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브랜드 전략⑥] 브랜드를 경영의 언어로 바꾸는 기업
CxO 절반 이상 사업전략과의 연결 요구…CMO 전략 제안 32%, 성장 기여 선별 34%
[KtN 최기형기자]최고경영진의 절반 이상은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브랜드 전략과 사업전략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하기를 원했다. 브랜드의 현재 상태와 경영 성과를 연결해 간결하게 제시해 달라는 요구도 43%에 달했다. 그러나 시장과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사업전략을 제안한다는 평가를 받은 CMO는 32%, 기업 성장에 기여할 마케팅 활동을 제대로 가려낸다는 평가는 34%에 그쳤다.
가트너의 ‘2026 브랜드·비즈니스 전략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다. 경영진은 브랜드가 사업 성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경영회의에 올라오는 브랜드 보고는 인지도와 광고 반응, 캠페인 성과에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브랜드를 성장의 기반으로 삼으려면 마케팅 지표를 제품과 가격, 고객 유지, 매출과 수익에 관한 판단으로 바꿔 전달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브랜드 전략을 기업 운영에 반영하는 일은 새로운 슬로건을 정하거나 전사 교육을 한 차례 진행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간 사업계획을 세우고 신제품과 가격을 결정하며 고객 불만과 직원 평가 기준을 정할 때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브랜드가 경영의 언어로 자리 잡았는지는 선언문보다 예산과 제품, 조직 운영에서 확인된다.
인지도 보고서로는 움직이지 않는 경영회의
브랜드 인지도가 올랐다는 수치는 마케팅 활동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 경영진이 신제품 투자와 가격 조정, 해외시장 진출을 결정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어느 고객층에서 인지도가 높아졌는지, 구매 후보에 포함된 비율이 달라졌는지, 실제 구매와 재구매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져도 제품의 사용 경험이 나쁘거나 가격이 고객 기대를 넘어가면 매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광고 반응이 좋더라도 고객획득비용이 크게 늘고 재구매율이 떨어졌다면 성장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기 힘들다. 브랜드 지표와 사업지표를 따로 보고하면 두 수치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유도 찾기 어렵다.
경영회의에 필요한 내용은 브랜드 점수 자체보다 수치가 바뀐 원인과 사업에 미칠 영향이다. 특정 고객층의 구매 고려율이 떨어졌다면 제품 경쟁력과 가격, 유통, 고객 서비스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 변화가 시작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원인을 광고 메시지에서만 찾으면 제품과 운영에서 생긴 문제를 놓칠 수 있다.
CMO가 시장과 고객 정보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사업전략을 제시한다는 평가가 32%에 그친 결과도 보고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고객 조사와 캠페인 자료를 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어떤 제품에 투자하고, 어느 고객군을 우선하며, 가격을 어느 수준에서 조정할지까지 제안해야 경영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간 사업계획과 함께 짜는 브랜드 전략
브랜드 계획을 사업계획이 확정된 뒤 세우면 마케팅 조직이 바꿀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된다. 매출 목표와 제품 출시 일정, 가격, 유통망이 정해진 뒤에는 광고 메시지와 매체 집행 방식을 조정하는 정도에 머물기 쉽다.
사업계획과 브랜드 전략은 목표 고객을 정하는 단계부터 함께 다뤄져야 한다.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려는 기업은 고객 수와 예상 매출뿐 아니라 기존 고객의 이탈 가능성과 브랜드 위치의 변화도 살펴야 한다. 고가 제품군을 확대한다면 가격을 뒷받침할 품질과 고객 서비스, 유통 환경을 먼저 갖춰야 한다.
