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의 몰락⑤] 쿠팡 로비의 언어, 미 하원의 ‘한국 차별’로 확대
신고서에는 미국 수출·일자리·동맹 통상, 소환장에는 미국 기업 공격 쿠팡 제출 문서의 ‘정부 전체의 공격’ 표현까지 보고서에 채택…기업 분쟁이 국가의 주장으로 전환
[KtN 박준식기자]‘미국 중소기업과 농업 생산자의 수출 확대’는 쿠팡이 워싱턴 로비 신고서에 적은 활동 내용이었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경제·통상 관계 강화도 함께 들어갔다. 개인정보 유출과 공정거래 조사를 둘러싼 한국 내 논란은 신고서에 나타나지 않았다.
2월 5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의 소환장 발표문에는 ‘혁신적인 미국 기업을 겨냥한 한국의 차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한국 정부가 쿠팡의 한국·중국 경쟁사를 보호하려고 미국 기업을 공격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쿠팡 임원의 법적 책임 문제는 ‘미국 시민에 대한 형사처벌 위협’으로 옮겨졌다.
7월 1일 공개된 중간보고서는 표현의 강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한국 정부가 쿠팡을 상대로 ‘괴롭힘 캠페인’을 벌였고 개인정보 유출 사고 뒤에는 ‘정부 전체가 동원된 공격’에 나섰다고 적었다. 국정원은 위험한 장비 회수 작업을 강요한 뒤 관여 사실을 거짓으로 부인한 기관으로 규정됐다. 한국의 법 집행은 쿠팡 한 회사의 손실을 넘어 미국 기업과 소비자, 투자자, 연금 가입자의 피해로 확대됐다.
기업의 한국 내 법률 분쟁이 미국 수출과 일자리, 투자자 보호를 거쳐 한미 통상 문제로 올라선 과정이다. 문구가 이동할 때마다 쿠팡의 법적 책임은 뒤로 밀렸고 미국 기업이라는 국적은 앞자리로 나왔다.
로비 신고서에 들어간 수출과 일자리
쿠팡은 2026년 1분기 자체 로비 비용으로 109만달러를 신고했다. 활동 내용에는 미국 중소기업과 대기업, 농업 생산자가 쿠팡의 디지털·유통·물류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는 방안이 적혔다. 쿠팡의 사업모델과 혁신이 미국의 일자리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설명도 포함됐다. 접촉 기관은 미국 상·하원과 상무부, 국무부, 재무부, 농무부, 미국 무역대표부(USTR), 중소기업청으로 넓게 잡혔다.
무역 분야에는 미국 수출 확대와 북미·아시아·유럽 사이의 교역·투자 증대가 들어갔다. 한국과 대만, 일본, 영국, 유럽연합 등 동맹국과 미국의 경제·상업 관계를 강화한다는 문구도 사용됐다. 국가안보회의(NSC)까지 접촉 기관으로 신고됐다.
쿠팡을 맡은 외부 로비업체도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다. 발라드 파트너스(Ballard Partners)는 2026년 2분기 미국 수출 촉진과 국제경제 정책, 투자 확대,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과의 경제·상업 관계를 활동 내용으로 신고했다. 백악관과 대통령실, 하원, 미국 무역대표부가 접촉 기관으로 기재됐다. 발라드 파트너스가 신고한 2분기 쿠팡 관련 수입은 25만달러였다.
한국에서 제기된 쟁점은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관리, 노동조건, 시장지배력, 공정거래법 집행이었다. 워싱턴에 제출된 신고서에서는 쿠팡이 미국 제품을 해외로 판매하고 미국 일자리를 늘리며 동맹국과의 경제 관계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소개됐다.
로비 신고서는 기업이 어떤 정책 틀로 자신을 설명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다. 실제 면담에서 한국 정부의 조사와 과징금이 거론됐는지, 의원실에 어떤 자료가 전달됐는지는 신고서에 나오지 않는다. 공개된 문구만으로도 쿠팡이 워싱턴에서 법률 위반 여부보다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앞세웠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소환장 발부 때 등장한 ‘혁신적인 미국 기업’
짐 조던(Jim Jordan) 법사위원장과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 행정국가·규제개혁·반독점소위원장은 2월 5일 쿠팡에 소환장을 보냈다. 한국 정부와 쿠팡이 주고받은 문서와 통신자료, 쿠팡 관계자의 증언을 요구했다.
조사 착수를 알린 발표문에는 한국의 법 집행을 검증하기 전부터 결론에 가까운 표현이 들어갔다. 한국 정부가 ‘혁신적인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겨냥했고 한국과 중국 경쟁사를 보호하려고 미국 기업을 공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쿠팡에 대한 과징금과 영업정지 검토, 임원 형사책임 문제는 불공정한 법 집행의 근거로 묶였다.
쿠팡은 로비 신고서에서 미국의 수출과 일자리, 동맹국 통상을 강조했다. 법사위 발표문은 쿠팡의 경제적 기여보다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공격했다는 구도를 앞세웠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전개 방향은 같았다. 쿠팡에 대한 한국의 법 집행을 개별 위반 행위에 대한 행정·사법 절차가 아니라 미국의 기업과 경제적 이익을 겨냥한 국가 간 문제로 옮겼다.
