰 흐름과 작은 번짐은 서로 닮은 리듬을 만든다. 프랙털이라는 이름은 부분과 전체가 반복적으로 닮아가는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KoN의 회화는 연주를 설명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연주의 시간을 붙잡아 다시 읽게 하는 표기 방식에 가깝다.

임하나의 ‘신진경산수화 Score: Sonnet 1’은 신진경산수화 시리즈의 ‘열두 달’ 안에서 읽어야 하는 작업이다. 제목 안의 산수는 실제 산과 물의 재현으로 좁혀지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에는 달이 놓인다. ‘열두 달’은 시간의 순환, 달의 위상, 12라는 수의 구조를 함께 품는다. 임하나는 달의 원형성과 반복되는 시간의 질서를 소네트의 정형성, 동양 음계의 흐름과 겹쳐 놓는다.

‘열두 달’에서 12는 단순한 달력의 숫자가 아니다. 한 해를 이루는 시간의 단위이자 반복과 회귀, 변화와 축적을 함께 품은 구조다. 달은 매달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고, 계절은 12개의 시간 단위를 지나 다시 처음으로 향한다. 임하나의 원형 조형과 여백은 이 순환의 감각을 회화 안으로 들여온다. 달의 시간은 악보의 마디처럼 놓이고, 원형 조형은 음의 단위처럼 읽힌다.

소네트는 14행과 운율, 문제 제기와 전환의 구조를 가진 정형시다. 임하나는 소네트의 문학적 형식을 회화와 설치 안으로 옮기면서 ‘열두 달’의 순환 구조를 함께 끌어온다. 원형 조형과 여백은 장식적 배치가 아니라 달의 시간, 음의 단위, 행의 전환을 함께 담는 기보 요소로 놓인다. KoN의 ‘Caprice’가 자유롭게 터지고 흐르는 연주의 악보라면, 임하나의 ‘Sonnet’은 달의 순환과 정형시의 구조를 따라 쌓이는 악보다.

임하나(LIMHAN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임하나의 ‘Sonnet’에는 동양 5음계와 9음 음계의 구조도 들어간다. ‘열두 달’이 12라는 순환의 수를 품고 있다면, 9음 음계는 완결 직전의 열린 확장을 만든다. 9음 음계는 완전 5도를 여덟 번 쌓아 올려 형성되는 기보학적 전개로 설명된다. 12음으로 완전히 닫히기 전의 9음은 완성된 원보다 계속 이어지는 순환에 가깝다.

소네트 14행 가운데 시상의 흐름이 바뀌는 제9행의 볼타(Volta)도 이 구조와 맞물린다. 12는 달과 시간의 순환을 품고, 9는 닫히기 직전의 열린 상태를 만든다. 제9행은 정형시 안에서 방향이 바뀌는 자리다. 임하나의 ‘Score: Sonnet 1’은 숫자를 설명하는 작업이 아니라, 시간과 음계, 문학적 전환을 하나의 시각 악보로 옮기는 방식에 가깝다.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는 2024년 제작된 아크릴 온 캔버스 작업이다. ‘신진경산수화 Score: Sonnet 1’은 2024년 제작된 혼합매체와 아크릴 작업으로, 원형 조형과 캔버스가 함께 구성된다. KoN의 캔버스가 즉흥연주의 시간을 길게 붙잡는 장치라면, 임하나의 원형 조형은 달의 시간과 음, 행, 여백의 단위를 세우는 기보 구조다.

팔라초 피사니-레베딘(Palazzo Pisani-Revedin)은 연작의 장소성을 강화한다. 로시니의 음악적 유산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SCORE’는 음악을 소재로 삼은 회화에 머물지 않는다. 오페라의 기억, 악보의 질서, 연주의 호흡, 회화의 물성, 설치의 동선이 같은 공간 안에서 이어진다. 전시장은 작품을 걸어두는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리듬을 완성하는 장소로 기능한다.

최근 동시대 미술에서 회화는 평면 안에서 끝나는 매체로만 다뤄지지 않는다. 젊은 작가들은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문학적 서사, 감각 경험을 회화 안팎으로 끌어오며 관람자가 머무는 시간까지 작품의 일부로 만든다. KLOINM의 ‘SCORE’는 회화를 버리고 다른 매체로 이동하지 않는다. 음악과 문학의 구조를 회화 안으로 받아들이며 평면을 시간과 리듬이 지나가는 악보의 장으로 바꾼다.

 

대형 영상과 기술 장치를 앞세운 몰입형 전시가 빠르게 늘어난 미술 환경에서 ‘SCORE’는 다른 방향을 택한다. 캔버스와 물감, 원형 조형, 여백, 선의 흐름이 작업의 중심에 놓인다. 관람자는 장치의 규모보다 선의 속도, 원의 반복, 여백의 간격, 제목이 품은 음악적 구조를 따라가게 된다. 아날로그 회화의 물성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과도 이어진다.

K-아트의 젊은 작가들도 비슷한 변화를 통과하고 있다. 한국 동시대 미술은 단색화와 블루칩 작가 중심의 시장 언어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최근의 젊은 작가들은 한국적 이미지를 앞세우는 방식보다 한국적 사유와 감각의 구조를 동시대 조형 언어로 옮기는 데 집중한다. 달, 여백, 동양 음계, 문학적 형식, 음악적 시간은 장식적 소재가 아니라 작품을 움직이는 내부 원리로 들어간다.

임하나의 ‘신진경산수화 Score: Sonnet 1’도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작품은 신진경산수화라는 이름을 갖지만, 전통 산수의 이미지를 직접 반복하지 않는다. 달의 원형성, 12의 순환, 음계와 소네트 구조는 보이는 풍경 대신 감각의 지형을 만든다. 한국적 참조는 표면의 장식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한국 젊은 작가의 국제 작업이 ‘한국적인 것’을 소개하는 단계를 넘어, 한국적 사유를 음악·문학·회화의 언어로 다시 조직하는 방식이다.

 

KoN의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는 즉흥연주의 빠른 호흡을 캔버스 위에 남기고, 임하나의 ‘신진경산수화 Score: Sonnet 1’은 ‘열두 달’의 순환과 소네트의 정형성, 동양 음계의 확장을 원형 조형과 여백으로 풀어낸다. 한쪽에서는 연주의 순간이 회화적 악보로 남고, 다른 한쪽에서는 달의 시간과 문학의 구조가 회화 안에서 맞물린다. 점수라는 의미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예술가가 살아가는 평가 사회의 배경으로 남는다.

미술시장에서 젊은 작가를 향한 관심은 빠르게 소비되고 교체된다. KLOINM의 ‘SCORE: Caprice & Sonnet’은 유행의 속도와 다른 기준을 요구한다. 작품의 밀도는 여러 매체를 나열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음악의 시간, 문학의 형식, 회화의 표면, 설치의 동선이 작품 안에서 어떤 악보를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SCORE’는 악보를 중심에 두고, 점수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자유와 평가의 압력을 함께 다룬다.

‘Fractal Universe: Score: Caprice’는 사라지는 연주의 순간을 회화적 악보로 붙잡고, ‘신진경산수화 Score: Sonnet 1’은 열두 달과 달의 순환, 소네트와 음계의 구조를 감각적 회화로 전환한다. KLOINM의 ‘SCORE: Caprice & Sonnet’은 음악을 그린 회화도, 문학을 설명하는 설치도 아니다. 회화가 소리를 적고, 달의 시간이 음계를 받아들이며, 악보가 점수의 시대를 지나가는 작업이다. 한국 젊은 작가의 조형 언어가 국제 무대에서 넓어지는 방식도 이 연작 안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