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마리코 회고전③] 모리 마리코, 사이보그 자화상에서 ‘보이지 않는 우주’로
여성 신체를 연출한 1990년대에서 뇌파·중성미자·동지의 태양까지…30년 작업을 관통한 감지와 번역
[KtN 임민정기자]1994년 ‘Play with Me’에서 모리 마리코(Mariko Mori)는 은빛 갑옷과 긴 가발을 착용한 채 도쿄의 게임 매장 앞에 서 있다. 2006년 ‘Tom Na H-iu’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사라진다. 높이 3m가 넘는 유리 조각이 중성미자 관측 데이터를 받아 빛을 낸다. 두 작품 사이의 12년 동안 작품을 작동시키는 주체는 작가의 몸에서 관람객의 뇌파로, 다시 인간의 감각으로 직접 포착하기 어려운 우주 입자로 이동했다.
도쿄 모리미술관이 2026년 10월 31일 개막하는 ‘모리 마리코: 올 댓 샤인스(Mariko Mori: All That Shines)’는 사진과 영상, 드로잉, 조각, 대형 인터랙티브 설치 등 약 40점으로 30여 년의 활동을 정리한다. 1990년대의 사이보그 이미지에서 불교 우주론과 선사문화, 입자물리학, 장소특정적 공공미술로 이어진 변화를 5개 부문에 담는다. 일본에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으로는 2002년 도쿄도현대미술관의 ‘퓨어 랜드(Pure Land)’ 이후 처음이다.
모리 마리코의 작업은 미래적인 외형을 반복한 경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초기에는 카메라 앞에 선 작가의 몸이 이미지의 중심이었고, 중기에는 관람객의 신체 정보가 작품 내부로 들어왔다. 이후 작업은 태양과 중성미자, 계절과 지형을 조형의 조건으로 삼았다. 매체와 외형은 달라졌지만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정체성, 의식, 자연현상을 감각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제작 방식은 이어졌다.
‘Play with Me’의 인물은 게임 매장의 수많은 상품과 일본어 가격표 사이에서 주변 행인과 분리돼 있다. 금속성 의상과 인공적인 머리카락, 갑옷처럼 분절된 신체는 인간이라기보다 판매를 기다리는 캐릭터에 가깝다. 매장 입구라는 장소도 중요하다. 미래의 여성형 존재는 실험실이나 우주선이 아니라 상품과 오락이 거래되는 도시의 소비 공간에 놓였다.
1995년 ‘Birth of a Star’에서는 작가의 몸이 가상 팝스타로 가공됐다. 입체 효과를 낸 듀라트랜스 프린트와 아크릴, 라이트박스, 음향이 광고판과 상품 진열장의 형식을 끌어들였다. 모리 마리코는 패션을 공부하고 모델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연예인과 미디어 이미지가 제작되는 방식을 작업에 포함했다. ‘Birth of a Star’를 축소한 1998년 ‘Star Doll’은 분홍색 머리와 헤드폰, 미니스커트를 갖춘 상품형 인물로 제작됐다.
초기 자화상은 작가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자화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얼굴과 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개인적 일상이나 내면은 감춰진다. 의상과 분장, 컴퓨터 이미지 처리, 라이트박스와 음향이 작가를 현실의 인물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인공적 존재로 바꾼다. 여성 신체를 노출하는 대신 여성 이미지가 어떤 산업적·기술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몸소 재연한 셈이다.
서구 미술계가 1990년대 모리 마리코의 작업을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코스프레 문화로만 받아들이면 초기 작품에 포함된 사회적 비판은 축소된다. 모리 마리코는 일본을 떠나 생활한 뒤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의 차이를 인식했고, 작업을 통해 여성의 위치를 비판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공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행위는 대중문화에 대한 찬사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외모와 태도가 미디어와 소비산업 안에서 규격화되는 과정에 대한 개입이었다.
1996년 영상 ‘Miko No Inori’에서 은빛 사이보그는 흰 머리의 신비로운 존재로 바뀐다. 반짝이는 눈과 붉은 입술, 손안에서 천천히 회전하는 투명 구체가 인물의 인간적 표정을 지운다. 작품은 4분 42초 분량의 영상으로 제작됐다. 초현대식 공항을 배경으로 한 인물은 미래의 인공생명체와 일본의 무녀가 결합된 형상을 취한다.
