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의 몰락③] 나이·시민권·거주지만 묻는 의회, 정책 역량은 검증 밖

하원 25세·시민권 7년, 상원 30세·9년이면 헌법상 자격 충족 위원회 직원 46년간 38% 감소…쿠팡 보고서에서 드러난 사실 검증 능력의 공백

2026-07-23     박준식 기자
쿠팡 '3,367만 건' 정보 유출은 인재…과징금 최대 9,000억 벼랑 끝  사진=2026. 02.10  mbc 영상 갈무리  /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 쿠팡을 차별적으로 공격했다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의 결론은 쿠팡 제출 문서와 회사 최고행정책임자 겸 총괄법률고문 해럴드 L. 로저스(Harold L. Rogers)의 비공개 증언을 토대로 나왔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외국 기업을 겨냥해 규제를 무기화했고 쿠팡을 상대로 압박을 이어갔다고 적었다.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과 행정조사 절차를 독립적으로 검토한 전문가 명단,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나 한국 조사기관 관계자의 증언, 쿠팡과 다른 견해를 가진 증인의 참여 여부는 공개된 보고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반론은 일부 소개됐지만, 사실관계가 엇갈리는 대목에서도 쿠팡 내부 문서와 로저스 증언이 판단 근거로 다시 사용됐다.

의원 개인이 외국의 개인정보보호법과 공정거래 제도, 디지털 플랫폼 규제까지 모두 알 수는 없다. 미국 의회는 의원의 지식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상임위원회 전문인력과 의회조사국(CRS), 회계감사원(GAO), 청문회와 소환조사 제도를 두고 있다. 쿠팡 보고서에서 확인해야 할 대목도 의원 개인의 학력이나 지능이 아니다. 상반된 자료를 확보하고 독립된 전문가에게 검증을 맡기는 의회의 기본 절차가 제대로 작동했는지가 판단 기준이다.

연방의원 자격, 헌법에는 세 가지만 규정

미국 연방헌법이 하원의원에게 요구하는 자격은 만 25세 이상, 미국 시민권 보유 7년 이상, 선출되는 주의 주민이라는 세 가지다. 상원의원은 만 30세 이상, 시민권 보유 9년 이상, 해당 주의 주민이면 헌법상 자격을 갖춘다. 학력과 직업, 법률 지식, 경제·외교 경험, 행정조사 능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문턱을 낮게 둔 데에는 민주주의 원칙이 깔려 있다. 재산과 특정 직업, 종교나 학력을 기준으로 출마 자격을 제한하면 기존 권력집단이 경쟁자를 배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헌법 제정 과정에서 제기됐다. 유권자가 다양한 배경의 대표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건만 헌법에 남겼다.

연방대법원도 의회와 주정부가 헌법에 없는 자격을 추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969년 ‘파월 대 매코맥(Powell v. McCormack)’ 판결에 이어 1995년 ‘미국 임기제한위원회 대 손턴(U.S. Term Limits, Inc. v. Thornton)’ 판결에서도 연방의원 자격은 헌법에 적힌 내용으로 제한된다고 봤다. 정책 지식시험이나 학력 요건을 법률로 새로 넣는 방식은 현행 헌법 체계와 맞지 않는다.

법적 자격이 단순하다고 미국 정치의 쇠퇴를 곧바로 뜻하지는 않는다. 선거는 전문관료를 뽑는 임용시험이 아니며, 의원의 경험과 가치관, 지역 대표성도 유권자의 판단 대상이다. 낮은 출마 문턱은 당선 뒤 의원의 판단을 보완하는 조직과 절차가 충분히 갖춰졌을 때 제 기능을 한다.

윤리교육은 의무, 정책 능력은 의원실 판단에 맡겨

미 하원은 의원과 직원에게 윤리교육을 요구한다. 새로 들어온 의원과 직원은 정해진 기간 안에 교육을 받아야 하고, 재직 인력에게도 정기적인 윤리교육이 부과된다. 선물과 외부 소득, 재정 공개, 공적 자원의 사용, 이해충돌 등 의회 활동에 필요한 행동 기준을 익히는 절차다.

