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GBTQ+ 뮤지엄 2028②] 프라이드 마케팅 위축 속 박물관 후원…패션계 LGBTQ+ 참여의 변화

마이클 코어스, 이사회·기부·업계 네트워크 결합…단기 캠페인 넘어 전시·아카이브로 넓어지는 지원 방식

2026-07-19     임민정 기자
[미국 LGBTQ+ 뮤지엄 2028②] 프라이드 마케팅 위축 속 박물관 후원…패션계 LGBTQ+ 참여의 변화. 사진=Photos by BFA.com.,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미국 기업들이 프라이드 행사 후원을 줄이면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의 행사 운영비에 공백이 생긴 지 1년여 만에 패션계 인사들이 LGBTQ+ 역사박물관을 위해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모였다.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는 지난 15일 자신의 플래그십에서 2028년 개관 예정인 아메리칸 LGBTQ+ 뮤지엄(American LGBTQ+ Museum)을 소개했다. 계절 상품과 광고 캠페인이 줄어든 자리에 전시와 수집, 교육을 지원하는 장기 후원이 들어설 수 있을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2025년 미국의 프라이드 행사는 기업 후원 감소를 직접 겪었다. 뉴욕 프라이드를 운영하는 헤리티지 오브 프라이드(Heritage of Pride)는 75만달러,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는 20만달러의 부족분을 마련해야 했다. 캔자스시티 프라이드가 잃은 후원금도 연간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20만달러였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앤하이저부시가 30년간 이어온 후원을 중단하면서 15만달러가 빠졌다.

소매점과 패션·생활 브랜드의 프라이드 노출도 이전보다 줄었다. 2026년에는 무지개색 상품을 대량으로 내놓는 방식 대신 퀴어 문화와 역사에 근거한 전시, 단체 후원, 공동 기획을 택한 브랜드가 나타났다. JW 앤더슨(JW Anderson)은 과거 게이 남성 잡지에 실렸던 작가 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드로잉을 런던 매장에 전시했고, 에르뎀(Erdem)은 퀴어 서점 게이스 더 워드(Gay’s The Word)와 데릭 저먼(Derek Jarman)의 작업을 활용한 티셔츠를 제작했다. 디젤(Diesel)과 틴더(Tinder)는 캠페인과 함께 국제 성소수자 인권단체 아웃라이트 인터내셔널(Outright International)에 20만달러를 기부했다.

마이클 코어스 매장에서 열린 행사는 같은 흐름의 연장선에 놓인다. 참석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회장 겸 최고경영자 스티븐 콜브(Steven Kolb)를 비롯해 조지나 채프먼(Georgina Chapman), 바체바 헤이(Batsheva Hay), 윌리 차바리아(Willy Chavarria), 비부 모하파트라(Bibhu Mohapatra), 브랜던 블랙우드(Brandon Blackwood) 등으로 구성됐다. 행사 주최는 코어스와 벤 가르시아(Ben Garcia) 박물관 집행이사가 맡았다. CFDA 회원과 패션계 인사들에게 개관 계획을 처음 소개하고 박물관과 업계의 접점을 마련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

행사의 무게는 참석자 수보다 코어스와 배우자 랜스 르 페레(Lance Le Pere)가 이미 맡은 역할에 있었다. 두 사람은 2025년 박물관 이사회에 합류했다. 박물관에 기부하고 공간 명명에도 참여했으며, 매디슨 애비뉴 행사를 통해 패션계 인맥을 모금과 협력 기반에 연결했다. 가르시아 집행이사도 두 사람이 재정 지원에 머물지 않고 인적 네트워크를 함께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브랜드가 프라이드 기간에 상품을 판매하고 수익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과 박물관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은 책임의 기간부터 다르다. 계절 캠페인은 제작과 판매가 끝나면 활동도 마무리되지만 이사회는 모금과 운영, 기관의 장기 계획에 관여한다. 공간 명명 기부는 후원자의 이름을 박물관에 남기는 동시에 박물관의 역사 서술과 기업·개인 브랜드의 유산을 가까이 놓는다.

