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 냉장고, 가전에서 거실 가구로

로코×고하르 월드 ‘미러 블랙’…18일 마감 공정과 샴페인 쿠페가 바꾼 냉장고의 자리

2026-07-16     임민정 기자
This Brand Wants Your Fridge to be as Elevated as Your Furniture. 사진=Roc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2026년 7월 14일 미국 음료 냉장고 브랜드 로코(Rocco)는 고하르 월드(Gohar World)와 협업한 ‘미러 블랙’ 한정판 냉장고를 공개했다. 라일라 고하르(Laila Gohar)와 나디아 고하르(Nadia Gohar)가 고른 거울 같은 검은 외장, 전용 샴페인 쿠페 두 잔, 출시가 2295달러는 제품의 쓰임을 식품 보관 너머로 확장한다. 주방 한쪽을 채우는 대형 가전보다는 거실에 놓고 손님을 맞는 음료 가구에 가깝다.

유백색 커튼 앞에 놓인 검은 냉장고는 익숙한 가전제품의 인상을 지운다. 둥글게 다듬은 모서리와 가느다란 금속 다리, 광택이 강한 측면은 수납장이나 오디오 캐비닛을 연상시킨다. 커튼과 창문에서 들어온 빛은 검은 외장 위에 희미하게 겹치고, 상판에 놓인 병과 잔, 금속 조명은 냉장고를 거실용 콘솔처럼 바꾼다.

전면에는 내용물을 그대로 드러내는 투명 유리 대신 세로 골이 들어간 플루티드 글라스(fluted glass)를 사용했다. 병과 캔의 형태는 흐려지고 빨강·주황·금색 라벨이 수평의 색 띠로 남는다. 내부를 완전히 가리지 않으면서도 생활용품의 복잡한 윤곽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손잡이는 장식이 적은 금속 관 형태로 만들었고, 직각을 피한 본체와 짧은 다리가 냉장고의 육중한 부피를 덜어낸다. 해당 형태는 밀라노의 산업디자이너와 함께 개발됐지만 디자이너의 실명은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가구처럼 보이게 만든 비례와 구조

로코 냉장고의 크기는 높이 34.5인치, 폭 24인치, 깊이 16인치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88×61×41㎝다. 무게는 128파운드로 약 58㎏에 이른다. 일반적인 협탁보다 무겁지만 깊이를 얕게 줄이고 벽에 밀착해 설치할 수 있도록 구성해 거실과 서재, 다이닝 공간에도 놓을 수 있는 비례를 택했다. 상판에는 병과 바 도구를 올리는 트레이가 결합돼 별도의 바 카트를 대신한다.

가구에 가까운 외형이 냉각 기능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내부는 두 개의 독립된 온도 구역으로 나뉘며 화씨 37∼64도 범위에서 조절할 수 있다. 선반 배치에 따라 보르도 와인병 27개 또는 캔 88개를 넣을 수 있고, 실리콘을 입힌 철제 랙 여섯 개는 앞으로 완전히 당겨 내용물을 꺼내도록 설계됐다. 삼중 리디드 글라스(reeded glass)에는 자외선 차단과 틴팅 처리가 적용됐다. 냉장고라기보다 장식장처럼 보이게 만들면서도 음료 전용 저장고가 요구하는 온도와 빛의 조건을 유지한 구성이다.

상판과 내부 조명의 역할도 달라졌다. 앱으로 밝기를 조절하는 내부 발광은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도 유리 뒤의 병과 캔을 은은하게 드러낸다. 차가운 저장 공간을 감추는 대신 조명과 유리를 이용해 전시한다. 냉장고를 벽 속에 넣거나 패널로 덮던 방식과 반대되는 선택이다.

This Brand Wants Your Fridge to be as Elevated as Your Furniture. 사진=Roc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미러 블랙 한정판은 형태를 바꾸지 않고 색·소재·마감, 이른바 CMF(Color·Material·Finish)를 집중적으로 손봤다. 한 대를 완성하는 데 18일이 걸리며 고급 래커 도장, 세라믹 코팅, 세 단계 연마와 최종 왁스 작업을 거친다. 자동차 외장과 유사한 마감 공정을 적용해 주변 공간을 반사하는 검은 표면을 만들었다. 무광 검정이 부피를 흡수한다면 미러 블랙은 커튼과 조명, 사람의 움직임을 외장에 끌어들인다.

상판에는 고하르 월드가 디자인한 수공예 샴페인 쿠페 두 잔이 함께 놓인다. 유리잔은 단순한 증정품에 머물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병을 꺼내고, 상판에서 잔을 채우고, 손님에게 건네는 사용 순서를 제품 구성 안에 포함한다. 라일라 고하르는 예고 없이 손님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집에 차가운 샴페인 한 병을 둔다고 설명했다. 냉각기기와 잔을 한 세트로 묶은 배경도 해당 생활 방식에서 출발했다.

This Brand Wants Your Fridge to be as Elevated as Your Furniture. 사진=Roc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냉장고와 접객 공간을 한 덩어리로

흰 벽과 붉은 카펫, 대형 거울로 구성된 캠페인 공간에는 검은 냉장고와 검은 의자, 은색 조명이 함께 배치됐다. 검은 옷과 강한 주황빛 단발머리를 택한 두 인물은 의자에 앉아 있고, 냉장고는 오른쪽에서 인물과 비슷한 높이로 자리를 차지한다. 가전제품을 배경으로 밀어내지 않고 의자·거울과 동등한 실내 오브제로 다룬 연출이다.

