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매국노의 탄생, 사익을 국익으로 바꾼 기업과 정치의 합작

기업은 투자 손실을 국가 피해로 포장하고 정치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공적 판단으로 공인…국민의 이익을 밀어낸 기업과 정치의 ‘콜라보’

2026-07-21     박준식 기자
[속보] 3370만 명 정보 유출 파장…국회, 쿠팡 김범석 청문회 부른다  사진=2025 12.09 김범석 자료화면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1월 22일 쿠팡 주주인 그린옥스 캐피털 파트너스(Greenoaks Capital Partners)와 알티미터 캐피털 매니지먼트(Altimeter Capital Management)는 미국 무역대표부에 한국 정부를 조사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두 투자회사가 밝힌 쿠팡 보유지분 가치는 15억달러를 넘었다.

청원서에는 일부 한국산 상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고 한국 서비스의 미국 시장 진입을 제한해 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쿠팡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상품에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미국 무역법 조항까지 근거로 제시했다. 쿠팡 투자자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사건과 무관한 한국 수출기업과 노동자, 미국 수입업체와 소비자에게 비용을 나눠 물리는 방식이다.

기업의 권리구제라고만 부르기에는 요구의 범위가 너무 넓다. 한국 정부의 처분이 부당했다면 행정소송과 국내외 중재 절차에서 다툴 수 있다. 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면 국제통상 규범에 따라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쿠팡에 대한 법 집행을 문제 삼아 한국 상품과 서비스 전반을 제재해 달라는 요구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투자자가 감수해야 할 손실을 국민 경제의 손실로 옮기고, 기업의 분쟁을 국가 간 충돌로 키워 한국 정부의 선택을 압박하는 행위다.

두 투자회사는 같은 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국제투자분쟁 중재의향서도 한국 정부에 냈다. 한국 정부의 조사와 처분, 정치권 발언으로 수십억달러의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었다. 중재의향서는 정식 중재 제기가 아니지만 미국 통상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동시에 동원한 압박 구조는 문서로 남았다.

자국의 공익보다 개인과 기업의 사익이 앞에 놓이고, 정치권이 해당 사익을 국가의 이익으로 포장해 주는 결합. 요즘 말로 하면 기업과 정치의 ‘콜라보’다.

옛 매국은 외국을 위해 자국의 영토와 주권을 넘기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현대의 신매국은 훨씬 세련된 외형을 갖춘다. 로비 계약서와 통상 청원서, 투자자 중재의향서와 의회 보고서가 동원된다. 문서 어디에도 나라를 판다는 표현은 없다. 투자자 보호, 혁신, 일자리, 수출, 동맹이라는 듣기 좋은 단어가 채워진다.

신매국의 기준은 외국과 접촉했는지가 아니다. 기업이 국내에서 질 책임과 투자 손실을 피하려고 외국의 관세와 외교 압력을 끌어들이고, 국민의 일자리와 수출을 협상 재료로 내놓았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7월 1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공화당 측은 ‘경쟁체제 폐쇄: 미국인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라는 중간 직원보고서를 내놨다. 한국 정부가 쿠팡을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개인정보 유출 이후에는 여러 국가기관을 동원해 회사를 공격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한국의 법 집행은 미국 기업과 투자자,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규정됐다.

보고서가 제시한 주요 근거에는 쿠팡 최고행정책임자 겸 총괄법률고문 해럴드 L. 로저스(Harold L. Rogers)의 비공개 증언과 쿠팡이 제출한 문서가 들어갔다. 쿠팡 자료에 담긴 ‘정부 전체가 동원된 공격’이라는 표현도 보고서의 주요 판단에 채택됐다. 증언 전문과 회사가 제출한 자료 전체는 보고서에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쿠팡 측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반영됐으며, 법사위에 전달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사실관계가 보고서에서 빠졌다고 반박했다. 국정원도 중국에 있던 장비의 확보를 지시하거나 강요하지 않았고 쿠팡 측이 요청한 국내 이송을 지원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기업과 한국 국가기관의 설명이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미국 의회가 해야 할 일은 복잡하지 않았다. 양측 문서를 같은 기준으로 대조하고 비공개 증언의 전문을 공개하며 독립적인 개인정보·통상 전문가의 검토를 거치는 일이다. 한국의 조사기관과 피해 당사자에게도 기업 임원과 같은 수준의 설명 기회를 줬어야 한다.

미 하원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설명보다 쿠팡 측 자료를 받아들였다. 기업의 방어 논리는 미국 의회의 이름을 얻었고, 쿠팡의 손실은 미국 국민의 피해로 확대됐다. 투자자의 사익이 미국의 국익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의회는 사실을 가리는 기관보다 기업의 주장을 공식화하는 확성기에 가까워졌다.

