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폭망한 한국 축구, 32강 탈락이 끊어낸 월드컵 경제
홍명보 감독의 전술 무능과 정몽규 체제의 행정 실패…광고 완판 뒤 사라진 토너먼트 특수
[KtN 김상기기자]약 60억원 규모의 체코전 TV 광고는 완판됐다. 중계 화면에 들어가는 가상광고 34억원어치도 조기에 팔렸다. 네이버 치지직에서 한국의 조별리그 세 경기 전체 중계 누적 조회 수는 5000만회를 넘어섰다. 한국 축구는 국민과 기업이 한꺼번에 몰려든 관심을 32강 한 경기으로도 연장하지 못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48개국, 104경기로 커졌다. 32개 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첫 대회였다. 한국은 체코에 2-1로 이긴 뒤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이어 0-1로 졌다. 1승2패, 승점 3점으로 A조 3위에 머물렀고 조 3위 12개국 가운데 상위 8개국에도 들지 못했다. 최종 순위는 34위였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역대 최하 순위다.
월드컵 참가국이 32개국이던 시절의 조별리그 탈락과도 무게가 다르다. 참가국은 16개국 늘었지만 토너먼트 진출국도 16개국 증가했다. 한국은 넓어진 본선 진입로를 통과한 뒤 더 넓어진 32강 문에서 밀려났다. ‘본선 진출’만으로 축구 행정의 성과를 설명하던 기준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 축구가 잃은 것은 32강 한 자리만이 아니다. 추가 중계와 광고, 후원기업의 후속 캠페인, 유니폼과 관련 상품의 판매 기간, 경기 전후 프로그램과 디지털 영상에 들어갈 소비자의 시간을 함께 잃었다. 104경기로 팽창한 월드컵 경제에서 한국 축구의 상품 수명은 세 경기로 끝났다.
홍명보 감독, 점유율을 승리로 바꾸지 못한 전술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은 무승부만 거둬도 조 2위를 지킬 수 있는 경기였다. 홍명보 감독은 손흥민을 벤치에 두고 시작했다. 전반전 공격이 막히자 후반 시작과 함께 손흥민을 포함해 세 명을 한꺼번에 교체했다. 한국은 공을 60% 소유하고 슈팅 13개를 기록했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남아공은 63분 한 골로 32강에 올랐다.
손흥민의 선발 제외만으로 패배를 설명할 수는 없다. 더 무거운 대목은 전반 45분 만에 세 자리를 동시에 바꿔야 했다는 사실이다. 선발 구성과 공격 설계가 경기 조건에 맞지 않았고, 벤치의 카드도 흐름을 뒤집지 못했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남아공은 한국이 원하는 공간을 지운 뒤 역습 한 번으로 승부를 끝냈다. 비겨도 되는 한국은 경기의 속도와 위험을 통제하지 못했다.
멕시코전에서도 한국은 점유율 56.6%, 슈팅 9개를 기록했다. 멕시코의 슈팅은 8개였다. 공을 더 오래 소유하고도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의 소통 오류로 결승골을 내줬다. 상대 진영에 공을 옮기는 시간은 길었지만 득점으로 끝나는 공격과 실점을 막는 위험 관리는 부족했다.
두 경기에서 같은 결함이 반복됐다. 공을 잡았지만 전진 속도는 떨어졌고, 슈팅은 득점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서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비에서는 한 차례의 의사소통 실패와 일대일 경합 패배가 그대로 실점으로 연결됐다. 감독의 전술적 무능이라는 평가는 패배 자체보다 이미 드러난 문제를 다음 경기에서도 고치지 못한 결과에 붙는다.
홍 감독은 2014년과 2026년 두 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조별리그 탈락을 기록했다. 두 대회 성적은 1승1무4패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얻은 성과와 대표팀 감독으로서 필요한 전술 설계·선수 조합·단기대회 운영 능력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두 번째 기회에도 같은 결말이 나왔다면 선임한 쪽과 선임된 쪽 모두 능력 검증에 실패한 셈이다.
감독의 무능은 270분, 정몽규 체제의 실패는 13년
홍명보 감독의 책임은 경기장에서 확인됐다. 정몽규 회장의 책임은 홍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까지 작동한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대한축구협회 특정감사에서 모두 27건의 위법·부당한 업무처리를 확인했다. 클린스만·홍명보 감독 선임, 비리 축구인 사면 발표와 철회, 축구종합센터 차입금과 보조금, 비상근 임원 자문료, 지도자 자격 관리까지 협회의 여러 업무가 감사 대상에 포함됐다. 문체부는 정몽규 회장과 감독 선임에 관여한 고위 관계자들에게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대한축구협회는 감사 결과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반박했다.
감독 선임 절차의 정당성이 흔들렸을 때 축구협회가 내세울 수 있었던 마지막 방어선은 본선 성적이었다.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 절차 위반 논란 속에서 선임된 감독이 역대 최하 순위로 물러나면서 정몽규 체제는 행정과 경기력에서 동시에 설득력을 잃었다.
정몽규 회장은 2013년부터 13년 동안 대한축구협회를 맡았다. 2026년 5월 29일 월드컵이 끝난 뒤 물러나겠다고 발표하면서 대표팀의 본선 성과 지원을 마지막 소임으로 내세웠다. 한국의 조별리그 탈락 뒤인 7월 6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임기는 2029년까지 남아 있었다.
정 회장의 심각성은 장기 재임 자체에만 있지 않다. 감독 선임 규정과 책임 소재가 흔들리고 정부 감사에서 중징계 요구까지 나온 뒤에도 월드컵 성적에 퇴진 시점을 걸었다. 대표팀이 선전했다면 장기간 축적된 행정 문제를 성과로 덮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협회장의 책임은 패배 뒤 사직서를 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은 감독 선임과 불투명한 절차가 대표팀의 시간과 축구산업의 수입을 얼마나 소진했는지까지 남겨야 한다.
