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AI 정책, 반도체 호황 뒤 생산성 격차
정부 2026년 성장률 전망 3.0%로 상향, 국제기관은 2.5∼2.6%…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투자보다 전력·고용·현장 성과가 정책 지속성 좌우
[KtN 전성진기자]정부가 14일 2026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3.0%로 올렸다.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 확대, 재정 지원 효과를 반영한 수치다. 한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6%,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5%를 제시했다. 정부 전망은 국내외 주요 기관보다 0.4∼0.5%포인트 높다. 정부가 함께 내놓은 ‘잠재성장률 3%, 수출 세계 4강, 국민소득 5만달러’는 올해 성장률 전망과 구분되는 중장기 목표다.
올해 3% 성장이 현실화되더라도 한국 경제의 성장 능력이 곧바로 3%로 올라서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가격과 수출 물량, 정부 지출처럼 경기 순환에 따라 움직이는 요인을 걷어낸 뒤에도 노동과 자본, 생산성이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야 잠재성장률 반등으로 이어진다. 반도체 호황의 소득이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지역경제까지 확산되지 않으면 수출지표와 체감경기의 차이도 좁아지기 어렵다.
수주 걸리던 제품기획을 며칠로 줄인 미로
글로벌 협업 플랫폼 미로(Miro)는 AI가 기업 내부의 업무 순서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흐름 가운데 하나다. 2011년 온라인 화이트보드 ‘리얼타임보드(RealtimeBoard)’로 출발해 제품기획과 디자인, 개발을 연결하는 AI 기반 업무 플랫폼으로 사업 범위를 넓혔다. 맥킨지가 2026년 7월 공개한 인터뷰에는 1억 명 이상과 세계 25만 개 이상의 기업이 미로를 사용한다는 회사 측 설명이 실렸다.
미로에 새로 합류한 제품관리자는 고객 요청과 대화 내용을 모아 개발 목록을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을 며칠 만에 마쳤다. 과거에는 영업과 시장 담당 조직에서 정보를 받은 뒤 다시 정리하는 데 수주가 걸렸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제품관리자는 메모와 이미지, 아이디어를 공동 작업 공간에 배치한 뒤 코드 생성 도구에 전달하고, 생성된 결과물을 다시 동료들과 검토했다.
제품관리자와 디자이너, 개발자가 순서대로 업무를 넘기던 구조는 느슨해지고 있다.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시제품을 만든 뒤 일부 기능을 구현하는 단계까지 맡는다. 디자인과 고객 분석, 코드 생성을 담당하는 AI 에이전트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업무 전달에는 사람과 AI, AI와 AI 사이의 조정이 더해진다. 협업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늘어나는 변화다.
미로의 내부 경험은 기업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입증한 자료와는 다르다. 공개된 인터뷰에는 AI 도입 전후의 개발비와 오류율, 보안 취약점, 고객 이탈률, 유지·보수 비용을 비교한 수치가 없다. 정보 정리 시간이 줄어도 검토와 수정 비용이 늘면 최종 성과는 달라진다. 최고경영자가 제시한 ‘수배 수준의 생산성 향상’도 회사의 운영 목표에 가깝다. AI가 업무 속도를 높인다는 방향성과 투자 수익이 검증됐다는 판단은 분리돼야 한다.
개발비 하락 뒤 커지는 선택과 검증 비용
생성형 AI는 코드와 디자인 시안을 만드는 시간을 단축한다. 개발비가 낮아질수록 기업이 출시할 수 있는 기능과 서비스는 늘어난다. 기능 공급이 넘치는 시장에서는 개발 속도보다 고객이 실제로 사용할 기능을 고르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성과가 낮은 개발을 중단하고 AI가 생성한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도 제품개발의 주요 비용으로 들어간다.
여러 AI 에이전트가 연결된 업무에서는 초기 오류가 뒤쪽 공정까지 빠르게 번진다. 고객 요구를 잘못 분류하면 제품 우선순위와 디자인, 코드 생성 결과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 모든 중간 결과를 사람이 재검토하면 자동화로 절약한 시간이 줄고, 검토 단계를 생략하면 제품 오류와 보안 위험이 커진다.
