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브랜드 전략⑤] 제품·가격 결정에서 밀려난 CMO

브랜드 포지셔닝도 마케팅 주도 46%…제품 전략 27%, 가격 전략 23%에 그쳐

2026-07-22     최기형 기자
[AI 시대 브랜드 전략⑤] 제품·가격 결정에서 밀려난 CMO.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브랜드의 방향과 메시지를 마케팅 조직이 주도하는 기업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제품과 서비스 전략에서는 27%, 가격 전략에서는 23%로 비율이 더 낮아졌다. 브랜드 성과에 책임을 지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정작 브랜드의 실체를 구성하는 제품과 가격 결정에서는 충분한 권한을 갖지 못한 기업이 적지 않았다.

가트너의 ‘2026 브랜드·비즈니스 전략 조사’에서 브랜드 포지셔닝과 메시지를 마케팅 조직이 주도한다는 응답은 46%였다. 시장과 고객에 관한 전략적 정보를 생산하는 업무는 42%, 시장 진입 전략은 36%가 마케팅 주도로 이뤄졌다. 고객 경험 개선과 제품·서비스 전략은 각각 27%,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은 24%, 가격 전략은 23%에 머물렀다. 문항별 응답자는 최고마케팅책임자와 브랜드 업무에 관여하는 최고경영진으로 구성됐으며, 응답자 수는 조사 항목에 따라 달랐다.

마케팅 조직이 제품과 가격에 의견을 내는 기업은 많았다. 제품·서비스 전략에서는 61%, 가격 전략에서는 59%가 마케팅 조직이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답했다. 의견을 내는 단계와 최종 결정에 책임지는 단계는 다르다. 제품 사양과 목표 고객, 가격대가 결정된 뒤 브랜드 조직이 참여하면 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이름과 디자인, 광고 방식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브랜드 포지셔닝도 절반 넘지 못한 주도권

브랜드 포지셔닝은 기업이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로 선택받을지 정하는 일이다. 제품과 서비스, 가격, 판매 방식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사업계획을 세우는 초기부터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조사에서는 마케팅 조직이 브랜드 포지셔닝과 메시지를 주도한다는 응답이 46%에 그쳤다. 마케팅이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응답은 48%, 참여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였다. 수치 합계가 100%를 넘거나 미치지 않는 부분은 반올림에 따른 결과다.

마케팅 조직이 브랜드 포지셔닝조차 주도하지 않는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나 전략기획 조직, 홍보 책임자, 여러 경영진이 권한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공동 책임 체계가 반드시 약한 구조를 뜻하지는 않는다. 최종 결정권자와 실행 책임이 분명하지 않으면 제품과 영업, 고객 서비스가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경영진은 혁신을 강조하지만 제품 조직은 기존 고객의 요구를 우선하고, 영업 조직은 단기 판매량을 위해 할인을 확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브랜드 조직은 품질과 신뢰를 내세우면서 고객 서비스 조직은 처리 건수와 비용 절감만 평가받을 수도 있다. 같은 기업 안에서 서로 다른 판단이 이어지면 고객이 접하는 브랜드도 일관성을 잃는다.

AI가 상품 검색과 구매 과정에 들어오면서 포지셔닝의 범위도 넓어졌다. 고객이 검색창에서 기업 이름을 직접 찾지 않고 AI의 추천을 받아 상품을 고르는 시장에서는 광고 노출만으로 브랜드를 관리하기 어렵다. 제품 정보의 정확성과 고객 평가, 가격, 구매 이후 경험까지 AI의 추천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CMO가 시장과 고객 정보를 확보하더라도 제품과 가격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면 분석 결과를 실제 사업에 반영하기 어렵다. 시장의 변화를 설명하는 역할과 기업의 대응을 결정하는 역할이 분리된 구조다.

제품 전략 27%…완성된 상품 뒤에 붙는 브랜드

제품과 서비스 전략을 마케팅 조직이 주도한다는 응답은 27%였다. 의견을 제공하는 기업은 61%, 참여하지 않는 기업은 12%로 나타났다. 신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업무에서는 마케팅 주도 비율이 24%로 더 낮았다.