‘Miko No Inori’는 초기 사회비판과 이후의 정신적 탐구가 맞닿는 작품이다. ‘Play with Me’에서 작가의 몸은 소비 공간에 전시된 상품형 캐릭터였지만, ‘Miko No Inori’에서는 현실과 알 수 없는 영역을 중개하는 의례의 수행자로 이동한다. 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공적인 외모와 연출된 동작을 유지하면서 신체에 부여된 역할이 상품에서 매개자로 달라졌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제작된 ‘Esoteric Cosmos’ 연작에서는 불교 도상에 따라 신격화된 작가의 모습이 유리와 사진, 스테인리스스틸로 구성된 대형 작품에 등장한다. 2000년 영상 설치 ‘Link’는 투명한 캡슐 안에 누운 모리 마리코를 고대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13개 장소와 결합했다. 도시의 인공 여성에서 출발한 신체가 생과 사, 윤회와 비선형적 시간까지 다루는 도구로 넓어졌다.
20대 초반 부친의 죽음을 겪은 뒤 인간의 존재가 죽음과 함께 완전히 끝나는지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설명도 작품의 전환과 연결된다. 불교 서적과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기자, 랄리벨라, 앙코르와트, 테오티우아칸, 마추픽추 등 고대 도시와 성지를 찾았다. 일본과 유럽의 신석기 유적 조사와 과학자·엔지니어와의 협업도 이어졌다. 작가가 말하는 빛은 시각적 장식에 머물지 않고 생과 사가 물질적 차원 밖에서 연결될 가능성을 나타내는 재료로 자리 잡았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제작된 ‘Wave UFO’에서는 작가의 몸이 작품 전면에서 물러나고 관람객의 몸이 들어온다. 세 명의 관람객이 유선형 구조물 내부에 누우면 뇌파 인터페이스가 뇌 활동을 측정하고 컴퓨터 시스템이 데이터를 투사 이미지로 변환한다. 길이 11.34m의 구조물에는 비전 돔과 프로젝터, 컴퓨터 시스템, 유리섬유, 테크노젤, 탄소섬유와 금속이 사용됐다.
‘Wave UFO’가 바꾼 것은 관람 방식만이 아니다. 초기 작품에서 모리 마리코는 자신의 신체를 직접 연출하고 완성된 이미지를 관람객에게 제시했다. ‘Wave UFO’에서는 완성된 이미지를 미리 고정하지 않는다. 관람객이 제공한 생체정보가 매번 다른 시각적 결과를 만든다. 작품에 들어간 사람은 감상자와 피사체, 데이터 제공자의 위치를 동시에 차지한다.
세 사람의 뇌파를 하나의 공간에 투사하는 구조는 2000년대 초부터 작가가 내세운 ‘오네스(Oneness)’와 맞닿아 있다. 인간과 생명, 시간과 우주가 분리되지 않고 연결돼 있다는 개념이다. 당시 작품은 뇌파 측정과 실시간 컴퓨터 그래픽, 음향, 건축공학을 결합해 개인의 신체 경험을 공동의 감각 환경으로 전환했다.
기술이 참여자의 생각이나 내면을 그대로 공개한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뇌파는 작가와 기술진이 설계한 프로그램을 통과한 뒤 색과 형태로 번역된다. 관람객의 데이터가 작품을 움직이지만 어떤 신호를 수집하고, 어떤 이미지로 변환하며, 어떤 공간에서 경험하도록 할지는 작가가 결정한다. 모리 마리코의 저자성은 자신의 몸을 직접 드러내는 데서 데이터의 선택과 번역 규칙을 설계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Tom Na H-iu’에서는 관람객의 뇌파마저 작품 밖으로 밀려난다. 유리와 스테인리스스틸, 발광다이오드(LED), 실시간 제어장치로 제작된 조각은 도쿄대 우주선연구소 중성미자 관측시설 슈퍼카미오칸데의 데이터를 받아 빛을 낸다. 태양과 지구 대기, 먼 우주의 초신성에서 발생한 중성미자가 감지되면 높이 327.4㎝의 조각에 발광 신호가 나타난다.
중성미자는 작품을 보러 온 관람객과 관계없이 우주를 통과한다. 관람객이 조작하거나 참여하지 않아도 작품은 외부 관측 데이터에 따라 움직인다. ‘Wave UFO’가 인간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영상으로 바꿨다면, ‘Tom Na H-iu’는 인간의 지각 범위를 벗어난 물리 현상을 미술관 안의 빛으로 번역한다.
1990년대 자화상과 ‘Tom Na H-iu’ 사이에는 외형상 큰 단절이 있다. 은빛 의상을 입은 작가와 추상적인 유리 조각은 같은 작가의 작업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다르다. 제작 원리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Play with Me’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사이보그 형상으로 바꿨고, ‘Miko No Inori’는 신체를 현실과 정신적 영역을 연결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Wave UFO’와 ‘Tom Na H-iu’는 뇌파와 중성미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를 영상과 빛으로 바꾼다. 대상은 달라졌지만 비가시적인 정보에 외형을 부여하는 방식은 유지됐다.