‘혁신적인 미국 기업’이라는 규정도 반복됐다. 혁신은 사업 성과나 기술 수준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규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됐다. 혁신기업에 대한 조사와 제재는 정상적인 법 집행보다 시장 경쟁을 막는 행위에 가깝게 배치됐다.
혁신과 법적 책임은 함께 성립할 수 있다. 새로운 물류망이나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구축한 기업도 개인정보보호법과 노동법,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다. 법사위 발표문은 쿠팡을 먼저 혁신기업으로 규정한 뒤 한국 정부의 조사를 혁신을 가로막는 공격으로 연결했다. 쿠팡에 적용된 법 조항과 위반 행위, 처분 산정 과정은 조사 착수 발표문의 중심에서 빠졌다.
쿠팡 문서에서 나온 ‘정부 전체의 공격’
7월 1일 보고서에는 ‘정부 전체가 동원된 쿠팡 공격(whole-of-government assault on Coupang)’이라는 표현이 따옴표 안에 들어갔다. 각주는 ‘CPNG-HJC119-0001673’으로 표시된 쿠팡 제출 문서를 가리킨다. 언론 보도와 해럴드 L. 로저스(Harold L. Rogers)의 비공개 증언도 함께 근거로 달렸다.
분쟁 당사자가 제출한 문서에 담긴 규정이 의회 보고서의 중심 표현으로 채택된 셈이다. 보고서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 뒤 10개가 넘는 한국 기관이 수십 건의 조사를 벌이고 4000건이 넘는 자료를 요구했으며 쿠팡 직원과 최소 652차례 면담했다고 적었다. 여러 조사기관의 활동은 각각의 법적 근거나 조사 경위보다 ‘정부 전체의 공격’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 배치됐다.
한국 노동·시민사회가 공개한 외신기자 간담회 발표문은 미 하원 보고서가 노동자 과로사와 산재 은폐, 노조 탄압, 블랙리스트, 퇴직금 미지급, 알고리즘 조작과 자사 제품 우대 등 한국에서 제기된 사안을 언급하지 않은 채 규제와 조사를 미국 기업 차별로 규정했다고 비판했다. 해당 내용에는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당사자 주장이 엇갈리는 사안도 포함될 수 있어 개별 사실관계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미 하원 문서가 쿠팡에 불리한 배경을 어느 범위까지 검토했는지를 따지는 반대 자료로는 남는다.
조사기관의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 표적 수사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 기업의 사업 영역이 개인정보와 노동, 유통, 공정거래, 금융, 통신에 걸쳐 있고 여러 법률 위반 의혹이 동시에 제기됐다면 담당 기관도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동일한 정치적 목적 아래 관련성이 낮은 조사를 집중했다면 부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보고서는 조사별 착수 원인과 적용 법률, 기존 신고·고발 시점, 다른 기업과의 집행 수준을 나눠 분석하지 않았다. 여러 기관의 조사 건수를 합친 뒤 ‘정부 전체의 공격’이라는 쿠팡 측 규정을 받아들였다. 숫자는 많았지만 조사들이 하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공개된 보고서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회사 손실에서 미국인의 피해로
보고서는 쿠팡의 시가총액이 한국 정부의 압박 이후 40% 넘게 하락했다고 적었다. 주가 하락은 미국 투자회사와 공적연금, 뮤추얼펀드, 은퇴 자금을 모으는 미국인에게 손실을 줬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미국 기업들이 쿠팡을 통해 매년 수십억달러어치 상품을 판매한다는 내용도 함께 제시됐다.
한국의 규제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은 미국 전체 5250억달러, 미국 가구당 향후 10년간 약 3800달러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외부 기고문에 나온 추정치를 인용해 한국의 공정거래·디지털 규제가 미국 가정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틀을 만들었다.
쿠팡의 법률 분쟁은 네 단계에 걸쳐 범위가 넓어졌다.
개인정보 유출과 규제 조사는 쿠팡의 경영 문제로 시작했다. 워싱턴 로비 신고서에서는 미국 수출과 일자리, 동맹국 통상 문제로 옮겨졌다. 하원 소환장에서는 혁신적인 미국 기업을 겨냥한 한국 정부의 차별로 규정됐다. 7월 보고서에서는 미국 투자자와 연금 가입자, 상품 판매기업, 일반 가정이 피해를 입는 국가적 문제로 확대됐다.
주가 하락의 원인을 한국 정부 조사 하나로 돌리려면 같은 기간 실적과 성장률, 경쟁 상황, 개인정보 사고, 투자자 심리, 시장 전체의 변동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 보고서는 쿠팡 주가와 한국 정부의 조사 시기를 나란히 놓고 정부의 압박이 미국 투자자에게 손해를 줬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복수의 원인을 분리한 분석은 제시되지 않았다.
