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아트②] 흰 몸과 검은 악기
폭포와 암벽 사이에 놓인 픽토그램… 현악기와 동물의 뿔로 넓어진 신체의 윤곽
[KtN 박준식기자]폭포 앞의 몸은 흰색으로 덮여 있다. 가슴에는 팔을 벌린 사람 형상이 놓였고, 복부의 삼각형과 바퀴 모양은 몸의 중심을 따라 내려온다. 검은 현악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두 팔과 악기가 긴 수평선을 만들고, 물줄기는 인물의 뒤에서 수직으로 떨어진다.
유리스탄베크 쉐가예프(Yuristanbek Shygaev)는 검은 몸을 다룬 앞선 작업과 색의 관계를 뒤집었다. 흰색은 신체의 굴곡을 그대로 남기고, 검은 선은 가슴과 허리, 팔과 다리를 따라 흩어진다. 한쪽 팔의 굵은 띠와 반대쪽 팔의 점선, 서로 다른 문양이 놓인 두 다리는 몸을 대칭에서 떼어낸다.
가슴의 사람 형상 아래에는 삼각형과 바퀴가 이어진다. 사람과 기하학 문양을 한 몸 안에 겹쳐 놓는 방식은 쉐가예프가 회화와 두루마리에서 발전시킨 픽토그래피와 닿아 있다. 암각화와 민족 장식에서 가져온 사람과 동물, 새와 물고기는 원형의 복제보다 선과 점으로 다시 짜인 조형 언어에 가까웠다.
검은 현악기는 흰 몸 옆에서 또 하나의 신체처럼 선다. 긴 목은 인물의 키와 나란히 올라가고, 둥근 공명통은 복부의 바퀴 문양과 대응한다. 피부 위의 형상과 실제 사물이 몸의 안팎에서 같은 리듬을 만든다.
악기를 비스듬히 안은 자세에서는 목재의 긴 선이 가슴과 복부를 가로지른다. 피부에 그린 사람 형상은 악기에 일부 가려지고, 복부의 바퀴와 악기의 원형 장식이 가까이 놓인다. 몸과 악기는 서로를 설명하는 소품 관계에서 벗어나 하나의 구도로 결합한다.
소리가 직접 기록되지 않은 사진에도 현과 공명통이 품은 울림은 남는다. 악기를 머리 위로 들거나 몸 옆에 세우고, 가슴을 가로질러 안는 동작은 연주보다 몸의 방향을 바꾸는 데 집중돼 있다. 현악기는 손에 든 물건이 아니라 신체의 높이와 폭, 무게중심을 조정하는 선이 된다.
머리 위의 검정·노랑 구조물은 흑백으로 구성된 몸에 작은 색채의 긴장을 더한다. 직선으로 겹친 머리 장식은 불규칙한 암벽과 대비되고, 얼굴의 검은 문양과 이어져 인물의 높이를 위쪽으로 늘린다.
현악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동물의 뿔이 들어온다. 양손으로 들어 올린 뿔은 머리 위에서 넓은 곡선을 그리고, 신체의 외곽은 두 팔과 뿔의 끝까지 확장된다. 악기의 곧은 선이 몸을 가로질렀다면 뿔은 인물 위에 커다란 아치를 세운다.
쉐가예프의 작업에서 동물의 흔적은 자연을 장식적으로 끌어들이는 데 머물지 않는다. 뿔은 인물의 크기를 바꾸고, 머리 장식과 결합해 사람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흰 몸에 새겨진 사람과 바퀴, 점과 띠도 단일한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서로 다른 기억을 한곳에 불러 모은다.
‘마나스-탐가(Manas-Tamga)’에서도 두루마리와 왕좌, 나무 매, 장대와 동물 가죽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연결됐다. 신화는 그림 속 서사로 머물지 않고 몸과 사물, 관람자의 이동을 포함하는 환경으로 넓어졌다.
악기를 비스듬히 든 인물 뒤로 폭포가 흐른다. 두 다리를 모은 몸은 길고 가는 수직선으로 정리되고, 악기는 어깨에서 골반으로 내려오는 사선을 만든다. 암벽 사이를 흐르는 물, 흰 몸을 가르는 검은 문양, 짙은 목재가 서로 다른 속도로 한 구도 안에 머문다.
폭포는 자연의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한 배경이 아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고정된 자세와 대비되고, 붉은 갈색 암벽은 흰 신체를 앞으로 밀어낸다. 몸에 그린 픽토그램은 바위와 물, 악기와 뿔을 만나며 캔버스에서 얻지 못했던 시간과 움직임을 품는다.
쉐가예프의 흰 몸은 신화를 기록한 평평한 바탕이 아니다. 현악기가 놓이는 방향에 따라 몸의 중심이 달라지고, 뿔을 들어 올리는 순간 사람의 윤곽은 동물의 곡선과 합쳐진다. 폭포의 물소리와 악기의 잠재된 울림까지 더해지며, 피부 위의 선은 소리 없는 그림에서 몸으로 수행되는 리듬으로 옮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