신제품 투자에서도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시장 규모와 예상 수익률이 높더라도 기존 브랜드가 약속해 온 가치와 크게 어긋나는 제품이라면 별도 브랜드를 만들거나 출시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브랜드의 신뢰가 새 사업 진입에 도움이 된다면 제품 개발과 고객 경험에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가트너는 브랜드 포지셔닝을 기업 전체의 공통 기준을 만드는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제품과 영업, 고객 서비스 조직이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치로 선택받을지 공유해야 제품 사양과 가격, 판매 방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포지셔닝 문구를 정하는 데서 끝나면 실행은 달라지지 않는다. 품질을 내세운 기업은 제품 개발과 공급업체 선정, 고객 보상 기준에서도 품질을 우선해야 한다. 편의성을 약속한 기업이라면 가입과 결제, 배송, 환불 절차에서 고객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야 한다.
제품·가격·고객 경험을 묶는 결정 구조
브랜드는 마케팅 조직이 관리하지만 고객이 경험하는 제품과 가격, 서비스는 여러 조직이 나눠 결정한다. 제품 조직은 기능과 출시 일정을, 재무 조직은 수익성을, 영업 조직은 판매량과 유통망을, 고객 서비스 조직은 처리 시간과 비용을 우선하기 쉽다.
부서별 목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브랜드의 일관성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최종 판단에 적용할 공통 기준이 없을 때 문제가 생긴다. 제품 출시를 늦추더라도 품질 기준을 지킬 것인지, 판매량이 줄더라도 반복 할인을 제한할 것인지, 고객 상담 시간을 늘리더라도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공동 책임 체계에서는 결정권의 범위도 분명해야 한다. 브랜드 조직이 제품과 가격에 의견만 낼 수 있는지, 출시 보류나 가격 조정을 요구할 수 있는지,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지 정해 놓아야 한다.
책임과 권한이 어긋나면 브랜드 조직은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평가받게 된다. 고객 신뢰가 떨어져도 제품 품질과 상담 절차를 바꿀 권한이 없다면 광고와 메시지를 고치는 일만 반복할 수 있다. 반대로 마케팅 조직의 권한을 넓히면서 제품과 재무에 관한 분석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부서 사이의 충돌만 커질 수 있다.
필요한 구조는 모든 결정을 CMO에게 맡기는 방식이 아니다. 제품과 재무, 영업, 고객 서비스 책임자가 각자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고객에게 어떤 기업으로 남을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CMO는 시장과 고객의 변화를 사업 판단으로 번역하고, 각 조직의 결정이 브랜드 약속과 어긋나지 않는지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브랜드 건강도를 성장지표와 연결
가트너는 브랜드 건강도 지표를 최고경영진이 우선하는 사안과 연결해 설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지도와 선호도만 보고하지 말고 신규 고객 확대와 기존 고객 유지, 가격 경쟁력, 제품 채택, 인재 확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신규 고객 확대가 목표라면 인지도와 구매 고려율, 실제 전환율, 고객획득비용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존 고객 유지가 중요하다면 재구매율과 이탈률, 고객 불만, 해결 시간, 가격 변경 뒤의 반응이 더 직접적인 판단 자료가 된다.
고가 전략을 추진하는 기업은 브랜드 선호도가 가격 인상 수용도로 이어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인지도는 높지만 할인 판매에서만 구매가 발생한다면 브랜드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제품 기능을 늘렸는데 해지율과 문의가 함께 증가했다면 고객이 개선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다시 살펴야 한다.
직원과 채용 지표도 기업 정체성과 연결된다. 혁신과 전문성을 내세운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직원 이탈이 늘면 외부에 발표한 미션과 내부 경험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지원자 수와 채용 수락률, 핵심 인력 유지율도 브랜드 운영을 살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여러 수치를 하나의 종합점수로 합치는 데만 집중하면 원인을 찾기 어려워진다. 경영진에게 필요한 내용은 점수가 올랐는지보다 어느 고객과 제품에서 변화가 생겼고, 어떤 사업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다. 브랜드 보고서는 결과를 설명하는 문서에서 투자와 운영을 바꾸는 자료로 넘어가야 한다.