기업 내부 데이터도 생산성 격차를 벌리는 요인이다. 영업과 고객지원, 생산, 재고, 회계 자료가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 흩어져 있으면 AI는 업무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자체 데이터 관리 인력과 시스템 연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과 소프트웨어 이용료 지원에 의존하는 중소기업 사이의 차이는 모델 성능보다 업무 기반에서 먼저 벌어진다.
개발 생산성도 코드량과 기능 수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졌다. 매출과 이용률, 불량률, 보안사고, 고객 이탈, 유지비를 함께 집계해야 빠른 출시와 기업가치 증가를 구분할 수 있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늘어날수록 개발자의 역할은 생산에서 선택과 검증, 책임 관리로 이동한다.
세계경제 3.0%, AI 수출국과 에너지 수입국의 엇갈린 흐름
IMF는 2026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0%, 2027년을 3.4%로 전망했다. 중동 전쟁과 높은 에너지 가격이 세계 성장률을 낮추는 가운데 AI 관련 투자와 반도체 수요가 일부 국가의 수출과 설비투자를 떠받치고 있다. 한국은 말레이시아, 대만, 태국과 함께 IMF가 분류한 세계 4대 AI 하드웨어 수출국에 포함됐다.
한국 경제는 에너지 수입 부담과 반도체 수출 이익을 동시에 받는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가계의 생활비와 기업 생산비용이 늘지만,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 메모리 반도체와 관련 장비 수요가 증가한다. 2026년 성장률 전망이 기관별로 2.5∼3.0%까지 벌어진 배경에도 반도체 호황의 지속 기간과 중동 정세, 재정 효과에 관한 서로 다른 전제가 놓여 있다.
기관별 2027년 전망은 더 크게 갈린다. 정부는 2.2%, IMF는 2.5%, 한국은행은 2.1%, OECD는 1.9%, KDI는 1.7%를 제시했다. 반도체 수요가 유지되고 수출기업의 소득이 소비와 비반도체 투자로 확산된다는 전망과 올해 반등 뒤 성장 속도가 다시 낮아진다는 전망이 맞서 있다.
KDI는 올해 수출이 4.6%, 설비투자가 3.3% 증가하는 반면 건설투자는 0.1%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과 투자 회복이 반도체에 집중되고 건설과 비반도체 제조업의 회복은 약한 구조다. OECD도 반도체와 조선업을 제외한 제조업의 기업 심리가 부진하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생산은 자본집약도가 높다. 수출액이 급증해도 같은 비율로 일자리가 늘지는 않는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이 협력업체 발주와 임금, 세수, 지역 소비로 이어지는 범위가 체감경기와 성장 지속 기간을 가른다. 메모리 가격 하락이나 빅테크의 AI 투자 조정이 발생하면 수출과 설비투자가 동시에 둔화하는 집중 위험도 남는다.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묶은 3대 메가프로젝트
이재명 정부는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배치했다. 5극3특 지역 전략과 지방 우대 재정·세제·공공조달도 투자계획에 연결했다. AI 산업 기반을 수도권 밖으로 넓히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세 분야를 묶은 산업 구성은 한국의 기존 제조업과 맞닿아 있다. 반도체는 연산 장치를 공급하고, 데이터센터는 모델 학습과 서비스 운영을 맡는다. 피지컬 AI는 로봇과 자동차, 선박, 공장설비에서 반도체와 AI 서비스를 소비한다. 메모리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가전, 산업용 장비 공급망을 보유한 한국이 소프트웨어만으로 경쟁하는 국가와 다른 경로를 선택한 셈이다.
정부는 민관이 2030년까지 제조업 인공지능 전환(M.AX)에 20조원을 투입하고 100조원 이상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와 제조업 파운데이션 모델, 대형 AI 에이전트, 지역 산업단지별 M.AX 클러스터도 계획에 포함됐다. 20조원은 민간 자금까지 합친 투자계획이고, 100조원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정책 목표다.