정치인의 사익을 현금과 뇌물로만 좁혀 볼 필요는 없다. 특정 정치인이 쿠팡으로부터 개인적인 금전 대가를 받았다는 근거는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거래를 만들어 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이익은 돈보다 넓다. 자국 기업을 지킨다는 선명한 구호, 외국 정부를 압박했다는 성과, 친기업 지지층에 보여줄 정치적 메시지, 이해집단과의 지속적인 관계도 정치인의 계산에 들어간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검토하는 수고 없이 ‘미국 기업을 공격한 외국 정부’라는 구도를 선택하면 기업과 정치인 모두가 필요한 결과를 얻는다.

기업은 규제와 과징금, 주가 하락을 외국 정부의 차별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정치인은 미국의 기업과 일자리, 투자자를 보호했다는 성과를 내세울 수 있다. 기업의 주장과 정치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개인정보 관리와 법 위반 여부는 뒷자리로 밀린다.

기업가는 자사의 경제적 사익을 지킨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챙긴다. 양쪽 모두 국익을 말하지만 실제 국익을 구성하는 노동자와 소비자, 납세자의 이해는 계산에서 빠진다.

미국이 한국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비용은 한국 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품을 수입하는 미국 업체와 가격을 부담하는 미국 소비자에게도 돌아간다. 기업 한 곳의 주가와 투자자의 자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미국 국민 전체의 이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이유다.

한국 기업과 투자자의 행위도 같은 잣대로 봐야 한다. 한국에서 사업하고 한국 소비자의 정보를 관리하며 한국의 노동력과 시장에서 수익을 얻었다면 한국법의 적용을 받는 것이 기본이다. 법 집행이 부당하면 법정에서 다투되, 자사의 손실을 줄이려고 한국의 수출과 일자리까지 외국의 보복 수단으로 올려놓을 권리는 없다.

한국 정부의 조사와 처분이 모두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외국 기업에 국적을 이유로 더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면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 조사권을 정치적 압박에 이용했거나 처분의 비례성을 잃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 비판과 국가 배신도 구분해야 한다. 외국 기관에 부당한 대우를 호소했다고 신매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권리를 구제하는 절차와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국민과 산업을 외국의 관세 압박 대상으로 올리는 행위는 같은 범주가 아니다.

신매국은 사익을 지키는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데서 시작한다. 기업의 투자 손실은 기업이 다투고 감당해야 한다. 정치적 성과는 정치인이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은 외국 권력을 방패로 세우고 정치인은 기업의 비공개 문서를 판단의 근거로 삼으면서 책임의 주체가 사라졌다.

기업은 한국에서 발생한 법적 분쟁을 미국 경제의 피해로 바꿨다. 미국 정치는 기업의 설명을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라는 국가의 문장으로 고쳐 썼다. 한쪽은 외국 권력의 문을 두드렸고 다른 한쪽은 국가기관의 도장을 찍었다.

기업가와 정치인이 ‘누가 누가 잘하나’를 겨루듯 역할을 나눈 셈이다. 기업은 사익을 국익의 언어로 세탁하고, 정치는 세탁된 문장을 공적 판단으로 승인했다. 합법 로비는 두 영역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다.

국가의 이익은 기업의 주가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국민의 개인정보와 노동권, 공정한 시장질서, 정부가 국내법을 집행할 권한도 국익에 포함된다. 정치인이 지켜야 할 공익도 특정 기업의 손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소비자와 노동자, 경쟁기업, 납세자의 이해를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사익과 정치인의 정치적 이해가 결합하면 국익이라는 말부터 오염된다. 기업의 손실은 국민의 손실로 부풀려지고, 기업에 대한 법 집행은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 바뀐다. 정치인의 선택은 애국으로 포장되고 비용은 양국 국민에게 넘어간다.

신매국노는 외국 국기를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사익을 지키기 위해 자국의 규제권과 국민의 생계를 외국 권력의 협상 재료로 내놓는 사람, 기업의 이해를 국민 전체의 뜻으로 바꿔 국가의 이름을 빌려주는 사람이 현대의 신매국을 완성한다.

나라를 한꺼번에 넘기는 계약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기업가는 책임을 외국 권력에 맡기고 정치인은 판단을 기업 자료에 맡긴다. 국가의 공익은 조금씩 비워지고 기업과 정치인의 사익이 빈자리를 채운다.

기업과 정치가 함께 만든 계산서의 마지막 수신인은 언제나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