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enciaga QIXI 26④] 르 시티 모토 백, 사랑의 낙서가 가격표를 얻는 순간
검정 스웨이드 위 하트·리본·별·‘B’…칠석의 감정을 발렌시아가 가죽제품으로 옮긴 상품 구조
[KtN 박인경기자]검정 스웨이드 가방 위에 크리스털 하트와 별, 리본이 흩어져 있다. 화살에 꿰인 하트와 손글씨 형태의 알파벳 ‘B’도 전면 곳곳에 놓였다. 지퍼와 버클, 길게 늘어진 가죽 끈은 그대로 남았고 장식만 QIXI 26의 사랑 기호로 바뀌었다. 발렌시아가는 칠석을 위해 새로운 가방 형태를 만들기보다 기존 르 시티 모토 백(Le City Moto Bag)의 표면을 손봤다.
QIXI 26 의류에 들어간 분홍색 손글씨는 공책이나 티셔츠에 직접 그린 낙서를 떠올리게 했다. 르 시티 모토 백에서는 같은 분위기의 그림이 크리스털 스트라스로 바뀌었다. 누구나 펜으로 그릴 수 있는 하트와 별이 명품 가죽제품 위에서는 빛을 반사하는 장식이 된다. 연애 초기의 메모처럼 보이는 그림과 높은 가격대의 가방이 한 제품 안에 놓였다.
낙서는 원래 일시적이다. 공책과 편지, 피부에 남긴 글씨는 지워지거나 버려질 수 있다. 발렌시아가는 쉽게 사라지는 표현을 가방 표면에 고정했다. 티셔츠에서 가볍게 소비되는 사랑의 문구를 오래 소유할 물건으로 옮기면서 QIXI 26의 가격대와 구매 목적도 달라졌다.
티셔츠와 후드는 두 사람이 함께 입을 때 의미가 커지는 상품이다. 문구와 화살표는 상대를 가리키고, 같은 그래픽을 공유해야 커플 구도가 완성된다. 가방은 상대가 옆에 없어도 성립한다. 한 사람이 직접 구매하거나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고, 칠석이 지난 뒤에도 일반 가방처럼 사용할 수 있다.
관계를 밖으로 드러내는 의류와 개인이 소유하는 가방을 함께 구성한 이유도 여기에서 읽힌다. 저렴한 품목으로 캠페인에 진입한 소비자를 가죽제품까지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상품 배열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티셔츠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표시하고, 가방에서는 구매와 소유의 명분으로 바뀐다.
르 시티 모토 백은 QIXI 26에서 가장 많은 제품 정보를 한꺼번에 담은 품목이기도 하다. 검정 스웨이드와 금속 장식은 기존 가방의 외관을 유지하고, 크리스털 모티프는 칠석용 변형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가방의 형태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르 시티를 알아보는 소비자에게는 익숙하게 접근할 수 있고, 새로운 장식은 이미 비슷한 가방을 가진 고객에게 추가 구매 이유를 제공한다.
새로운 제품 개발보다 기존 제품의 표면을 바꾸는 방식은 브랜드에도 부담이 적다. 가방의 구조와 제작 체계를 유지하면서 계절과 기념일에 맞는 장식을 덧붙일 수 있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이름과 형태를 활용하기 때문에 상품을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도 줄어든다.
QIXI 26의 문화적 한계도 가방에서 반복된다. 별과 리본, 하트, 화살은 칠석을 특정하는 기호가 아니다. 견우와 직녀, 은하수, 직조와 바느질 같은 칠석의 내용은 크리스털 장식에서도 빠졌다. 제품명과 출시 시점을 가리면 밸런타인데이나 다른 연애 기념일을 겨냥한 가방과 구별하기 어렵다.
알파벳 ‘B’는 문화적 배경보다 브랜드 소유권을 분명하게 한다. 하트와 별은 어디에서나 쓸 수 있지만 ‘B’가 들어가는 순간 낙서는 발렌시아가의 상품 표식으로 묶인다. 손으로 쓴 듯한 형태를 사용해 로고의 공식적인 인상을 낮췄지만, 장식의 역할은 브랜드명을 드러내는 일반적인 로고 상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살에 꿰인 하트는 QIXI 의류의 방향형 그래픽과도 연결된다. 티셔츠의 화살표가 옆 사람을 향하도록 만들어졌다면 가방의 화살은 하트 안에서 끝난다. 두 사람이 함께 있어야 완성되던 의류의 문법이 가방에서는 하나의 장식으로 닫힌다.
리본과 별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넓히는 대신 장식의 수를 늘린다. 하트만 반복할 때 생길 수 있는 단조로움을 피하고, 검정 스웨이드의 넓은 면을 여러 작은 크리스털로 나눴다. 장식은 일정한 간격으로 정렬되지 않고 가방 전면과 측면에 흩어져 있다. 공책 한쪽에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더한 듯한 외관을 만들기 위한 배치다.
