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2026 FW①] ‘ETERNAL NOW’, 중심선이 밀려난 수트

노화와 흐려진 기억을 비대칭 여밈·과장된 비례·낮은 채도로 풀어낸 가을·겨울 컬렉션

2026-07-16     박인경 기자
Maison MIHARA YASUHIRO’s FW26 Lookbook Is an Introspective Dreamscape of Sartorial Codes. 사진=Nikolas Kokovlis/Nurphoto Via Getty Imag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인경기자]메종 미하라 야스히로(Maison MIHARA YASUHIRO)의 2026년 가을·겨울 컬렉션 ‘ETERNAL NOW’는 수트의 중심선을 옮기는 데서 출발한다. 재킷은 어깨와 품을 크게 늘렸고, 셔츠 여밈은 몸의 중앙을 비껴갔다. 안쪽에 숨겨지던 라벨은 옷 밖으로 나왔다. 갈색과 검정, 회색을 중심으로 낮춘 색감까지 더해지면서 정장은 반듯한 균형 대신 흐트러진 비례를 드러낸다.

미하라 야스히로(Mihara Yasuhiro)가 컬렉션에 붙인 이야기는 열차에서 잠든 승객을 따라간다. 내려야 할 역을 놓친 승객은 잠에서 깨어난 뒤 창밖 풍경의 윤곽이 흐려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노화와 기억의 혼란을 다룬 서사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 익숙한 형태가 서서히 달라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옷에서도 급격한 해체보다 미세한 이동이 먼저 나타난다. 재킷의 어깨선과 셔츠의 앞여밈, 소매 끝과 밑단이 원래 놓이던 자리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좌우 대칭과 정확한 치수를 전제로 삼아온 수트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작은 차이도 쉽게 드러난다.

검정과 갈색 수트는 상체를 정돈하기보다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을 넓힌다. 어깨는 실제 체형보다 바깥으로 뻗고, 소매는 손목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다. 재킷 안에 겹친 셔츠도 같은 위치에 머물지 않는다. 칼라와 앞판, 커프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리면서 한 벌의 수트 안에 여러 시점의 옷차림이 포개진다.

분홍색 셔츠와 갈색 재킷을 겹친 착장에서는 비례의 차이가 더 선명하다. 셔츠 소매는 재킷 아래로 길게 빠져나오고, 앞판은 몸의 중앙을 벗어난다. 갈색 재킷은 넓어진 어깨와 긴 소매로 상체의 윤곽을 덮는다. 두 옷의 길이와 중심이 맞지 않으면서 정장 특유의 단정한 층위도 무너진다.

Maison MIHARA YASUHIRO’s FW26 Lookbook Is an Introspective Dreamscape of Sartorial Codes. 사진=Nikolas Kokovlis/Nurphoto Via Getty Imag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검정 스트라이프 팬츠는 아래로 곧게 떨어지는 수직선을 만든다. 반면 분홍색 셔츠의 칼라와 여밈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반듯한 줄무늬와 비껴간 상의가 맞물리면서 착장의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복잡한 장식보다 옷의 위치와 방향이 전체 인상을 좌우한다.

셔츠 아래쪽과 재킷 전면에는 제품 라벨 형태의 부자재가 노출돼 있다. 옷 안쪽에 감추던 제작 정보가 바깥으로 이동하면서 정장의 매끈한 외관에도 틈이 생긴다. 봉제와 마감을 숨겨 완성된 형태만 남기던 방식과 거리를 둔 구성이다.

Maison MIHARA YASUHIRO’s FW26 Lookbook Is an Introspective Dreamscape of Sartorial Codes. 사진=Nikolas Kokovlis/Nurphoto Via Getty Imag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갈색과 검정, 차콜, 회색은 컬렉션의 큰 면적을 차지한다. 분홍과 라벤더도 선명한 원색보다 회색이 섞인 낮은 채도로 눌렀다. 상의와 하의, 머리카락과 배경 사이에 강한 색 대비를 두지 않아 각각의 윤곽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색을 바랜 듯 조정한 방식은 오래된 시간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선명도를 낮추는 효과를 낸다. 갈색 재킷과 분홍색 셔츠는 색상 차이가 분명하지만 밝기의 간격은 크지 않다. 검정 수트와 차콜 니트도 비슷한 농도 안에서 겹친다.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보다 여러 기억이 한꺼번에 포개지는 상태에 가깝다.

검정 퍼 해트와 회색 니트를 맞춘 착장에서는 얼굴 주변의 경계도 줄어든다. 해트는 이마와 눈 위를 덮고, 니트의 목둘레에는 고르지 않은 가장자리가 남아 있다. 정돈된 헤어와 또렷한 얼굴선을 앞세우기보다 검정과 회색의 덩어리, 퍼와 니트의 질감 차이를 부각했다.

Maison MIHARA YASUHIRO’s FW26 Lookbook Is an Introspective Dreamscape of Sartorial Codes. 사진=Nikolas Kokovlis/Nurphoto Via Getty Images,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ETERNAL NOW’라는 제목은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기 어려운 시간 감각과 맞닿아 있다. 컬렉션은 오래된 복식을 그대로 되살리지 않는다. 셔츠와 수트, 스트라이프 팬츠처럼 익숙한 품목을 남겨두고 각 부분의 위치를 바꾼다. 기억 속 형태는 유지되지만 칼라와 여밈, 소매와 밑단은 이전과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열차와 정거장도 의상에 직접 새겨지지 않았다. 놓친 역과 흐려진 시야는 중심에서 밀려난 셔츠, 길이가 맞지 않는 소매, 낮아진 색 대비로 옮겨졌다. 문학적 서사를 그림이나 문구로 전달하지 않고 재단과 스타일링 안에 분산한 방식이다.

오버사이즈 수트와 비대칭 여밈, 노출 라벨은 각각 낯선 요소가 아니다. ‘ETERNAL NOW’는 세 요소를 노화와 기억이라는 서사 아래 한꺼번에 묶었다. 큰 재킷만으로 실루엣을 과장하지 않고, 셔츠와 팬츠의 방향을 달리하고 색의 선명도까지 낮추면서 착장 전체를 불안정하게 조정했다.

202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수트는 몸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옷으로 남지 않는다. 어깨와 소매는 체형을 벗어나고, 셔츠와 재킷의 중심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미하라 야스히로가 다룬 기억의 혼란도 극적인 파괴보다 익숙한 기준이 조금씩 밀려나는 과정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