문화기관 후원이 단기 광고보다 공공성이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거액 기부자의 이름이 전시장에 붙으면 후원자의 사회적 이미지와 박물관의 권위가 함께 움직인다. 이사회 구성과 기부금의 비중, 학예 조직의 독립성에 따라 후원은 안정적인 재원이 될 수도 있고 기관의 서술 방향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아메리칸 LGBTQ+ 뮤지엄은 패션계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전시 기획과 후원 활동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패션은 박물관이 준비하는 기획전의 주요 영역 가운데 하나다. 5000제곱피트 규모의 박물관에는 미국 LGBTQ+ 역사를 다루는 연대기 전시와 함께 패션·음악·스포츠 등 주제를 바꿔 가며 운영하는 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흑인과 여성, 트랜스젠더의 역사도 별도 기획전에서 다룬다. 미국 각지의 큐레이터가 박물관 직원과 공동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방식도 추진된다.

가르시아 집행이사는 패션 분야의 첫 구상으로 루디 게른라이히(Rudi Gernreich)를 언급했다. 로스앤젤레스의 패션기관과 협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빌 커닝엄(Bill Cunningham)을 비롯한 패션계 인물도 전시 대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게른라이히 전시와 커닝엄 전시는 확정된 개관 프로그램이 아니라 향후 기획전의 방향을 설명하는 단계다.

게른라이히와 커닝엄을 함께 거론한 대목은 박물관이 패션사를 다루는 두 갈래를 드러낸다. 디자이너의 의복과 디자인은 성별 규범과 신체 노출, 사회운동의 변화를 기록한다. 거리와 사교계, 패션쇼를 오간 사진은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를 넘어 도시의 계층과 공동체, 자기표현 방식을 남긴다. 커닝엄은 뉴욕 거리와 사교계, 오트쿠튀르(haute couture)를 오랜 기간 기록한 사진가이자 패션 기록자였다.

[미국 LGBTQ+ 뮤지엄 2028②] 프라이드 마케팅 위축 속 박물관 후원…패션계 LGBTQ+ 참여의 변화. 사진=Photos by BFA.com.,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유명 디자이너와 사진가의 이름만으로 퀴어 패션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의상을 만든 재단사와 봉제 노동자, 매장과 잡지에서 일한 편집자·스타일리스트·메이크업 아티스트, 클럽과 볼룸에서 새로운 옷차림을 만든 공동체도 패션산업의 일부였다. 트랜스젠더와 유색인종 디자이너, 독립 브랜드, 드래그와 나이트라이프 문화는 대형 패션하우스의 연대기 밖에서 발전한 경우가 많다.

박물관 전시는 의복을 유명인의 유품이나 아름다운 오브제로만 다루는 기존 패션 전시와 다른 자료를 요구한다. 잡지와 광고, 룩북, 사진, 스케치뿐 아니라 클럽 전단과 개인 앨범, 소규모 브랜드의 판매 기록, 사회운동 단체가 제작한 티셔츠와 배지까지 수집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 HIV·에이즈 위기 당시 패션계가 벌인 모금과 추모 활동, 업계 내부의 차별과 고용 환경도 함께 다뤄야 패션과 LGBTQ+ 공동체의 관계가 성공담에 머물지 않는다.

마이클 코어스는 박물관 참여의 배경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받아들인 경험과 패션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선택하며 받았던 시선을 언급했다. 가족의 지지를 받았지만 남성이 패션디자인을 직업으로 삼는 일을 둘러싼 편견은 남아 있었다는 설명이다. 코어스는 어린 관람객들이 박물관에서 LGBTQ+ 공동체가 문화와 사회에 남긴 기여를 가족과 함께 접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르시아 집행이사는 코어스를 경력 전반에 걸쳐 성적 지향을 공개하고 활동한 초기 패션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했다. 해당 평가는 코어스가 박물관의 후원자인 동시에 미국 퀴어 패션사의 한 인물로 다뤄질 가능성을 함께 담고 있다. 후원자가 향후 전시의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인물 평가와 기부 관계를 구분하는 학예적 판단이 필요하다.