AI 시대에 더 커진 조직 간 조정
AI는 제품 개발과 가격, 고객 상담, 시장 분석을 동시에 바꾸고 있다. 같은 기술을 도입해도 어느 업무를 자동화하고 사람이 어디에서 개입하는지에 따라 고객 경험은 달라진다. 부서별로 AI를 따로 도입하면 기업이 내세운 원칙과 실제 서비스가 어긋날 가능성도 커진다.
제품 조직이 기능과 출시 속도를 우선하고, 고객 서비스 조직이 비용 절감에 맞춰 상담을 자동화하며, 마케팅 조직이 사람 중심의 브랜드를 강조하면 고객은 서로 다른 기업을 경험하게 된다. AI 활용 원칙은 기술 부서의 운영 기준에 머물지 않고 제품과 고객, 직원에게 적용할 공통 기준으로 정리돼야 한다.
기업이 AI를 통해 제공하려는 가치도 사업계획에 들어가야 한다. 처리 속도를 높이는 것인지, 사람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것인지, 고객별 맞춤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인지에 따라 투자와 측정 기준이 달라진다. 목표가 불분명하면 여러 조직이 각자의 효율만 좇게 된다.
브랜드 포지셔닝은 이런 선택을 한 방향으로 묶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와 맞지 않는 AI 기능은 도입 범위를 줄이고, 필요한 기능에는 검증과 고객 보호 예산을 함께 배정할 수 있다. 브랜드가 기술을 포장하는 수단이 아니라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CMO 역할 확대, 직함보다 실적 책임의 범위
가트너의 별도 조사에서는 최고경영자와 최고재무책임자가 앞으로 수년 동안 마케팅 조직에 평균 세 가지의 새로운 책임 영역을 더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 전략과 고객 경험, 영업·사업 조직과의 조정이 주요 영역으로 꼽혔다.
업무 범위가 넓어져도 CMO가 광고 예산과 인지도만 평가받는다면 제품과 가격에 관여할 동기는 약해진다. 반대로 매출과 수익 전체를 책임지게 하면서 제품과 영업에 관한 권한을 주지 않으면 평가 구조가 맞지 않는다.
CMO의 실질적인 위상은 직함보다 경영회의 참여 시점과 의결 범위에서 드러난다. 목표 고객과 제품 투자, 가격, 유통망을 정하는 초기 회의에 참여하는지, 시장과 고객 정보를 근거로 결정을 바꿀 수 있는지, 결과에 대해 어떤 수치로 책임지는지가 중요하다.
기업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할 마케팅 활동을 제대로 가려낸다는 평가가 34%에 머문 만큼 CMO의 분석 역량도 함께 높여야 한다. 효과가 낮은 캠페인을 중단하고 제품 개선이나 고객 유지에 예산을 돌리는 판단까지 제시해야 한다. 모든 마케팅 활동을 브랜드 투자라는 이유로 유지하면 사업 조직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선언이 아닌 운영으로 남는 브랜드
강한 브랜드 전략은 사업전략과 맞물리고, 여러 조직에서 같은 방향으로 실행되며, 경영진이 성장에 필요한 요소로 인정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브랜드 부서가 완성한 문서의 수준보다 제품과 가격, 고객 서비스, 인사에서 같은 기준이 반복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 조사는 CMO와 브랜드 업무에 관여하는 최고경영진의 응답을 바탕으로 했다. 국가와 업종, 기업 규모에 따른 차이와 실제 조직 운영 방식은 공개 자료만으로 세부 확인이 어렵다. 국내 기업의 브랜드 거버넌스를 판단하려면 연간 사업계획 수립 과정과 경영회의 구성, 제품·가격 결정 권한, 부서별 평가 지표를 별도로 살펴야 한다.
기업들이 다음 연도 사업계획과 AI 투자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는 브랜드 전략의 실제 위치도 드러난다. 브랜드 보고가 인지도와 광고 성과에 머무는지, 제품 투자와 가격, 고객 유지, 조직 운영을 바꾸는 근거로 쓰이는지가 기업 정체성과 경영 성과를 잇는 기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