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최혜정 ‘Circle3 – geometry’, 선과 면 사이에서 맞물린 세 개의 원
가느다란 곡선과 검은 띠, 두 중심의 겹침으로 구성한 비움과 채움의 변화
[KtN 박준식기자]최혜정(CHOI HyuJung)의 2026년작 ‘Circle3 – geometry’에는 세 개의 원형 구조가 삼각 구도로 배치됐다. 왼쪽 아래에는 가느다란 곡선이 반복되고, 오른쪽 아래에는 같은 흐름을 따라 짙은 띠가 이어진다. 위쪽에서는 좌우의 회전 구조가 중앙에서 포개진다. 50×50cm 종이와 연필만으로 선과 면, 여백과 명암, 분리와 겹침의 차이를 드러낸 평면 작업이다.
왼쪽 아래 형태는 두 개의 중심을 향해 휘어지는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선과 선 사이로 흰 종이가 넓게 드러나고, 외곽도 하나의 굵은 윤곽으로 닫히지 않는다. 단단한 원형 덩어리보다 연필이 지나간 방향과 선 사이의 간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곡선은 중심부로 갈수록 촘촘하게 모이고 바깥으로 나갈수록 간격을 넓힌다. 시선은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가 흰 여백을 따라 다시 외곽으로 빠져나온다. 좌우의 중심에서 시작한 선이 가운데에서 교차하면서 어느 곡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도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오른쪽 아래 형태에는 짙은 연필 면이 더해졌다. 흰 띠와 검은 띠가 번갈아 이어지면서 곡선의 방향과 중심부의 회전이 왼쪽보다 빠르게 드러난다. 가는 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던 시선도 강한 흑백 대비를 만나면 곧바로 안쪽으로 모인다.
검은 면은 매끄럽게 인쇄된 색면과 다르다. 연필심이 지나간 결, 손에 들어간 압력, 같은 부분을 여러 차례 덧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짙은 부분 안에서도 농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연필의 결은 띠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 이어진다. 정돈된 윤곽과 손으로 채운 표면이 한 형태 안에서 함께 보인다.
아래쪽 두 원형 구조는 같은 기본 형식을 공유하지만 시각적 무게는 다르다. 왼쪽에는 선과 여백이, 오른쪽에는 면과 밀도가 강조됐다. 왼쪽 형태가 종이의 바탕을 열어 둔다면 오른쪽 형태는 내부를 짙게 채운다. 연필이 놓인 면적의 차이가 형태의 속도와 무게를 바꾼다.
전체 구도에서는 오른쪽 아래의 검은 형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는 선으로 구성된 왼쪽 형태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조가 또렷해진다. 세 원이 이루는 삼각형은 안정적이지만 명암의 무게는 오른쪽 아래로 기울어 있다. 대칭에 가까운 배치 안에 비대칭적인 시각 압력이 들어간 구성이다.
위쪽에서는 두 개의 회전 구조가 중앙에서 포개진다. 좌우의 중심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안쪽의 곡선과 띠가 상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하나의 복합적인 외곽을 만든다. 아래에서 분리돼 있던 가는 선과 짙은 면도 위쪽 형태 안에서는 함께 나타난다.
두 원이 완전히 하나로 합쳐진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좌우 외곽은 각자의 둥근 형태를 유지하고, 경계가 뒤섞이는 부분은 가운데에 집중된다. 한쪽이 다른 쪽을 덮거나 흡수하기보다 두 구조가 서로의 내부로 파고든 상태다. 접촉 이후에도 두 중심과 서로 다른 회전 방향은 남아 있다.
작품명 ‘Circle3 – geometry’는 세 개의 원형 구조와 기하학적 구성 방식을 가리킨다. 곡선의 간격과 반복, 중심 사이의 거리, 띠의 폭, 세 형태 주변의 여백이 전체 구도를 조직한다. 다만 선의 굵기와 연필 농도는 완전히 균일하지 않다. 손의 압력과 속도가 표면에 남으면서 도형의 정확성과 수작업의 편차가 나란히 드러난다.
