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 시대 브랜드 전략, 기업의 선택을 하나로 묶는 기준
로고·광고 넘어 제품과 가격, 고객 경험, 조직문화까지…측정과 권한이 성패 좌우
[KtN 최기형기자]2028년까지 기업 10곳 가운데 8곳 이상이 인공지능(AI)의 시장 확산에 맞춰 미션과 브랜드, 조직문화를 크게 바꿀 전망이다. 최근 2년 동안 이미 브랜드를 정비한 기업은 73%에 달했다. AI의 영향에 대응하려면 기업 정체성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본 경영진도 82%였다.
가트너가 최고마케팅책임자(CMO)와 브랜드 업무에 관여하는 최고경영진을 조사한 결과다. 기업들이 받아든 변화는 로고와 슬로건을 손질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제품을 만드는 방식과 가격을 정하는 기준, 고객을 대하는 절차, 직원에게 요구하는 행동까지 다시 맞춰야 한다는 요구다.
AI 기술은 빠르게 퍼진다. 검색과 추천, 자동 상담, 문서 작성 기능은 한 기업만 오래 독점하기 어렵다. 먼저 내놓은 기능도 경쟁사가 비슷하게 구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가 닮아갈수록 고객은 기능 외의 기준으로 기업을 고른다. 어느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지는지, 고객 정보를 어떤 원칙으로 다루는지가 선택을 가른다.
AI 시대에 브랜드의 무게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는 기술을 새롭게 포장하는 이름이 아니라 기술을 어디까지 적용하고 무엇을 책임질지 정하는 기준이다.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을 모두 넣는 기업보다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에 맞는 기능을 고르고, 책임지기 어려운 기능을 제외하는 기업이 더 오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
기업 현장의 의사결정은 이런 변화에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신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할 때 브랜드 전략을 주요 판단 요소로 고려했다는 응답은 53%였다. 고객 경험 개선은 48%, 신규 고객층 공략은 46%, 가격 변경은 42%, 기존 제품 개선은 41%였다. 판촉·유통 확대와 신규 지역 진출에서는 각각 39%까지 낮아졌다.
신제품 분야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브랜드를 주요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격과 유통처럼 매출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서는 재무와 영업 논리가 더 앞섰다.
가격은 원가와 목표 수익률만으로 설명되는 숫자가 아니다. 반복적인 할인은 단기 판매량을 늘릴 수 있지만 고객이 정상 가격을 받아들이는 기준을 낮춘다. 제품 개선 없이 가격만 올리면 기업이 내세운 가치와 고객이 체감하는 효용 사이의 간격이 벌어진다. 판매처를 넓히면서 채널마다 가격과 서비스가 달라지면 같은 브랜드를 산 고객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브랜드 조직이 제품과 가격, 유통망이 정해진 뒤 참여하면 바꿀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이름과 디자인, 광고 문구를 고치는 정도에 머물기 쉽다. 브랜드 전략이 사업계획 뒤에 놓이는 순간 브랜드는 경영의 기준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사업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좁아진다.
사업전략과 브랜드 전략을 맞춘 기업에서는 성과 차이도 나타났다. 강한 브랜드 전략을 갖춘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매출 또는 수익 목표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이 두 배 높았다. 마케팅 캠페인 목표를 넘어설 가능성은 3.3배, 마케팅 이외 조직이 목표를 초과 달성할 가능성은 1.6배 높았다.
강한 브랜드 전략은 인지도가 높거나 광고를 많이 집행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사업전략과 충분히 맞물리고, 여러 조직이 같은 방향으로 실행하며, 경영진이 성장에 필요한 요소로 인정하는지가 기준에 포함됐다.
제품 조직은 기능과 출시 일정을 정하고, 재무 조직은 수익성을 계산한다. 영업 조직은 판매량과 유통망을 관리하고, 고객 서비스 조직은 문의와 불만을 처리한다. 인사 조직은 채용과 평가를 맡는다. 부서마다 역할은 달라도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려는 가치는 같아야 한다.