한국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외국 법제,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보안 체계, 국제통상 규범을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의무교육이나 자격심사는 없다. 의원이 어느 분야의 전문가를 보좌진으로 채용하고, 외부 자료를 누구에게 검토시키며, 이해당사자의 설명을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지는 의원실과 위원회 운영에 달려 있다.

미국 의회가 다루는 정책 범위는 국방과 금융, 보건, 인공지능, 개인정보, 무역, 노동, 기후, 우주산업까지 이어진다. 의원 한 명이 모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는 어렵다. 정치적 역량은 모든 법률과 기술을 암기하는 능력보다, 필요한 지식을 찾아내고 상반된 주장을 걸러낼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쿠팡 보고서는 해당 기준에서 논란을 남겼다. 법사위는 쿠팡의 임원과 내부 자료를 확보했지만 한국 조사기관이 내놓은 방대한 접속 기록과 개인정보 유출 분석을 같은 수준에서 검토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한국 민관합동조사단이 분석한 접속 기록은 25.6테라바이트에 달한다는 내용도 한국 노동·시민사회 발표문에 담겼다.

법안·조사를 맡는 위원회 직원 38% 감소

미국 의회의 전문성은 상임위원회에 축적돼 왔다. 200개가 넘는 위원회와 소위원회가 담당 분야의 정보를 모으고 법안을 검토하며, 행정부의 정책 집행을 감독하고 위법 의혹을 조사한다. 의원의 임기가 끝나거나 위원 구성이 바뀌더라도 전문 직원이 관련 기록과 법률, 산업 구조를 이어받는 방식이다.

하원 전체 직원 수는 1977년 8,831명에서 2023년 9,247명으로 4.71% 늘었다. 같은 기간 위원회 직원은 38.13% 줄었다. 지도부 사무실 직원은 62명에서 177명으로 증가했다. 법률 심사와 조사·감독을 맡는 위원회 인력은 감소하고, 당 지도부와 의원 개인 사무실의 비중이 커진 흐름이다.

1977년부터 2023년까지 하원 의원실 직원은 6,556명에서 6,680명으로 1.89%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23년 의원실 한 곳의 평균 인원은 약 15명이다. 워싱턴 사무실과 지역구 사무실 인력을 합한 숫자로, 입법과 조사뿐 아니라 지역 민원, 주민 소통, 언론 대응, 일정 관리와 정치 활동을 함께 맡는다.

위원회 인력 감소만으로 쿠팡 보고서의 부실을 설명할 수는 없다. 법사위가 어떤 직원과 외부 전문가를 배치했는지, 한국 정부 자료를 누가 검토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장기적인 인력 이동은 전문적인 입법·조사 기능보다 지도부 중심의 정치 전략과 의원 개인 활동에 자원이 더 많이 배분돼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외국 정부의 규제 집행을 평가하려면 개인정보와 공정거래, 노동, 국제통상 분야를 함께 살펴야 한다. 한국 법률 원문과 행정처분서, 법원의 판결, 기업 제출 자료를 대조할 번역·법률 인력도 필요하다. 위원회 내부에서 해당 작업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장 빠르게 정리된 외부 자료가 판단의 출발점이 된다. 자금과 전문인력을 갖춘 기업과 로비업체가 의회에 제공하는 설명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구조다.

검증 수단은 있었지만 사용 내역은 공개되지 않아

의회 안에는 전문적인 지원조직이 남아 있다. 의회조사국은 의원과 위원회에 초당적·비당파적 정책 및 법률 분석을 제공한다. 복잡한 조사와 감독을 준비하는 의원실에는 비공개 자문과 자료 분석, 증인 질문 작성, 교육과 브리핑도 지원한다. 의회감독편람에는 청문회와 비공개 증언, 소환장뿐 아니라 정부기관 자료와 이해당사자 의견, 독립 연구, 회계감사원 분석 등을 함께 활용하도록 다양한 조사 수단이 정리돼 있다.