코어스와 르 페레는 LGBTQ+ 뮤지엄 참여 이전에도 여러 문화·복지기관을 후원했다. 갓츠 러브 위 딜리버(God’s Love We Deliver), 유엔 세계식량계획, 뉴욕 에이즈 메모리얼 파크, 링컨센터 시어터 등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박물관 이사회 합류는 식량·보건·공연예술에 걸쳐 있던 후원 활동을 역사 수집과 교육으로 넓힌 행보다.

매디슨 애비뉴 플래그십도 판매 공간과 모금 공간을 겸했다.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은 고객과 언론, 디자이너, 문화계 인사가 모이는 장소다. 박물관은 별도의 대규모 행사를 만들지 않고 코어스의 공간과 업계 관계망을 활용했다. 브랜드가 제공한 자산은 의류나 현금 기부에 그치지 않고 장소와 인적 네트워크까지 넓어졌다.

매장을 문화 전시장이나 공익행사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2026년 프라이드 캠페인에서도 나타났다. JW 앤더슨은 런던 소호 매장에서 지하 게이 잡지의 삽화를 전시했고, 뷰티 유통업체 컬트 뷰티(Cult Beauty)는 영국 퀴어 브리튼 뮤지엄(Queer Britain Museum)과 프로그램을 열었다. 상품 판매를 유지하되 매장 안에 기록과 공동체 기관을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아메리칸 LGBTQ+ 뮤지엄과 패션계의 결합은 한 달간 운영되는 프라이드 매장보다 기간이 길다. 박물관은 2028년 개관 뒤 패션 관련 기획전을 순환 운영하고 일부 전시를 미국 각지로 보낼 계획이다. 코어스도 뉴욕을 방문하기 어려운 관람객에게 전시가 직접 이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순회전은 뉴욕 패션계의 역사와 인물을 미국 전체의 퀴어 패션사로 확대하지 않도록 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영화·의상 산업과 샌프란시스코의 대항문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의 음악·클럽 문화, 미국 남부와 중서부의 독립 디자이너와 지역 공동체는 뉴욕 중심의 패션사와 다른 기록을 갖고 있다. 지역 큐레이터와 기관이 전시에 실질적으로 참여할수록 전국 단위 박물관이라는 성격도 분명해진다.

패션계가 LGBTQ+ 공동체와 오래 연결돼 있다는 설명은 사실만으로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업계에서 활동한 성소수자가 많았다는 사실과 기업이 노동환경·고용·광고·후원을 일관되게 운영했다는 평가는 별개다. 기업들이 정치적 반발과 시장 부담을 이유로 프라이드 후원을 줄인 최근 흐름은 패션과 LGBTQ+ 공동체의 관계가 문화적 친밀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냈다.

박물관 후원도 계절 캠페인의 대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장기성을 보장받지는 않는다. 개관 뒤에도 전시 제작과 소장품 관리, 교육 프로그램, 순회전 운영에는 지속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패션계 참여의 수준은 개관 축하행사의 규모보다 이사회 활동과 자료 기증, 연구 지원, 지역 순회전 후원이 이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2028년 전시장에는 미국 퀴어사의 연대기와 함께 패션 기획전이 들어선다. 게른라이히와 커닝엄을 둘러싼 구상은 출발점에 해당한다. 디자이너와 유명인의 이름을 넘어 의복을 만들고 입고 기록한 사람들의 자료가 전시에 포함될 때, 패션은 LGBTQ+ 문화의 장식이 아니라 미국 사회사를 구성한 기록으로 자리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