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브랜드 전략③] 성장전략 중심에 못 오른 브랜드

신제품 도입 53%·가격 변경 42%·유통 확대 39%만 주요 판단 요소…기업 정체성 변화 인식과 실제 결정 사이 간격

2026-07-20     최기형 기자
[AI 시대 브랜드 전략③] 성장전략 중심에 못 오른 브랜드.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기업 정체성이 인공지능(AI)의 시장 확산에 맞춰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응답은 82%에 달했다. 그러나 신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브랜드 전략을 주요 판단 요소로 삼았다는 기업은 53%에 그쳤다. 가격 변경은 42%, 판촉·유통 확대와 신규 지역 진출은 각각 39%였다.

가트너의 ‘2026 브랜드·비즈니스 전략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전체 조사에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브랜드 업무에 관여하는 최고경영진 425명이 참여했으며, 성장전략별 문항의 응답자 수는 항목마다 달랐다. AI가 기업의 미션과 문화까지 바꿀 것이라는 전망은 널리 퍼졌지만, 제품과 가격, 유통을 정하는 과정에서 브랜드 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브랜드를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전략별로 1~3%에 불과했다. 대부분 기업이 브랜드를 살펴보기는 했다는 뜻이다. 다만 조사에 포함된 성장전략 7개 가운데 브랜드를 주요 판단 요소로 삼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은 분야는 신제품·서비스 도입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 6개 분야에서는 브랜드가 주요 기준보다 부수적인 고려 대상으로 다뤄졌다.

신제품 단계에서도 절반에 머문 반영률

신제품과 서비스 도입 과정에서 브랜드 전략을 주요하게 고려했다는 응답은 53%로 조사 항목 가운데 가장 높았다. 부수적으로 검토했다는 응답은 45%, 고려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2%였다.

신제품은 기업이 앞으로 어떤 고객과 시장을 선택할지 드러내는 결정이다. 제품의 기능과 품질뿐 아니라 기존 브랜드가 약속해 온 가치와 맞는지, 새로운 제품이 기업 전체의 평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출시 전에 정해야 한다.

브랜드 검토가 제품 개발 뒤로 밀리면 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 제품의 사양과 목표 고객, 가격대가 확정된 뒤에는 이름과 포장, 광고 문구를 다듬는 일만 남기 쉽다. 기존 고객이 기대한 가치와 제품 내용이 어긋나도 출시 일정과 개발비를 이유로 사업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다.

AI를 적용한 신제품에서는 이런 간격이 더 커질 수 있다. 자동 추천과 생성 기능을 넣을지, 고객 데이터를 어느 범위까지 활용할지, AI 결과를 사람이 다시 확인할지에 따라 제품의 성격이 달라진다. 기술 개발 단계에서 정해진 내용은 출시 직전의 홍보 문구만으로 바꾸기 어렵다.

신제품에 AI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보다 기존 브랜드와의 관계를 먼저 정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제품보다 빠르고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사람의 전문성을 보완할 것인지, 새로운 고객군을 겨냥할 것인지에 따라 브랜드가 내놓을 약속도 달라진다.

고객 경험 개선도 주요 반영 48%

고객 경험을 개선할 때 브랜드 전략을 주요 요소로 삼았다는 응답은 48%였다. 부수적으로 고려한 비율은 50%,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율은 2%로 집계됐다.

고객이 브랜드를 실제로 판단하는 과정은 광고보다 구매와 사용, 문의, 환불, 사후 서비스에서 이어진다. 편리함을 내세운 기업이 복잡한 가입 절차를 유지하거나 신뢰를 강조한 기업이 고객 불만을 늦게 처리하면 광고에서 전달한 약속은 설득력을 잃는다.

AI 상담과 자동화 서비스가 늘면서 고객 경험을 정하는 주체도 넓어졌다. 마케팅 조직뿐 아니라 제품과 영업, 고객 서비스, 정보기술 조직이 같은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 상담 속도만 높인 자동화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운영 효율은 개선돼도 브랜드 경험은 나빠질 수 있다.

고객 경험 개선에서 브랜드를 주요 기준으로 삼은 기업이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는 브랜드와 실제 이용 경험이 따로 관리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브랜드 조직이 친절과 편의를 강조해도 고객 서비스 조직이 비용과 처리량만으로 평가받으면 현장에서 적용되는 기준은 달라진다.