무작위로 놓인 듯한 장식도 실제로는 가방의 금속 부속과 간섭하지 않도록 정리됐다. 지퍼와 스터드, 버클 주변에는 비교적 여백을 남겼고, 넓은 스웨이드 면에 하트와 별을 집중했다. 즉흥적인 그림의 인상을 내세우면서 상품의 형태와 기능은 건드리지 않았다.
스웨이드의 무광 표면과 크리스털의 반사도 대비된다. 검정 바탕은 가방의 낡고 거친 인상을 유지하고, 작은 크리스털은 빛을 받을 때만 표면 위로 올라온다. 장식 면적을 크게 넓히지 않아 르 시티의 외형이 완전히 다른 가방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같은 장식이 매끈한 가죽이나 밝은 색 원단 위에 놓였다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났을 수 있다. 검정 스웨이드와 금속 부속은 하트와 리본의 가벼운 인상을 일부 눌러준다. 발렌시아가는 사랑의 기호를 사용하면서도 제품 전체가 귀엽거나 달콤한 이미지로만 읽히는 것은 피했다.
다만 거친 가방과 반짝이는 하트의 대비가 새로운 발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터사이클 가방과 여성적인 장식, 검정색과 크리스털을 결합하는 방식은 패션 시장에서 여러 차례 사용돼 왔다. QIXI 26의 차이는 조형적 새로움보다 발렌시아가의 기존 가방과 칠석이라는 판매 시점을 묶은 데 있다.
크리스털 장식은 제작비와 외관의 차이를 설명하는 수단이지만, 칠석의 문화적 내용까지 보충하지는 못한다. 장식이 정교해져도 하트와 별이라는 기호의 일반성은 그대로 남는다. 티셔츠에서 단순했던 그래픽을 값비싼 재료로 옮긴 결과이지, 칠석의 의미를 가방 디자인으로 다시 풀어낸 결과는 아니다.
QIXI 26은 하나의 그래픽을 품목에 따라 다른 재료로 바꿨다. 의류에서는 분홍색 인쇄, 손과 유리창에서는 검정 펜과 손가락 자국, 가방에서는 크리스털 스트라스를 사용했다. 이미지의 내용은 유지하고 재료와 가격대만 달리한 방식이다.
같은 하트를 여러 상품에 반복하면 소비자는 품목이 달라도 하나의 시리즈로 인식할 수 있다. 티셔츠를 고른 소비자와 가방을 구매한 소비자가 서로 다른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QIXI라는 캠페인 안에 들어간다. 단순한 기호 하나가 의류와 액세서리, 가죽제품을 연결하는 판매 표식이 된다.
기념일 캡슐에서 가방은 의류보다 긴 판매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I♥U’ 문구가 크게 들어간 티셔츠는 착용 장소와 시기에 제약이 있지만, 작은 크리스털 하트가 흩어진 검정 가방은 계절이 지나도 사용할 수 있다. 칠석이라는 직접적인 설명이 제품에 적혀 있지 않은 점도 기념일 이후의 사용에는 유리하다.
칠석의 고유성이 희미하다는 비판과 장기간 판매할 수 있다는 상품상의 장점은 같은 디자인에서 나온다. 특정 문화 요소가 적기 때문에 어느 시장에서도 읽히고, 다른 기념일에도 활용할 수 있다. 지역 명절을 반영한 제품이면서 지역과 날짜의 제약을 최소화한 가방이다.
르 시티 모토 백은 QIXI 26의 감정과 판매 구조가 만나는 지점에 놓였다. 손바닥과 티셔츠의 낙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가방의 크리스털은 개인의 소유물로 남는다. 사랑을 함께 표현하는 행위는 캠페인을 만들고, 사랑을 기념한다는 이유는 고가 제품 구매를 뒷받침한다.
QIXI 26이 칠석의 문화적 내용을 깊이 다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르 시티 모토 백 역시 견우와 직녀의 설화보다 하트와 리본, 브랜드의 ‘B’를 앞세웠다. 발렌시아가가 선택한 것은 칠석의 재해석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가방에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사랑 기호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티셔츠의 ‘I♥U’는 두 사람이 함께 입고 사진을 찍는 동안 소비된다. 검정 스웨이드 위의 크리스털 하트는 같은 감정을 더 오래 보관할 물건으로 바꾼다. QIXI 26의 상품 구성은 관계를 표시하는 의류에서 개인이 소유하는 가죽제품으로 이동했고, 사랑의 낙서는 르 시티 모토 백 위에서 명확한 가격표를 얻었다.