2004년 이후 작업에는 조몬과 켈트의 선사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Flat Stone’은 조몬 중·후기 돌바닥 주거지 연구에서 출발했고, ‘Shrine’은 오노코로섬 신화와 관련된 가미타테가미이와 바위와 구마모토의 오시토석 등에서 가져온 형태를 포함한다. ‘Shrine’은 실크와 알루미늄, 목재, 이색성 코팅 아크릴 조각으로 제작돼 2025년 뉴욕에서 처음 전시됐다.
‘Shrine’의 중앙에는 빛을 반사하는 조각이 세워지고 반투명한 직물 구조가 주변을 둘러싼다. 바닥의 원형 빛과 중앙 조각, 직물 사이의 거리가 하나의 감상 환경을 만든다. 초기 작품에서 작가가 무녀의 형상을 직접 연기했다면 최근 설치에서는 인물이 없는 공간 자체가 성소의 역할을 맡는다. 작가의 몸을 통해 수행하던 의례가 건축적 배치와 재료, 빛으로 분산됐다.
선사문화와 일본 신화, 불교 철학, 천체물리학을 한 작업 안에 놓는 방식은 모리 마리코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부분도 남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에서 형성된 의례와 믿음이 ‘연결’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면 각각의 역사적 조건이 약해질 수 있다. 고대 유물과 신화적 형상을 미래적 재료로 다시 만드는 과정이 구체적인 조사와 협업에 근거했는지, 시각적 유사성에 기대어 결합됐는지는 회고전에 공개될 연구 노트와 자료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10년 설립한 파우재단(Faou Foundation)은 작품의 범위를 미술관 밖 자연환경으로 옮겼다. 미야코섬에 영구 설치된 ‘Primal Rhythm: Sun Pillar’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Ring: One with Nature’는 동지의 태양 움직임에 맞춰 위치와 방향을 정한 작업이다. ‘Peace Crystal’은 2024년 베네치아에서 공개됐으며 에티오피아 설치가 계획돼 있다. 작가의 몸에서 시작한 작업이 관람객의 신체와 우주 입자를 거쳐 지형과 천체의 시간으로 확대됐다.
높이 167.3㎝의 ‘Peace Crystal’은 크리스털 유리와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됐다. 인체와 가까운 높이를 유지하지만 내부의 빛과 주변 환경을 굴절시키는 구조 때문에 단단한 물체라기보다 외부의 빛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가깝다. ‘Birth of a Star’에서 작가의 몸을 광고 이미지처럼 빛냈던 라이트박스는 후기 작업에서 인물 없이 빛을 모으고 흩뜨리는 투명 조각으로 바뀌었다.
‘오네스’가 작업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초기 작품이 지녔던 사회적 구체성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1990년대 작업에는 일본 여성의 위치와 소비문화, 연예산업과 인공적 미의 기준이 분명한 배경으로 존재했다. 후기 작업은 생명과 죽음, 지구와 우주의 연결을 다루며 대상을 보편적 차원으로 넓혔다. 보편성은 서로 다른 관람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폭을 키우지만 성별과 계급, 지역, 역사적 갈등을 하나의 정신적 연결 안에 흡수할 위험도 안고 있다.
회고전이 모리 마리코의 경력을 ‘사회비판에서 영적 화해로 발전한 과정’으로만 정리하면 초기와 후기 사이의 충돌은 사라진다. 미래의 여성 캐릭터를 만들며 현실의 권력관계를 드러냈던 작업과 모든 생명의 연결을 말하는 설치 사이에는 연속성과 간격이 함께 존재한다. 초기 작품의 불편함을 후기의 평온한 빛으로 덮지 않고, 두 시기의 서로 다른 정치성과 제작 조건을 함께 놓아야 30년의 변화가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모리 마리코는 자신의 신체를 포기한 뒤 비물질적인 세계로 떠난 작가가 아니다. 몸을 사용하는 위치와 정보의 범위를 계속 바꿨다. 처음에는 작가의 몸이 사회가 만든 여성 이미지를 받아냈고, 이후에는 관람객의 몸이 작품의 데이터를 제공했다. 중성미자와 태양의 움직임이 작품을 작동시키면서 인간은 거대한 자연현상을 감지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로 내려왔다.
‘올 댓 샤인스’에는 초기 모델 활동 사진과 설치 기록, 퍼포먼스 영상, 전시평, 드로잉, 아이디어 스케치, 연구 노트, 참고 서적, 작가가 수집한 고대 유물을 다루는 아카이브와 스튜디오 부문도 마련된다. 2026년 10월 31일 개막 뒤에는 초기 자화상과 후기 대형 설치에 배정된 실제 공간, 연구 자료가 선사문화와 과학기술의 결합 과정을 뒷받침하는 정도, ‘오네스’가 초기 사회비판과 유지하는 긴장 관계가 작가론의 깊이를 가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