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③] 피카소 스크랩북, 얼굴을 다시 세운 선

정면의 눈과 측면의 코, 길어진 목선과 줄어든 어깨… 작은 페이지에 남은 피카소식 초상의 구조 닮은 얼굴을 옮기는 데서 멈추지 않은 드로잉, 스크랩북은 선과 비례를 다시 짜는 피카소의 손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여 준다

2026-07-21     박준식 기자
[특별기획③] 피카소 스크랩북, 얼굴을 다시 세운 선.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 기자] 스크랩북 안의 초상은 사람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정면을 본 눈 옆에 측면의 코가 들어오고, 양쪽 눈의 크기와 위치는 어긋난다. 목은 길어지고, 어깨와 가슴은 몇 개의 선과 면으로 줄어든다. 얼굴을 닮게 맞추는 방식보다, 얼굴을 이루는 축과 비례를 다시 세우는 방식이 앞에 선다. 작은 페이지에 남은 초상 드로잉들은 피카소가 인물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어디에서 비례를 꺾고 어느 선을 끝까지 남겼는지를 비교적 또렷하게 보여 준다.

색이 들어간 얼굴 드로잉에서는 윤곽보다 중심축이 먼저 보인다. 양쪽 눈의 위치는 정확히 맞물리지 않고, 코는 정면과 측면의 성격을 함께 품는다. 입은 짧게 닫혀 있고, 머리선은 얼굴 바깥을 감싸며 전체 틀을 만든다. 색도 빈 공간을 채우기보다 구조를 짚는 데 쓰인다. 붉은 선과 푸른 선, 연두 계열의 흔적이 얼굴 가장자리와 코 주변, 머리 둘레를 따라 얹히면서 한 번에 끝난 초상보다 여러 차례 손이 오간 초상에 더 가까운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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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선으로 세운 여성 초상은 같은 원리를 더 분명하게 밀고 간다. 좌우의 눈은 완전히 같지 않고, 코는 얼굴 한가운데를 가르는 기둥처럼 내려온다. 머리카락은 얼굴을 꾸미는 요소라기보다 바깥 형태를 정리하는 덩어리로 놓여 있다. 목은 길고, 어깨와 가슴은 몇 개의 곡선으로만 남아 있다. 명암과 세부 묘사는 많지 않지만 얼굴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피카소 드로잉에서 중요한 것이 세부의 충실한 재현보다 축과 비례의 재편이라는 점이 이 페이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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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뽑은 목선과 간결하게 정리한 흉상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얼굴은 더 단순해지고, 몸은 더 과감하게 생략된다. 머리카락은 좌우를 감싸는 큰 덩어리로 처리되고, 얼굴 안쪽의 선은 코와 눈, 입만 남긴 채 줄어든다. 대신 목과 어깨의 길이가 인물의 인상을 바꾼다. 실제 비례로 보면 과장된 구조지만, 페이지 안에서는 그 과장이 얼굴의 긴장과 리듬을 만든다. 피카소식 초상은 닮음보다 선의 선택과 비례의 조정으로 인물을 세운다는 사실을 이 대목이 보여 준다.

스크랩북 안의 얼굴들은 한 방향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어떤 얼굴은 정면에 가깝고, 어떤 얼굴은 측면으로 기울며, 또 어떤 얼굴은 둘을 한데 겹친다. 방향은 달라도 공통점은 분명하다. 얼굴을 해부학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코와 눈, 턱과 머리선 가운데 몇 개를 골라 구조를 세운다는 점이다. 완성 회화에서 더 크게 전개될 실험이 이미 드로잉 단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특별기획③] 피카소 스크랩북, 얼굴을 다시 세운 선.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측면으로 돌아선 흉상은 그 차이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마에서 코, 입과 턱으로 이어지는 윤곽이 길게 정리돼 있고, 얼굴의 방향은 몇 개의 선만으로 바로 읽힌다. 정면의 눈 두 개를 모두 보여 주지 않아도 인물의 회전 방향은 분명하다. 목과 어깨, 가슴선은 더 줄어들고, 얼굴의 방향이 전체 인상을 지배한다. 앞선 초상들이 정면과 측면을 겹쳐 놓았다면, 이 드로잉은 오히려 더 절제된 방식으로 인물을 세운다. 피카소가 얼굴을 복잡하게 비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경우에는 극도로 단순한 방향선만으로도 초상을 완성했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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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다시 들어간 남성 얼굴 드로잉에서는 선의 압력과 색의 흔들림이 함께 남아 있다. 눈은 좌우가 조금 다르고, 코는 중심을 잡되 얼굴을 좌우 대칭으로 닫아 두지 않는다. 턱선과 어깨선은 빠르게 정리됐고, 머리카락과 의복의 색은 묘사보다 구조와 분위기를 덧대는 쪽에 가깝다. 앞선 흑백 드로잉보다 덜 단정하지만, 그만큼 손의 움직임은 더 가깝게 들어온다. 여러 번 덧댄 선, 눌렀다가 풀린 획, 끝까지 다듬지 않은 가장자리가 한 얼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완성된 이미지보다 구성의 과정이 더 앞에 선 초상이다.

이 스크랩북 안에서 반복되는 얼굴 구성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좌우 대칭은 기본값이 아니다. 코는 정면의 중심축이면서 동시에 측면의 돌출로 쓰이고, 눈은 같은 높이와 같은 크기로 맞춰지지 않는다. 목은 길어지고, 어깨는 줄어든다. 머리카락은 질감을 세세하게 옮기기보다 외곽의 덩어리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입은 길고 복잡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짧은 선 하나, 닫힌 형태 하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남기는 선은 적지만 구조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초상 드로잉을 한 장씩 따라가다 보면 피카소가 얼굴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인물을 사실처럼 옮기는 화가보다 얼굴을 하나의 구조물처럼 다시 조립하는 화가가 먼저 나온다. 정면과 측면을 섞고, 길이와 비례를 조정하고, 윤곽과 중심축을 남겨 인상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드로잉들은 훗날 더 큰 회화와 판화에서 넓어질 형식 실험의 예고편이 아니라, 이미 자리를 잡은 구성 감각의 압축된 기록으로 읽힌다.

작은 페이지라는 조건도 이 분석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종이 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에 선은 더 빨리 결정돼야 하고, 남길 요소와 덜어낼 요소도 더 빠르게 가려져야 한다. 스크랩북 안의 얼굴들이 긴 묘사보다 축과 윤곽, 눈과 코, 목선과 머리덩어리로 정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한된 자리에서 피카소는 얼굴의 핵심 구조만 남겼고, 그 선택이 오히려 인물의 성격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이 스크랩북의 초상 드로잉이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다. 피카소에게 얼굴은 닮음의 대상이 아니라 재구성의 대상이었다. 정면과 측면을 따로 두지 않았고, 비례를 고정하지도 않았으며, 세부를 늘리는 방식으로 인물을 붙들지도 않았다. 몇 개의 선과 면, 길어진 목과 어긋난 눈, 단단한 코선과 줄어든 어깨선만으로 새로운 얼굴의 질서를 세웠다. 스크랩북 안의 작은 초상들은 그 질서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보여 주는 가장 가까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