품질을 내세운 기업이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결함을 외면하거나, 편의성을 강조한 기업이 복잡한 가입과 환불 절차를 유지하면 광고에서 제시한 약속은 무너진다. 신뢰를 말하면서 상담 조직을 처리 건수와 비용 절감만으로 평가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브랜드는 광고에서 만들어지는 인상이 아니라 각 조직이 반복해서 내리는 결정의 합이다.
브랜드 성과를 책임지는 CMO의 권한도 충분하지 않았다. 브랜드 포지셔닝과 메시지를 마케팅 조직이 주도한다는 응답은 46%였다. 고객 경험과 제품·서비스 전략은 각각 27%, 가격 전략은 23%에 그쳤다.
모든 제품과 가격 결정을 CMO에게 맡길 필요는 없다. 제품과 재무, 영업 조직의 전문성은 유지돼야 한다. 다만 고객과 시장을 분석하는 조직이 사업 검토 초기부터 참여하고, 브랜드 약속과 충돌하는 결정에 조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한도 함께 줘야 한다.
CMO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인지도와 광고 반응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면 제품과 가격 결정에 영향력을 갖기 어렵다. 고객이 어느 제품을 다시 구매하는지, 가격 인상 뒤 얼마나 이탈했는지, 어떤 고객층의 확보 비용이 늘었는지까지 경영진이 사용하는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
측정은 브랜드 전략의 또 다른 약점으로 남았다. 조사 기업의 84%는 브랜드 측정에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고, 성과를 입증하지 못해 다시 예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놓였다. 측정 예산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63%, 경영진이 브랜드 효과와 성과가 나타나는 시점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는 응답은 54%였다. 다른 조직의 책임자가 측정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50%에 달했다.
브랜드 인지도가 몇 퍼센트 올랐다는 보고만으로는 투자와 제품, 가격 결정을 바꾸기 어렵다. 구매 고려율과 전환율, 고객획득비용, 재구매율, 이탈률, 가격 인상 뒤의 반응까지 이어서 봐야 한다. 고객 경험을 개선했다면 불만 건수뿐 아니라 한 번에 해결된 비율과 재문의, 해지 변화도 확인해야 한다.
브랜드 보고서는 성과를 자랑하는 자료가 아니라 경영 판단을 바꾸는 근거가 돼야 한다. 광고 효과가 낮다면 캠페인을 줄이고 제품 개선이나 고객 서비스에 예산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마케팅 활동을 브랜드 투자라는 이름으로 지키려는 태도로는 다른 조직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가트너 조사에서 나타난 브랜드 전략과 기업 성과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제품 경쟁력과 경영 역량, 시장 상황도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성과가 좋은 기업이 브랜드와 측정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사업전략과 브랜드를 맞추고, 여러 조직에서 일관되게 실행하며, 성과를 측정한 기업에서 성장 목표 초과 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흐름은 분명하다.
AI 시대 브랜드 전략은 기업을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미션과 제품, 가격, 고객 경험, 조직문화를 한 방향으로 맞추는 일이다. 기업이 무엇을 할지 정하는 기준이면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도 정하는 기준이다.
혁신을 내세운다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패와 학습을 받아들일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객 중심을 말한다면 상담과 환불 과정에서 고객의 시간과 수고를 줄여야 한다. 책임 있는 AI를 약속한다면 출시 속도뿐 아니라 검증과 오류 대응에도 비용을 배정해야 한다.
2028년까지 사명과 로고를 바꾸는 기업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이 평가할 변화는 발표 자료보다 이후의 제품과 가격, 고객 대응, 인력 운용에서 드러난다. AI 시대의 강한 브랜드는 기술을 가장 크게 외치는 기업이 아니라 사업의 선택과 고객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맞추는 기업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