투자 총액만으로 정부의 기여분을 계산하면 실제 효과가 부풀려질 수 있다. 기업이 이미 추진하던 설비투자와 정책 발표 뒤 새로 늘어난 투자, 정부 재정, 정책금융, 민간 자금을 구분해야 순증 효과가 드러난다.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지방에 들어서더라도 연구개발 조직과 협력업체, 고임금 일자리, 지방세수가 수도권에 남으면 지역 분산의 경제적 효과도 제한된다.
AI 데이터센터 앞에 놓인 전력망과 자금 조달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5년 48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50TWh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세 배로 증가한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기업 자체 자금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로 커지면서 금융시장 상황과 투자 수익성 전망도 건설 속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를 대량 구매하는 시설이면서 전력을 장기간 소비하는 산업시설이다. 서버와 부지를 확보해도 발전설비와 송전망 접속이 늦어지면 가동 시점이 밀린다. 전력망 증설 비용을 정부와 사업자, 지역 소비자 가운데 누가 부담하는지도 사업 수익성과 지역 수용성을 바꾼다.
시설 규모와 투자액만 발표한 데이터센터 계획은 실제 운영 능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지역별 전력망 접속 시점과 최대 사용전력, 가동률, 전력 조달 단가, 용수 사용량이 사업의 실체를 보여준다. 서버와 소프트웨어를 해외에서 구매하고 지역 고용이 제한되면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건설 투자액보다 작아진다.
피지컬 AI, 기술개발보다 현장 데이터와 책임 구조
정부가 7월 공개한 피지컬 AI 전략은 로봇 행동 데이터와 제조·모빌리티·농업 현장의 특화 데이터를 모으고,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과 월드모델, 온디바이스 컴퓨팅 플랫폼을 개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제조와 농업, 국방, 돌봄 등으로 적용 분야를 넓히는 계획도 포함됐다.
피지컬 AI는 문서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AI보다 현장 진입 장벽이 높다. 로봇과 자동차, 제조설비가 현실 공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작은 오류도 산업재해와 제품 손상으로 이어진다. 공장별로 설비와 작업 방식이 달라 한 곳에서 학습한 모델을 다른 생산라인에 그대로 적용하기도 어렵다.
산업용 데이터의 소유권도 기업 참여를 좌우한다. 중소기업이 제공한 생산 데이터가 대기업이나 플랫폼 기업의 모델 개발에 사용된 뒤 원래 제공업체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데이터 공유가 지속되기 어렵다. 국가 제조데이터 라이브러리에는 접근 권한과 사용 범위, 수익 배분, 계약 종료 뒤 삭제 기준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실증사업의 성과는 참여기관 수에서 나오지 않는다. 생산라인 적용률과 작업시간, 불량률, 산업재해, 에너지 사용량, 제품 매출, 수출 계약이 피지컬 AI의 산업화 속도를 보여준다. 목표치에 미달한 사업의 중단 기준까지 마련돼야 연구개발 지원이 장기간 반복되는 구조를 줄일 수 있다.
공공 AX, 빠른 구매가 키울 수 있는 업체 의존
정부는 국가계약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해 AI 제품과 서비스의 공공시장 진입을 확대하고 조달행정의 AI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민원과 복지, 세금, 조달, 재난 대응 등 대규모 데이터를 보유해 국내 AI 기업이 초기 운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장이다.
구매 속도가 빨라질수록 검증과 책임 기준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복지 대상 선별이나 세금, 민원 처리에서 발생한 오류는 국민의 권리와 재산에 직접 영향을 준다. AI의 추천 내용과 사용 데이터, 담당자의 수정·승인 기록이 남지 않으면 사고 뒤 책임 소재가 흐려진다.
도입 기관 수와 계약 건수도 행정 생산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공공 AX의 결과는 민원 처리기간과 오류율, 이의신청 건수, 개인정보 침해, 행정비용, 담당자 업무시간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처리시간이 줄었더라도 오판과 재심이 늘었다면 비용은 다른 단계로 옮겨간 것이다.
