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ienne Westwood FW26③] 안드레아스 크론탈러의 이탈리아, 웨스트우드 유산보다 앞선 개인 서사
밀라노 생활과 벨로니 쇼룸, 거리 캐스팅을 한데 묶은 캠페인…브랜드 정체성은 유지했지만 FW26의 새 방향은 희미
[KtN 박인경기자]안드레아스 크론탈러(Andreas Kronthaler)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FW26 캠페인을 런던이 아닌 이탈리아 바를라시나에서 촬영했다. 150년 넘게 가구를 제작해 온 벨로니(Belloni)의 쇼룸을 고르고, 이탈리아에서 활동해 온 인물과 거리에서 발탁한 출연진을 한자리에 모았다. 최근 생활 기반인 밀라노와 이탈리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장소와 캐스팅에 함께 들어갔다.
크론탈러가 이번 캠페인에서 전면에 내놓은 것은 컬렉션의 특정 품목이나 재단보다 현재 머물고 있는 지역과 주변 문화다. 금박 가구와 고전 회화, 대형 도자기가 채운 쇼룸은 타탄과 코르셋, 해리스 트위드, 비정형 테일러링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익숙한 디자인을 새로운 생활권으로 옮겼지만, 장소가 강해질수록 FW26에서 달라진 옷의 내용은 뒤로 밀렸다.
벨로니는 크론탈러가 방문한 뒤 직접 고른 촬영지다. 로코코 리바이벌 양식의 금박 소파와 고전주의풍 의자, 아르데코 계열 장식장, 장식용 도자기가 한 공간에 놓여 있다. 영국 펑크와 역사 복식을 바탕으로 성장한 브랜드가 이탈리아 가구 제작사의 쇼룸을 택하면서 캠페인의 지역적 배경부터 바뀌었다.
영국을 상징하는 소재는 그대로 남았다.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와 타탄, 허리를 조인 재킷, 코르셋형 상의가 캠페인 전반에 반복된다. 달라진 부분은 옷을 둘러싼 환경이다. 영국식 테일러링은 런던의 거리나 스튜디오가 아니라 금박 가구와 고전 회화가 가득한 이탈리아 실내에 놓였다. 의상을 새로 만드는 방식보다 이미 알려진 디자인을 다른 문화권에 배치하는 데 힘을 준 선택이다.
서로 다른 장식 전통을 한곳에 모았다고 해서 곧바로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타탄과 코르셋은 여전히 웨스트우드를 대표하는 요소이고, 비틀린 재킷과 짧은 팬츠, 스타킹도 기존 컬렉션에서 여러 차례 다뤄온 방식이다. 벨로니 쇼룸은 익숙한 옷에 낯선 인상을 더했지만 FW26 자체의 변화까지 분명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크론탈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유산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방향을 택하지 않았다. 남성 인물에게 짧은 하의와 스타킹, 굽 있는 신발을 입히고 여성 인물에게는 각진 재킷과 두꺼운 체크 코트를 배치했다. 코르셋은 드레스 안에서 허리를 받치는 구조물이 아니라 니트웨어와 상의 전면에 드러났다. 브랜드가 오래 사용해 온 요소를 남겨 두되 성별과 착용 순서, 길이를 다시 섞었다.
다만 같은 방식이 계속 반복되면서 새로움의 범위도 좁아졌다. 타탄과 코르셋, 젠더 구분을 흐린 스타일링만으로는 이전 시즌과 FW26의 차이를 뚜렷하게 나누기 어렵다. 크론탈러가 웨스트우드의 유산을 현재형으로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이번 시즌에 새로 추가된 설계와 소재가 무엇인지는 캠페인만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캐스팅에는 에이전시 모델과 거리에서 발탁한 인물이 함께 참여했다. 연령과 체형, 성별 표현을 하나의 기준으로 맞추지 않았고, 같은 공간에서도 자세와 표정을 통일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모델의 신체에 옷을 반복해 입히는 대신 착용자의 분위기와 태도가 의상의 인상을 바꾸도록 했다.
거리 캐스팅은 크론탈러가 구축하려는 브랜드의 인물상을 넓혔다. 옷을 입는 몸을 한 가지 기준으로 제한하지 않고, 고전 가구가 놓인 공간에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들였다. 출연진의 폭은 넓어졌지만 의상의 실루엣을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워졌다. 캠페인 속 인물은 제품을 설명하는 모델보다 각자 다른 초상의 주인공에 가깝다.