대한축구협회의 2026년도 예산은 1387억원이다. 일반예산 약 1048억원과 코리아풋볼파크 관련 예산 약 339억원으로 구성됐다. 후원금과 A매치·중계권 수입, 국제기구 보조금, 교육·등록비 등을 포함한 자체수입은 약 1181억원으로 전년보다 43% 증가했다. 돈이 없어서 월드컵 준비를 못 한 조직이 아니다.
예산 1387억원과 유럽·아시아 주요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대표팀의 경기 모델을 완성하지 못했다. 감독 후보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전력강화 조직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권한을 행사했는지, 상대 분석과 선수 관리가 감독 개인의 판단을 견제할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 축구협회의 문제는 예산 부족보다 의사결정의 품질과 책임 구조에 가깝다.
광고 완판 뒤 닫힌 32강 판매 창구
월드컵은 승패를 중계권과 광고 재고로 바꾸는 산업이다. FIFA는 경기 수를 64경기에서 104경기로 늘렸다. 방송사는 40개의 생중계와 경기 전후 프로그램을 추가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대표팀이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을수록 해당 국가의 방송·광고시장에도 판매 시간이 더 붙는다.
한국의 조별리그 광고시장은 이미 강한 수요를 확인했다. 체코전 TV 광고 약 60억원이 완판됐고 가상광고 약 34억원도 조기에 팔렸다. KBS는 조별리그 한국전 광고로 약 140억원의 공동중계권료를 웃도는 매출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경기까지는 한국 대표팀이 광고상품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뜻이다.
32강 탈락과 함께 한국전 광고 판매 창구도 닫혔다. 대표팀이 32강에 올랐다면 최소 한 경기의 생중계 광고와 경기 전후 특집, 하이라이트, 온라인 클립, 응원행사 협찬이 추가됐다. 16강과 8강으로 올라갈수록 광고 단가와 후속 캠페인의 기간도 늘어날 수 있었다. 토너먼트 진출을 전제로 광고물과 프로모션을 준비한 기업에는 집행을 축소하거나 다른 콘텐츠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탈락으로 사라진 광고매출의 총액은 공개된 계약 자료가 없어 계산할 수 없다. 확인 가능한 손실은 분명하다. 한국 대표팀이 출전하는 32강 생중계 한 편이 없어졌고, 해당 경기를 중심으로 팔 수 있었던 광고와 협찬의 재고도 함께 사라졌다. 시청률이 높은 대표팀 경기가 빠진 뒤 월드컵 후반부 광고 수요를 메시와 호날두, 결승 대진만으로 채워야 했다.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세계 스포츠경제가 향후 10년 동안 약 1650억달러에서 3200억달러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스포츠팬의 가치는 90분 시청에서 끝나지 않고 스트리밍, 상품, 후원 브랜드 소비와 지역 스포츠 참여로 이어진다.
치지직의 한국전 누적 조회 수 5000만회는 팬의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문제는 해당 관심을 한 경기 더 유지할 경기력이 없었다는 데 있다. 광고주는 준비했고 방송사는 판매했으며 팬은 접속했다. 대표팀과 축구협회가 토너먼트에 들어갈 축구를 만들지 못했다.
1250만달러 보장금, 실패를 가려주는 협회의 안전망
FIFA는 2026 월드컵 참가협회에 준비금 250만달러와 본선 진출금 1000만달러를 지급한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어도 최소 1250만달러를 받는다. 48개 참가협회에 배분되는 전체 재원은 8억7100만달러로 늘었다.
한국 축구산업에는 묘한 불균형이 생긴다. 방송사와 광고회사는 대표팀의 조기 탈락으로 추가 수입 기회를 잃고, 팬은 더 볼 경기를 잃는다. 대한축구협회는 성적과 관계없이 상당한 참가금을 확보한다. 보장금은 본선 준비를 지원하는 돈이지 실패의 책임을 지워주는 돈이 아니다.
월드컵 참가금의 사용처가 대표팀 운영비 안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감독 선임과 전력 분석,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 교육, 여자축구와 지역 유소년, 팬 데이터와 K리그 유입에 얼마를 투입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1250만달러가 다음 감독의 전지훈련비로만 소진되면 한국 축구는 4년 뒤에도 같은 구조에서 본선 진출금부터 계산하게 된다.
홍명보 감독은 전술에서 실패했다. 정몽규 회장은 감독을 고르고 책임을 묻는 조직의 정상화에 실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4년 동안 모인 팬의 관심을 국내 축구에 남는 산업 자산으로 바꾸지 못했다.
2026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폭망은 1승2패만을 뜻하지 않는다. 약 60억원의 첫 경기 광고가 완판되고 디지털 조회 수가 5000만회를 넘은 시장을 세 경기 만에 닫은 경영 실패다. 1387억원의 예산과 1250만달러의 보장금이 들어오는 조직이 경기력과 신뢰, 토너먼트 광고 재고를 함께 잃었다.
월드컵 경제는 패한 협회에도 참가금을 지급한다. 팬의 시간과 광고주의 추가 집행, 방송사의 토너먼트 판매 기회까지 돌려주지는 않는다. 감독 한 명의 사퇴와 회장 한 명의 퇴진으로 끝내면 2030년에도 협회는 참가금을 받고, 기업은 광고를 사고, 팬은 다시 기대한 뒤 세 경기 만에 손실을 떠안게 된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에서, 정몽규 회장은 조직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산업에서 실패했다. 한국 축구가 다시 세워야 할 대상은 대표팀 명단보다 먼저 무너진 책임의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