기업 규제를 미국인의 은퇴 자금과 연결하면 정책 논쟁의 성격도 달라진다. 규제의 적법성과 필요성을 따지는 논의가 미국 국민의 재산을 외국 정부로부터 지킨다는 정치 구호로 바뀐다. 쿠팡에 대한 한국의 처분을 비판하는 기업의 입장은 미국 유권자의 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 주장으로 올라선다.
중간보고서보다 단정적인 보도자료
7월 1일 법사위 보도자료는 35쪽짜리 문서가 ‘중간 직원보고서’라고 밝혔다. 보고서의 지위는 잠정적이었지만 보도자료의 문장은 잠정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쿠팡에 관한 허위 정보를 퍼뜨렸고, 위험한 장비 회수 작업을 강요했으며, 국정원은 관여 사실을 거짓말했다고 단정했다. 한국 정부가 쿠팡 최고경영자에게 형사처벌을 위협했다는 주장도 사실로 제시됐다. 쿠팡 임원의 비공개 증언과 회사 제출 문서에 근거한 판단이라는 설명은 뒤쪽으로 밀렸다.
보고서에서는 각주를 따라가면 쿠팡 제출 문서와 로저스 증언, 언론 보도, 경제단체 자료를 구분할 수 있다. 보도자료에는 출처의 성격과 반대 주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료를 제출한 기업의 주장은 ‘한국이 거짓말했다’, ‘한국이 강요했다’, ‘한국이 미국 기업을 공격했다’는 의회의 공식 문장으로 압축됐다.
보도자료는 언론 보도와 소셜미디어, 정치인의 발언에 사용되기 쉽도록 작성된다. 복잡한 법률관계와 서로 다른 산정 기준은 사라지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선명하게 나뉜다. 한국 정부는 공격자, 쿠팡은 혁신적인 미국 기업, 미국 시민과 투자자는 최종 피해자로 배치됐다.
광고의 문법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제품이나 기업에 유리한 사실은 앞에 놓고 책임과 한계는 줄이거나 제외한다. 반복하기 쉬운 표현을 만들고 소비자의 이해와 감정에 연결한다. 미 하원 보도자료는 쿠팡의 법률 분쟁을 미국 기업과 국민을 보호한다는 정치적 이야기로 정리했다.
같은 표현, 확인되지 않은 작성 경로
로비 신고서와 소환장, 보고서에 유사한 정책 언어가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로비업체가 의회 문안을 작성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수출과 일자리, 혁신, 동맹국 통상, 자국 기업 보호는 해외 규제에 대응하는 미국 기업과 정치권이 널리 사용하는 표현이다.
‘정부 전체의 공격’처럼 쿠팡 제출 문서에서 출처가 확인되는 표현도 있다. ‘미국 수출’, ‘동맹국 경제 관계’, ‘혁신적인 미국 기업’, ‘미국 시민과 기업의 피해’가 어느 문서에서 처음 작성돼 의원실로 전달됐는지는 공개자료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법사위 보고서의 작성 경로를 밝히려면 쿠팡과 로비업체가 의원실에 전달한 브리핑 문건, 이메일, 면담 기록이 필요하다. 로저스의 비공개 증언 준비자료와 증언 전문, 보고서 초안과 수정 이력도 확인 대상이다. 로비스트가 법사위 직원에게 특정 문장이나 통계를 제공했는지, 법사위가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해당 자료가 공개돼야 가려진다.
불법 로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정치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인 접촉과 자료 제공만으로도 자금과 전문인력을 갖춘 기업은 자신의 분쟁을 국가적 문제로 전환할 수 있다. 의원실이 상반된 자료를 독립적으로 검증하지 않으면 기업이 만든 설명은 의회의 명의와 권위를 얻는다.
쿠팡은 워싱턴에서 미국 수출과 일자리, 동맹국 경제 관계를 앞세웠다. 하원 법사위는 한국 정부의 조사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과 미국 국민의 손실로 규정했다. 쿠팡이 제출한 ‘정부 전체의 공격’이라는 표현은 보고서의 주요 판단에 들어갔고, 보도자료에서는 한국 정부의 거짓말과 강요가 확정된 사실처럼 발표됐다.
기업의 설명이 의회 문서에 들어가는 행위만으로 정치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의회는 기업과 노동자, 소비자, 정부기관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의 자료를 받아 판단해야 한다. 한쪽의 표현을 채택하면서 반대 자료와 산정 기준, 법 집행의 근거를 같은 무게로 검토하지 않을 때 조사보고서는 정치 광고에 가까워진다.
하원 법사위는 추가 감독과 입법 검토를 예고했다. 최종보고서에서 쿠팡 제출 문서와 로저스 증언 전문, 한국 정부 답변, 독립 전문가의 분석을 얼마나 공개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후속 문서가 7월 보고서의 표현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쿠팡의 한국 내 분쟁은 미국 정부가 방어해야 할 국가적 피해로 굳어진다. 반대 자료와 작성 경로를 공개하고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면 의회 보고서와 기업 홍보문 사이의 거리를 다시 확보할 수 있다. 미국 정치의 공적 판단 능력은 기업의 말을 얼마나 크게 전달했는지가 아니라, 전달받은 말을 얼마나 엄격하게 검증했는지에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