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티파니 영이 말한 창작뮤지컬의 시간...록시를 지우고 유미를 입다
"공연을 올렸지만 이제 시작"...객석 호흡으로 완성해가는 창작 초연 '유미의 세포들'
[KtN 김동희기자] 티파니 영(Tiffany Young)은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 개막 뒤에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대사와 노래를 외워 무대에 올린다고 끝나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사와 동선, 조명 위치는 물론 인물의 감정선까지 공연 직전까지도 계속 수정됐다.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난 티파니 영은 머릿속에 “100가지 버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 곡이 여덟 가지 버전으로 바뀌기도 했고, 가사 한 줄이 바뀌면 유미가 감정을 시작하고 마치는 지점도 다시 맞춰야 했다. 이미 완성된 형식을 익혔던 라이선스 뮤지컬과 달리 배우와 창작진이 함께 첫 기준을 만들어가는 창작 초연의 과정이었다.
"창작이다 보니 노래 가사부터 조명 핀 위치까지 계속 달라졌어요. 모든 버전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면서 배우들과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보여드릴지 생각했죠. 긴장이 꺼지지 않았어요. 공연을 올렸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입니다."
뮤지컬 '유미의 세포들'에서 티파니 영이 처음 꺼내는 말은 자신을 평범한 서른두 살 회사원 김유미라고 소개하는 대사다. 소녀시대와 솔로 무대에서 선명한 표정과 에너지를 앞세웠던 티파니 영에게 ‘평범한 유미’는 단순한 이미지 변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가수로서 익숙한 발성과 움직임을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작업이 먼저였다. 유미의 말투와 감정이 앞에 놓이도록 노래의 질감과 호흡을 조정했고, 생각이 많아 입을 열지 못하는 순간과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는 대목을 나눠 접근했다. 무대 위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유미를 강하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2011년 '페임', 2021년과 2024년 '시카고'를 통해 라이선스 뮤지컬을 경험했던 티파니 영에게 한국 창작 뮤지컬 초연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다. 오랜 시간 다듬어진 작품을 재현하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배우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작품의 첫 기록이 됐다.
"록시는 천 번도 넘게 다듬어진 상태에서 무대에 올랐다면 '유미의 세포들'은 이제 막 첫발을 뗀 작품이에요. 매 공연이 쌓이면서 작품과 함께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티파니 영은 이번 작품을 "유연성을 키우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티파니 영은 유미의 망설임과 불안을 인물의 약점으로 보지 않았다. 사랑과 일 앞에서 머뭇거리고, 자신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살피다가 상처받는 모습이 오히려 유미를 오래 사랑받게 한 성격이라고 판단했다.
“유미는 완벽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인물이에요.”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티파니 영이 알고 있던 '유미의 세포들'은 글로벌 누적 조회수 35억 회를 기록한 이동건 작가의 웹툰을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수백 회에 이르는 원작을 읽고 댓글과 굿즈까지 살폈다. 어떤 지점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는지 확인하고 사랑받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웹툰 속 유미가 당황할 때 동공을 두는 위치와 표정 변화도 연기 자료로 남겼다. 의상과 머리 모양, 걸음걸이 같은 외형뿐 아니라 유미가 혼잣말을 시작하는 순간과 감정을 숨기는 방식까지 모았다. 티파니 영은 자신의 작업 방식을 두고 “리서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찾아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고은이 주연한 드라마와의 비교도 피하지 않았다. 앞선 해석을 의식적으로 지우기보다 웹툰과 드라마가 쌓은 유미를 자료로 받아들였다. 같은 인물을 다룬 세 매체는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부터 달랐다. 웹툰은 표정과 글로 내면을 압축했고, 드라마는 카메라가 가까운 반응을 포착했다. 뮤지컬은 객석까지 닿는 몸의 움직임과 음악으로 유미의 생각을 꺼내야 했다.
“유미의 뿌리는 웹툰이라고 생각했어요. 웹툰과 드라마는 무대 위 유미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자료였어요. 똑같이 따라가기보다 뮤지컬에서 노래하는 유미를 찾아야 했죠.”
한 곡의 짧은 무대에 에너지를 집중해 온 가수 활동과 긴 러닝타임 동안 서사를 이어가는 뮤지컬의 차이도 컸다. 한 넘버를 잘 부르는 것만으로는 다음 대사와 상대 배우의 감정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유미의 감정이 세포들의 노래와 움직임으로 넘어가고, 다시 유미에게 돌아오는 흐름을 놓치지 않는 데 공연 전반의 체력을 배분했다.
창작 초연에서는 배우와 창작진의 의견이 대본과 악보에 반영됐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수정본을 거치며 이미 익힌 호흡을 내려놓는 일도 반복됐다. 티파니 영은 처음부터 고정된 답을 내놓기보다 양정웅 연출과 창작진이 설계한 유미를 먼저 받아들였다. 연습실에서 배우들의 의견이 더해질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다시 조정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이전 작품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화려한 쇼걸 록시 하트의 몸짓과 발성을 내려놓고 평범한 서른두 살 회사원 유미의 호흡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유미를 준비하면서 춤을 잘 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록시의 발레 같은 움직임을 걷어내는 작업이 어려웠죠. 보컬도 차분하고 더 따뜻한 톤으로 바꾸려고 레슨을 받으면서 연습했어요."
티파니 영은 유미를 특별한 인물이 아닌 누구나 한 번쯤 닮아 있을 법한 사람으로 바라봤다. 사람 앞에서 망설이고, 일 때문에 흔들리고,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며 흔들리는 모습까지 유미의 큰 매력으로 사랑스러움을 꼽았다.
"유미의 뚝딱거리는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안하고 서툰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인물이더라고요."
개막 뒤에도 온라인 관람평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 있다. 공연 초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창작진이 세운 이야기의 뼈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응보다는 창작진이 의도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금은 연출님과 감독님들의 피드백을 가장 많이 듣고 있어요. 대신 객석에서 언제 웃음이 퍼지고, 언제 조용해지는 반응을 직접 느끼려고 해요. 관객분들과 호흡하는 순간들이 작품을 조금씩 성장시킨다고 생각합니다."
티파니 영은 "아직도 어려운 장면이 많아요. 마지막 공연까지도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어려움 덕분에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티파니 영에게 '유미의 세포들'은 개막으로 끝난 작품이 아니라 공연을 거듭하며 완성돼가는 현재진행형의 창작 작품이었다.
(인터뷰②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