브랜드 전략은 고객에게 어떤 감정을 줄 것인지 정하는 문구가 아니라 기업이 제공할 경험의 수준을 정하는 기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응답 시간과 환불 절차, 개인정보 이용 안내, AI 사용 사실의 고지까지 고객이 기업을 평가하는 요소로 들어온다.

신규 고객 공략 46%…시장 확대 앞선 기존 정체성 점검

새로운 고객층을 공략할 때 브랜드 전략을 주요 요소로 고려했다는 응답은 46%였다. 부수적으로 고려했다는 응답은 52%,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2%였다.

신규 고객을 확보하려면 제품과 서비스의 표현을 바꾸거나 가격대와 판매 채널을 넓혀야 할 수 있다. 기존 고객보다 젊은 세대를 겨냥하거나 기업 간 거래에서 개인 소비자 시장으로 이동하면 브랜드가 사용하는 언어와 제공해야 할 경험도 달라진다.

새로운 고객을 얻기 위한 변화가 기존 고객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오랫동안 전문성과 희소성을 내세운 기업이 대중 시장으로 범위를 넓히면 접근성은 높아지지만 기존 고객이 받아들인 브랜드의 위치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대중적인 브랜드가 고가 제품군을 내놓을 때는 가격을 뒷받침할 품질과 서비스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AI는 고객층을 더 세분화하고 개인별 제안을 내놓을 수 있게 한다. 고객마다 다른 가격과 추천, 메시지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기업 전체의 일관성이 약해질 가능성도 생긴다. 고객을 세밀하게 나누더라도 기업이 지키는 기준과 약속까지 달라져서는 장기적인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

신규 고객 수와 단기 매출만으로 시장 확대를 평가하면 기존 고객의 반응과 브랜드 가치 변화가 빠질 수 있다. 신규 고객의 재구매율과 기존 고객의 이탈률, 제품군별 가격 수용도까지 함께 살펴야 확장의 실제 성과를 판단할 수 있다.

가격 변경 때 주요 반영 42%

가격을 바꿀 때 브랜드 전략을 주요하게 고려했다는 응답은 42%였다.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은 브랜드를 가격 결정의 부수적인 요소로 다뤘다.

가격은 매출과 수익을 결정하는 수치인 동시에 고객이 제품의 품질과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가격을 낮추면 접근성은 높아지고, 가격을 올리면 기대하는 품질과 서비스 수준도 함께 높아진다.

원가와 경쟁사 가격만으로 판매가를 정하면 기존 브랜드가 쌓아 온 가치와 고객의 기대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단기 판매를 늘리기 위한 할인이 반복되면 고객은 정상 가격보다 할인 시점을 기다리게 된다. 가격 인상이 제품과 서비스 개선 없이 진행되면 기업이 내세운 가치와 고객이 체감하는 효용 사이의 간격도 커진다.

AI를 활용한 가격 결정은 더 복잡한 판단을 요구한다. 수요와 고객 특성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제시하는 방식은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고객이 차별로 받아들이면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가격 산정 기준을 어느 범위까지 공개할지, 같은 조건의 고객에게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는지도 브랜드 평판과 연결된다.

가격 부서는 수익성과 판매량을, 브랜드 조직은 고객 인식과 장기 가치를 각각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두 판단이 사업계획 단계에서 만나지 않으면 가격이 확정된 뒤 시장의 반발을 설명하거나 광고로 수용도를 높이는 일만 남는다.

기존 제품 개선 41%…기능 추가와 브랜드 약속의 충돌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할 때 브랜드 전략을 주요 요소로 반영했다는 응답은 41%였다. 부수적으로 고려한 비율은 57%, 고려하지 않은 비율은 2%였다.

기존 제품 개선은 신제품보다 변화가 작아 보이지만 이미 제품을 사용해 온 고객의 경험을 직접 바꾼다. 기능을 추가하고 이용 절차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기존 고객이 익숙하게 사용한 방식이 사라질 수 있다.

AI 기능을 추가한 뒤 사용 방식이 복잡해지거나 이용료가 오르면 고객은 개선보다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존 서비스의 장점이 단순함과 안정성이었다면 많은 기능을 넣는 결정이 오히려 브랜드의 강점을 약화할 수도 있다.