거울은 인물을 두 번 비추고 미러 블랙 외장은 방의 색과 형태를 다시 받아들인다. 붉은 바닥과 주황빛 머리, 냉장고 내부에 배열된 음료 라벨이 같은 색 계열로 이어진다. 냉장고의 검은 몸체는 색을 추가하기보다 주변의 강한 색을 정리하는 축이 된다. 전통적인 백색가전이나 스테인리스 가전에서 찾기 어려웠던 역할이다.

This Brand Wants Your Fridge to be as Elevated as Your Furniture. 사진=Rocco,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다른 배치에서는 샴페인 쿠페가 인물의 손에 들리고 냉장고는 바로 옆에 놓인다. 보관과 음용 사이의 이동 거리가 사라지고,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음료를 꺼내고 잔을 채울 수 있는 작은 접객 구역이 만들어진다. 냉장고가 식재료를 장기간 보존하는 설비에서 대화와 음료를 연결하는 생활 도구로 좁혀진 셈이다.

로코는 주방의 주 냉장고를 대체하기보다 음료에 특화된 두 번째 냉장고를 제안한다. 케첩과 남은 음식, 채소와 음료가 뒤섞인 대형 냉장고에서 병과 캔을 분리하고, 손님이 머무는 공간 가까이에 차가운 음료를 둔다. 상판은 병과 잔을 놓는 바 카트가 되고 내부는 온도가 다른 와인과 탄산음료를 나눠 보관한다. 형태뿐 아니라 냉장고가 놓이는 장소와 사용하는 사람의 동선까지 바꾼다.

비스포크와 오브제컬렉션 이후의 생활가전

생활가전과 인테리어의 경계는 이미 대형 가전업계에서 빠르게 낮아졌다. 삼성전자 비스포크(Bespoke) 냉장고는 2019년 모듈형 제품으로 출발해 도어 패널의 색상·소재·마감을 선택하고, 필요한 용량에 따라 제품을 조합하는 방식을 확대했다. 고정된 은색 냉장고를 구입하는 대신 실내 색과 가족 구성에 맞춰 외관과 모듈을 고르는 구조였다.

LG전자 오브제컬렉션(Objet Collection)은 2021년 가전과 디자이너 가구의 경계를 낮추겠다는 방향을 전면에 내걸었다. 다양한 소재와 절제된 색을 조합해 냉장고와 세탁기, 의류관리기 같은 대형 제품이 실내 마감재와 어울리도록 구성했다. 가전의 기능을 숨기기보다 가구와 같은 디자인 언어를 부여한 접근이었다.

로코와 고하르 월드의 협업은 패널 선택보다 냉장고의 위치와 용도를 더 크게 바꾼다. 비스포크와 오브제컬렉션이 주방에 놓이는 대형 가전의 외장을 실내에 맞췄다면, 로코는 냉장고를 주방 밖으로 옮기고 바 카트와 음료 장식장의 역할을 결합했다. 한정판 색상과 전용 유리잔까지 묶으면서 가전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물건에서 손님을 맞는 태도를 드러내는 물건으로 이동한다.

오늘날 생활가전 디자인에서 성능 수치와 외형은 별개의 영역으로 남기 어렵다. 냉장고는 하루 종일 실내에 놓이고, 조명과 가구, 바닥재 사이에서 큰 면적을 차지한다. 소비자는 냉각 온도와 저장 용량뿐 아니라 물건이 공간을 얼마나 점유하는지, 다른 가구와 어떤 높이로 만나는지, 문을 닫았을 때 무엇을 노출하는지까지 구매 조건으로 살핀다. 미러 블랙 냉장고는 색을 고르는 맞춤형 가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반사와 빛, 사용 동작을 제품 경험에 포함했다.

2295달러 한정판이 남긴 현실적인 조건

출시 당시 미러 블랙 한정판의 가격은 2295달러로 소개됐다. 로코 공식 판매 페이지에 표시된 일반 모델 정가 1995달러보다 300달러 높다. 공식 페이지의 판매가는 프로모션과 재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실제 결제 가격은 구매 시점에 다시 확인해야 한다. 한정판 생산 수량과 판매량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용 조건에도 제약이 있다. 문이 열리는 방향을 바꿀 수 없어 설치 위치를 먼저 살펴야 하며, 내부를 원격으로 확인하는 ‘사이트 시스템(Sight System)’은 현재 애플 기기에서만 지원된다. 2024년 와이어드(Wired)의 제품 리뷰에서는 당시 내부 카메라가 일부 음료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등 스마트 기능의 완성도가 고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소프트웨어 개선 범위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10년 보증은 고가 제품의 장기 사용을 뒷받침하는 조건이다. 다만 한정판의 가치는 거울 같은 외장의 희소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냉각 성능이 오랜 기간 유지되는지, 앱과 내부 카메라가 계속 업데이트되는지, 도장과 부품 수리가 원활한지가 실제 수명을 좌우한다. 한국 내 판매와 사후 서비스 조건은 공개된 자료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로코와 고하르 월드의 냉장고는 생활가전이 더 이상 배경에 머물지 않는 흐름을 압축한다. 플루티드 글라스는 내용물을 정리해 드러내고, 미러 블랙 외장은 실내를 반사하며, 상판과 쿠페는 음료를 대접하는 동작을 이어준다. 2026년 7월 시작된 한정 판매 이후 확인할 지표는 판매량과 재고보다 길다. 외장 마감의 내구성, 스마트 기능의 업데이트, 10년 보증의 실제 운용이 쌓여야 2295달러짜리 냉장고가 짧은 유행을 넘어 생활가전과 가구 사이에 자리를 잡았는지 판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