세 형태를 따라가면 선과 면, 떨어짐과 겹침의 차이가 순서대로 이어진다. 왼쪽 아래에서는 선의 구조가 드러나고, 오른쪽 아래에서는 짙은 명암이 무게를 더한다. 위쪽에서는 두 회전이 서로의 경계를 통과한다. 같은 원형을 반복한 구성은 단순하지만, 선의 밀도와 접촉 방식은 각 형태를 다르게 보이게 한다.
최혜정의 작업 설명에 등장하는 하(Ha)와 타(Tha)는 서로 반대되는 두 기운을 가리킨다. 작가는 하를 프라나(prana)와 태양에, 타를 아파나(apana)와 달에 연결한다. 프라나는 숨과 생명을 움직이는 기운, 아파나는 몸 안의 기운을 아래로 내려보내고 비워내는 작용으로 풀 수 있다. 일상적인 말로 바꾸면 하나는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힘, 다른 하나는 내려보내고 내쉬는 힘에 가깝다.
태양과 달은 작품에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흰 종이와 검은 연필 면, 가는 선과 짙은 띠, 떨어져 있는 두 구조와 중앙에서 겹치는 구조가 서로 다른 성질을 만든다. 하와 타의 관계도 세 원을 특정한 기운에 하나씩 대응시키기보다, 방향과 밀도가 다른 힘이 만나며 형태가 달라지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아래쪽에서는 성질이 다른 두 형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놓인다. 위쪽에서는 좌우의 곡선이 상대의 내부로 들어가며 경계를 바꾼다. 한쪽의 중심이 다른 쪽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합과 분리는 동시에 남아 있다. 작가가 언급한 충돌과 균형, 해체와 결합, 긴장과 이완도 중앙에서 맞물리는 두 회전과 연결된다.
“작가의 시선으로 해석한 신과 인간의 시(詩), 서(書), 화(畵)의 놀이터”라는 설명은 연필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비교적 구체적으로 읽힌다. 반복되는 곡선과 일정한 간격은 운율을 만들고, 길게 이어지는 연필선은 글씨를 쓰는 손의 움직임과 닮았다. 흑백의 농담과 삼각 구도는 평면 회화의 질서를 구성한다.
신과 인간이라는 개념은 작품 속 특정 형태로 구분되기보다 기하학적 규칙과 손의 흔적이 함께 놓인 상태에서 드러난다. 반복되는 곡선은 정돈된 질서를 이루지만 연필의 압력과 농도는 조금씩 다르다. 정확한 구조를 향하는 선과 실제 손이 남긴 미세한 차이가 작품의 표면을 만든다.
온라인 전시관 아뜰리에 아미스에 공개된 ‘Circle3 – geometry’는 색채와 복합 재료보다 연필 한 가지가 만드는 차이에 집중한다. 50×50cm의 크기는 멀리서 세 원의 배치를 확인한 뒤 가까이에서 선의 겹침과 연필의 결을 살피게 한다. 형태 자체의 변화보다 밀도와 명암, 선 사이의 간격이 관람의 속도를 조절한다.
2025년 세계 미술 공개경매에서는 거래 작품의 약 60%가 1000달러 이하에 형성됐고, 1만달러 이하 작품은 전체의 90%를 넘었다. 최근 10년간 경매에서 거래된 동시대미술 작품 수도 130% 증가했다. 고가 작품이 전체 거래액을 좌우하는 가운데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거래가 늘면서 수집층의 범위도 넓어졌다.
공개경매와 온라인 전시관은 서로 다른 유통 영역에 놓여 있다. 다만 대형 회화와 초고가 작품 밖에서도 소형 평면과 종이 작업을 접하는 경로가 넓어진 시장 환경은 ‘Circle3 – geometry’가 공개되는 배경과 맞닿아 있다. 해당 통계는 회화와 조각, 드로잉, 사진, 판화 등을 포함한 공개경매 결과를 집계한 범위다.
‘Circle3 – geometry’의 세 원은 끝까지 서로 다른 밀도와 중심을 유지한다. 왼쪽의 가는 선, 오른쪽의 검은 띠, 위쪽의 겹침이 한 작품 안에서 나란히 작동한다. 원은 완결된 도형으로 고정되기보다 선이 채워지고 두 구조가 맞물리면서 경계가 달라지는 과정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