제품 개선의 성과를 신규 기능 이용률만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기존 기능의 이용 감소와 고객 문의 증가, 해지율 변화까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기능을 많이 추가한 제품보다 고객이 중요하게 여긴 불편을 정확히 줄인 제품이 브랜드 약속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브랜드 전략이 제품 개선 과정의 주요 기준으로 들어가면 무엇을 추가할지뿐 아니라 무엇을 유지할지도 정할 수 있다. 고객이 오랫동안 선택한 이유를 지키면서 새로운 기술을 넣는 판단이 필요하다.

유통 확대와 지역 진출, 주요 고려 39%

판촉·유통 확대와 신규 지역 진출에서 브랜드 전략을 주요 요소로 고려했다는 응답은 각각 39%로 가장 낮았다. 판촉·유통 확대에서는 60%, 지역 진출에서는 58%가 브랜드를 부수적으로 고려했다고 답했다.

판매 채널은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는 장소와 방식을 바꾼다. 제한된 매장과 공식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던 상품이 다양한 유통망으로 들어가면 접근성은 높아지지만 가격과 서비스, 진열 방식의 일관성을 관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할인 채널에 집중하면 기존 유통망과의 갈등도 생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가격이 자주 달라지거나 판매처마다 교환과 환불 기준이 다르면 고객은 같은 브랜드에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지역에 진출할 때는 현지 고객의 생활 방식과 규제, 유통 구조를 반영해야 한다. 기존 시장에서 사용한 메시지와 제품 구성을 그대로 옮기면 현지 수요와 맞지 않을 수 있다. 현지화에 집중한 나머지 기업이 지켜 온 품질과 서비스 기준이 달라져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기 어렵다.

유통과 지역 확장은 단기간에 매출을 늘릴 수 있는 선택이다. 판매 접점이 늘어난 뒤 품질 관리와 고객 서비스, 가격 정책이 흔들리면 확장 과정에서 얻은 매출보다 브랜드 신뢰를 회복하는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경영회의 전에 정해지는 브랜드의 영향력

브랜드 전략이 성장전략에 미치는 영향은 브랜드 조직의 명칭이나 인원보다 참여 시점에서 갈린다. 목표 고객과 제품 사양, 가격, 유통망이 정해진 뒤 참여하면 바꿀 수 있는 내용은 이름과 디자인, 홍보 방식으로 좁아진다.

사업 검토 초기에는 시장 규모와 예상 수익뿐 아니라 기존 고객과의 관계, 브랜드가 감당할 수 있는 사업 범위도 함께 다뤄야 한다. 신제품이나 가격 변경이 기존 약속과 충돌할 경우 출시 뒤 광고비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간격을 메우기 어렵다.

브랜드를 주요 판단 요소로 삼는다고 모든 사업 결정을 브랜드 조직에 맡길 필요는 없다. 제품과 재무, 영업, 고객 서비스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결정하되 고객에게 어떤 기업으로 남을지 공통 기준을 적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사업계획에는 매출과 수익률뿐 아니라 신규 고객의 재구매율, 기존 고객의 이탈률, 가격 인상 수용도, 고객 불만과 해결 시간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같은 수치를 경영진과 사업부, 브랜드 조직이 함께 살펴야 브랜드가 홍보 단계가 아닌 성장전략 수립 단계에 자리 잡을 수 있다.

가트너 조사는 브랜드가 성장전략에서 완전히 제외된 상황보다 고려의 비중이 낮은 현실을 드러냈다. 대부분 기업이 브랜드를 검토했지만 신제품을 제외한 6개 전략에서 주요 판단 요소로 삼은 비율은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조사는 경영진의 응답을 바탕으로 한 인식 조사다. 국가와 업종, 기업 규모별 차이와 각 기업의 실제 의사결정 과정은 공개 자료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국내 기업에 적용하려면 신제품 기획과 가격 결정, 유통 확대 과정에서 브랜드 조직이 언제 참여했고 어떤 판단이 반영됐는지 별도로 살펴야 한다.

향후 기업들이 내놓을 AI 신제품과 가격 개편, 해외시장 진출 계획에는 브랜드 전략의 실제 위상이 드러날 전망이다. 제품이 완성된 뒤 이름과 광고를 맡기는지, 목표 고객과 가격, 유통망을 정하는 단계부터 브랜드 기준을 적용하는지가 기업 정체성과 사업 운영의 간격을 가를 변수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