제품은 고객이 기업의 브랜드 약속을 직접 확인하는 대상이다. 품질을 강조한 기업이 내구성이 낮은 제품을 내놓거나 편의성을 내세운 서비스가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면 광고와 실제 경험 사이의 간격이 곧바로 드러난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브랜드가 뒤늦게 검토되면 기존 고객과의 관계보다 출시 일정과 개발비가 먼저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목표 고객과 주요 기능, 가격대가 확정된 뒤에는 브랜드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해도 사업 결정을 되돌리기 어렵다. 제품은 그대로 둔 채 설명 방식만 바꾸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AI 기능을 추가하는 제품에서는 초기 판단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고객 데이터를 어디까지 활용할지, 자동 생성 결과를 사람이 확인할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떤 절차로 바로잡을지를 개발 단계에서 정해야 한다. 출시 직전에 책임 있는 AI나 고객 중심이라는 문구를 넣어도 제품의 작동 방식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마케팅 조직의 제품 참여를 기능과 디자인에 대한 의견 수렴으로 한정해서도 부족하다. 고객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선택하는지, 기존 고객이 중요하게 여긴 장점을 유지하는지, 새 기능이 가격 인상을 받아들일 만큼의 가치를 제공하는지까지 사업 판단에 들어가야 한다.

가격 전략 23%…브랜드 가치와 수익성의 간격

가격 전략에서 마케팅 조직이 주도권을 가진 기업은 23%였다. 마케팅이 조언하는 기업은 59%, 참여하지 않는 기업은 17%로 조사됐다. 주요 업무 가운데 마케팅의 참여가 가장 낮은 분야였다.

가격은 원가와 목표 수익률을 계산해 정하는 수치이면서 고객이 제품의 품질과 브랜드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가격을 올리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기대도 함께 높아진다. 할인을 반복하면 정상 가격에 대한 신뢰와 고객의 구매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

재무와 영업 조직이 원가, 경쟁사 가격, 판매량을 중심으로 결정을 내리고 마케팅 조직이 발표 방식만 맡으면 가격이 브랜드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은 뒤로 밀리기 쉽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할인은 단기 실적에 도움이 되지만 고객이 정가 구매를 피하도록 만들 수 있다. 별다른 제품 개선 없이 가격만 올리면 기업이 내세운 가치와 고객이 체감하는 효용 사이의 차이도 커진다.

AI를 이용한 맞춤형 가격은 또 다른 판단을 요구한다. 수요와 고객 특성에 따라 가격을 달리 제시하는 방식은 수익을 높일 수 있지만, 같은 조건의 고객이 다른 가격을 제시받았다고 판단하면 기업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가격 산정 기준과 고객 안내 방식도 브랜드 전략 안에서 다뤄야 하는 이유다.

제품과 가격 결정에 CMO가 반드시 최종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재무와 제품, 영업 조직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다만 고객과 시장을 분석하는 조직이 결정 과정에서 빠지면 수익성과 판매량 이외의 변화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을 수 있다.

CMO가 참여한 기업, 브랜드 전략 성과도 높았다

마케팅 조직의 역할에 따라 강한 브랜드 전략을 갖춘 기업의 비율도 달라졌다. 고객 경험 개선을 마케팅이 주도한 기업에서는 76%가 강한 브랜드 전략 성과를 보였다. 마케팅이 조언한 기업은 61%,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 50%였다.

가격 전략에서는 마케팅 주도 기업의 74%가 강한 브랜드 전략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조언 역할을 맡은 기업은 62%, 마케팅이 참여하지 않은 기업은 53%였다. 제품·서비스 전략에서는 각각 70%, 56%, 53%로 나타났다. 시장 진입 전략에서는 마케팅 주도 기업이 67%, 조언 기업이 59%, 참여하지 않은 기업이 41%였다.