이탈리아에서 치치올리나(Cicciolin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일로나 스탈러(Ilona Staller)의 참여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스탈러의 대중적 인지도와 문화적 이력은 캠페인의 이탈리아 배경을 강화한다. 다만 스탈러가 상징해 온 이미지와 FW26 디자인을 연결하는 구체적인 설명은 공개된 내용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유명 인물의 존재감은 커졌지만 컬렉션의 성격을 설명하는 역할은 제한적이다.
크론탈러는 장소와 출연진을 통해 현재의 생활을 브랜드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왔다. 밀라노에서 이어가는 일상, 이탈리아 장인 기업, 현지 문화 인물을 한 캠페인에 묶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역사를 과거 영국 문화 안에만 두지 않고 현재 머무는 지역으로 옮긴 방식이다.
개인의 생활과 취향이 강해질수록 브랜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이의 경계는 좁아진다. FW26 캠페인은 비비안 웨스트우드라는 브랜드보다 크론탈러가 현재 관심을 두는 공간과 인물을 보여주는 비중이 크다. 디렉터의 시선이 선명해졌다는 평가와 함께 컬렉션보다 개인적인 취향이 앞섰다는 지적도 가능한 대목이다.
위르겐 텔러(Juergen Teller)의 촬영도 크론탈러의 선택을 강화했다. 텔러는 출연진의 자세와 표정을 고르게 정리하지 않고, 금박 가구와 인물이 불편하게 맞닿은 상태를 남겼다. 정교한 럭셔리 광고보다 즉흥적인 초상에 가까운 사진은 크론탈러가 고른 장소와 출연진을 강하게 부각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텔러의 오랜 협업을 감안하면 촬영 방식 자체에서 큰 변화가 확인되지는 않는다. 몸을 이상적으로 보정하지 않고 주름과 어색한 자세를 남기는 사진은 이전 작업에서도 반복됐다. 크론탈러는 새로운 사진 문법을 요구하기보다 익숙한 텔러의 방식을 벨로니 쇼룸에 적용했다.
타탄 재킷과 분홍색 셔츠, 짧은 팬츠와 무늬 양말을 섞은 착장에서는 크론탈러의 방식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타난다. 영국식 체크 수트를 단정하게 완성하지 않고 색과 길이를 잘게 나눴다. 재킷과 팬츠를 한 벌로 묶는 대신 셔츠와 양말, 신발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구성했다.
옷의 비례를 흐트러뜨리는 방식은 웨스트우드의 기존 언어와 맞닿아 있다. 크론탈러는 해당 유산을 버리지 않고 더 짧은 하의와 높은 신발, 강한 색의 셔츠를 더했다. 아카이브를 유지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크론탈러만의 새로운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단정하기에는 반복되는 요소가 많다.
FW26에서 가장 분명하게 달라진 부분은 컬렉션보다 캠페인의 배경이다. 영국적 소재와 펑크의 태도는 유지됐고, 이탈리아 쇼룸과 현지 출연진이 새로운 외곽을 만들었다. 의상은 브랜드의 연속성을 지켰지만 크론탈러 체제의 다음 단계를 보여줄 만한 변화는 제한적이었다.
촬영 당시 기온은 섭씨 41도까지 올랐다. 두꺼운 아우터와 니트웨어를 착용한 채 진행한 작업은 제작 여건에서도 부담이 컸다. 강한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계절과 촬영 조건을 감수했지만, 완성된 사진에서는 쇼룸의 장식과 출연진의 개성이 의상보다 앞서는 결과도 나타났다.
크론탈러의 이탈리아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새로운 배경을 제공했다. 벨로니의 가구와 거리 캐스팅, 스탈러의 출연은 캠페인 이미지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반면 코르셋과 타탄, 해리스 트위드, 비정형 테일러링은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 요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FW26 캠페인은 크론탈러가 현재 어디에서 생활하고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또렷하게 남겼다. 브랜드 유산을 이탈리아로 옮긴 선택은 분명했지만, 장소와 인물을 걷어낸 뒤에도 남을 FW26만의 디자인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다음 컬렉션과 캠페인에서도 이탈리아 제작 문화와 현지 인물 구성이 이어질 경우 크론탈러의 개인적 이동은 한 시즌의 연출을 넘어 브랜드 운영의 장기 방향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