회계감사원도 의회의 조사와 감독을 지원한다. 회계감사원이 수행하는 업무의 약 95%는 의회의 법률상 요구나 위원회 지도부의 요청에서 시작된다. 법안 초안 검토와 자료 분석, 청문회 질문 작성 같은 단기 기술지원도 제공한다. 2024년 한 해에만 1,100건이 넘는 기술지원을 의회에 제공했다.

쿠팡 사건에서 의회조사국이나 독립된 개인정보·통상 전문가에게 검토를 의뢰했는지는 공개된 중간보고서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민관합동조사단 관계자를 증인으로 불렀다는 기록도 보고서에 제시되지 않았다. 쿠팡 측과 다른 자료를 제출할 증인에게 같은 시간과 권한을 줬는지도 자료가 부족하다.

조사 수단이 없었던 상황과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충분히 동원하지 않은 상황은 다르다. 미 하원은 쿠팡에 소환장을 발부하고 문서 제출과 임원 증언을 강제할 권한을 행사했다. 같은 권한으로 한국 정부의 처분 근거와 조사 기록, 보안업체의 원문 보고서, 독립 전문가의 검토 의견을 확보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실보다 검증하지 않은 결론

정치인의 지식 부족은 어느 나라 의회에서나 발생한다. 선거로 뽑힌 대표자가 모든 산업과 법률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미국 정치의 기능 저하는 모르는 사실 자체보다, 모르는 사안을 한쪽 이해당사자의 자료로 판단하고 국가기관의 이름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쿠팡 보고서는 전직 직원이 저장한 정보가 약 3,000개 계정에 그쳤고, 자료도 민감하지 않았다는 회사 측 설명에 무게를 실었다. 한국 조사기관은 회원과 비회원을 합쳐 약 3,755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산정했고, 배송지 목록 페이지의 무단 조회도 약 1억4,800만회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두 숫자는 산정 대상이 다르지만, 미 하원 보고서는 차이를 충분히 풀어 설명하지 않은 채 쿠팡 측 수치를 사고의 실질적 규모로 받아들였다.

미국 의원의 헌법상 자격은 모두 충족될 수 있다. 만 25세 또는 30세, 일정 기간의 시민권, 해당 주 거주 요건을 갖췄다면 의석에 앉을 법적 권리가 있다. 복잡한 정책을 다룰 능력과 사실을 검증하는 태도는 헌법상 자격심사 밖에 놓인다.

유권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지식시험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의회가 갖춘 전문인력과 초당적 조사기관을 충분히 활용하고, 보고서에 반대 자료와 검증 절차를 남기며, 오류가 확인되면 공개적으로 바로잡는 방식이 법적 자격과 실제 직무 능력 사이의 간극을 메운다.

하원 법사위는 7월 1일 문서를 중간 직원보고서로 공개했다. 로저스의 비공개 증언 전문과 쿠팡 제출 자료 원본, 한국 정부가 전달한 답변, 보안업체 조사보고서, 독립 전문가의 검토 기록은 아직 공개 범위가 제한돼 있다. 후속 보고서가 해당 자료를 얼마나 담고 수치와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지가 남아 있다.

미국 헌법은 다양한 시민에게 의회의 문을 열었다. 낮은 자격 문턱을 보완해 온 위원회 전문성과 조사 절차가 약해지면 유권자가 선출한 대표는 남아도 정책 판단은 기업과 이해집단이 제공한 자료에 기대게 된다. 쿠팡 보고서의 후속 자료 공개와 정정 여부는 미국 의회가 법적 자격을 넘어 공적 판단을 수행할 역량까지 갖추고 있는지를 가를 기록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