특정 기업의 모델과 데이터 형식에 행정 시스템이 묶이면 계약 종료 뒤 업체를 바꾸기 어렵다. 데이터 이동과 시스템 연동, 학습자료 반환·삭제, 모델 교체 비용을 조달 규격에 넣지 않으면 초기 도입비보다 장기 유지비가 커질 수 있다. 규제샌드박스가 구매 절차 단축을 넘어 안전성과 책임 기준까지 낮추는 통로가 돼서는 안 된다.
AI 고용대책, 지수 개발은 2027년부터
정부는 7월 9일 첫 법정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27년 한국형 AI 노출지수(K-AIOE)를 개발하고, AI 노출도가 높은 직무의 산업·연령별 고용 변화를 보여주는 ‘한국형 카나리아 대시보드’를 운영한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 100만명 이상에게 AI 직업훈련을 지원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정책 안에 넣었다는 점은 이전보다 진전된 부분이다. 다만 노출지수는 2027년에 개발되고, 직업훈련 인원은 결과보다 투입 규모에 가깝다. AI 교육을 받은 근로자의 고용 유지기간과 임금, 직무 이동, 교육 전후 생산성이 집계돼야 노동시장 전환의 결과가 드러난다.
모든 근로자가 AI 개발자로 이동할 수는 없다. 기존 직무에서 AI를 사용하는 인력과 자동화로 업무가 축소되는 인력, 새로운 직무로 옮겨야 하는 인력은 서로 다른 지원을 받는다. 기업이 AI로 절약한 비용을 고용 유지와 노동시간 단축, 임금에 어떻게 배분하는지도 전환의 성격을 바꾼다.
미로가 설명한 ‘메이커’형 인력은 소프트웨어 기업의 일부 고숙련 직군에서 먼저 나타난 변화다. 제조 현장과 소상공인, 행정기관에 같은 속도로 확산된다는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AI에 익숙한 고숙련 인력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는 동안 청년의 초급 직무와 반복 사무직 채용이 줄면 기업 생산성과 노동시장 진입 기회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성장률 3%와 잠재성장률 3% 사이
정부의 2026년 성장률 전망 3.0%는 반도체 호황과 재정 효과가 이어진다는 예측이다. 달성 여부는 반도체 수요와 생산능력, 국제유가, 중동 정세, 환율, 내수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 한국은행은 AI 투자 속도가 늦어지는 비관적 상황에서 성장률이 기본 전망보다 0.3%포인트 낮아지고,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면 0.5%포인트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잠재성장률 3%는 경기 호황보다 훨씬 높은 문턱이다.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서비스업과 중소기업, 공공부문의 시간당 부가가치가 함께 올라야 한다. AI로 줄어든 업무시간이 신규 매출과 임금,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지는지, 인력 감축과 외주 축소에 머무는지가 성장의 분배까지 결정한다.
2026년 하반기에는 정부 전망치 3.0%보다 사업 집행의 세부 수치가 더 중요해진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접속 일정과 가동률, 피지컬 AI의 생산라인 적용률과 제품 매출, 공공 AX의 처리시간과 오류율, 제조 AX 참여기업의 생산성과 고용 변화가 정책의 실제 성과를 드러낸다. 사업별 정부 재정과 정책금융, 민간 투자, 기존 투자계획을 나눈 자료도 정책이 새로 만든 효과와 반도체 호황에 편승한 수치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미로가 공개한 내부 업무 사례에는 AI 도입 뒤 제품기획과 개발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변화가 담겼다. 다만 한 기업의 경험만으로 생산성 혁신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이재명 정부의 AI 전략도 투자계획의 크기보다 비용 절감과 고용 변화, 전력 부담, 오류율, 지역 부가가치에서 성과가 갈린다. 반도체 호황이 약해진 뒤에도 산업 전반의 생산성 개선이 이어지는지가 잠재성장률 3% 구상의 지속성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