고객 경험과 가격, 제품 전략에서 마케팅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기업일수록 브랜드 전략 성과가 높게 나타난 셈이다. 기업이 고객에게 내건 약속을 제품과 가격, 서비스에 반영할 권한이 있을 때 여러 조직의 실행을 맞추기도 수월해진다.

기업 성장과의 연관성도 나타났다. 제품과 가격 전략을 CMO가 주도한 기업에서는 전체 성장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경영진의 응답이 더 많았다. 다만 조사 결과만으로 CMO의 권한 확대가 매출이나 수익 증가를 직접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장한 기업이 마케팅 조직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을 가능성과 경영 역량, 시장 지위, 제품 경쟁력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조사에서 확인된 내용은 마케팅 조직의 역할과 강한 브랜드 전략, 성장 목표 초과 달성 사이의 연관성이다. CMO의 업무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권한 확대 요구와 경영진 평가의 간격

CMO의 업무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은 이미 나타났다. 2024년 가트너의 별도 조사에서 최고경영자와 최고재무책임자는 앞으로 수년 동안 마케팅 조직에 평균 세 가지의 새로운 책임 영역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제품 전략과 고객 경험, 영업·사업 조직과의 조정이 주요 분야로 꼽혔다.

다른 경영진이 CMO에게 요구하는 내용도 광고와 홍보를 넘어섰다. 절반이 넘는 최고경영진은 CMO가 브랜드 전략과 사업전략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를 원했다. 43%는 브랜드 상태와 사업 성과를 연결한 간결한 설명을 요구했다.

CMO의 현재 역할에 대한 평가는 기대보다 낮았다. 시장과 고객 정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사업전략을 제안한다는 응답은 32%, 기업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할 마케팅 활동을 효과적으로 가려낸다는 응답은 34%에 그쳤다.

권한 부족만으로 낮은 참여율을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제품과 가격 결정에 참여하려면 브랜드 인지도와 광고 반응을 넘어 고객의 구매 행동과 수익성, 시장 규모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사업부와 재무 조직이 사용하는 수치로 제안하지 못하면 경영회의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CMO가 모든 업무를 직접 맡는 방식도 지속하기 어렵다. 브랜드와 광고, 고객 데이터, 제품, 가격, 고객 경험까지 한 조직에 집중되면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책임 범위만 넓어질 수 있다. 필요한 구조는 마케팅 조직의 무조건적인 확대보다 제품과 재무, 영업 조직이 공동으로 판단하되 역할과 최종 책임을 분명하게 나누는 방식에 가깝다.

직함보다 경영회의에서 갈리는 실질 권한

CMO의 위상은 조직도에 표시된 직급보다 제품과 가격을 결정하는 회의에 언제 참여하는지에서 드러난다. 제품 개발이 끝난 뒤 시장 반응을 조사하거나 가격이 확정된 뒤 홍보 계획을 마련하는 역할만 맡으면 사업전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된다.

제품 기획 초기부터 고객 수요와 브랜드 적합성을 검토하고, 가격 변경 전에 고객의 수용 가능성과 이탈 위험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과 고객 정보를 생산하는 업무도 보고서 작성에서 끝나지 않고 제품 투자와 사업 중단, 고객 경험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경영진은 CMO에게 성장 기여를 요구하면서 제품과 가격 결정 권한을 어디까지 부여할지 함께 정해야 한다. 성과 책임만 넓히고 결정 권한을 그대로 두면 브랜드 조직은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떠안게 된다. 반대로 권한만 늘리고 재무와 제품에 관한 분석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조직 간 충돌이 커질 수 있다.

제품 전략 27%, 가격 전략 23%라는 수치는 브랜드 책임자의 직무와 실제 사업 결정 사이에 남은 간격을 드러낸다. 기업의 조직 개편과 연간 사업계획에서는 CMO가 어떤 회의에 참여하는지, 제품과 가격에 관한 의견이 어느 단계에서 반영되는지, 성장 성과를 어떤 수치로 책임지는지가 실질 권한을 가르는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